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상훈 ETRI 신임 원장…오는 22일 취임 100일

"반바지 입고 킥보드 타고 출근하는 모습은 어떤가요. 시장통처럼 생동감 넘치는 연구문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변화! 결코 쉽지 않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시작해야 합니다.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오는 22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이상훈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 1976년 기관 설립 이후 34년 만에 처음으로 외부 인사 기관장이라는 타이틀이 어깨를 무겁게 하지만 그의 목표는 분명하고 명확하다. '새로운 ETRI 만들기'.

그는 취임 2개월여 만에 조직개편을 이례적으로 단행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인터뷰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변화는 생존의 문제로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확실히 했다.

이 원장은 "과거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관성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느낌을 받는다"며 "시대가 변한지 한참이다. 이젠 장터의 시대, 매개의 시대다. 광장에 모이는 길목에 좌판을 설치하면 사람들이 모여 비즈니스를 키운다. 변화를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 소통채널 '무조건' 활성화시킨다…"시장통처럼 생동감 넘치는 연구문화 조성"

오는 22일 취임 100일을 맞는 이상훈 ETRI 원장. 취임 직후 '새로운 ETRI 만들기 TF팀'을 가동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임기 동안 해야 할 일을 선정했다. 그는 "변화의 가능성을 봤다. 소통이 활발한 연구원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김요셉 기자>
오는 22일 취임 100일을 맞는 이상훈 ETRI 원장. 취임 직후 '새로운 ETRI 만들기 TF팀'을 가동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임기 동안 해야 할 일을 선정했다. 그는 "변화의 가능성을 봤다. 소통이 활발한 연구원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김요셉 기자>

인터뷰에 앞서 이 원장은 A3 크기의 코팅된 종이 한 장을 기자 앞에 내밀었다. 그 안에는 그가 3년 동안 해야 할 일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소통'에 방점이 찍혀 있다. "3년 동안 써야 하니 코팅은 기본이 아니겠냐"며 웃어 보이는 그는 "임기 동안 내가 풀어야 할 과제가 100여개에 이른다. 역량이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시작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취임 직후 '새로운 ETRI 만들기 TF팀'을 가동시켰다. 각 부서별 연구자부터 책임급 연구원 등 48명은 ▲도약하는 ETRI ▲합리적인 ETRI ▲열린 ETRI 분과로 나눠 ETRI가 앞으로 나가야 할 방안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ETRI는 6연구소 3단 3본부 1부 조직에서 5연구소 3단 3본부 3센터 1부 체제로 구축했으며, 이후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인사도 이어졌다.

이 원장은 "TF팀이 처음 구성됐을 때 연구원들이 많이 당황했던 것 같다. 그동안에 없었던 일이니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TF가 지속되면서 무서울 정도도 제안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안에서 가능성과 희망을 봤다. 기본적으로 연구원 가슴 속에 마그마를 품고 있는 것을 느꼈다"며 "열정, 분노 등 마그마의 종류도 다양하다. 내 역할은 마그마가 끓어오를 수 있도록 구멍만 내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우선 소통 채널을 활성화시켜 나갈 계획이다. 목표는 100개다. 소통은 시장통과 같은 생동감 넘치는 연구문화를 구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100개 이상의 소통 모임이 생겨서 움직임이 보이는 연구원이 됐으면 좋겠다. 모임이 활발하면 그 안에서 창의적인 과제도 생길 것"이라며 "100개의 그룹에서 60~70개 과제, 아니 절반의 과제가 나와도 무관하다. 모임에서 과제가 나오는 것이 일반화 됐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제일 소통이 활발한 연구원이 객관적으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빅데이터를 통해 수없이 많은 정보들이 자기 학습을 통해 A.I(인공지능)가 발전하듯 항상 활기차고 대화가 끊이지 않고 더해지는 환경이 실패도 더 적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이를 위해 그는 파격적인 제안도 서슴지 않았다. 대덕연구단지 전체 건물의 1층을 완전 개방하자는 아이디어다. 보안상의 문제는 건물 2층부터 적용하면 되고, 나머지 1층은 일반 대중 뿐만 아니라 모두의 소통 공간으로 운용하자는 것이다.

"소통이 활발해 지기 위해서는 연구원에 사람이 들끓어야 합니다. 연구원 1층은 소통의 공간이 돼야 하죠. 국가 건물이라고 제한을 둘 것이 아니라 정보보안은 스마트하게, 시설보안은 보이지 않게 강화하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의 출입은 보다 자유로워 질 것입니다."

