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에서 R&D 배운다 中]장기적 R&D교류문화로 기술 진화
랩스커버리 개발 핵심비결은 글로벌 교류와 실시간 집단지성

랩스커버리 기술은 한미약품의 30여명의 연구진이 13년간 연구·개발에 집념해 이뤄낸 성과다.<사진=김요셉 기자>
랩스커버리 기술은 한미약품의 30여명의 연구진이 13년간 연구·개발에 집념해 이뤄낸 성과다.<사진=김요셉 기자>

"한미약품의 랩스커버리 기술은 기존 방법으로 접근하지 않은 창의적 사고의 활용 결과다."(다국적 제약기업 사노피 관계자)

"정말 훌륭하고 환상적인 트라이앵글 화학합성 조합기술이어서 앞으로 한국 제약산업을 드높일 것이다."(항체신약개발 전문가 박영우 와이바이오로직스 대표)

한미약품 30여명의 연구진이 13년간 전력질주해 개발한 랩스커버리(LAPSCOVERY).
순식간에 한국 제약산업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희망의 기술로 등극했다. 랩스커버리는 어떤 의약품에도 적용 가능한 범용 플랫폼 기술이라서 각광받고 있지만, 사실 기술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혁신의 산물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랩스커버리 기술은 항체의 특정 부분(Fc 절편)을 별도로 만들어 화학적 방법으로 연결시키는 원리로 반감기를 늘리는 기술이다. 우리 몸 속에서는 외부에서 들어온 물질을 재빨리 분해해 몸 밖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당뇨병 환자들의 경우 매일 1회 이상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했는데, 이 기술을 적용하면 하루에 한 번 투여하던 주기를 1주일로 늘리는 효과가 있다.

랩스커버리 기술의 구성조합은 가히 환상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치료용 물질-비펩티드 링커-면역글로불린 캐리어 이렇게 3개 파트로 구성돼 있다. 면역글로불린 캐리어는 사람 몸속에서 제일 많은 단백질 중 하나로 다른 역할은 없고 사람 몸 속에서 약효 지속성만 증가시키도록 만든 것이다. 이 환상의 트리오 조합도 중요하지만 특정한 위치에 어떤 식으로 프로테인 케미스트리를 잘 붙이는가도 매우 중요한 기술이다. 이 기술적 조합에 들어가 있는 연구노하우 자체가 연구자들의 집단지성이 축적된 집합체다.

◆ '글로벌 피드백'이 이뤄낸 기술적 쾌거

어떻게 이러한 창의적 기술을 한미약품 연구진은 개발해 낼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활발한 글로벌 교류와 내부의 실시간 집단지성이 이룬 합작품이다.

사실 한미약품도 처음에는 바이오 시밀러(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을 대상으로 동일하게 개발하는 복제약)를 연구하고 검토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남을 뒤따라 가는 것 밖엔 안됐다. 한미약품 입장에서는 글로벌 제약회사로 점핑하기 위해 혁신적 신약이 필요했다. 혁신적 신약 하나를 개발해 글로벌 기업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 없다는 신념이었다. 결국 바이오 의약품의 근본적 단점인 반감기 짧은 것에 대한 획기적인 신약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반감기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신약 플랫폼 기술개발을 먼저 시작하는 전략적 선택을 과감히 단행했다. 이 결정 이후 묻지마식 투자가 추진됐다. 10년간 8000억 원의 연구개발 투자중 60~70%가 랩스커버리에 투입됐다. 

플랫폼 기술개발 초기에는 조그마한 동물모형에서 시작했고, 스크리닝 과정을 거치면서 좀 더 큰 영장류 실험모형으로 커져갔다. 플랫폼 기술개발 과정에서 기반 단백질의 지속성을 부여하는 것도 기술적 가치가 있지만, 그 앞에 붙여주는 프로틴 펩타이드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러한 연구과정에서 얻은 기술노하우가 모두 한미약품의 특허로 자산화되어 왔다.

사실 글로벌 제약회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플랫폼 기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이관순 대표이사와 권세창 연구소장은 개발 초기 무조건 해외로 뛰어다녔다. 글로벌하게 다국적기업들을 다니면서 기술개발 과정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2004년부터 3년간을 그렇게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려는 행보에 열을 올렸다. 다국적 기업을 가면 연구센터 시설을 둘러보는 것보다 그들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캐치하는데 신경을 곤두 세웠다. 만나고 수정하고 만나고 다시 기술개발 과정을 고쳤다. 결국 2006년경 랩스커버리의 1차 버전이 완성될 수 있었다. 그 이후 2007년부터 당뇨 질환 신약에 랩스커버리 기술을 타깃 적용했다. 당뇨 신약 포트폴리오 '퀀텀 프로젝트'를 본격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최근 사노피-아벤티스와 총액 39억 유로(약 4조8000억 원) 규모의 기술 라이선스 초대형 계약으로 진화시킬 수 있었다. 

권세창 연구소장은 랩스커버리 기술개발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2004년을 회상하며 "국내에서 우리만 좋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다"며 "플랫폼 기술개발의 가장 첫 시작은 글로벌이었다"고 말했다.

