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최영진 前 주미대사, 정리: 윤정현 STEPI 전문연구원

지난 5월 초 열린 '제7차 당대회'에서 북한이 '핵보유국'을 자처하고 비핵화를 거부하면서 북핵 위협이 거세지고 있다. 북한은 핵 개발 초기의 경제적 보상 문제를 넘어 핵 보유국으로서의 위상 제고와 체제 인정 등을 요구함에 따라, 수년 간 지속되어 온 기존 정부의 북핵 대응정책 변화와 함께 국제 사회 공조 필요성도 증대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최영진 前 주미대사가 발표한 북핵 문제와 전망 관련 내용이 과학기술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최영진 前 주미대사는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의 SK 경영경제연구소에서 열린 '민간미래전략위원회(위원장 김광두)'에서 발표를 통해 ▲북핵은 협상용이 아님 ▲북핵 문제의 본질은 생존·소멸의 딜레마 ▲북한의 소멸은 북한에 의해 이뤄짐 ▲북핵·북한 문제는 해결이 아니라 관리(Management) ▲한국이 핵을 가지게 되는 상황으로 몰아 넣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했다.

아래는 윤정현 STEPI 미래연구센터 전문연구원이 최 前 대사의 발표 내용을 정리한 글 전문이다.

1. 북핵은 협상용이 아니다

북한은 이미 스스로를 외부의 군사공격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충분한 억지력을 가지고 있다. 서울을 겨냥하고 있는 수많은 장거리 포, 중, 단거리 미사일 등 막강한 재래식 군비로 한국과 일본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현재 북한은 핵 없이도 이미 충분한 억지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북한 협상가들은 북한이 핵 개발 계획을 추진하는 이유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그리고 리비아의 카다피의 괴멸을 종종 거론하고 있다. 그들은 이들이 핵무기만 가지고 있었어도 서방이 이라크와 리비아를 침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막강한 재래식 무력을 갖추고 있고, 2천만이 거주하는 서울이 그들의 수많은 장사포의 사정거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라크와 리비아가 가지지 못했던 충분한 억지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이나 미국뿐 아니라 어떠한 서방국가도 북한을 침공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는 손실이 몇 배나 크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의 억지력이 핵무기 없이도 충분하다는 우리의 객관적인 상황인식은 북한 핵무기 개발 계획이 협상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는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다. 즉, 협상 결과에 따라 북한이 전략적 결단을 내려 핵 개발 계획을 포기하고 새로운 생존 방식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는 개연성을 추구했던 것이다.   

한국과 미국, 국제사회는 지난 20년간 북한의 핵 무기를 협상에 의해 해결 할 수 있다고 믿고 지난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월 합의(6자 회담), 그리고 6자회담 복귀를 위한 제한적인 2012년 2월 29일 합의 등을 통해 노력해 왔다. 세 번에 걸친 협상은 모두 성공하지 못했으며, 그동안 북한은 핵 능력을 계속 키워 왔다.  

북한 정권이 왜 스스로 가지고 있는 막강한 재래식 군비와 군사력이 충분한 억지력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는지는 알 수 없다. 냉철한 계산에 의하면 북한이 가지고 있는 대외 억지력에 대해 분명히 추가적인 요소로서 밖에 작용하지 못하는 핵무기 개발 계획에 군사적인 차원에서 왜 그토록 집착했는지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다.

북한이 과거 20년간 북핵 관련 협상에 어떤 전략으로 임했는가?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시작부터 협상 결과를 준수할 의사가 없이 경제원조만 받아 실속을 차리고 다시 다음 단계의 핵, 미사일 실험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위계였는지 여부▲진지하게 협상에 임했으나 협상 결과 이행이 지지부진해지고 계획대로 진행 되지 않자 마음을 바꾸었는지 여부▲양쪽 가능성을 보고 상황에 따라 양다리를 걸치자는 전략(hedging)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는지 여부를 추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20년의 시행착오를 거친 지금, 한 가지 분명해진 사실이 있다. 그것은 북한정권이 핵무기 개발을 자신들의 생존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북한정권에게 북핵은 협상용이 아닌 정권의 생존 수단인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는 객관적인 군사적인 목적 보다는 그들만의 독특한 정치적, 심리적 목적을 충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남한과의 경쟁에서 40:1 의 열세를 보이는 경제력을 포함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것이 뒤떨어져, 체제 경쟁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북한 정권으로서는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정당화하기 위해 남한에게 우위를 강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핵무기 개발을 결코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추론이 있다. 즉, 핵무기 개발은 북한이 정권 유지를 위한 내부 결속력으로 필수 불가결해진 것이다. 

