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별대담②]세종입성 2년 KDI
김준경 원장 "칸막이 걷어버리고 '實事求是 현장연구' 펼쳐야"
"연구자들의 대학 이직…인재 유출은 국가적 위기"

 

대한민국을 이끈 과학立國 50년 병신년의 해가 밝았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모태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출범한 지 어느덧 반세기가 지났다. 한국 과학기술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00달러 남짓하던 허허벌판 국가를 50년 만에 GDP 3만 달러를 바라보는 세계 경제강국으로 일으켜 세우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그런 가운데 지금 대한민국은 중국발 지식제조업의 위기, 미래 성장동력의 상실, 세계적 저성장 기조 등 기존 우리가 경험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도전과 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덕넷은 신년을 맞아 국가의 위기 극복을 위한 지혜를 공유하기 위해 한국 대표적 싱크탱크들과의 대담을 추진했다. 이병권 원장, 김준경 KDI(한국개발연구원) 원장, 박희재 국가 연구개발(R&D) 전략기획단장, 그리고 젊은 과학자들과의 좌담 순으로 '신년 특별대담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의 편지] 

김준경 KDI 원장이 대담에서 "지식인들 혁신을 위해 현장이 강조되는 '실사구시' 정신은 기본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사진=김요셉 기자>
김준경 KDI 원장이 대담에서 "지식인들 혁신을 위해 현장이 강조되는 '실사구시' 정신은 기본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사진=김요셉 기자>

"세종과 대덕은 국가 지식인들의 집합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식경제 체계로 돌입한 국면에서 지식인들 스스로 변화와 혁신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현장의 '실사구시'가 가장 필요합니다. 세종의 국책연구소와 대덕의 출연연이 지식과 지혜를 모아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결과물들을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국가 경제정책 종합연구기관 KDI(한국개발연구원·원장 김준경)가 지난 2013년 12월 세종에 입성한 후 이전 2년을 넘기고 있다. KDI가 세종에 첫 발을 들여놓았을 당시 비효율적 요소가 클 것이라 예상했던 김준경 원장은 설립 45년만에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현장과 밀착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한 도전과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김준경 원장은 "세종·대덕의 출연연과 국책연구기관, 정부와의 긴 호흡을 통해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들어가야 한다"며 "KDI가 지역의 주인의식과 책임의식, 자긍심을 가지고 깊은 뿌리를 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세종시에는 KDI를 비롯해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산업연구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등 경제인문사회 주요 국책연구기관들이 국가과학기술연구회와 함께 자리 잡고 있다. 대덕 출연연들과 세종 국책연구기관과의 융합 움직임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는 가운데 KDI에서 김준경 원장을 만나 국가 과학기술·경제사회 연구 방향성에 대한 대담을 나눴다.

◆ 지식인들의 '실사구시' 강조…"현장 이해로 정책 연계하는 지혜 모아야"

김준경 원장이 미국의 '전자의료기록(EMR) 도입'을 설명하며 대표적 실사구시 정책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요셉 기자>
김준경 원장이 미국의 '전자의료기록(EMR) 도입'을 설명하며 대표적 실사구시 정책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요셉 기자>
"실질적인 지식경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지식인들의 변화가 선결되어야 합니다. 지식인들의 변화가 없으면 사회 변화도 어렵습니다. 지식인들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 현장이 강조되는 '실사구시' 정신은 기본입니다."

우리나라는 농업경제를 거처 산업경제, 지식경제 체계로 돌입한 단계에서 김 원장은 지식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지식인들의 새로운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식인들이 스스로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연구현장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는 것이 김 원장의 주장이다.

그는 "적절한 평가 시스템을 마련해서라도 연구자들이 현장을 먼저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며 "과학계와 마찬가지로 인문계도 현장과의 괴리는 무의미하며, 실사구시로 실용적인 성과를 만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김 원장이 '실사구시'를 강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지식인들조차 칸막이를 치고 탁상에 앉아 연구하고 행정을 하는 문화에 젖어있기 때문에 엄청난 국가적 비효율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지식인들부터 칸막이를 걷어버리고 현장에서 필요하고, 국민이 원하는 성과를 내야한다"며 "미국의 '전자의료기록(EMR) 도입' 사례는 우리나라가 당장 뭘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실시구시형 정책 사례"라고 설명했다.

