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단상]투서와 감사에 내몰린 개인 연구자
우수 연구자 보호할 시스템 개선 시급…"이대로 가다간 아무 일도 안하게 된다"

무엇이 어떤 압박이 한 과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우리는 또 한 명의 우수한 과학기술자를 잃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바이오나노헬스가드 사업단은 침통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특히 정 박사와 가까이 지내던 연구원들은 3장의 유서만 남기고 홀연히 떠난 동료 과학자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멍하니 하늘만 쳐다볼 뿐이다. 어떻게 그런 모진 일이 있었을까. 아무리 힘들었다 해도 어떻게 그렇게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정 박사가 표면적으로 괴로움에 시달렸던 것은 투서와 감사원 감사다. 자괴감과 배신감, 무기력함의 연속이었다. 

정 박사는 지난해 가을 무렵 횡령 등의 의혹을 제기하는 투서로 인해 수개월동안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 주변에서는 1년에 100억 원 정도 연구비 집행을 하는 사업단의 경우 통상 감사원 감사를 받을 수 있는 의례적인 일로 여겼다. 감사원 감사 결과도 별 문제가 없는 수준으로 나와 별 일 없이 사업단이 가동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정작 정 박사 본인은 몇 개월 동안 감사를 받으면서 '내가 이정도 밖에 안되나'라는 자괴감에 빠졌었고, 심히 괴로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횡령 의혹의 투서가 감사원에 접수됐고, 지난 구정연휴를 기점으로 정 박사는 감사원 감사가 다시 진행된다는 통보를 받게 됐다. 스트레스와 괴로움이 극에 달해 정 박사는 지인들에게 '힘들다'라는 표현을 심심찮게 드러내 왔다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감사원 조사를 1년간 받아본 P 박사는 감사원 조사를 받아보면 그 후유증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파괴적이라고 말한다. 범죄자 취급을 하는데 차라리 죽고 싶을 심정이라고. P 박사는 "조사 과정에서 결국 어떤 사소한 문제라도 있으면 꿰어 맞춰 연구자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감사원의 잣대로 범죄자가 되면 감사원 실적으로 둔갑을 한다"면서 "누구든 감옥에 안가고는 견딜 수 없는 수순으로 들어가는데 감사 기간이 오래 걸릴수록 차라리 죄인이 되어 손들고 말지 버텨낼 재간이 없다"고 전한다. P 박사는 결국 무혐의를 받고 몇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감사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정 박사의 한 지인은 정 박사와 감사에 대해 이야기 하면 그저 쓴웃음섞인 미소로 대답을 회피하곤 했단다. 그저 정 박사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기에 누구한테 하소연 할 처지가 못됐다. 그리고 그 미소 뒤에는 큰 어두움이 엄습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아마도 억지로라도 어두운 그림자를 외면하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정 박사가 느닷없이 연구소에 나오지 않았고, 하루 만에 부음이 전해졌다 

어쩌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건 우리 과학기술계가 만들어 온 잘못된 문화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가 '힘들다'고 말할 때 누구 하나 제대로 관심갖지 못했다. 누구보다 굵직한 연구성과를 냈고, 여러 계획을 세우며 많은 꿈을 꾸었던 그가 어려움을 당했는데도 개인이 문제였을 뿐, 뒤에서 수군거리기만 했다 

투서로 공격대상이 되고 감사를 받게 되면 개인 연구자가 온전히 책임지고 조직은 뒤로 빠지는 모양새다. 몸담아 왔던 연구소 조직이더라도 행정부나 기획부, 심지어 경영진 조차 개인이 알아서 대응하라는 식이다. 개인의 부담을 완충할만한 게 전혀 없다. 어떤 제도나 시스템도 전무하다. 조직 차원에서 개인 연구자가 어떻게 감사에 대응해 가는지, 투서 내용의 경중을 살피는 일도 없거니와 경영진도 발뺌을 하기 일쑤다. 개인 연구자를 보호할 장치도, 문화도 형성되지 않았다. 

'명복을 빈다'는 말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과학기술 공동체가 모르쇠 문화에 갇혀있다. 열심히 연구하고 창업하면 나중에 범죄자가 된다는 말이 공공연함에 개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성과도 개인이 내고, 책임도 개인이 진다. 차라리 아무 일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투서와 감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과학계다.

투서 공격을 받고 감사를 받는 연구자가 어디 정 박사 한 명뿐이겠는가. 열심히 연구하는 과학기술자들을 볼 때마다 적어도 과학 공동체는 응원과 격려를 먼저 떠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이 우리의 할 일이고 무엇이 과학 공동체의 얼굴인가.

정 박사의 죽음을 계기로 과학계의 모르쇠 주의와 비열함에 대한 깊은 반성과 성찰이 있길 기대해 본다. 더 이상 개인에 모든 책임의 무거운 짐을 지우지 말고, 시스템이 개선되고 조직과 공동체가 함께 짐을 나눠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나가는 새로운 선순환 공동체로 한걸음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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