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 씨의 위험한 고민>

원종우 필자 소개: 필명 파토.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다가 록 뮤지션으로 데뷔하고 음악평론가로도 활동했다. 2008년 SBS 창사 특집 환경 다큐멘터리 〈코난의 시대〉 작가로 휴스턴 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과학 팟캐스트 방송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로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저서로 《과학하고 앉아있네》 《태양계 연대기》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가 있다.

◆ 우유 하나로 모든 과목을 가르치다

핀란드는 교과목의 벽을 허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인문학적 창의력의 중요성'을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핀란드의 교육을 설명하기 위해 예시를 한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우유가 하나 있다고 가정해보죠. 우리는 이 우유로 뭘 공부할 수 있을까요?

한국 교육에서 우유는 중학교 '가정' 교과에서 성분과 효능 정도를 배웁니다. 시험 문제로는 "다음 중 우유로 만들 수 없는 가공식품은 무엇인지 골라보시오" 같은 것이 출제되겠고요. 하지만 핀란드에서 우유를 가르치는 방법은 다릅니다. 우유 하나로 생물학, 화학, 환경학, 경제학, 문학 등 수많은 학문을 공부합니다.

핀란드는 위와 같은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생물·화학·물리·지구과학 같은 교과과목을 통합과학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저도 본래 천문학을 가르치던 교육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지금 학생들이 배우는 양을 10분의 1로 줄여야 합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너무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핀란드 학생들은 '우유' 하나로 생물학, 화학, 환경학, 경제학, 문학 등 수많은 학문을 공부한다. 인문학적 창의력은 교과목의 통합에서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핀란드 학생들은 '우유' 하나로 생물학, 화학, 환경학, 경제학, 문학 등 수많은 학문을 공부한다. 인문학적 창의력은 교과목의 통합에서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 빅 히스토리란 무엇인가?

빅 히스토리(big history)라는 것을 아십니까? 방금까지 말한 것을 교육 현장에서 녹여서 말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 빌 게이츠가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액을 지원해서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실크로드를 예로 들어보죠. 현대에는 이 실크로드를 '개척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실크로드를 개척했다고 알려진 장건은 흉노족에 사로잡힙니다. 고대에선 한번 붙잡히면 10년은 거기서 묵는데, 그 당시 흉노족들은 이미 실크로드를 통해 교역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를 빅 히스토리에서는 '점을 잇는다'고 합니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서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보는 겁니다.

빅 히스토리에 대해서 또 다른 좋은 예가 있습니다. 바로 돛단배입니다. 돛이 사각형이면 바람이 불 때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멈추면 이동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돛이 삼각형일 경우에는 그 반대입니다. 바람이 멈추면 이동할 수 있지만 바람이 불면 못 가는 겁니다.

이 돛의 모양이 사각형이냐 삼각형이냐는 문명권마다 다릅니다. 어느 문명권에서는 삼각형 돛을 사용하고 어느 문명권에는 사각형 돛을 사용하는 겁니다. 이럴 때 바람에 구애받지 않고 이동이 가능하려면 어떤 형태의 돛을 달면 될까요?

정답은 사각형과 삼각형 돛을 모두 달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이 두 돛을 합칠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러다가 두 가지 형태를 합친 돛을 개발하게 돼서 배에 달게 되니 항해 속도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습니다. 항해 속도가 빨라지니 교역이 빨라지고 경제가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지니 세상이 바뀌는 속도도 빨라집니다. 이렇게 전 세계의 네트워크를 합쳐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빅 히스토리적인 관점입니다.

빅 히스토리적인 관점 중 다른 하나는 핀란드 교육과정에서 행하는 것처럼 우유 하나를 두고 문화와 과학에 대한 것을 전부 이야기하는 겁니다. 모든 것을 연관 지어 보면 역사라는 것은 동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주에서 온 원소를 보고 있다는 것은 온 우주와 내가 연결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빅 히스토리라는 것은 어쩌면 지금 시대에 융합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데에 가장 도움이 되는 교육방식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빌 게이츠가 지원을 하는 거겠지요.

빅 히스토리는 교육의 허브이자 연결고리다. 핀란드의 교육과정처럼 우유 하나로 문화와 과학에 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빅 히스토리는 교육의 허브이자 연결고리다. 핀란드의 교육과정처럼 우유 하나로 문화와 과학에 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역사학자들은 그 이유로 미래 예측을 듭니다. 어느 시대에 무엇을 했다는 걸 발견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런 가치관과 세상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모든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힘을 길러서 결과적으로 미래를 보는 시각을 키워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장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앞으로 여러 분야의 연결고리를 잘 파악하고 그에 맞서 사고하는 능력을 갖기 위해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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