미국 전자의료기록 EMR은 환자가 어느 병원에 가더라도 환자의 진료정보가 공유되는 시스템으로, 환자 입장에서는 두 번 세 번 병원을 옮겨다니며 같은 진료를 받지 않아 진료비가 절약되고 이로인해 국가적으로는 의료예산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

김 원장에 따르면 전자의료기록 프로젝트에 동참한 미국 책임 연구자들은 의료 현장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통해 최근 전자의료기록 도입 법안을 만들어냈다. 유럽 뿐만 아니라 대만과 중국 등도 고령화 사회를 맞이해 의료행정 분야를 확장하기 위해 EMR 수준을 뛰어 넘는 기술 융합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김 원장은 "우리나라의 지식 연구자들도 현장을 이해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고, 정책과 연계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한국의 강점인 ICT 분야를 의료행정 분야에 활용해 미국의 '전자의료기록 정책'과 같이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성과를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아울러 김 원장은 "이과 문과를 구분하지 않고 지식인들이 혁신을 꾀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이해'가 가장 시급하다"며 "우리나라 세종의 국책연구소 연구자들과 대덕의 출연연 과학기술자들이 융합돼 의료행정 분야 뿐만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우수사례들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 '과학계 리더십 위기'…"최형섭 前 장관처럼 국가 생각하는 리더 나와야"

"과학계 연구소 기관장 자리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경합을 벌입니다. 하지만 기관장은 3년 뒤면 자리를 떠나야 하죠. 주인의식과 책임감이 강한 기관장이 오면 직원들도 주인의식이 강해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기관장이 오면 그 자리는 '지나가는 자리'일 뿐입니다."

최근 연구기관의 장기적인 비전이 흐려지고 주인의식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 김 원장의 관측이다. 그 핵심 요인은 과학계의 인적 리더십 부재. 제대로 된 리더를 보기 힘들고, 기관장의 잦은 교체 등으로 인적자원 역량이 제대로 집결되기 힘든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다.

김 원장은 "우수한 연구원들이 대학으로 이동해 간섭받지 않고 개인적인 연구활동을 하고 싶어 한다"라며 "인재를 모아 역량을 모아야 할 판국에 국가적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인재들이 개인적인 대학교수로 유출되는 현상은 국가적 위기"라고 진단했다.

과학계를 넘어 국가적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그 해결책은 결국 사람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김 원장은 최형섭 초대 과학기술처 장관의 잔상을 되짚었다. 

김 원장은 "지금도 국가의 위기가 강조되고 있지만, 최형섭 전 장관 시절의 환경은 더 열악했다"며 "연구과정에서 우수한 실적을 내는 사람에게 보상·대우 체계를 강화해 '사람'을 중요시하는 환경으로 정책방향이 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 전 장관처럼 수장의 자질을 발휘할 수 있는 리더는 기본적으로 연구실력이 뒷받침되고, 국가와 조직을 위해 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며 "개인과 소수 집단의 성공을 위해 뛰는 사람들은 기관과 그 공동체를 대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퍼스트 무버로 가는 지름길 '창의적 교육'…"세종에서 모범사례 만들어 세계화할 것"

"모방 시대에는 선진국을 열심히 따라 하기만 하면 됐지만 모방의 패러다임은 더 이상 지속되면 안됩니다. 특히 혁신을 꾀하는 측면에서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KDI는 실천방안의 하나로 주입식이 아닌 문제해결형 교육을 실시할 계획입니다. 혁신을 선도하는 창의적 교육 도입이 필요할 때입니다."

KDI는 정책연구 뿐만 아니라 교육연구 기능도 집중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 추진될 중학교 자유학기제 시간을 빌어 KDI는 새로운 창의적 실험교육 도전에 나설 예정이다. 세종시 소재 2개 중학교를 대상으로 '기업가 정신 교수법'을 시범 적용할 계획이다. 주입식 교육이 아닌 현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시키는 프로젝트 기반 토론식 교육방식이다. 프로젝트 기반 교수법의 성공사례를 만들어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에 확산하는 것이 KID의 목표다.

김 원장은 "대덕의 과학자들과 세종의 국책 연구자들이 새로운 지식 혁신 시대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라며 "일반 교수법과 프로젝트 기반 교수법 2개 표본을 3~4년간 장기적으로 비교분석해 새로운 교수법의 효과를 세계적 저널에 실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모방 시대에서는 교육도 단순 주입식 교육이면 통했다. 그동안의 교육은 사지선다 등의 형태로 암기하면 해결됐다. 하지만 창조적 혁신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모방형 교육으로는 창의적 인재가 배출될 수 없다는 것이 김 원장의 복안이다.

김 원장은 "모방 교육으로 학생들이 인성·협동·소통·포용력·리더십·사회적 책임감 등의 정신이 점점 훼손되고 있다"며 "긍정, 진실적 도전, 새옹지마, 전화위복 등의 가치를 품은 교육이 마련돼야 한다. 창의력 교육을 통해 새로운 창의적 가치를 전파시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러한 문제해결형 교육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대덕과 세종의 지식인들이 칸막이를 제대로 걷어올려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 원장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세종 국책연과 과학기술계가 칸막이를 걷어 지혜를 모으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들이 원하는 수요를 찾아 사회가 원하는 연구성과를 제시해 신뢰를 쌓고 현장과 밀착된 정책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대덕과 세종 지식인들의 역할을 재차 강조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