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정치는 왜 발전했을까요. 오늘은 한 미국 상원의원의 정치역정을 살펴보면서 미국정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우리나라는 보스정치의 병폐가 심한 나라죠. 우두머리가 한마디하면 밑에 있는 정치인들은 자신의 철학과 다르더라도 무조건 따르는게 우리 정치의 현주소입니다. 보스의 결정(특히 공천권)이 정치인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다보니 국회의원들은 항상 자기 당보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다보니 소신있는 정책이 나올리 없고 줏대있는 정치인이 생길 수 없죠.

그러나 미국의 국회의원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부시 미국대통령의 회심의 작품인 감세안 초안이 지난 7일(미국 현지시간)미 상원을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초안은 당초 그의 계획과는 달리 일부 수정됐습니다. 부시가 이끄는 공화당은 향후 10년간 총 1조6천억달러의 세금을 줄이겠다는 초안을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통과된 안은 향후 10년간 1조2천억달러의 세금을 줄인다는 내용입니다. 공화,민주 양당이 막판 협상을 통해 수치를 조정한 결과죠.

감세액이 이렇게 줄어든 배경에는 제임스 제포즈라는 공화당 상원의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상원교육위원회 의장인 정통 공화당의원입니다. 그런데 그가 부시의 감세안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의회에서 특수교육을 위해 향후 10년간 1천8백억달러를 지원하는 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부시의 감세안이 통과되면 특수교육에 대한 지원은 불가능합니다. 세금을 덜 걷기 때문에 그만한 재정지원이 불가능한 것이죠. 이렇게되자 그는 지난 4일 기자회견을 갖고 특수교육에 대한 정부지원이 보장되지 않는 한 부시의 감세안에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공화당이 발칵뒤집혔죠. 왜냐하면 현재 상원은 공화와 민주당 의원수가 50대50입니다. (미국은 양원제입니다. 하원의원은 주(州)의 인구수에 비례해 선출되는데 4백35명이 정원입니다. 이 중 공화당 의원수가 2백20명으로 과반수를 넘습니다. 하지만 상원의원은 주의 인구수에 관계없이 똑같이 2명씩 뽑습니다. 정원은 1백명. 현재 공화와 민주당의 의원수가 같아 ‘신의 분할’이라고 합니다. 동수일 때는 상원의장을 겸하는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합니다) 한 표만 움직여도 감세안이 통과되지 못하게 되죠. 이미 민주당의 젤 밀러의원(조지아)은 감세안 지지를 밝혔고, 공화당 링컨 채피의원(로드 아일랜드)은 반대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제포즈의원이 추가로 반대를 표명하자 공화당은 난리가 날 수밖에요. 표대결에서 질 경우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인 정책에 큰 오점이 남기 때문이죠. 그래서 공화당은 결국 감세액을 줄이자는 민주당 온건파의 주장을 받아들여 감세안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정책에 반기를 든 국회의원. 하지만 제포즈 의원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소신을 이상하게 볼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의 반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981년 하원의원 시절에 그는 레이건 대통령의 감세안을 같은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낙태논란과 관련, 부시행정부는 ‘낙태 합법화’를 반대하지만 그는 여성의 인권을 들어 찬성했습니다. 심지어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안에 대해 처음으로 반대한 공화당 의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론이 자신의 정치철학과 다를 경우 절대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공화당의원들로부터는 ‘왕따’ 당하지만 자신의 지역구인 버몬트에서는 인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버몬트는 미국 북동부의 작은 주로 진보성향이 강한 지역입니다. 상원의원 2명, 하원의원 1명이 배정돼있는데 제포즈의원은 유일한 공화당 의원입니다. 기본적으로 보수파일 수밖에 없는 공화당원이 버몬트에서 당선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죠. 버몬트주의 하원의원은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주장하는 무소속의 버나드 샌더스입니다. 이처럼 사회주의자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하는 지역에서 그는 1988년부터 상원의원에 당선돼 계속 연임하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당의 정책과 관계없이 자유주의적인 정치철학과 소신을 보이는 그에게 유권자들이 표를 준 것이죠.

그는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에서 법학을 공부한 엘리트 정치인이지만 절대 자기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언론플레이와는 거리가 멀고 남의 얘기에 귀를 잘 기울입니다. 그러면서 표를 얻기위해 타협하는 철새 정치인과는 거리가 멀다고 합니다. 그의 소신이 특수교육에 관한 예산을 확보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의 선심행정보다는 장애인을 위한 특수교육이 더 필요하다는 그의 철학을 과연 우리 국회의원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당의 대표가 한마디하면 소신없이 머리 굽히는 우리 정치인들과 비교가 안되네요. 왜 미국정치가 앞서나가는지 조금 이해가 됐습니다. 속이 많이 쓰리더군요.

<뉴욕=김종윤기자>dalsa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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