UST, 외부전문가 영입해 창업 강좌 첫 개설···학생들 남다른 '관심' 보여
박정민 교수, 사업계획서 작성부터 인생상담까지 진행

"극초단 레이저를 이용한 OLED 패널 수리 사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현재 1년에 낭비되는 금액만 약 2조 원에 육박하기 때문에 시장성은 충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광학을 다루는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납품할 계획입니다."(김훈영 UST 학생)

"퍼스널 코디네이팅 사업 모델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빅데이터로 피부색이나 인간 체형 변화 등을 반영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자 합니다."(김지원·김정균 UST 학생)

학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5월의 평일 늦은 저녁 UST(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총장 문길주) 본관의 한 강의실. 학생들이 초롱초롱한 눈을 반짝이면서 산업의 매력도를 분석하고, 결정하는 기법인 마이클 포터의 5 Forces Model 전략에 대한 박정민 UST 교수의 강연에 귀를 쫑긋 세웠다.

과학기술 전문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UST가 외부전문가를 영입하면서 '창업교육'이라는 새로운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연구기관에 소속돼 연구와 학업을 병행하는 UST 고유 특성상 학생들은 석·박사 학생들로 구성되어 그동안 연구개발 과제에만 집중해 왔다. 그런 가운데, 올해 봄학기 처음으로 기업가정신과 기술벤처창업 과목이 개설되면서 창업교육 훈풍이 불고 있다. 창업교육이 창업을 꿈꾸던 학생 뿐만 아니라 기술사업화에 무지했던 학생들에게 남다른 관심과 호응을 얻고 있다. 

◆ 학생들, 발표 통해 사업화 모델 직접 체득

창업교육 수업은 주로 이론과 학생들의 발표가 병행되도록 구성돼 있다. 학생들이 개인 또는 팀원과 함께 구성한 조별로 준비한 사업화 아이템을 발표하는 과정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실제로 적용해 보는 방식이다.

이날 학생들은 인간 전장유전체 해독을 통한 개인 맞춤 진단 서비스사업, 저가형 고객맞춤 로봇제작 서비스 사업, 동물실험대체 사업, 친환경 생물농약 사업, 열측량계 방사선 측정 사업 등 각자의 공학적 지식을 활용한 아이템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아이템을 산업 내 경쟁자, 잠재적 신규진입자, 구매자, 공급자, 대체재 측면에서 분석해 약 2분 간 발표하고, 다른 학생들과 질의응답을 통해 아이디어의 실행가능성을 검증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재용 학생은 '열분해 관련 부산물 생산 판매 사업' 관련 원재료는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한 학생의 질문에 "동남아시아에서 폐목재 등을 태우는 열분해 과정에서 배출되는 바이오매스를 활용해 대체 연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박 교수는 학생들의 발표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현재와 미래의 경쟁자가 얼마나 많을 것인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등의 조언을 건넸다.

발표에 이어 박 교수는 기술사업화 이론과 기술경영 적용 방안에 대해 소개했다.

교재를 활용한 간단한 모델 설명 후, 각종 기업 사례를 영상을 통해 소개하면서 이에 대한 시사점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학생들은 박 교수의 한 마디 말마다 주시하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C 기업은 기술이 좋았는데 사업화가 안 되고 망했습니다. 기술은 괜찮았는데 시장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창업을 하려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지 대체재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고민해야 하며, 시장 규모나 시장 전망을 합리적 논리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대기업·창투사 거쳐 교수로···박정민 교수 '벤처 창업 투자 베테랑'

"대기업, 창투사, 교수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나름 성공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비결은 호기심인 것 같습니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벤처창업도 호기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학습과 노력이 수반돼야 합니다."

UST에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고 있는 박정민 교수는 지난해 말 부임 이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기술사업화 관련 교육을 담당하게 된 외부 전문가다. 박 교수는 국내 창업투자회사(이하 창투사) 대표뿐만 아니라 미국 사모투자회사인 The Carlyle Group의 지사장을 역임하면서 글로벌 경험까지 갖췄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박 교수는 LG그룹에 입사 후, 당시 소프트웨어를 중시한 기업의 정책에 따라 비서실에서 기획업무를 담당했다. 대기업 과장까지 승진하면서 성공적인 안착을 꿈꾸던 그였지만 업무차 해외 방문자 선물용 도서를 찾던 과정에서 접한 'Crossing the Chasm' 서적으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게 됐다. 

"당일 밤 그 책을 모두 읽어버렸습니다. 벤처 생태계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 인생의 새로운 방향을 본 것 같았습니다."

박 교수는 벤처 생태계의 양대 축인 벤처기업과 창투사를 놓고 고민하다 창투사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이어 당시 가장 큰 창투사였던 H 기술투자주식회사를 무작정 찾아가 대표이사 면담을 요청했다.

박 교수는 투자 업계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금융학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조언에 MBA 과정을 시작했다. 학업 도중 한 창투사에서 제안을 받게 되어 근무를 시작한 이후, 박 교수는 300억 원 규모의 LG전자 펀드를 유치해 크게 성공시켰고, 일본계 벤처 펀드 자금 국내 최초 유치, 빛과 전자 Exit 사례 배출 등의 성과를 거뒀다.  

