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에서 R&D 배운다 上]국가 대표 황금트리오 R&D 리더십
한미약품의 핵심 사람! 사람! 사람!…주축 연구원 절반 이상 10년 동고동락

경기도 동탄에 위치한 한미약품 연구센터. 조 단위의 신약기술 릴레이 수출 계약으로 한국 신약개발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그것도 올해에만 연타석 5방의 홈런. 국내에서는 신약개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일이고, 세계적으로도 한국 제약기업들의 위상을 수직상승시킨 계기가 됐다. 정부 차원에서도 한미약품을 앞세워 신약개발 르네상스를 꿈꾸고 있다. 눈먼 돈 투자라며 회의가 많았던 신약개발이 '이제는 대한민국에서도 가능하다'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렇다면 왜 한미약품인가. 한미약품의 경쟁력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한미약품 연구센터 현장을 취재하면서 새삼스레 R&D의 정도(正道)를 발견했다. 경영철학‧전략‧조직시스템‧ 기술개발‧R&D문화 모든 면들이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성과는 순식간에 얻어지는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세계 제약업계가 주목하는 한미약품 R&D의 본질을 분석해 시리즈로 연재한다. ▲장기적 R&D 문화 핵심 ‘맨파워’ ▲창의·생존 위한 교류 ▲클러스터로의 진화 순이다.                   [편집자의 편지] 

조 단위의 신약 기술 릴레이 수출 계약으로 한국 신약개발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한미약품 연구센터.<사진=김요셉 기자>
조 단위의 신약 기술 릴레이 수출 계약으로 한국 신약개발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한미약품 연구센터.<사진=김요셉 기자>

한국 신약개발의 신기원을 이룬 한미약품 연구센터에는 40년 R&D 활동의 맥이 흐른다. 한 두해 연구해서 올해 7.5조원의 신약기술 수출 성과를 달성한 것으로 봤다면 큰 오산이다.

최초의 한미약품 연구실·합성시설은 1973년 판교에서 탄생했다. 이후 연구·생산·원료합성을 망라한 새로운 시설이 당시 국내 최대 규모로 2004년 경기도 기흥으로 이전했다. 연구시설은 이전했지만 사람은 그대로 였기에 신약개발 노하우와 역사는 지속됐다.

동탄의 연구센터 내부 실험실은 여느 생명공학 실험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7.5조원이라는 잭팟 성과를 탄생시킨 결과에 비하면 오히려 왜소할 정도다. 층층마다 테마가 다르지만 왼쪽은 사무실, 오른쪽은 실험실로 배치돼 있다. 약리 독성실험 시설부터 실험동물사육실, 대장균 배양시설, 각종 바이오 합성 장비들을 옹기종기 갖춰놓았다. 실험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보여도 이 8층 건물에는 임상 전 단계까지 모든 연구를 원스톱으로 할 수 있다.

동탄의 연구센터 내부 실험실은 여느 생명공학 실험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사진=김요셉 기자>
동탄의 연구센터 내부 실험실은 여느 생명공학 실험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사진=김요셉 기자>

연구센터 실험실 내부(좌)와 경영지원실(우)의 모습.<사진=김요셉 기자>
연구센터 실험실 내부(좌)와 경영지원실(우)의 모습.<사진=김요셉 기자>

연구센터 1층 로비에는 한미약품의 창립당시 생산연구 보존모형이 전시돼 있어 42년 전 초창기 시절의 땀과 꿈을 추억하고 있다. 한미약품의 42년 역사는 웬만한 신약개발 관련 국책연구기관 역사 보다 길다. 한국화학연구원이 내년이면 40년이 되고,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올해 30년이 됐다.

