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S. 가자니가 저 · 김효은 역 ▲바다출판사 ▲원서 : The Ethical Brain

신경윤리: 뇌의 관점에서 바라본 생명윤리의 문제

▲마이클 S. 가자니가 저 · 김효은 역 ▲바다출판사 ▲원서 : The Ethical Brain <사진=Yes24 제공>
▲마이클 S. 가자니가 저 · 김효은 역 ▲바다출판사 ▲원서 : The Ethical Brain <사진=Yes24 제공>
'신경윤리neuroethics'는 생명윤리학 분야에 있어 '뇌와 관련된' 세부적인 영역과 임무를 탐구하기 위해 설정된 분야이다. 따라서 생명윤리는 뇌의 작동 메커니즘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 자아, 자유의지, 본성이 어떤 것인지를 탐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해답을 찾는 통합적 학문 분야라 할 수 있다.

좁은 의미에서는 '인간 뇌의 치료나 향상에 대한 옳고 그름을 논하는 철학/과학 분야'이며, 넓은 의미에서는 정상성, 죽음, 삶의 방식과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는 방식에 관한 고찰이자 기초적인 뇌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통해 특징지어진 삶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신경윤리'라는 용어는 윌리엄 사피어가 처음 사용했고, 공식적인 학문 분야로 대두된 것은 2002년 국제컨퍼런스 'Neuroethics: Mapping the Field' 에서이다.

뇌과학의 발전은 뇌영상 기술이나 뇌 기능을 향상시키는 신경 테크놀로지, 더 나아가 의식 테크놀로지의 시대를 가능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생명이나 의식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에서 이야기해 준다. 신경윤리는 바로 이런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시대가 제기하는 사회적, 법적, 윤리적, 철학적 문제를 다룬다.

자아와 자유의지 문제, 인간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의식의 존재론적 지위 등의 심리철학이나 인지과학의 문제뿐만 아니라, 자유의지를 전제로 한 기존의 법적 판단이나 사회적 규율에도 의문을 제기하며, 기존의 '가치'와 '사실'의 이분법에도 의심의 눈길을 준다는 점에서 신경윤리는 생명윤리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 왜 과학의 발전을 두려워하는가!

마이클 가자니가는 인류의 과학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로 두려움과 공포를 꼽는다. 미국 대통령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그는 과학과 관련된 문제들이 과학과 관련 없는 이유로 기각되거나 무시당하는 경험을 했다.

즉 생명윤리위원회 소속의 종교인, 정치인, 철학자 등이 '과학적 발견이 비윤리적인 행위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생각할 때 느끼는 과학에 대한 공포'가 과학 연구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노화 연구자의 연구 목표가 영생이라거나 줄기세포 연구자들이 잠재적 인간성을 파괴하거나 히틀러식 우생학을 부활시킬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저자는 본다.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화장실이 만들어진 것은 고작 300년이다. 변화는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화성인을 상상할 수 있지만, 윤리학자들이 화성에 착륙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핵폭탄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면서도 계속해서 그것을 만든다. SF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부정적 사용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도덕감이 그것을 제어할 것이고, 그 이전에 인간의 본성에 자리잡은 '보편 윤리'가 그러한 행동을 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다소 파격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뇌과학적 관점에서, 14일 된 배아에 인간이 가지는 도덕적 지위를 부여할 수 없으며, 그 기한을 23주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우생학의 부활이라는 비판을 받는 착상전 유전진단 연구와 뇌 기능을 향상시키는 약물 및 뇌전극 치료에 대해서도 역시 제한된 범위 안에서 허용할 것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뇌신경 이상을 이유로 흉악 범죄자에게 무죄를 선언하지도 않는다. "뇌를 모든 행동과 심리의 주인으로 보는 인식은 심각한 오해"일 뿐이며, 윤리, 도덕적 책임들이 다 뇌에서 나오기는 하지만 뇌와는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 뇌과학으로 푸는 인간 본성과 생명윤리의 딜레마