정권의 생존이라는 절대적인 목표는 이란의 핵 협상이 이뤄진 이유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란의 경우 북한과 달리 핵 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했다. 이 사례는 이란이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원유를 포함한 전반적인 경제보복조치를 해제를 이뤄내는 것이 정권 유지 차원에서 핵 개발 보다 유리하다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다.

핵개발을 포기하고 경제발전을 이루는 이란 식의 핵 협상은 북한에서 달성되기 어렵다.  북한은 원유도 없고, 외부와 상호의존적인 경제관계가 극히 제한적이다. 북한의 경제는 자급자족 (autarchic economy) 형 이다. 따라서, 북한에게는 핵개발 포기가 경제발전 보다는 정권의 궤멸로 이어지게 된다.   

어쨌던 북한은 핵 무기 개발 계획을 협상용으로 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점점 분명해진 상황이다. 이 경우 협상에 의한 북핵 해결은 아주 어려워진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 되는 한 '북한문제'의 해결 없이는 '북핵문제'만 따로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북핵은 북한정권의 생존 즉 북한문제'와 함께 생각해야 할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2. 북핵 문제의 본질: 생존-소멸의 딜레마

북한이 붕괴, 소멸을 피하려면 핵개발이 아니라 반드시 경제를 재건해야 한다. 경제를 재건하려면 반드시 바깥 세상과의 무역과 투자의 길을 열어야 한다. 이는 곧 개방 개혁을 의미한다. 그러나 철저한 통제 체제로 유지되고 있는 북한 정권에게 개혁 개방은 무섭다. 개방을 통해 주민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통제의 이완을 의미하고, 이것은 곧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권 유지를 위해 주민통제를 계속하자니 경제가 계속 나빠져서 정권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결국 붕괴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생존·소멸의 딜레마에서 소멸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 북한 문제의 본질이다.

북한 정권은 북한이 핵무장을 하는 이유로 미국의 위협을 내세우고 있다. 미국이 한국과의 동맹을 파기하고, 미군을 한반도에서 철수하면, 북한 핵 문제를 포함한 모든 한반도의 문제가 해결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진실로 두려워하는 위협은 미국의 침공이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위협이다. 북한이 미국의 위협을 계속 내세우는 것은 이제는 시대착오적이 되어버린 그들의 냉전기간 동안의 통일 정책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냉전 기간 동안 베트남이 월남 통일을 위한 전략으로 추진 했던 대미 정책과 아주 흡사하다. 

국제사회의 패러다임이 전쟁에서 무역으로 대 전환을 이루고 있는 21세기에, 부담투성이인 북한을 병탄 하고자 하는 나라는 없다. 구 한말 과는 달리, 러시아, 일본, 중국, 미국 어느 나라도 북한을 병탄할 이득이 없다. 정복과 팽창을 위주로 한 전쟁 패러다임이 종식됐기 때문이다.

전쟁 패러다임 하에서는 남의 나라를 침공해 영토를 크게 하고 국민의 수를 늘리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지만, 무역 패러다임 하에서는 실패한 국가를 점령하는 것은 그 국민의 미래를 책임 진다는 부담만을 의미하기 때문에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를 점령하려고 하지 않는다.

실패한 국가들을 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국제사회에서 강해지고 있으며, 북한은 이제 국제사회의 부담이 되어 버렸다. 북한은 외부의 위협이나 침략을 가상하거나 만들어 낼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부담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북한이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다만, 체제 특성상 미온적이고 적당한 정도의 노력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개방과 개혁 없이 무역과 투자를 받아들이는 방법이 없을까? 이것이 북한 정권이 고민 끝에 그간 시도한 갖가지 미온적인 개혁 방안이며, 두만강 유역 개발 계획, 신의주 특구, 개성공단 등등이 그 사례다. 

