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판사 기간에 불빛으로 수놓아진 거리 <사진=성철권>
옥판사 기간에 불빛으로 수놓아진 거리 <사진=성철권>

그리움의 계절, 그리고 분주함. 라오스의 10월.

10월의 라오스는 유난히 분주하다. 다가올 옥판사(Ok Phansa)를 위해 배를 만들고, 등을 달고, 꽃으로 장식한 바구니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옥판사는 7월 중순부터 10월초까지 약 3개월 동안 계속되는 승려들의 수행기간(카오판사)이 끝나는 것을 기념하는 불교행사라고 한다. 작년과 올해 일정이 다른걸 보면 음력을 따르는 절기인 것 같다.

루앙프라방의 옥판사는 유난히 아름답다. 둘째 날 저녁, 촛불로 장식된 나룻배 가두행진이 시작된다. 여행자들은 관람객이 되고, 라오스 사람들은 다시 도시의 주인공이 된다. 행렬은 메콩강과 남칸(Khan River)이 모이는 두물머리 근처 왓씨엥통(Wat Xieng Thong, 'Wat'은 절을 의미)으로 이어진다. 약 30여개의 나룻배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장관을 연출한다. 절 뒷문으로 이어진 계단을 통해 메콩강에 나룻배들을 띄우는 것으로 행사가 마무리 된다.

교복을 입고 가두행진을 하는 라오스의 아이들 <사진=성철권>
교복을 입고 가두행진을 하는 라오스의 아이들 <사진=성철권>

촛불로 장신된 나룻배 <사진=성철권>
촛불로 장신된 나룻배 <사진=성철권>

가두행진과 더불어 소소한 볼거리도 있다. 작년에는 원통형의 조그마한 열기구에 소원을 실어 하늘에 띄워 보냈었다. 올해는 열기구를 구할 수 없었는데 저녁운행 항공편이 생겨서 항공법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대신 올해는 꽃으로 장식한 바구니(까통)를 메콩강물에 띄웠다. 까통을 물에 띄우기 전에 짧은 묵상기도를 드리는 현지인들을 볼 수 있다. 액운을 떠나보내고 좋은 일들이 가득하길 기원하는 거란다.

현지인에게 구입한 까통 <사진=성철권>
현지인에게 구입한 까통 <사진=성철권>
까통을 띄우는 라오스 사람들을 보며, 분위기는 사뭇 달랐지만, 인도 바라나시에서 만났던 수도자들이 떠올랐다. 쓰레기와 분뇨, 시체마저 떠다니는 겐지스 강물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몸을 씻고 있던 그들. 겐지스와 메콩. 현지인들에겐 삶이자 신앙이며, 자신들을 지켜주는 대지의 어머니라던 친구들의 말이 울림이 되어 돌아온다.

라오스의 10월을 들썩이게 하는 또 다른 행사, 할로윈데이(Halloween Day). 루앙프라방은 외국인이 많은 관광지라서 할로윈을 느끼기 좋은 곳이다. 나도 서툰 분장을 하고 친구들과 함께 길거리에 나섰다. 한 손엔 부모님 손을 꼭 잡고, 다른 한 손엔 할로윈 바구니를 들고 도시를 점령한 꼬마 유령들. 수줍은 숙녀부터 당당한 악동들까지 한 데 모여 도시를 물들인다.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고 뒤늦게 꼬마유령들 행렬에 동참했다. 부지런히 다녔지만 사탕 몇 개가 전부였고 악동들의 습격으로 그마저 아이들의 손에 돌아갔다. 어른유령이 가여웠는지 사탕 하나를 남겨주고 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고 했다. 하지만 머리에 뿔이 나있어서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라오스에서 보낸 할로윈데이는 많은 생각조각을 남겼다. 처음엔 그저 분장한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사탕을 받고 기뻐하는 아이들의 미소가 좋았다. 그러다 문득 돌아본 그 곳엔 라오스가 아닌 외국인 가족들로 가득했다. 외국인 아이들 한가득, 몇몇 라오스 아이들, 그리고 길가 한편에서 관람객이 되어 있는 현지 아이들.

할로윈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과 함께. <사진=성철권>
할로윈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과 함께. <사진=성철권>

3일의 간격을 둔 옥판사와 할로윈데이. 그 사이에서 조금 더 넓은 간극이 느껴졌다. 항상 관객으로 주변에 머물고 있는 현지인들. 잠시였지만 그들이 원래 자리인 도시의 주인공으로 돌아갔던 옥판사가 참 좋았다. 전등과 촛불이 도시전체를 비춰서 그런 탓일까? 가두행진의 즐거움과 소원을 비는 숙연함 모두 무척이나 따뜻하게 느껴졌다.

엉뚱하지만 라오스의 10월은 내게 가족을 떠올리게 했다. 외국인 아이들처럼 부모님 손을 잡고 즐거워했던 유년 시절. 때로는 삶에 무게에 밀려 가족과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들. 그리고 부러운 시선으로 다른 가족을 바라봤던 순간들. 그렇게 예전 기억들과 마주했다. 그런 의미에서 라오스의 10월은 한국의 5월처럼 설렘과 슬픔을 담은 가정의 달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부모님과 친구, 연인의 손을 잡고 메콩강물에 띄워 보낸 현지인들의 기도가 이뤄지면 좋겠다. 그래서일까. 소원을 담아야 한다는 친구의 말에 가족의 건강과 라오스 사람들의 행복을 기도하며 나의 까통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성철권 라오스-한국 적정과학기술거점센터 기획교육팀장은,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한 대한민국의 따뜻한 청년입니다. 지난해 초 사회문제와 사회양극화를 착한 비즈니스로 해결하는 사회혁신 컨설팅·인큐베이팅 전문기관 MYSC의 방문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적정함(appropriateness)’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해 9월, 그 대답을 찾기 위해 라오스에 왔습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그리고 소복이 쌓여가는 만남과 추억 속에 서로를 통해 서로를 새롭게 발견하고 이해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라오스 생활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라오스의 사람과 사회, 그리고 과학이야기를 진솔한 글로 담고자 합니다. 또한 자신의 글이 라오스의 목소리와 현지에서 분투하고 있는 이들의 삶을 전달하는 좋은 통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