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계, 파괴적 혁신으로 미래 뚫어야"

[신년 특별대담]신성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DGIST 총장
"과학자들, 국가 전체 변화에 대해 민감해야" 주문
과학계 장기적 리더십 확보, 적극적 대중소통 등 강조
대담 = 이석봉 대표, 기사 = 김요셉·강민구 기자 botbmk@hellodd.com 입력 : 2016.02.06|수정 : 2016.02.14

DGIST는 국가적 리더십을 갖춘 이공계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사진=김요셉 기자>

"한국 과학계는 지난 반세기만에 경제 성장 못지않게 놀라운 과학기술 양적 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글로벌 영향력은 부족하다. 융복합 혁신(Convergence), 협업적 혁신(Collaborative), 창의적 인재 혁신(Creative-talent) 등 3C 중심의 파괴적인 혁신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한국 과학기술 경영의 총사령탑 신성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DGIST 총장)의 고언이다.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의 비슬산(琵瑟山) 기운이 둘러싸고 있는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서 신성철 부의장을 만났다.

몇년 전까지 한적한 촌에 불과했던 이곳은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실감케 할정도로 대표적인 혁신중심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DGIST 내에 웅장한 건물이 하나둘씩 들어서고, 주변 산업단지 일대도 한창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연구 5개동과 컨실리언스홀 등이 연결돼 있는 학교 전경은 사뭇 거대한 위용을 내뿜는다. DGIST는 대학원 중심에서 학부생들이 입학하고, 노화·미래자동차·CPS·웰니스융합·뇌과학 등 첨단 연구를 중심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이공계 인재를 양성하는 상아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초대 총장으로 취임한 이래 2대째 총장을 역임하고 있는 신성철 부의장은 대학과 과학기술 중심 연구소가 공존하는 학연상생의 롤모델로 한국 대학교육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비전과 열정을 갖고 신생기관의 발전을 이끌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을 역임하고 있는 신 총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국가 미래를 위해 한국 과학계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핵심 방향타를 제시했다.  

한국 과학계 "科技정책 일관성과 검증된 리더들의 장기 리더십 필요"
 
"중국 과기부의 완강 장관이 9년째 재임하는 동안 한국은 6번이나 수장이 바뀌었습니다. 중국은 기관장의 임기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일연구소도 기본이 7년이며, 미국과학기술국(OSTP)장은 오바마 정부에서 8년째 재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검증된 리더들의 장기적 리더십이 요구됩니다."
 
신성철 부의장은 지난 20세기 과학기술이 국가발전과 경쟁력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21세기에는 과학기술의 경제발전·보건·사회 안전·국방·삶의 질 향상·외교 통상 등 국가생존과 번영에 절대적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 가운데 한국 과학계가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일관된 과기정책 추진, 국가 거버넌스 확보, 연구자원 투입의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장기적 콘트롤 타워 구축이 절대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적 고유 성장모델 개발을 위한 싱크탱크 그룹이 적극 육성되어야 하고, 동시에 독일 막스프랑크 연구소처럼 연구자의 연구 자율성이 확실히 보장되는 연구문화 시스템적 변화도 중요한 과제라고 피력했다.
 
기로에 선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변화와 역할에 대한 조언도 이어졌다.
 
출연연의 경우, 국가 산업화 과정에서 과학기술발전 견인차 역할과 첨단산업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대학의 기초연구 능력이 향상되고 대기업에서 응용연구를 수행하면서 출연연의 역할과 위상 재정립이 시급한 상황이 도래하게 됐다.
 
신 부의장은 거대과학, 집단 기초연구, 국가복지 안전을 위한 연구, 중소기업경쟁력제고 연구 등을 출연연이 반드시 감당해야 할 역할로 정의내렸다. 막스프랑크 연구소, 프라운 호퍼모델을 벤치마킹해 순수기초와 상용화 연구, 박사급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 지원 등의 역할을 출연연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신 부의장은 출연연의 위상 재정립과 더불어 연구자의 자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연구원들에게 필요한 자세로 ▲연구원으로서의 자존감을 가질 것 ▲독립연구분야 개척 여부 ▲융복합연구를 위한 자세 등을 내세웠다.
 
신 부의장은 "연구원이 되려면 평생을 스스로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것을 좋아해야 하며, 연구원으로서의 자존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면서 "DGIST의 경우, 연구원 채용시 대학 교수가 안되어 후순위로 도전하는 사람을 채용하지 않는다. 연구 가치관을 갖고, 연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1년 초대총장으로 취임한 이래 2대째 총장을 역임하고 있는 신성철 DGIST 총장.<사진=김요셉 기자>

◆ "과학자, 글로벌 흐름 읽고 외부 소통에도 적극 나서야"

"산업혁명 때는 아이디어가 상용화되기까지 100년 걸렸습니다. 정보화시대가 되면서 25~50년으로 단축됐고, 지금은 1년만에 아이디어가 상용화되면서 기초·응용·상용연구의 경계가 허물어졌습니다. 상용화 트렌드를 읽지 못하면 기초연구도 어려운 시대가 됐습니다." 

신 총장은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전시회 등 참여를 통해 글로벌 흐름을 읽고 외부소통에도 적극 나설 것을 당부했다. 과학자 본연의 역할인 자연현상 규명과 응용을 넘어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 등 사회와의 적극적인 소통 필요성을 요구했다.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과학자들은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해서 인정받고, 지식을 축적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면 됐다. 연구실에만 있는 것이 과학자로서의 본분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제는 과학기술이 국가의 생존과 번영에 절대적이 되면서 적극적인 사회와의 소통이 필요하게 됐다.