◆ 불확실한 시대…"원천기술 확보가 경쟁력"

이 원장이 원천기술 확보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사진=김요셉 기자>
이 원장이 원천기술 확보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사진=김요셉 기자>

'Young Forty, Let's Move'

ETRI의 새로운 슬로건이다. 이 원장은 이를 바탕으로 경영목표를 설정했다. 'ICT 원천기술 확보', '중소기업 성장지원 확대', '도약·합리·열린 경영 실현' 등이 중심이다.

올해는 글로벌 수준의 융복합 전문기술교육을 비롯해 창의력 향상교육, 긍정·소통의 조직문화 정착·확산을 위한 교육 등을 중점적으로 펼쳐나갈 계획이다.

그는 "우선적으로 열린 ETRI를 만들어 갈 것"이라며 "ETRI는 국민안전, 국가안보, 재난대비 등을 고려한 국가·사회적 현안 해결 등 방향성이 있고 이를 공유하는 연구개발을 위해 노력해 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또 이 원장은 "ICT를 활용해 국민 모두가 동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사회적 약자가 배려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변화를 주도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 원장은 "과거의 대형 연구 성과는 산업화 사회에 적합했고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라는 목표가 분명했지만, 이젠 사회가 불확실(Uncertainty)한 시대"라며 "여기에는 대형 먹을거리 창출을 위해선 원천기술의 확보가 꼭 필요하다. 직접적인 역할에서 이제는 출연연이 간접적인 역할로 바뀌어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는 ETRI가 지금껏 고수해 온 '기술 응용 중심의 연구소'라는 간판을 내려놓겠다는 '선언적 의미'로 해석된다. 이 원장은 "이제 ETRI의 역량이 기초·원천기술 분야로, 향후 국가 먹을거리로의 응용이 가능한 핵심기술 쪽으로 그 주력이 옮겨져야 한다"고 경영소신을 밝혔다.

◆ 인생 4막 시작…"가장 적은 후회 남기고 싶다"

"90점짜리 계획에 10보 앞으로 가는 것보다 60~70점짜리 계획으로 100보 나아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TF팀 운영 결과가 완벽하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고쳐나가며 앞으로 한발씩 전진해 갈 것입니다."

연구원에서 기업인으로 다시 학자로 이젠 연구기관의 기관장으로 인생 4막을 여는 이 원장의 바람은 "개인적으로는 인생에서 가장 적은 후회를 남기는 것이고, 공적으로는 새로운 ETRI 건설을 해나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특히 고령화된 인력구조는 그가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 중 하나다. ETRI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출연연의 대표주자격인 ETRI가 추진하는 경영 정책은 다른 출연연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는 "고경력자가 보직을 그만두고 일반 연구원으로 돌아갈 때 적응시간이 필요하다. 대학들도 이를 위한 시드머니 플랜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연구원은 이런 출구(Exit) 대안이 아직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고경력자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인맥, 프레젠테이션 능력 등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인건비 부담 등으로 중소기업이 꺼려하는 경향이 적지 않기에 이에 대한 해결책 모색이 필요해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 이 원장은 "메이커 운동, 과학문화 확산 등 ETRI가 교육 시스템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은데, 고경력자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라며 고경력자를 위한 출구 플랜(Exit plan)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직급에 따른 주니어와 시니어의 잠재된 갈등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그는 "연구원은 연구과제에서만 인건비가 나와야 한다. 이렇다 보니 고령자가 일정 포지션을 가져가면 일을 해야 하는 젊은 연구원에게는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며 "공식 채널은 아니지만 안에서 곪고 있다. 심각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그는 "수직 개념에서 벗어나 횡적인 연대가 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고령연구자를 위한 출구 플랜을 다양화 해 커리어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추진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 선망하는 연구소로 '카블리 연구소' 사례를 꼽으며 ETRI의 새로운 모습을 짐작케 했다.

"카블리 연구소는 칸막이 없는 협업 연구소, 노벨상의 상실로 유명한 곳입니다. 모든 연구실 벽면이 유리 칠판으로 돼 있어 자유롭게 토론하고 소통하는 연구소죠. 건물 옥상에는 수시로 자기의 연구 분야를 프레젠테이션 할 수 있는 대형 콘서트홀이 마련돼 있습니다. ETRI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생 4막을 막 시작한 이 원장. "인생에서 가장 적은 후회 남기고 싶다"는 그의 말은 남은 모든 열정을 ETRI를 위해 쏟아 붓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진=김요셉 기자>
인생 4막을 막 시작한 이 원장. "인생에서 가장 적은 후회 남기고 싶다"는 그의 말은 남은 모든 열정을 ETRI를 위해 쏟아 붓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진=김요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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