한미약품 창립당시 생산·연구 보존모형(상)과 모형에 대한 설명(우).<사진=강민구 기자>
한미약품 창립당시 생산·연구 보존모형(상)과 모형에 대한 설명(우).<사진=강민구 기자>

◆ 임성기-이관순-권세창 "R&D특성 가장 잘 아는 리더십 트리오"

한미약품의 R&D 시초는 누가뭐래도 임성기 회장이다. 창업자 임성기 회장은 1940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났다. 1965년 중앙대에서 약학을 전공하고, 1967년 서울 종로 5가에 ‘임성기약국’을 열었다. 국내 처음으로 '가운 입는 약사'로 이름을 알리며 웬만큼 부를 축적한 뒤, 33세 나이에 한미약품을 설립했다. 약국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던 임 회장이 세운 제약업체였기에 처음에는 약국에 특화된 영업 마케팅이 강했다. 하지만, 사실 임 회장의 창업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반드시 글로벌 신약을 탄생시키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신약개발 회사'라는 임 회장의 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전문 R&D를 펼칠 사람이 필요했다.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회사에 KAIST 화학과 출신 병역특례자가 임 회장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재 이관순 한미약품 대표이사다. 임 회장은 1984년 즈음 이관순 당시 병역특례 연구원이 제약 관련 특허를 출원하는 등 두각을 보이자 “함께 제약업의 꿈을 이뤄보자”고 제안했다. 이관순 대표는 결국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관순 대표의 KAIST 화학과 2년 후배인 김성수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당시 상황을  굉장히 의아했던 일로 기억한다. 화학과 수석으로 입학한 우수인재 이관순 선배가 당시 30위권 제약회사에 취업한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대개 KAIST 병역특례를 마치면 박사과정을 위해 유학의 길에 오르는데,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조그만 회사에 취업하는게 도대체 제정신인가 싶었다.

한미약품의 실질적인 R&D 역사는 회사 설립자 임성기 회장과 이관순 대표의 만남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관순 대표는 본래 연구만 하던 사람이다. 1984년 한미약품에 입사해 지금까지 31년째 임 회장의 기대에 부응하며 한미약품 연구개발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다. 1996년 수석연구원을 거쳐 1997년 이후 2010년까지 13년간 최장수 연구소장을 맡았다. 국내 첫 개량신약 아모디핀과 고혈압 복합제 아모잘탄 개발을 이끈 천상 연구자였다. 그런 그가 2010년부터 최고경영자에 올라 글로벌 기술협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권세창 연구소장은 이관순 대표의 후임이다. 1996년 SK인더스트리에서 한미약품으로 합류했다. 당시 연구원이 5명밖엔 없었다. 권 소장은 2010년 바이오신약 총괄 부소장을 거쳐 2012년부터 연구소장으로 회사의 R&D경영 전면에 등장한다. 한미약품에서도 벌써 19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그동안 권 연구소장이 특허를 출원하고 관리하고 있는 갯수만해도 1000개 남짓이다. 물론 순수 출원 갯수가 아니라 국가별 출원도 모두 포함한 수치이지만, 연구소장 특허만 1000개를 관리하고 있는 사실은 얼마나 한미약품이 R&D 연속성에 강한 회사인지 단 번에 알 수 있는 가늠자다. 회사 전체의 매년 특허 유지비용만 수십억원이 소요된다. 대부분의 핵심 특허는 약효를 지속케 하는 랩스커버리(LAPSCOVERY) 기술과 관련이 있다. 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권 소장은 13년간 30명의 연구진과 집념으로 매달렸다. 이른바 한미판 별동대 조직 가동으로 결국 수조원에 달하는 신약기술 수출 계약 신기원을 펼치는데 성공했다.

