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사람]함시현 숙명여자대학 교수···전산화학으로 질병 연구
'분자동력학+열역학' 원자수준에서 최초 접목, 단백질 응집 기작 및 원인 제시
"연구는 보물찾기···끈기가지고 몰입해야"

노트북으로 화학을 연구하는 함시현 교수..<사진=김지영 기자>
노트북으로 화학을 연구하는 함시현 교수..<사진=김지영 기자>
노트북으로 화학을 연구하는 슈퍼컴퓨터 전문가이자 화학자가 있다. 화학 실험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커나 실험기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연구를 위해 필요한 장비는 슈퍼컴퓨터와 연결되어 있는 컴퓨터뿐이다.

'노트북 화학 연구자'라는 테마로 과학계에 관심을 모으고 있는 주인공은 함시현 숙명여자대학 화학과 교수. 컴퓨터를 활용해 질병 연구를 하면서 난치병 치료의 꿈을 꾸는 과학기술인이다.
 
"연구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공항 라운지, 해변, 기차 안 등 어디에서나 연구가 가능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노트북을 꺼내어 시뮬레이션 중인 단백질의 구조변화를 확인하고 연구를 할 수 있어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정말 매력적인 연구 분야죠.(웃음)"
 
함 교수는 2003년 가을 숙명여대에 임용돼 '전산화학'을 처음으로 개설했다. 그는 '나노바이오 전산화학 연구실'을 만들어 분자동력학과 열역학 방법을 접목, 복잡한 생체 반응의 기작과 원인을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전산화학을 '쿨(cool)'한 컴퓨터로 '핫(hot)'한 연구를 할 수 있는 흥미 있는 분야라고 소개하는 함시현 교수는 화학자로 질병을 연구하고 싶다는 의지 하나로 매일 새로운 연구에 도전하는 삶이 즐겁단다.

◆ "용산 전자상가에서 부품을 사다가 컴퓨터 조립도"

함 교수는 시애틀 워싱턴대학 의대 박사 후 연구원 시절, 슈퍼컴퓨터를 사용해 분자동력학 모의실험방법으로 치매 단백질의 온도 의존성을 연구했다. 그 계기로 전산화학을 이용한 질병연구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화학과를 졸업한 직후 그에게 컴퓨터는 낯선 기계였다. 하지만 '좀 더 건강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연구'에 매진하고 싶은 의지는 학창시절 크게 관심이 없었던 생명과학과 복잡한 알고리즘을 공부해 나가는 원동력이 됐다.

함 교수는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부작용이 없는 신약을 개발하는데 기여하고 싶다"며 "좀 더 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시작은 쉽지 않았다. 숙명여대에 임용된 직후 신진연구자 지원사업 공모에서 실패해 연구비가 없었고, 전산화학이 생소한지라 학생들도 함 교수를 찾지 않았다. 용산 전자상가에서 사비로 컴퓨터 부품을 구입하고 직접 조립해 사용했고, 연구원을 채용해 본인 월급에서 월급을 주기도 했다.