JP모건컨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는 이관순 대표, 유럽당뇨학회(EASD)에서 발표된 연구결과에 주목하고 있는 전세계 전문가, 유럽당뇨학회에서 발표된 자료.(왼쪽부터 시계방향)<사진=한미약품 제공>
JP모건컨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는 이관순 대표, 유럽당뇨학회(EASD)에서 발표된 연구결과에 주목하고 있는 전세계 전문가, 유럽당뇨학회에서 발표된 자료.(왼쪽부터 시계방향)<사진=한미약품 제공>

◆ 신중함의 극치, 사노피와 손잡아…"그들이 우릴 선택했지만, 우리도 그들을 선택했다"

한미약품 영광의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글로벌 다국적 제약기업 시장에서의 성공이다. 한미약품의 글로벌 진출은 다른 경쟁사들에 비해 빠르지 않았다. 한미약품 특유의 '우리는 오래 간다'는 꾸준한 신뢰관계의 결과였다.

한미약품은 글로벌 다국적기업들과 지속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매년 ABM이라는 사내 학회를 2번 정도 개최해 다국적 기업들의 핵심 오피니언 리더들을 초청, 글로벌한 신약개발 고견들을 다양하게 듣고 있다.

한미약품 연구원들 차원에서도 매년 학회 컨퍼런스에 참가하면서 다국적 기업들과 점진적으로 신뢰관계를 구축해 나갔다. 학회가 곧 새로운 신약개발을 위한 학습의 현장이었다. 처음에는 학회 참석만으로 동향만 살폈다. 그러다가 몇 해가 지나 한미약품 연구원들이 매년 기술개발 발표에 나서고 있다. 올해는 국제당뇨학회에서 신약 퀀텀 프로젝트 관련한 발표를 10건 이상 했다. 한미약품 연구원들이 당뇨학회에서 처음엔 아웃사이더였지만 이제는 관심의 주대상이 돼버렸다. 글로벌 학회에서는 연구원들 사이 격렬한 토론도 많이 벌이지만, 최근 한미약품 연구원이 발표하면 축하를 많이 받는다.

프랑스 거대 제약기업 사노피도 2009년부터 한미약품을 주목하고 팔로우업 했다. 다른 다국적 기업 노보노디스크제약도 마찬가지다. 이들 다국적 기업들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안건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보수적이지만, 이제는 한미약품과 다국적 기업들 연구원들끼리 서로 잘 알게 됐다. 친분이 두터운 사이도 적지 않다.

권세창 연구소장은 "사노피가 수년간 퀀텀 프로젝트를 지켜보면서 신중히 한미약품을 선택했다"며 "그들이 우리의 기술을 선택했지만, 사실 우리도 글로벌하게 교류하면서 사노피의 신약개발 상용화 능력을 검증하면서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관순 대표와 권세창 연구소장은 개발 초기 무조건 글로벌 다국적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기술개발 과정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사진=김요셉 기자>
이관순 대표와 권세창 연구소장은 개발 초기 무조건 글로벌 다국적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기술개발 과정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사진=김요셉 기자>

◆ 실시간 집단지성의 활용…연구소장의 역할? "연구 아이디어 내는 연습시키는 것"

권세창 연구소장은 연구원들에게 아이디어 내는 연습을 끊임없이 하라고 요구한다.
새로운 연구아이템을 제시하기도 하고, 특정 아이템에 대해 연구방향을 잡아오면 함께 후속연구에 대한 기획을 하기도 한다.

연구소장은 연구원들의 잘하는 부분을 간파하면서 잘하는 연구와 일을 몰아서 준다. 잘 못하는 일을 줘봐야 속도도 안나고 서로 힘이 든다. 한 번 적임자라고 생각하면 믿고 맡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연구과정에 대한 피드백을 해주면 자연스럽게 연구원들은 해당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과정을 거친다. 신약개발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돼 있는 곳이 다른 조직이 아니라 바로 한미약품 연구센터가 됐다.

한미약품 연구원들은 내부적으로 실시간 집단지성을 이룬다. 연구소장은 팀장들과 공식적 미팅이 있긴 하지만 방향성만 제시하고, 토론할 내용이 생기는 즉시 회의가 소집된다. 누구나 회의가 필요하면 관계자들이 삼삼오오 모인다. 대신 미팅을 짧게 한다. 동시 다발적으로 실험 데이터들이 실시간 공유된다. 회사 차원에서도 오픈이노베이션을 위한 연구공유시스템을 만들었다.

권세창 소장은 "제약업계의 R&D는 무엇보다 시간 타이밍이 중요한 싸움이다"라며 "빠르고 효율적 연구성과를 위해 연구개발에 포커스하려면 연구원들이 최대한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면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관순 대표는 "임성기 회장과 권세창 연구소장 등 R&D 경영진은 거의 매일 몇시간씩 이야기 하며 중요한 프로젝트들을 아주 디테일하게 챙긴다"라며 "회사 전반의 오픈이노베이션 경영과 지위고하를 막론한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은 한미약품을 이끄는 중요한 핵심 축"이라고 자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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