14일 된 세포덩어리 vs. 23주 된 태아

생명윤리와 관련되어 제기된 많은 문제들 중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인간 생명의 시작을 결정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는 단지 언제부터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느냐는 철학적인 질문을 넘어 어느 단계까지 자란 배아와 태아를 대상으로 의학실험을 할 수 있느냐는 문제와 이어지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뱃속 배아의 성장 단계상 수정 후 여섯째 주 초(보통 40일에서 53주)까지는 전기적 뇌 활동이 시작되지 않는다. 행여 뇌의 전기 활동이 시작된다 해도 인간의 의식을 가능하게 할 정도는 아니며, 심지어 새우의 신경체계에서 볼 수 있는 활동조차도 아니다.

8주에서 10주 사이에 대뇌는 본격적으로 발달하고, 뇌의 이마극과 측두엽극은 12주에서 16주 사이에 뚜렷이 나타난다. 피질 표면은 3개월(12주)째를 지나면서 평평해진 것처럼 보이고, 4개월(16주) 끝무렵에 뇌구가 나타나고 이것이 나중에 대뇌의 주름들로 발달한다.

개별 뉴런들 간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시냅스는 17주째부터 본격적으로 생기지만, 28주(200일)경까지는 급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23주경에는 의학적 보조장치의 도움을 받아 자궁 밖에서도 생존할 수 있고, 태아는 유해한 자극에 반응할 수 있다. 그리고 태아의 뇌는 32주쯤에 이르러서야 호흡이나 신체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수정체가 착상하고 세포 분열을 끝낸 14일 된 배반포胚盤胞부터를 생명의 시작점으로 삼는다. 하지만 아무런 뇌 활동이 없는 세포덩어리를 과연 생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정상적 뇌를 가진 생각하는 인간으로 발달할 수 있는 시기는 14일이 아닌 23주는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 똑똑한 두뇌를 만드는 약

1988년 서울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결승에서 캐나다의 벤 존슨은 9.79초의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하지만 도핑 테스트에서 그가 스테로이드 계통의 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적발되었다. 기록은 취소됐고, 금메달은 빼앗겼다. 약물로 신체 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사회는 이에 상당히 민감하다. 복용자의 건강 문제도 있지만, 약물 복용에는 일종의 속임수와 부정 경쟁의 문제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뇌과학이 발달한 현재, 그리고 더 발달할 미래에는 이런 '기능 향상제' 문제가 더 첨예해질 전망이다. 단순히 근육 강화 등의 신체 기능 향상이 아니라 집중력을 높이거나 특정 감각을 발달시키는 등의 '신경학적 기능 향상'이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약이나 뇌전극 치료를 받은 연구자의 논문,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약물을 먹거나 음감을 강화하는 뇌전극 치료를 받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가 현실이 될 것이다. 이미 미국 고등학생들은 과잉행동장애 아동의 학습 능력 향상 치료제인 리탈린ritalin을 복용하고서 SAT를 치르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기억력이나 인지 지능을 향상시키는 일명 '똑똑이 약smart drug'이 임상시험 중이고, 조만간 시판될 예정이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는 음악가들의 뇌는 좌측두면left planum temporale 영역이 크게 활성화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이 부분은 훈련을 통해서 발달하지만, 어느 정도는 유전자의 영향도 있다. 또한 뇌전극을 이용한 조작도 가능하다. 또 스탠포드 대학교의 연구자들은 비행기 조종사들의 비상탈출 모의 실험 결과, 알츠하이머 환자의 기억 상실을 늦추는 도네피질donepezil이 정상인의 기억력도 향상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 자유의지…'나'의 의지인가, '뇌'의 의지인가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나'의 의지인가, 나의 '뇌'의 의지인가. 최근 두뇌의 행동 메커니즘이 밝혀지면서 범죄자들의 뇌 구조 및 이상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즉 누군가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자유의지가 발현된 것이었는가, 아니면 그의 뇌와 과거 경험이 필연적으로 야기한 결과인가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이런 논쟁을 촉발한 논리는 다음과 같다. 뇌는 마음을 결정하는 물리적 실체이며, 물리세계의 규칙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뇌가 내린 결정과 그에 따라 행동한 사람은 그저 물리세계의 규칙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의 잘못인가, 그의 뇌의 잘못인가?

