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넷서 '투서·감사 연구풍토' 주제 긴급 좌담회 개최
참석자들 "연구문화와 시스템 개선 반드시 해야"

"연구자는 시스템 속에서 일하지만 시스템은 연구자를 보호하지 못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경영진도 연구기관도 나 몰라라 한다. 연구원 혼자 비와 바람에 맞서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연구자는 없고 범죄자만 있다. '나쁜 놈', '도둑놈'이라는 낙인이 이미 찍힌 상태로 감사를 받는다. 아니라고 항변하는 것이 더 힘들다. 한번 빠진 늪에서 혼자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다."

"10년 이상 공부하고 연구자가 된다. 노력을 인정받았기에 연구원에 들어온 것만으로 자존감이 높다. 그러나 자존감에 상처가 나면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만다. (죽음은) 충분히 선택 가능한 옵션이 될 수 있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 또 발생했다. 극단적 선택을 막을 방법은 없는 지. 한 연구자의 죽음에 슬픔을 애써 감추면서 과학기술계 인사들은 대안과 대책 마련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고 토로했다.  

각 분야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은 본보가 마련한 긴급 좌담회를 통해 과학기술계가 더 이상 연구자의 죽음을 방조해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함께 했다. 또한 연구환경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좌담회에는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정책지원본부장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송치성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 ▲전철호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선임연구원 ▲홍성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이름 가나다 순) 등이 참여했다.

◆ 벼랑 끝 연구자…"제2,3의 죽음 부를 가능성 짙다"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이 연구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정책지원본부장,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홍성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 부연구위원, 전철호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선임연구원, 송치성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 <사진=박성민 기자>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이 연구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정책지원본부장,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홍성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 부연구위원, 전철호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선임연구원, 송치성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 <사진=박성민 기자>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는 후보군이 존재하고 있다."

연구자의 안타까운 죽음이 과거형이 아닌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에 누구도 부인하지 못했다. 

곽상수 연구원은 "고 정 박사의 사고원인을 팩트로 다루기는 어렵다. 조사기관의 결과가 나와야 할 것 같다"며 "하지만 이번 기회에 이해 관계자와 기관이 힘을 모아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이런 일은 충분히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문홍규 연구원도 "고인이 1차 감사는 잘 넘겼지만 2차 수감이 예정되면서 힘들어 했다고 전해 들었다. 자긍심이 높은 존경받는 분이었음에도 '내가 이렇게 밖에 못 살았나',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몇몇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집 주변을 살폈다고 하는데 결국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전철호 연구원은 연구자 누구에게나 '죽음'이 선택 가능한 옵션이 될 수 있음에 안타까워했다. 그는 "정 단장님이 성격이 너무 좋고 (자살을) 할 만한 분이 아니라고 지인에게 들었다. 하지만 억울하거나 말도 안 되는 일로 공격을 받으면 연구원의 선택 옵션에 자살이 들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복철 본부장 역시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면 대부분 급격한 우울증에 빠진다. 우울증은 병이다. 그 병이 심해져서 죽음을 택하게 될 수 있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일어나서 같은 연구자로서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홍성주 연구원은 연구문화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한 제도 설계를 문제 삼았다. 그는 "연구소는 우수한 사람이 모이는 조직이다. 실력주의가 질서를 유지하는 근간이 된다. 실력주의는 동료 간 인정과 평가, 연구조직의 자기통제를 기반으로 유지된다. 자기통제는 외부로부터 연구 조직의 자율성을 보호하는 장치다. 하지만 한국의 연구 제도는 그렇지 못했다. 정부 주도의 성장 트랙을 밟은 만큼 외부로부터의 평가와 규제에 내부 조직과 개인 연구자가 쉽게 흔들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서양에서는 일찍이 실력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독특한 연구 문화가 형성돼 왔다. 외부 규제가 들어와도 제한했다. 한국은 연구 문화의 특수성을 고민하거나 인식하는 정책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연구자 '범죄자' 만드는 풍토…대체 왜?

"감사를 한번 받고 나면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한다. 진위를 조사하기 전에 연구자를 범죄자로 간주하고 감사를 시작한다. 감사는 연구자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된다. 내부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어디까지 개인이 맞서야 하는지 무서운 일이다."

