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과학기술인들의 일상적 교감 기반 돼야
비서 문화에서 파트너 문화로 인식 바꿔야

과학기술 전략회의가 만들어진다. 대통령의 과학기술에 대한 강한 의지가 읽혀진다. 절박감도 큰 듯하고, 필요성도 절실하다. 대통령의 주관적 인식과 국가가 처한 객관적 상황이 맞아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그런 만큼 성공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건이 무르익고 조건이 갖춰졌다고 다 좋은 결실을 맺는 것일까? 개인 삶의 과정이, 그 보다 훨씬 복잡다단한 국정(國政)이란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님은 누구나 알 것이다. 

여건도 좋아야 하지만 꾸준히 시행착오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자질구레해 보일 수 있는 것도 세심하게 챙겨야 그나마 '싹'이 보인다는 것이 앞서 간 사람들의 경험에서 전하는 지혜이다.

그럼 과학기술 전략회의가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스킨십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부분이 박근혜 정권이 가장 취약한 것이라는데 있다. 

과학기술의 날인 21일 다음날 아침에 과학계 인사 몇몇이 모였다. 과학관련 포럼 운영진 모임이다. 나름 과학계에서 20년 이상 몸담아 왔고 평생을 보낸 인사도 보인다.

이 자리에서 전날 과학기술인의 날 이야기가 나왔다. 대통령이 강조한 과학기술 전략회의가 화제가 아니었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맘먹고 과학기술계에 큰 선물을 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이 국정의 중심이 되도록 본인이 앞장서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과학기술자들도 국가에 새롭게 기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전략회의는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주제이다.

그럼에도 조찬 모임에서는 전략회의가 선물로 여겨지기 보다는 또 하나의 '의례'로, 숙제로 여겨지며 이러저러한 이야기가 나눠졌다.

"과학기술의 날 행사가 끝나고 청와대에서 과학기술 자문회의가 열렸죠. 분위기는 어땠어요?"
"장관이 주제 하나 이야기하고, 자문회의에서 이야기하고 그냥 끝났어요?"
"자유 토론 같은 것은 없었나요?"
"요즘 그런 것 없어요. 시나리오대로 이야기할 사람만 이야기하고 그냥 엄숙한 분위기에서 끝나야 돼요."
"무슨 말씀이죠?"
"자유 토론 없어진지 오래예요. 혹여 라도 논외의 주제가 나오면 그 다음에 난리 납니다. 담당 공무원이 전화해 무슨 의미냐, 말씀 배경이 뭐냐며 꼬치꼬치 묻습니다. 그러면 다음부터는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말을 들어보니 장관도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공식회의에서나마 한 번 이야기를 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토론 등은 더더욱이나 어려운거죠."
"과학기술의 날에 과학자들과 밥 한 번 드셨나요?"
"글쎄 청와대에서 자문회의 끝나고 만찬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마저도 안 된 모양입니다."
"오전에 기념식 끝나고 몇 사람과 오찬이라도 했으면 그도 괜찮았을 터인데..."
"밥 한 끼가 아쉬운 게 아니지만 그런 자리를 통해 사람들과 교감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요...?"
"이전에는 사람 수가 많지는 않지만 밥 먹으면서 자유 토론을 해 전체 방향을 찾아가곤 했는데
최근 들어 그런 자리가 없었습니다."
"과학기술의 날 시상자 명단이 미래부 보도자료에 '기타'로 분류돼 있더군요. 그걸 알면 시상자 121명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배려심이 많이 아쉽죠."
"박 대통령께서 연구 현장을 찾은 것은 얼마나 되죠?"
"과학의 날이나 기타 다른 행사로 연구기관 등을 찾고 그러면서 실험실을 일부 간 적은 있는  듯 한데 그냥 아무 일 없이 간 적은 없는듯 한데요."
"과학을 수단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요소로 인식해 불쑥 연구현장을 찾는 것도 좋을 듯 한데요."
"결국은 스킨십이죠. 꼭 목적이 있어야만 만나고 이야기하게 되면 업무적이 되죠. 그게 아니라 무심한 듯 하면서도 챙겨줄 때 사람들의 마음은 회심이 일어나죠."
"한국 사람들은 목적 지향적이라기보다는 정을 생각하는 특징이 있죠, 사실 그렇기 때문에 큰 비용이 안 들어도 사람들을 분발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로 올라가면 형식을 따지게 되고, 결과를 염두에 두어야 하다 보니 사람들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 어려워지는 모양입니다."
"그렇죠. 그나저나 전략회의가 여전히 시나리오 중심으로 흐른다면 잘 될까요?"
"전략회의가 잘 돼야 하는데 지금 상황이라면 그냥 또 하나의 회의가 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과학계에서는 정말 두 손 들고 환영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융성의 기관차였던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점이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긍정의 유산이 될 수도 있고,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뭘 해도 부친과 비교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기에.

취임 이후 박 대통령의 과학에 대한 강조는 부친을 닮았다. 과학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과기부도 확대 개편했고, 장관들에게도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 느껴졌다.

그런데 현장을 대하는 마음에서는 좀 다른 듯 여겨졌다. 과학계 원로들의 이야기와 각종 자료들을 종합하면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 통치 스타일은 '잔정'이었다. 시간 날 때마다 과학 현장을 찾아 그들과 담소 나누고 고생한다며 등을 두드렸다. 과학자와 대통령 사이에는 다른 매개체가 없었다. 그냥 국가를 만들어 나가는 동지였다.

그런데 이후 대통령을 보면, 특히 지금을 보면 중간에 '공무원'이란 존재가 있다. 이들이 의제를 정하고, 각본을 짜며 연출을 한다. 그럴 수도 있다. 문제는 시나리오를 만드는 이유가 보다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 보다 치밀하게 과정을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실수하지 않기 위해, 욕먹지 않기 위해서라는데 문제가 있다. 얼마 안 있으면 보직을 바꾸는데 자신이 있는 동안 실수 없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쓴다.

이것을 지휘자나 참여자는 알고 바꾸게 해야 하는데, 힘을 가진 지휘자는 모르는지 즐기는지 그냥 가고, 참여자는 후환이 두려워 그냥 방치한다. 그러는 사이에 과학은 곪고, 국가 경쟁력은 급전직하하고 있다.

시나리오 과학 회의가 지속되며 과학계에는 알게 모르게 '비서 문화'가 스며들었다. 기관장의 , 상사의 눈치를 보며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애쓰고, 그 상황만 모면하면 된다는. 이것을 끊는 것은 지휘권을 가진 상사의 결심이다. 상사가 현황을 잘 알아야 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터치하는 세심함을 가져야 한다.

현장에서도 바뀌어야 한다. 할 소리는 해야 하는. 
그런데 우리나라 문화에서 무엇이 더 손쉬울까? 윗사람이 바뀌는 것이 쉬우나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그런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과학기술 전략회의의 성공을 위해 전략은 둘째이다. 먼저 과학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라는 게 현장의 이야기이다. 각본 없이 리얼 버라이어티로. 


<영상=KIS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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