신 부의장은 "FTA시대에서의 승자는 과학기술의 승자가 최종 승자가 된다"면서 "국가 과학기술력은 국가 안전, 복지, 생존을 위해 중요하다. 과학자들이 과학기술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 변화에 대해 민감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정부와 정치권과의 관계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신 부의장은 "결론적으로 과학과 정치는 밀월 관계가 되어야 한다"면서 "과학계가 정치가에게 정확한 자문을 하고, 정치가는 비전을 갖고 정책 추진과 입법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와 과학은 크게 ▲정치가의 리더십을 통한 '과학을 위한 정치' ▲과학자들이 정치가들을 위해 자문에 참여하는 '정치를 위한 과학' ▲과학자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정치에서 과학'이라는 3가지 유형으로 신 부의장은 구분했다. 

신 부의장은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등 중국의 리더들은 이공계 출신으로 롱텀 리더십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국가 과학기술기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국내에서도 이공계 출신이 국가를 이끌 리더로서 성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 부의장은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과학자들에게 ▲과학계에서 전문성과 리더십 보유 ▲정책 수립 마인드 ▲권력보다 국가 봉사 우선시 ▲공의 정신과 따뜻한 가슴 ▲과학자보다 더 열심히 할 자세를 가질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신 부의장은 "리더십 국가적 시각을 가진 이공계 리더들을 학부때부터 교육을 받아 정치,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를 위해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 "연구실 중심의 연구문화 확립이 해답이다"

협업적 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한 신성철 총장.<사진=김요셉 기자>
최근 대학은 이공계 교육 혁신, 융복합 연구 혁신, 기술사업화 교육 등 사회 전반에서 다양한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교육에서 연구로, 연구에서 기업가 정신, 지역과 생생발전 등의 역할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맞춰 신성철 총장은 취임이래 융복합혁신, 협업적혁신, 창의적인재혁신 등 3C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DGIST가 소재한 대구·경북권에는 반세기가 넘은 기업들이 많아 2세 경영으로 전환되고 있다. 경영자들이 신업종을 찾다보니 학교와의 협력 관계 구축에 대한 문의가 많다. 학내에서도 지역수요기업과 연계해 오픈이노베이션데이, 테크데이 등을 개최하고 있다. 기술이전, 공동연구 등 협력을 진행한 결과 전국에서 가장 많은 기술출자기업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신 부의장은 "연구소기업보다는 기술출자기업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면서 "공공기관의 기술을 가치평가하고, 경영인이 자본투자하고 경영하는 것이 서로 발전할 수 있는 모델이며, 학내에서 11개의 기술출자기업을 발족시키면서 원활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픈이노베이션은 연구, 응용, 사업 단계별 순차적인 진행이 되면서 장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산업의 변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다 보니 이에 맞춘 산·학·연의 신속한 대응과 협력체계 구축이 필요해 졌다.  

신 부의장은 "이제 산학연 협력은 오픈이노베이션을 넘어 협업적 혁신으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대학과 연구소는 기초연구, 산업은 응용연구로 구분해서 수행해야 하며, 글로벌 협업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령, DGIST 학내 연구실에는 기업체 연구원이 파견돼 함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모터식 Break system도 개발했다. 기술은 갖고 있지만 상용화가 어려운 대학과 기술이 부족한 기업이 협업적 혁신을 수행한 것이다. 

한국의 주요 경쟁 대상은 과거와 달리 일본, 미국 등 선진국과 경쟁하게 되면서 양적 경쟁이 쉽지 않다. 보유한 자원을 활용해 특정 분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LBNL(로렌스버클리대학연구소)·DGIST 공동연구센터 개소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 DGIST 학생들은 LBNL의 가속기 빔라인 일부를 사용하고 있다. 거대 연구시설의 도입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거대시설의 사용자로 들어가서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DGIST는 협업적 혁신을 이끌 창의적 인재 혁신도 고민하고 있다. 장롱 특허, 의미없는 논문이 아니라 세계적 영향력이 있는 기술 연구·개발할 수 있는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차세대 인재들을 위한 영어 교육, 전세계 연구소와 대학 등과의 교류도 추진하고 있다. 연구문화가 지속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도록 연구실 중심의 연구문화 확립도 함께 시도하고 있다.

"여기 학교엔 이상한 친구들이 많아서 좋아요. 창의력이 샘솟아요" DGIST 학생들이 신 총장에게 보낸 스승의 날 편지 내용中<사진=김요셉 기자>
신 부의장은 "현재 한국 과학계에서 차세대 인재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이유는 각자도생하기 바빠서다. 미국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한국 연구시스템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며 "미국의 방법을 도입한 한국의 시스템은 교수가 퇴임하면서 단절된다"고 평가했다. 

정교수, 부교수, 조교수 등 구분 없는 심화된 경쟁과 후배를 추천할 권한이 교수에게 없어 지속적인 연구가 축적되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의 연구실은 시스템으로 움직이면서 연구 노하우가 축적되는 모델이다.

DGIST의 경우 신 부의장이 총장직을 수행하면서 원로 교수에게 신진 교수 추천 권한을 부여하고 상호 보완적 연구를 시도하려는 노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뇌공학과의 경우 벽이 없는 실험실(Wall-less Lab)을 설치하고, 자유로운 협업 연구를 시도하며 신·구세대간 다양한 소통을 유도하고 있다.

신 부의장은 "한국 과학사를 학문적 뿌리 배양, 나무 성장, 열매 맺음의 3단계로 구분해 각 30년씩 소요된다고 가정하면 한국 과학계가 나무가 자라고 있는 단계에 있다"고 평가하며 "노벨과학상 수상 등 국민이 원하고 인류에 기여하는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연구실 중심의 연구문화 확립을 통해 연구 노하우를 축적해 가야 한다"고 단언했다.

 
대담 = 이석봉 대표, 기사 = 김요셉·강민구 기자의 다른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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