북한은 아직까지 한번도 외국의 투자기업이 북한 주민을 직접 채용하고 월급을 직접 주는 것을 허용한 적이 없다. 시장경제, 무역 패러다임은 주민 개개인의 자유롭고 활발한 경제활동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북한의 경제 정책은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통제도 유지하면서 경제도 발전하는 방식은 없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핵무장·경제발전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소위 병진 정책은 이러한 딜레마의 표현이지만 실현 가능한 정책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외부에서 북한의 병진정책을 성공하지 못하게 하겠다거나, 실패하는 방향으로 몰아가겠다고 하는 것은 핵심을 벗어난 논리가 된다. 시장경제는 개인의 자유가 보장돼야 가능하다. 한마디로 외국의 투자회사들이 개개인에게 직접 월급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의 경제개방도 처음에는 현재 북한이 하고 있는 방식이었다. 국가가 외국 투자회사와 계약을 맺고, 노동력을 보급하고, 월급을 국가가 대부분 가져가고 일부만 노동자에게 주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개성공단방식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개인의 능력에 기초한 경제 발전을 결코 기대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국민을 통제하에 두는 전쟁의 패러다임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등소평의 위대한 개혁은 바로 이점에 착안해 이뤄진 것이다.

초기 중국도 지금 북한의 개성공단 식으로 통제와 개방이라는 두 토끼를 잡는 방안을 추구했다. 그러나 등소평의 날카로운 안목으로 두 토끼를 잡는 방법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간파했다.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 없이는 진정한 경제발전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탁월한 지도자 등소평은 과감하게 경제특구에서 개개인이 자유롭게 외국투자 기업에 취직하고, 월급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그것이 80년대 중반에 일어난, 중국의 기나긴 역사에서 조용히 일어났지만 가장 중요한 혁명중의 하나였고, 오늘날 중국을 있게 만든 전략적인 결단이었다. 

북한의 변화, 개방 개혁, 전략적 결단에 대한 많은 추측과 토론이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단 한가지만 보면 된다. 북한이 주민에게 자유롭게 외국투자 기업에 취직하고, 월급을 직접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지 여부이다.

일본,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4룡, 그리고 중국이 개개인이 자유롭게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허용하는 시장경제에 의해 도약적 발전을 이뤘다. 기본적으로 같은 전통과 문화적 토양을 가지고 있는 북한도 할 수 있다. 

북한은 개방과 개혁을 시도할 결심을 할 수 있을까? 북한은 변하지 않으면 결국 소련처럼 붕괴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변화에는 위험이 따른다. 그러나 변화에만 생존의 길이 있다. 위험을 감수하고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가? 이러한 결심은 쉽지 않기 때문에 피해가고 싶을 것이다.  

개방과 개혁 없이 위험이 작은 생존 방안이 없을까? 핵무기 계획과 미사일 개발이 북한이 착안한 대안이다. 이렇게 볼 때 북핵 문제는 북한문제라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와 필연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북핵 문제는 북한 문제의 일부이고 그 표상이다. 

3. 북한의 소멸은 북한에 의해 이뤄진다 

북핵 즉 북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 되는가? 궁극적으로 북핵·북한 문제는 한반도의 통일로 해결된다. 우리는 베트남의 무력 통일을 지켜 봤고, 독일의 동방정책과 독일 통일 과정도 지켜봤다. 또한 중국과 대만이 서서히 통합의 길로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반도의 통일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

남북한은 과거 수십 년간 협상에 의한 평화통일을 내세웠다. 그러나 대충 균등한 힘을 가진 분단 국가간에 1대1 협상에 의해 자발적으로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개념이다. 즉 협상에 의한 통일은 정책으로서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어떤 나라나 정권이 스스로 자진해 평화롭게 소멸의 길을 택한 예가 없다.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 볼 때 한 집단이 내부의 괴멸 없이 스스로 다른 집단에 합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협상에 의한 통일은 선전이나 정치적 수사일 뿐 현실적인 통일 추진 방안이 될 수 없다. 

민족의 숙원인 통일은 간절한 정서의 염원으로 깊숙이 자리잡고 있어서 이성으로 왈가왈부 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감정의 발로로서 협상에 의한 통일이라는 이상을 제시하는 것과 냉철한 국가의 정책으로 협상에 의한 통일정책을 추구한다는 것은 반드시 구분돼야 한다. 결국 협상에 의한 통일은 좋게는 이상이지만 나쁘게는 선전일 뿐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정책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통일 방법은 중국·대만 모델이다. 베트남 식 전쟁에 의한 통일이나 예측하기 힘든 독일 식 동독의 소멸에 의한 통일보다 바람직하다. 지난해 대만의 대 중국 무역 의존도는 50%를 넘어섰다.  앞으로 그 비율이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견 된다. 그러면, 중국·대만 통일은 언젠가 필연적이 된다.

중국·대만은 통합(Integration)을 거쳐 통일(Reunification)로 가는 방향으로 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중국식으로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는 방안이다. 그러나 전쟁이나 한쪽의 소멸이라는 예측 불가능성을 제거하고, 자연스럽게 오랜 시간을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다. 