여러가지 악조건에서도 함 교수는 양자역학을 이용한 나노센서 디자인 및 모델링 연구로 연구기반을 쌓아나갔다. 그는 "생체 내 질병과 연관된 단백질 연구는 훨씬 비싼 슈퍼컴퓨터와 장기간 연구할 수 있는 인력을 필요로 하는데 조교수 시절에는 둘 다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시간에 연구할 수 있는 연구주제들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 유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수용액 상에서 응집하는 과정을 묘사한 모식도.<사진=함시현 교수팀>
알츠하이머 유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수용액 상에서 응집하는 과정을 묘사한 모식도.<사진=함시현 교수팀>
함 교수가 본격적으로 생체질병관련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09년 연구년을 시작하면서다. 그는 연구년 동안 일본 분자과학연구소와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각각 통계열역학과 종양생물학을 공부했고 한국에 돌아와 복잡한 생체 반응을 연구하기 위해 이 분야들과 기존 분자동력학을 융합하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그는 "대부분 생체반응은 열역학의 지배를 받는데 매우 역동적이며 비가역적인 복잡한 생체 반응들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열역학 기술이 필요했다"며 "이를 위해 새로운 융합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함 교수는 단백질 응집 메커니즘과 그 원인을 새롭게 규명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정립했다. 분자동력학 방법으로 생체 반응을 원자 수준에서 촬영하는 것과 같은 영상을 구현하고, 이것을 열역학 방법과 접목해 그 반응이 일어나는 이유와 원인을 시간에 따라 규명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생체 내 단백질 응집현상은 치매, 광우병, 파킨슨병 등의 퇴행성 뇌질환 뿐만 아니라 암, 당뇨 등 수십 가지 질병의 원인으로 제시되는 만큼, 질병치료를 위한 신약개발 등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다양한 연구성과로 함 교수는 2014년 '올해의 여성과학자상'과 2016년도 '이달의 과학자상'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전산화학은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구현함으로써 분자나 원자, 또는 원자 구성 입자의 행동을 연구할 수 있어 제약회사, 바이오 벤처, 화장품 회사, 화학관련 제조업체 등 수요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함 교수에 따르면 1980년대부터 양자역학을 이용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상용화되기 시작했고 이 공로로 개발자 두 명이 1998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양자역학에 고전역학을 접목해 보다 복잡한 생체 분자들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가능하게 한 공로로 2013년 세 명의 개발자에게 노벨화학상이 수여됐다.

전산화학으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뿐 아니라 하드웨어 컴퓨터가 필요한데, 함 교수는 "제가 박사과정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가 지금의 PC보다 느리다. 지난 20년 동안 컴퓨터의 성능은 엄청나게 발전했다"며 "이런 속도라면 앞으로 10년 후에는 어떤 연구가 가능할지 모른다. 그만큼 전산화학은 무궁무진한 분야"라고 설명했다.

◆ 연구는 보물찾기 "보물 찾을 때까지 끈기 가져야"

함시현 교수는 "연구는 보물찾기와 같다"며 "끈기를 가져야한다"고 강조했다.<사진=함시현 교수팀>
함시현 교수는 "연구는 보물찾기와 같다"며 "끈기를 가져야한다"고 강조했다.<사진=함시현 교수팀>

함 교수팀은 2012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 온라인 판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치매를 유발하는 단백질(베타아밀로이드) 응집과정과 원인을 원자단위에서 규명한 연구성과를 게재했다.

그러나 '분자동력학 방법과 열역학 방법을 접목해 단백질 응집현상을 규명하는 새로운 방법을 신뢰할 수 없다'며 리뷰과정에서 계속 거절당했다. 그동안의 노력과 연구가 빛을 보지 못하고 이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는 될 때까지 해보자고 결심하고 논문을 더 명확하고 독자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계속 수정했다.

함 교수는 "만약 첫 시도에 논문이 바로 게재됐다면 저는 더 좋은 논문을 쓰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수 없이 논문 게재에 실패했지만 거절당했기 때문에 오히려 연구를 다시 돌아볼 수 있었고 한 층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더 좋은 과학자가 되는 거름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함 교수는 "연구는 보물찾기와 같다"며 '꿈을 가지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연구'를 강조했다.
그는 "보물이 100m 앞에 있는데 99m까지 가서 포기하면 시도하지 않은 것과 결과는 같다. 연구도 마찬가지다. 보물을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면 보물을 찾을 수 있다."며 "앞으로 정상세포가 질병세포로 전환되는 원인과 메커니즘 등을 규명하여 난치병을 치료하는데 기여하고 싶다. 남은 생애동안 선택과 집중을 해서 꿈을 이루고 싶다"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지금까지 시행착오를 참 많이 하면서 살았다. 후배들은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훨씬 크고 높게 나가가게 도와주고 싶다"며 "건강한 사회를 이루고 싶은 학생들이 차세대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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