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사진 제공=성철권>
기차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사진 제공=성철권>

언젠가부터 생일에 혼자 여행을 떠나는 습관이 생겼다. '생일'이라는, 여행길에 오르기 좋은 핑계거리가 생긴 탓도 있겠지만 길어지는 객지생활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방어기재는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권 속지에 찍힌 도장만큼이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함께 쌓여갈 테니까.

지난 2월 초, 라오스와 인접한 태국과 말레이시아 여행을 다녀왔다. 가고 싶은 여행지는 양 손가락으로 꼽기에도 항상 부족하다. 그런 중에 "라오스와 주변국의 사람, 문화, 생활환경, 사회변화를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큼 좋은 경험은 없을거다"라는 지인의 말에 이끌려 짧지만 의미 있는 라오스 발(發) 서진(西進) 여행을 시작했다.

인도중부 동-서 횡단열차의 대기록을 뒤로하고, 태국-말레이시아 국경을 통과하는 야간침대열차에 25시간 동안 몸을 실었다. 삼면(三面) 바다와 38선으로 가로막힌 우리에게 '국경'이 주는 무게감이란, 기차로 국경을 넘어본 한국인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지만 기차로 태국과 말레이시아 양국 국경을 넘기란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야간침대열차의 내부 의자형태. <사진 제공=성철권>
야간침대열차의 내부 의자형태. <사진 제공=성철권>

국경을 넘는 기차여행을 해보니 중국-라오스-태국을 철도로 연결하려는 중국의 열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인도차이나반도 중심에 위치한 나라 라오스. 내륙국(landlocked)이라는 제약을 넘어 육교국(land bridge country)으로 새롭게 발돋움하려는 움직임이 비단 누군가의 부푼 상상만은 아닐지 모를 일이다.

제주도를 삼무도(三無島)라고 부르듯 라오스를 이무국(二無國) 정도로 말할 수 있을까? 라오스는 흔히 기차와 우편집배원이 없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하나를 더하면 바다가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국토 사면(四面) 모두 주변국과 육로로 접한 지리적 조건이 라오스를 특징짓는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라오스와 기차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글에 담아보고 싶다. 

라오스와 태국 언어는 약 70% 정도 유사하다고 한다. 태국방송에 노출된 라오스 사람들은 쉽게 태국어를 사용하는 반면, 태국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라오어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인도-네팔관계와 굉장히 닮았다. 태국여행 중에는 지방 사투리쯤 되는 라오어를 구사하며 자신 만만 했었는데 막상 말레이시아에 도착하니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질감이 피부에 느껴졌다.

태국과 말레이시아 모두 전 세계에서 모인 배낭여행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라이다. 하룻밤에 원화 1만원 미만인 도미토리(dormitory)형 게스트하우스에 옹기종기 모여 지내면서 많은 인연들을 만났다. 이름과 국적소개로 시작한 대화는 늘 서로의 여행담 자랑으로 꽃을 피운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 아름다운 이유는 이렇듯 '길 위에서' 만나는 벗들이 아닐까.

도미토리형 게스트하우스 내부. <사진 제공=성철권>
도미토리형 게스트하우스 내부. <사진 제공=성철권>

한국에서는 '라오스'라는 나라가 참 생소했다. 주변 지인들도 라오스에서 지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묻거나 생활환경을 걱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시선에 익숙한 탓이었을까, 라오스의 아름다운 도시 루앙프라방에 살고 있다고 말하면 하나같이 반짝이는 눈으로 부러움을 한껏 표현하는 여행자들의 표정이 낯설고, 이내 반가웠다.

자유와 낭만을 간직한 여행자들에게 아름답지 않은 곳이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외국인의 눈에 비친 라오스는 생각보다 더 멋진 곳이었다. Shining, Beautiful, Slow, Amazing... 친구들이 라오스를 표현한 형용사들이다. 무엇보다 '빛나는' 나라라는 표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태국처럼 멋진 바닷가와 휴양지는 없지만, 말레이시아처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나라는 아니지만, 여행자들은 한번쯤 꼭 다시 와보고 싶은 나라로 주저 없이 라오스를 꼽았다.

길 위에 오른 여행자들. <사진 제공=성철권>
길 위에 오른 여행자들. <사진 제공=성철권>

노마드(Nomad)라는 말이 있다. 유목민이라는 뜻으로 철학에 기반 한 단어이지만 그 범례가 확대되고 있다. 내 마음대로 해석해보자면 이제 그 의미가 요즘 이야기하는 세계시민 또는 세계시민의식과도 닿아있을 것 같다. 기술과 통신, 교통의 발전이 유목민의 활동무대 또한 지역, 국가의 범주를 넘어서도록 이바지했을 것이 분명하다.

나부터 그렇다. 지난 1년 반을 지낸 라오스가 제 3의 고향처럼 느껴진다. 군대에 가면 모두 효자가 되고 외국에 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라오스에 있으면서 한국을 생각할 때가 많았는데, 신기하게도 여행 중에 라오스의 이야기를 들으니 관심이 가고, 무엇보다 라오스에 긍정적인 말들을 들으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게 노마드 초기증상은 아닐까?

태국 방콕에서 여행을 마무리했다. 잠시 배낭여행객의 성지이자 배낭여행 입문코스로 알려진 카오산로드(Khaosan Road)에 다녀왔다. 지상철도와 택시 대신 짜오프라야 강(Chao Phraya River)을 거슬러 올라가는 보트를 이용했다. 여행객들에겐 이색적인 교통수단이지만 현지인들은 퇴근 또는 하교 길에 이용하는 대중교통인 듯 했다.

짜오프라야 강 보트 안. <사진 제공=성철권>
짜오프라야 강 보트 안. <사진 제공=성철권>

모래를 싣고 가는 화물선. <사진 제공=성철권>
모래를 싣고 가는 화물선. <사진 제공=성철권>

강폭이 넓은 만큼 많은 배와 보트가 물 위를 달렸다. 눈길을 끌었던 건 모래를 싣고 가는 화물선이었다. 활주로가 정비된 항공모함처럼 평평한 선상에 모래를 실은 배들이 줄을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강에서 화물선이 다니는 모습을 처음 봤다. 라오스를 흐르는 메콩강에서는 관광객과 현지인을 옮기는 보트와 조그마한 낚싯배들만 봤었다. 문득 과거 라오스에도 물길을 통한 사람과 사물의 이동이 활발했는지, 그리고 지금은 왜 활발하지 않은 건지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지금은 배경지식이 부족하지만 나중에 지면을 빌려 적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길지 않은 여행이었다. 라오스와 직접 국경을 접한 5개국 중 아직 2개국을 가보지 못했다. 세계 속의 라오스는 차치하고, 동남아시아 속 라오스를 이해하기에도 한참 부족하다. 그래도 지도 상 어딘가에 있는 라오스가 아닌, 마음속에 라오스를 품고 떠난 첫 여행이 라오스를 조금 더 풍성하게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를 푸른별이라 말하듯 바깥에서 바라본 라오스는 찬란하게 빛나는 나라라고 말해주고 싶다.

말레이시아 거리 풍경. <사진 제공=성철권>
말레이시아 거리 풍경. <사진 제공=성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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