여기에는 한가지 문제가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경제발전을 택하는, 소위 '전략적 결단'을 해야 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살펴 본대로 북한은 개방개혁을 위해 핵 무기를 포기하지 않고, 정권 끝까지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상정한다면, 이 방안은 우리의 선택이 아닐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방향이 현실성이 많지 않아도, 우리의 기본정책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설사 가능성이 많지 않아도 우리가 기대를 크게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북한에게 '전략적 결단'을 하도록 촉구하는 방향은 지켜야 한다.   

사실 역사상 대부분의 통일은 무력에 의하여 이뤄졌다. 협상, 평화적인 방법은 무력 통일에서 위계 또는 보조수단으로서 사용됐을 뿐이다. 19세기의 독일 통일과 20세기의 베트남 통일이 비근한 예이다. 한반도에서도 20세기 중반 북한에 의해 무력통일이 시도됐다. 북한은 무력침공 직전까지 협상을 제안하는 위계를 사용한 바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문제의 근원은 북한이 무력통일의 시도에서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상타파 정책을 계속 모든 정책의 기조로 수십 년간 유지해 왔고, 아직도 이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북한은 타성에 의해 시대착오적이 되어버린 무력통일을 국가정책으로 계속 추구하고 있으며 모든 국가산업과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남북간의 국력의 커다란 편차로 그것이 불가능하게 됐다. 반대로 남측에 의한 통일을 북한이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남한은 무력에 의한 통일을 배제하고 있다. 국가의 이념으로, 또 경이적으로 발전한 경제를 지키기 위해서도 한반도에서 또 다른 한국 전쟁을 통일의 이름으로 치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반도의 통일이 무력통일도 협상통일도 되지 않는다면 결국은 남북한 어느 한쪽의 소멸에 의해 통일이 될 수 있다. 독일의 통일은 동독의 붕괴에 의해 이뤄졌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북한의 소멸이 남한의 소멸 가능성 보다 훨씬 크다.

결국 한반도의 통일은 북한의 소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중국식 개방개혁·생존 방안과 구 소련식 병진정책-소멸의 방안이 있다. 지금 북한이 취한 정책은 소련식 방안이며, 결국 소멸로 향해 행진하고 있는 것이다.   

매년 초 북한의 핵실험과 뒤 이은 미사일 발사로 우리를 비롯해 안보리 전체가 북한에 대한 대폭적인 경제제재 조치에 나섰다. 그러나 북한은 이란과는 달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극히 미미한 자급자족 형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그렇지 않았다면, 이란 식 협상에 의한 해결이 가능했을 것이다) 경제제재 조치로 만으로 북핵을 포기하게 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경제제재 조치는 잘된 일이고, 최대한 강화시켜서 북한에 대한 하나의 중요한 압력수단으로 사용돼야 한다. 

경제제재는 북한의 소멸이 아니라,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것은 북한의 자급자족 형태의 경제체제 때문에 북한의 소멸은 북한 스스로가 일으키는 일이지, 외부에서 일으키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통일은 북한의 실패에 의해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되풀이 하지만, 북한의 소멸은 외부세계가 그것을 유도하거나 촉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독과 소련의 소멸이 이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서독이 소멸을 유도한 것이 아니라 동독은 내부 모순의 누적으로 스스로 소멸한 것이다. 소련도 마찬가지다. 서방국가들의 침공이나 소멸 촉진 정책에 의해 촉발된 것이 아니라 내부 모순을 해결하지 못해 내부 붕괴로부터 소멸이 이뤄졌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이 북한에 대해 흡수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좋은 전술적 수사가 될 수 있지만,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정책으로 설명하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북한의 붕괴, 소멸은 북한의 생존 실패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지 한국이나 외부세계의 기도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소멸하면 우리는 동족으로서 선택의 여지 없이 북한을 흡수 통일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적극적 정책의 산물이 되기 힘들다는 제한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4. 북핵-북한 문제는 해결이 아니라 관리(Management) 

북한은 생존을 원한다. 북한 문제는 냉전 종식 이후 북한이 화해와 교류라는 새로운 국제정세에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경우와 비교하면 좋은 대조를 이룬다.  궁극적으로 북한은 중국처럼 경제적 회생에 성공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거나, 아니면 소련처럼 전쟁 패러다임에 집착하다가 소멸하거나 둘 중의 하나로 종결될 가능성이 크다. 