산업계와 투자계에서 성공을 거둔 박 교수가 UST 교수직에 도전하게 된 것은 '대덕'과 'UST'가 갖고 있는 매력 때문. 박 교수는 "대덕은 출연연의 기술이 있기 때문에 창업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학생 등이 기업가 정신만 갖춘다면 성공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면서 "기술이전, 합작투자(JV) 등 많은 수단 중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창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새로운 길에 뛰어 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UST에서 기업가정신·기술벤처창업 과목을 통해 혁신을 이끌고 있는 박정민 교수.<사진=강민구 기자>
UST에서 기업가정신·기술벤처창업 과목을 통해 혁신을 이끌고 있는 박정민 교수.<사진=강민구 기자>
현재 개설된 2개 강좌 총 37명의 학생들은 창업지식이 전무한 학생부터 창업을 실제로 목표로 하고 있는 학생까지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다. 박 교수는 사업계획서 작성부터 비즈니스 안목을 학생들에게 길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 교수는 신문도 꼼꼼히 챙겨 보면서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사례들을 발견하면 학생들과 공유하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학기 동안 약 3번의 발표 과정을 통해 고객 입장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는 개별적이었던 학생들이 서로 관심사가 유사한 것을 알게 되면서 협력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박 교수는 지난 90년대 말 모바일 게임 중개업 분야로 창업에 도전했지만 실패를 경험했다. 중국인들의 생활패턴 분석이나 시장 분석 없이 아이템을 고집했고, 시기상으로도 성급했던 것이 실패하게 된 이유였다. 박 교수는 당시의 실패경험을 반면교사로 학생들에게 시장성 조사, 현지고객 특성 파악 등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사례로 활용하고 있다.

박 교수가 수업에서 중시하는 것은 자기 혁신이다. 그 사례로 ▲높이뛰기에서 처음으로 배면뛰기에 성공한 1968년 딕 포스베리(Dick Fosbury)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배영 100m 종목에서 플립 턴을 처음으로 시도한 아돌프 키에프(Adolph Kiefer) ▲세계 최초로 민간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아티스트 송호준을 사례로 들고 있다.

박 교수는 새롭고 혁신적인 연구방법의 도입으로 신기술의 개발, 개발된 기술의 적극적인 기술사업화 추진, 이를 위한 열정과 신념, 책임의식, 추진력 등을 각자 소속된 연구소에서 적극 활용할 것을 교육하고 있다. 

석사학위 취득 후 바로 창업하겠다며 인생 상담을 요청하는 학생들도 나오고 있다. 박 교수는 이러한 학생들을 위해 "창업하고자 하는 기술 수준이 박사 학위의 수준이라면 박사를 반드시 하고, 그렇지 않다면 석사학위 취득 후 창업하는 것도 좋다"고 조언하고 있다. 학생들의 열정은 충분하지만 아이디어 검증, 자금 확보 등 일정한 조건을 완비함으로써 성공확률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외국인 학생들의 요청이 쇄도해 다음 학기부터는 외국인 대상 영어 강의도 추진할 예정이다. 외국인들의 토의 문화는 활성화되어 있어 가능성은 높다고 보고 있다. 외국인 학생들에게도 한국의 기술을 활용한 기술이전 창업을 적극 권하고 있다. 

학생들이 강연을 유심히 듣고 있는 모습.<사진=강민구 기자>
학생들이 강연을 유심히 듣고 있는 모습.<사진=강민구 기자>
현재 박정민 교수는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 37명 중 4명 정도는 창업에 나설 개연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가시화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생명연 소속 학생들의 '배변 패드와 진단 키트를 결합한 반려동물 자가 건강검진 서비스'는 최근 특허출원을 마쳤으며, 창조경제타운 인큐베이팅 아이디어로 선정되어 집중멘토링 단계에 있다.

박 교수는 수업 종료 후에도 창업을 꿈꾸는 학생들과 지속적으로 인연을 맺으면서 창투사, 엑셀러레이터, 중기청과 연계한 자금 유치, 아이디어 검증 등을 통해 창업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멘토 역할을 자처했다.

박 교수는 향후, 성공적인 창업기업을 배출해 홈커밍데이 행사도 개최하고, 10년안에 IPO 또는 M&A에 성공한 기업 5곳을 배출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을 넘어 각자의 지식을 융합하면 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업하지 않더라도 이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타 연구자들과 교류하고, 사업화 측면에서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박정민 교수가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박정민 교수가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 UST 학생들, "막연하던 창업에 흥미 느껴···비즈니스 수업 큰 도움"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부와 대학원 과정에서 기술사업화 수업을 듣는 것이 처음이다. 학생들은 그동안 막연하게 느끼던 창업을 친근하게 느끼고, 수업에서 배운 내용들을 실생활에서 활용하는 계기가 됐다는 소감을 전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신희원 학생은 사업화 아이디어 발표 과정에서 같은 연구원 소속의 김은수 학생과 동물실험 대체를 위한 순환시스템 기계 사업화를 추진하게 됐다. 

신 학생은 "교수님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사례들을 직접 배우고 실습해 보면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면서 "사업화 아이템에 대해 조원과 종종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뿌리산업기술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용수 학생은 매 강의 마다 인천에서 대전을 왕복하면서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희소금속 관련 전문 지식을 배운 이후, 관련 사업 분야에서 창업에 나설 계획이다. 

김용수 학생은 "기업가정신과 창업 관련 수업을 정규 교과과정으로 이수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 "자신이 R&D를 통해 만든 제품이 인류에 끼칠 영향에 대해 고민하는 연구자이자 창업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TRI 자동통역·언어지능연구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최규현 학생은 원내에서의 과제 제안서, 결과 보고서 작성 등에 배운 지식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최 학생은 원내서 배운 기술을 활용해 향후 스크린 볼링 사업화를 모색하고 있다.

최규현 학생은 "UST 학생들 중에는 R&D 뿐만 아니라 창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면서 "처음에는 학점을 얻기 위해 수업을 신청하게 됐는데, 수업을 들으면서 그동안 어렵게 느껴지던 창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창업을 꿈꾸고 있는 김용수 학생(좌)과 최규현 학생(우).<사진=강민구 기자>
창업을 꿈꾸고 있는 김용수 학생(좌)과 최규현 학생(우).<사진=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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