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사람]'집 나간 펭귄' 박은정 건양대 연구원
KISTI 지식창조대상 10인 연구원 출신 첫 선정
"서민 위한 나노산업 안전 위해 독성 연구 매진"

최근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원장 한선화)의 '지식창조대상' 수상자 10인의 시상식. 교수 일색이었던 수상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연구원이 있어 화제가 된 바 있다.

국내 과학기술 분야를 선도하는 과학자 10인으로 뽑힌 화제의 주인공은 박은정 건양대학교 책임연구원. 교수가 아닌 연구원 출신으로는 사상 최초로 선정됐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지식창조대상은 전문가·관계자 추천을 통해 선발하던 기존 방식 대신 KISTI의 계량정보분석 기법을 바탕으로 연구자의 학술적 성과를 정량적으로 계측하는 방식을 도입해 공정성·객관성을 높였다.

세계 과학기술 분야 초록·인용 데이터베이스 'SCIE'와 'SCOPUS' 수록 논문을 격년으로 활용해 지난 10년간 피인용 횟수가 세계 상위 1% 안에 드는 고피인용 논문을 추출한 뒤 학술적 공헌도가 매우 높은 '선도 과학자' 10인을 매년 선정한다.

박은정 책임연구원은 독성학을 주로 연구하며 현재까지 총 50편의 SCI 논문과 20편의 KSCI 논문을 발표했다. 또 2014년 한국연구재단 학문후속세대양성사업 대통령포스닥 펠로우쉽 최우수 과제수행자로 선정됐다.

내년 1월초 미국 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으로의 약 6개월간의 연수를 앞두고, 실험 막바지 연구에 열중인 박은정 책임연구원을 건양대 실험실에서 만났다. 11월까지 연구 결과 종료를 앞두고 있어 어렵게 시간을 낸 그는 실험 생각에 분주한 모습이다.  

 

'2015 KISTI 지식창조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박은정 건양대 책임연구원.<사진=KISTI 제공>
'2015 KISTI 지식창조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박은정 건양대 책임연구원.<사진=KISTI 제공>

◆ 대학 야간교실 다녔던 것이 현재의 모습으로…'집 나간 펭귄'에서 환골탈태

"늦은 나이인 42세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다들 포기하고 그만 둘때 시작한 것입니다. 주변의 선입견과 편견 속에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일에서의 보람과 연구를 이해해 줬던 남편과 아들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주부였던 박 책임연구원은 아이를 키운 후, 학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일본 의약저널 번역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던 박 연구원은 저널을 편집하면서 분자생물학, 면역학 등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면서 한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면역학 교실에서 강의를 들었던 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게 됐다.   

박은정 건양대 책임연구원.<사진=강민구 기자>
박은정 건양대 책임연구원.<사진=강민구 기자>

대학원에 진학하자마자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학회참석을 권유했던 지도교수의 조언은 연구에 대한 꿈을 꾸게된 계기가 됐다.

학회에 마련된 운동장 크기의 넓은 공간에서 각자의 연구에 대해 참가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궁금증을 해결하는 연구자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보건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질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질병 유발 기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고, 1년 반 이후, 면역 독성학을 배우게 됐다. 

이후 박 연구원은 중국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미세먼지를 샘플링하고, 동물실험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나노 산업이 부상하면서 이쪽 분야에 대해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미세 먼지에 대한 경험이 있다보니 한결 수월하게 나노입자에 접근할 수 있었다.

박 연구원은 일상생활 등 전 영역에 있어서 연구에 몰입하는 편이다.

박 연구원은 "빨래를 하다가도 장갑을 벗고 메모등을 한다. 연구가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즐겁다"면서 "지도 교수님을 통해 면역시스템을 위한 스토리를 만들고, 항상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게 유지하는 것을 잘 배웠다"고 설명했다.

길에서 시간을 소요하는 것을 제일로 싫어한다는 박 연구원은 "실험할 때는 실험에 집중하고, 그 외 이동시간에서 자료 검색, 노트 메모, 스케줄링 등 실험과 관련 없는 일들을 수행한다. 