북핵문제의 본질은 북한문제로 귀착되며, 되풀이되지만 북한문제의 본질은 평양정권이 세계사의 흐름에 역행해 무역 패러다임을 외면하고, 시대착오적인 전쟁 패러다임에 집착하고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북한문제의 해결은 평양정권이 중국의 등소평 지도자가 한 것처럼 전략적 결단을 내려 무역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대로, 북한 주민 개개인에게 경제활동을 허용하는 것이다. 즉 외국 투자 기업에 스스로 취업을 하고, 월급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외부에서 강요할 수는 없다. 오직 북한만이 할 수 있다. 외부에서는 북한이 그러한 결정을 할 때 도울 수 있을 뿐이다. 즉 평양정권은 북한의 생존을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는 대신 민생에 진력해야 한다. 시장 경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스스로 도와야 하는 것이다. 밖에서는 북한이 스스로 돕도록 강요할 수도 없고, 협상대상으로 삼을 수도 없다. 북한이 준비돼야 한다. 여기에 우리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의 한계와 고민이 있는 것이다. 해결책은 눈앞에 있는데, 북한이 결정을 하지 못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문제는 북한의 생존과 관련 외부세계가 할 일이 별로 없다는데 있다. 북한의 생존과 관련된 전략적 결단 여부는 대부분 북한의 결정이지 외부에서 별로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살아남아도 북한이 살아남는 것이고, 소멸해도 북한이 소멸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국제사회에게 중요해 진 것은 전략적 결단을 못하고 딜레마에 빠져 있는 북한, 그 문제를 어떻게 관리해 나가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의 붕괴는 임박했는가? 많은 서양의 전문가들이 지난 20년간 몇 번에 걸쳐 북한의 소멸을 기정사실화하고 시기만 남았다고 예측해 왔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동유럽 공산정권의 붕괴를 모델로 한 것이다.

동아시아에는 맞지 않는 몇 가지 상황을 예단하고 있다. 북한 소멸을 점쳤던 전문가들은 북한 경제의 파탄을 그 이유로 들었다. 경제가 소멸했으므로 정권도 소멸할 것이라는 것이다. 어떤 경제가 소멸했는가? 그것은 북한이 수십 년간 추진해 온 공업이 소멸했을 뿐이다. 

북한의 전통적인 농업은 홍수와 가뭄으로 피해는 입었지만 그대로 남아 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가뭄과 홍수의 피해를 누차 당해 왔다. 이는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문제는 외부세계가 잘살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주민에게 감추는가 하는 것이다. 즉, 주민에게 수직적 비교만 허락하고 수평적 비교를 차단하자는 것이다.

북한 체제는 시작부터 바로 그런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되고 차단된 사회다. 공업이 피폐해 가는 가운데서도 정권의 생존에 중요한 군사공업부문은 건재하다. 결국 북한의 고도 통제체제와 오랜 농업구조의 결합은 북한이 곧 소멸된다던 예상을 뒤집고 계속 살아남는 비결이 되고 있다. 

물론 현 상황은 북한이 생각보다 훨씬, 단기적 생존방법에서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지, 장기적으로 생존이 확보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정권도 계속되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피폐 속에서 계속 생존해 나갈 수는 없다.

결국 문제는 북한이 현 체제를 계속한다면 단기적으로는 생존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데 있다. 그 경우 문제는 단기적 생존과 장기적 소멸,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북한에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다. 

그 사이에 북한에서 일어날 일은 생존을 위해 어려운 개방과 개혁의 실험을 하느냐, 아니면 북한 내부의 권력구조상 그러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결국 소멸의 길로 들어서느냐 하는 것이다. 북한이 이러한 상황에 포로가 되어 우물쭈물 할 경우, 계산 착오에 의해 우발적인 사건으로 무력이 사용될 수 있다.

또는 의도적으로 막강한 군사력을 사용하거나 사용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또 두 가지 갈림길에서 딜레마를 극복하려다 실패하거나, 극복하는 과정에서 붕괴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대북 억지력의 유지 발전이 필요함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은 대북 억지와 함께 북한문제를 '해결'이 아니라 '관리'해 나가야 하는 과제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그래서 대북 억지력 유지가 우리의 절체절명의 관심사가 되는 것이고,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북한의 소멸 시나리오에 대한 비상대책의 마련이 중요해 진다.  동시에 '관리'에는 북한과의 대화와 접촉이 필수적이다.