임성기 42년·이관순 31년, 그리고 권세창 19년. 한미약품은 이렇게 40년 넘게 R&D 리더십 역사가 이어졌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속담이 있듯, 지금도 권세창 연구소장이 보지 못하는 혜안을 이관순 대표가 바라보고, 이관순 대표가 챙기지 못한 디테일을 임성기 회장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국내 제약업계에서 '가장 연구를 잘 알고, 잘하는 R&D 경영자들'로 소문나 있다. 그래서 이 셋은 '한국 제약업계의 대표 황금 트리오'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권세창 연구소장은 한미약품에서 벌써 19년을 재직했으며, 특허 출원·관리 건수만 1000건을 상회한다.<사진=김요셉 기자>
권세창 연구소장은 한미약품에서 벌써 19년을 재직했으며, 특허 출원·관리 건수만 1000건을 상회한다.<사진=김요셉 기자>

◆ 직장 들어와 박사학위 따는 전통…박사학위 과정 전액 지원

한미약품에는 황금트리오를 따라 각 분야별 연구베테랑들이 묵묵히 연구에 전력질주하고 있다. 약리독성평가부문에 김영훈 연구위원, 약리약효평가부문에 이영미 연구위원, 바이오제약팀의 정성엽 연구위원(발효), 최인영 연구위원(모델평가), 김대진 팀장(프로테인 케미스트리), 배성민 팀장(바이오분석) 등 한미약품 대표 연구주자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이번 사노피-아벤티스와 총액 39억 유로(약 4조8000억 원) 규모 수출 계약의 당뇨 신약 포트폴리오 '퀀텀 프로젝트’ 기술을 개발한 일등공신들이다.

바이오신약팀에 30여명의 연구원이 별동대로 구성돼 있고, 약효독성평가 부문에는 150여명이 활약하고 있다. 바이오신약팀 30여명의 연구원 중 절반은 10년 이상 동고동락했다. 한미약품에서의 경력이 10년 이상이다.

발효 부문부터 결합, 제제 등 바이오 합성연구와 관련 모든 부문별로 능숙한 연구전문가들이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어떤 문제가 닥쳐도 시스템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맨파워다. 10년 이상된 각 분야별 전문화된 연구원들이 한미약품의 핵심 자산인 셈이다.

인적자원 육성과 관련, 한미약품의 오랜 전통이 있다. 학사나 석사학위를 받고 회사에 들어온 연구원들은 대개 회사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전통이다. 한미약품 1호 박사는 이관순 대표이고, 2호 박사는 권세창 연구소장이다. 현재 30여명의 박사과정 연구원이 있고, 모든 비용은 회사에서 지불한다. 연구자 중심의 학위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R&D역량을 키워나가는 모델이다. 학계에서는 한미약품의 이러한 인력육성 지원 제도를 두고 현장에서 내실있게 실용적‧체계적 연구학습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인력개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예상한다.

권세창 연구소장은 "결국 연구개발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신약개발 R&D는 롱텀파트너십을 확실히 갖춰야 한다"며 "연구원들이 연구 테마를 갖고 열심히 연구할 수 있도록 회사는 박사학위 전액 지원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원을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동탄연구센터 뿐만 아니라 팔탄제제연구센터, 한미정밀화학연구센터, 그리고 160여명 연구원이 모여 있는 베이징한미약품 연구센터가 있다. 베이징에는 바이오 합성신약 연구 임상 R&D준비를 위한 영장류 시험도 할 수 있는 실험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연구소장실 한 벽면에 걸린 엘리트 한미인상 열가지 덕목을 보면 한미약품의 가치를 엿볼 수 있다. 기본을 지키고 원칙을 중요시하는 사람, 고정관념을 깨는 사람, 집념이 강한 사람, 모든 일을 깊이깊이 생각하면서 일하는 사람 등의 인재상에서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미래를 느낄 수 있다.

김근배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는 "한미약품 연구원들의 삶이 한국 신약개발 역사 자체이고 신기원의 주인공"이라며 "한미약품의 실험기자재와 실험실은 국가의 중요한 R&D유산"이라고 말했다.

연구소장실 한 벽면에 걸린 엘리트 한미인상 열가지 덕목. 한미약품의 인재상을 볼 수 있다.<사진=김요셉 기자>
연구소장실 한 벽면에 걸린 엘리트 한미인상 열가지 덕목. 한미약품의 인재상을 볼 수 있다.<사진=김요셉 기자>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