좌담회 참석자들은 정 박사의 사고와 관련해 결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홍규 연구원 "좌담회에 앞서 출연연 관계자 8명에게 의견을 물었다. 개별적으로 연락을 했지만 상당부분 일치하는 의견이 있었다"며 "첫째는 직원간의 문제, 둘째는 연구원이라는 기관의 문제, 셋째는 감사원이라는 정부의 문제로 요약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들의 의견을 종합하니 문화와 시스템의 문제로 규결됐다."며 "일반적으로 기관은 문제가 생겼을 때 관과 틀어지지 않으려 회피, 개인적인 문제로 돌리고 방치한다. 정부의 기관장 선임, 평가방식 등과도 무관치 않다는 데 공감하는 분이 많았다. 최근엔 감사가 실적주의에 빠져 갈수록 날선 칼을 대고 있다. 행정이 경직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철호 연구원도 감사의 불합리성을 꼬집었다. 그는 "장비나 재료를 살 때 구분을 잘 못하면 연구비 유용이 된다. 인지하지 못해 잘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감사의 대상이다. 연구 결과가 좋아 논문을 게재했지만, 예산 비목에 없던 논문 게재료를 지불하면 연구비 유용이다. 현장과 실제 시스템이 잘 맞지 않는다"며 "행정 담당은 대부분 임시직이어서 직원이 바뀔 때마다 혼란을 겪는다. 그러니 연구자가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복철 본부장이 지적한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불안정한 연구 생태계, 경직된 조직문화, 미래비전 부재 등 다양한 문제가 혼재돼 있다.

그는 "출연연의 조직 문화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이런 조직 문화가 하나의 원인 됐을 것"이라며 "또 다른 것은 시스템 문제다. 1999년부터 출연연 거버넌스로 연구회 시스템이 시작됐다. 그동안 연구회가 노력을 했지만 출연연 운영시스템이 아직도 관리중심형 조직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 보니 연구의 자율성이 제대로 유지되지 못하고 있는데 시스템과 연구자가 상충되는 부분들이 있다"고 밝혔다.

◆"연구자 시스템 속에 있지만 시스템의 보호 받지 못한다"

곽상수 연구원은 과학 관련 단체들의 역할에 쓴 소리를 했다. 그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일을 당했는데도 관변 단체는 무엇을 했느냐. 한림원, 과총 등 대부분이 정부의 지원과 회계감사를 받고 있다. 구성원 대부분도 교수들로 출연연 관계자는 몇 명 되지 않는다."며 "연구자를 위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최소한 과학자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치성 연구원 역시 "과학기술을 빙자해 먹고사는 기관이 많다. 스테피, 키스텝, 과총 등 관변단체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실제로 정부의 나팔수 역할만 하지 연구원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은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자생적인 권익 단체가 필요하다. 관변단체들은 연구원의 권익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 행정과 정책 분야의 전문연구소와 연대해 자생적인 단체를 만들어 연구자의 권익 보호에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성주 연구원은 연구 현장과 정책과의 괴리에 대해 소통의 비대칭성을 꼽았다. 그는 "비대칭성을 쉽게 이야기하면 사장이 부하직원한테 소통하자고 할 수 있지만 부하직원은 사장에게 소통하자고 못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 사회의 소통 비대칭이 심하다. 연구소도 마찬가지다. 소통 비대칭으로 연구 현장의 불합리가 내부적으로 해소되지 못한다. 자기통제가 이루어지지 못하니 투서 등 극단적인 의사전달 형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연구소에 연구자 관점을 대의할 조직이 없다. 경영진은 정부와 수직적으로 연결돼 한계가 있다. 노조는 노동자 관점에서 연구 행정과 정책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결국 공백의 영역이 생기고 악순환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난제' 해결책은?…"문화와 시스템 해결할 근본 대안 마련돼야"

'투서·감사 연구풍토'를 주제로 한 긴급 간담회는 지난달 29일 대덕넷에서 진행됐다.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은 연구자의 안타까운 선택이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대책과 이행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성민 기자>
'투서·감사 연구풍토'를 주제로 한 긴급 간담회는 지난달 29일 대덕넷에서 진행됐다.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은 연구자의 안타까운 선택이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대책과 이행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성민 기자>
그렇다면 해법은 없나?