비밀접촉을 포함해 가능한대로 북한과의 대화와 접촉을 계속해야 한다. 북핵, 북한 문제에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 같은 중요한 당사자들이 있다. 이들과 함께, 6자회담 또는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대북 대화나 접촉을 마련하는 것이 북핵문제를 '해결'이 아닌 '관리'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5. 한국이 핵을 가지게 되는 상황으로 몰아 넣지 말아야 한다.  

북한은 당초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공산권 궤멸이라는 위기를 맞아 러시아, 중국의 지원과 동맹을 대체할 수단으로 북한은 핵무기 개발 계획을 시작했다. 이는 1970년대 후반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계획하였을 때, 한국이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던 것과 그 맥락이 다르지 않다.

1970년대 후반의 한국의 핵무기 개발 계획이 어떻게 해결되었는가 하는 것과 작금의 북핵 문제의 난맥상을 비교하면 북핵 문제의 본질이 명확해 진다.  한국의 핵무기 개발 계획은 비교적 손쉽게 풀렸다.

한국이 핵무장을 하면, 북한에 핵무장 유혹과 정당성을 주게 되고, 이는 일본의 핵무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며, 대만의 핵무장을 유발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동북아의 안보와 평화가 크게 흔들리게 되고,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 경제에 결정적 타격을 주게 된다. 

또 세계적인 핵 비확산 조약(NPT·이하 NPT 체제)은 사실상 유명 무실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금 세계의 핵무장은 5+3+2+3의 구도를 보이고 있다. 핵무장을 허용 받은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NPT 체제 밖에서 핵무장을 이미 한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또 비밀 핵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을 것으로 의심받는 북한과 이란, 그리고 핵무장을 손쉽게 할 수 있는 기술과 경제력을 모두 갖추고 있는 일본, 한국, 대만이 그 구도이다. 

물론 감성적으로는 왜 남의 나라는 핵무장을 하는데 우리는 하면 안 되는가 하는 반응이 있을 수 있다. 법적으로 보아 NPT 체제는 완전하지도 않고, 기본적으로 불공평한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가 퍼져서는 안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나라가 자유롭게 핵을 갖게 되는 세상이 더 살기 좋을 것 같은가?'라는 간단한 질문에 그 해답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9.11 이후 국제테러의 위험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을 상정하면 더욱 그렇다. 핵 물질이나 핵무기의 확산을 방지하는 것이 더욱 긴요해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핵무장은 결코 용인될 수 없다는 강한 국제적 유대가 형성되어 있다. 북한이 실제로 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북한을 인도, 파기스탄, 이스라엘 같은 그룹에 포함시키는 것은 국제규약이나 제도상에 것 잡을 수 없는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그래서 북핵을 용인하기 않겠다는 노력에 모든 국제사회가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NPT체제와 함께 한미동맹의 틀 내에서 우리의 핵무장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반대가 작용했지만, 압력을 넘어, 이러한 설득력 있는 논리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결국 한국은 얻을 것(핵무장)과 잃을 것(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경제에 올 타격, 궁극적으로 더욱 취약해 질 수 있는 안보, 그리고 국제사회의 관심사에 대한 무책임한 행동이 유발할 국제적 고립)을 계산해 핵무기 개발 계획을 폐기한 것이다. 이러한 논리와 환경은 통일 후에도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통일 후에도 핵무기를 갖지 않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똑같은 논리가 왜 북한에게는 적용되지 않는가? 그것은 북한이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위협받을 평화도, 타격을 입을 경제도, 우려할 국제적 고립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양은 생존을 위하여 위험부담은 있지만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로 인하여 잃을 것(국제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국제사회의 비난과 압력을 받고, 일부 원조가 끊기게 될 것)은 적고, 얻을 것(협상 또는 핵무장) 이 더 많다고 보고 있을 것이다. 북핵은 없애야 하는 것이지 우리가 핵무장을 함으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 안보에 가장 커다란 이해관계가 있는 미국에서 '한국 핵 무장' 허용 같은 논란이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거론하면서 문제가 실질적으로 다가 온 것이다.  비즈니스맨인 트럼프 후보가 미국의 경제상황의 악화를 걱정하면서, 매년 수백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올리고 있는 한국에게 미국의 주둔비를 올리거나 아니면 철군에 따른 핵무장을 준비하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지금까지의 국제질서의 기본을 바꾸자는 생각이 깔려 있어서 많은 논란과 수정이 불가피한 제안이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적절한 또 정책적인 대안이 필요한 사안이다. 여러 가지 측면을 살펴 볼 때, 우리로서는 '한국이 핵을 가지게 되는 상황으로 몰아 넣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일단 대응할 수 있는 문제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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