연구에 몰입하기 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치매를 갖고 있는 시아버지 병간호 등도 남편에게 미루면서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 했다.

박 연구원은 "연구를 위해 간병과 육아를 포기하면서 남편이 우스갯소리로 '집 떠난 펭귄'이라고 부르던 생활을 계속해 왔다"면서 "아들과 신랑의 전폭적 지지와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에 '미쳤던' 박 연구원은 집에도 자주 못 들어가고, 연구에 집중하기 일쑤였다. 행여 집에 들어가도 아침부터 밤까지 밥도 안 먹고 논문에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남편과의 지속적 설득도 한 이유가 됐다. 인문학도 출신의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실험노트, 실험계획 등을 설명하면서 했던 꾸준한 대화와 설득의 시간들은 상호 신뢰를 구축하게 된 밑바탕이 됐다.

◆ 과학자들에게 '희생', '봉사정신' 필요…서민들의 안전한 생활에 기여할 것

면역학 연구자들에 비해 독성학 연구자들은 환영을 받지 못하는 편이다. 특히, 유해성을 밝혀낸다는 점에서 산업체 관련 종사자들의 반발이 심한 편이다. 

또한, 실험 중 유해성 물질에 노출될 위험도도 높다. 이 분야에 대한 연구자가 국내에서 드물어, 박 연구원은 사실상 홀로 연구하면서 대학병원, 출연연 등과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박 연구원은 과학자들을 위해 희생과 봉사정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과학자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기 때문에 국민에게 돌려줘야 하는 사명감이 연구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연구원은 "이 연구는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서 "서민들의 유전적 요인 외 환경적 요인을 찾아주고, 예방하면서 좀 더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기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연구자들을 위한 환경조성과 후학양성을 위한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드러냈다. 

박 연구원은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후학양성을 위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홀로 이 길을 걸어 왔는데 누군가와 함께 하면서 좀 더 연구성과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상황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박 연구원은 "노벨상 수상자 발표시기에만 연구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 몰입해서 연구하고 실험하는 과학자들의 기를 살려주는 시스템이 정치적 논리 없이 있었으면 한다"면서 "대통령 포닥에 선정되면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지식창조대상을 통해 연구에 대해 인정 받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노산업이 좀 더 안정적이고, 유해없이 발전하는데 기여하겠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실험실에 들어가는 박 연구원에게서 연구에 대한 집념이 느껴졌다. 박 연구원은 "퇴근의 개념은 없어요. 밤새고 수원의 집으로 올라갈 예정이다"라며 웃음지어 말했다.

◆ 나노·면역 독성 연구 분야 국제적 관심…인체 유해성 등 방지

박 연구원이 집중하는 분야는 나노독성 또는 면역독성. 이 연구는 은나노, 카본나노튜브 등의 나노물질이 체내에 들어갈 경우의 영향도와 면역 조절에 대한 연구분야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물질이 체내에 들어 올 경우, 인체내 방어기전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면역기능을 손상시켜 타물질에 대한 방어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실생활에서는 주로 자외선 차단제, 은나노 살균소독제, 은나노 세탁기 등에서 볼 수 있는데, 나노산업이 점차 발전하면서 활용도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대기중 미세먼지에 의한 질병, 폐렴 등의 분석에 집중됐던 기존의 연구들이 이제는 나노 물질의 환경적 측면과 인체 노출시의 유해성 등에 대한 연구로 발전되고 있다.

이 분야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약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6년 한 대기업의 은나노 세탁기 수출이 중단되면서 사건에 대한 문제가 제기 됐고, 이어 OECD 등에서 정기회의를 거치면서 국제적인 연구도 활발해지고 있다.

 

 

마우스 실험을 위한 미세먼지 등의 검출물.<사진=강민구 기자>
마우스 실험을 위한 미세먼지 등의 검출물.<사진=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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