문홍규 연구원은 "열심히 일한 사람이 감사를 받는다. 열심히 하다 보면 드물게 실수가 생길 수 있다. 신뢰와 포용의 문화가 아쉽다"며 "현재 과당 경쟁이 문제를 일으킨다. 연구자, 연구기관, 정부 모두에 해당하는 것으로 시스템 상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서로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삼성 같은 기업은 프로젝트 관리시스템 버전 4.0을 도입, 시행하는 데 비해 출연연은 가장 앞선 기관도 1.5에 못 미친다고 들었다. 출연연 중에서 R&D 품질관리 시스템을 시행하는 기관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유일하다. 그 외 기관은 이와 같은 사건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행정부서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광범위한 영역을 연구자가 전부 책임질 수밖에 없는 게 뼈아픈 현실"이라며 "정부의 인건비 긴축정책에 밀려 필수 인력조차 채용하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연구자가 무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연구자가 몰입할 수 있으려면 외국 조직만 본 따는 게 아니라 그 핵심을 제대로 알고 연구자가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과 체계적인 지원이 뒷받침 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송치성 연구원은 "연구소도 최종적으로 시장원리를 따르게 된다. 연구소별로 시장지향적 연구와 R&D 두 트랙의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며 "시향지향적인 연구는 자유롭게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R&D 연구는 순수하게 연구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행정과 법률전문가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연구소 직원 중 행정업무 담당자가 13% 정도 된다. 인력이 적은 것이 아니다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며 "법 규정을 알려줄 법무인이 있다면 프로젝트 실행에 있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능력 있는 수장에 대한 임기 장기화도 대안의 하나로 제시했다. 송 연구원은 "눈치만보고 소신이나 철학은 없이 3년 임기 채우는데 연연해하는 기관장이야말로 심각한 폐해다. 기관 평가를 엄격히 해 기관장이 제 역할을 못하면 초기에 퇴출하고 능력이 있다면 정권에 관계없이 장기적으로 기관을 이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주인의식도 책임감도 있는 사람이 기관장이 된다면 현재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홍성주 연구원은 "현재로선 연구 풍토가 개선될 전망이 부정적이다. 오랜 시간 누적된 관행과 경로가 있는 만큼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전망도 상상할 필요가 있다. 연구 시스템의 규모가 커진 만큼 새로운 연구 풍토 형성을 위한 정치적 아젠다를 내야 한다"며 "현재는 과기계 국회의원 확대, 기타 공공기관에서의 제외 등을 주장한다. 필요한 얘기들이지만 이를 정치적 의제로 정당화하기에는 논리가 빈곤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 예로 독일 사례를 들었다. 독일 연방정부는 학술연구자유법을 추진하는 데 5년 가까이 걸렸다. 대부분의 독일 연구소는 지자체에 속해 운영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연구소간 상이한 제도의 개선과 간소화, 더 좋은 성과를 위한 더 많은 자유의 허용, 연구소에 대한 시장 투자의 접근성 제고, 연구소의 국제화 등이 법제정 과정에서 벌어진 쟁점이다. 학술연구자유법에서는 연구소의 자기통제를 전제로 인력과 예산 사용에서의 자율성을 일부 허용했다.

홍 연구원은 "우리도 제도 변화를 이룰 수 있다"며 "단 그것은 정치에 의존하는 형태가 아닌, 정치인 누구라도 받아들일 만한 연구의제가 마련되었을 때 가능하다. 연구풍토 개선은 투서나 내부 고발이 의사전달의 주요 형태일 때는 불가하다. 공론의 장에서 연구 의제가 쟁점화 될 때 시작될 수 있다"고 밝혔다.

곽상수 연구원은 연구단지가 설립될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자 주문했다. 그는 "지금 출연연은 미래를 준비하고 지속가능한 연구를 해야 할 유일한 기관이다. 연구단지 설립 40년 전으로 돌아가 초심을 확인하면 많은 부분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역할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답은 현장에 있다. 연구회가 연구현장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연구현장에서 진짜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파악하고 연구자의 고통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며 "현장을 이해 못하면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과 같다. 연구회가 막중한 책임을 갖고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복철 본부장은 "연구회도 출연연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재 연구회에 행정효율화 실행지원단을 운영하면서 연구원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마련 중이다. 또 출연연마다 프로젝트 관리시스템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해서 출연연 사업들을 보다 체계적,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출연연 조직 문화와 시스템이 대내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있지만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부터 노력해서 개선하고 시스템도 출연연-연구회-정부가 지혜를 모아서 하나씩 개선해 나가야 한다"며 "연구회와 출연연이 이러한 변화를 위해 함께 협력해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