1848년 미국의 피니어스 게이지는 철도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폭발 사고로 쇠막대가 머리를 관통했음에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전두엽 부위가 손상되었고, 그 후 정상적인 전두엽이 가지는 억제 메커니즘을 상실했다.

그리고 그 뒤부터 그는 본래의 침착하고 상냥한 성격을 잃고 거칠고 폭력적인 행동을 보였다. 또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연구진은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21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이들의 뇌가 대조집단의 뇌에 비해 회색질의 부피가 줄어들어 있었고, 뇌의 전전두 부위의 자동적 활동량이 감소되어 있음을 보았다.

즉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범죄자의 뇌와 정상인의 뇌에는 구조적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뇌는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결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행동의 책임을 뇌에게 물을 수는 없다. 책임이라는 것은 뇌에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임의 문제는 사회적 선택의 문제이다. 저자는 ‘뇌의 상태’와 ‘인간됨’은 완전히 독립된 개념이며, 도덕적 책임은 뇌의 상태에서 나오지만 뇌와 동일시될 수는 없고, 책임은 뇌와 구별되는 인간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 가장 '인권적인' 거짓말 탐지기

미래의 공항 검색대 모습은 어떨까? 쇠붙이 등 위험물질을 소지하고 있는지를 보는 검색대에 최신 기능이 탑재되었다. 바로 승객의 뇌영상을 재빨리 스캔하는 기계이다. 이를 통해 승객의 정신상태(불안한지, 범죄 요인이 있는지, 혹은 범죄 관련 용어나 사진에 반응을 하는지)를 파악한다. 인권침해라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승객의 피부색, 성별, 체격, 언어,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다. 그저 뇌영상만을 보는 것이다. 오히려 가장 인권적인 검색이 아닌가!
 
이 '인권적' 주장은 미국 자유인권협회 전무이사 하워드 사이먼의 주장이다. 물론 최근의 뇌영상 기술을 바탕으로 한 주장이다. 지금까지의 거짓말 탐지기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심박동을 측정했다. 오류도 많고 정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최근의 전산화된 지식 평가computerized knowledge assessment는 피실험자의 뇌영상을 찍어 P 300이라는 뇌파의 증가와 감소를 측정해 거짓말 탐지에 활용한다.

이 뇌파는 친숙한 소리나 냄새, 광경을 인지했을 때 그 진폭이 변화한다. 이 실험을 법정에서 이용한다면, 피의자에게 범죄 현장의 사진이나 범행 도구 등을 보여 주면서 P 300 뇌파의 진폭을 측정할 수 있다. 또 공항에서 알케에다 훈련장 모습을 보여 줄 수도 있다. 만약 P 300 뇌파의 진폭이 변한다면, 그는 그곳에서 훈련을 받은 사람이다.

이 평가 방법은 1980년 미국 로런스 파웰 박사가 개발했고, 여기에 뇌지문brain fingerprinting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이후 이 기술을 활용한 회사를 차렸고, 지금까지 FBI와 함께 뇌영상을 이용한 '거짓말 탐지기'를 개발하고 있다. 실제로 FBI 요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결과 99.9퍼센트의 통계적 신뢰도를 기록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CIA가 현재 이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 뇌 안에 각인된 보편 윤리는 있는가

맹자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안타까워하는 측은지심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2300년이 지난 1996년 지아코모 리조라티는 인간에게는 타인의 감정 상태를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 있음을 발견했고, 이를 바탕으로 다트머스 대학교의 존 란제타 교수는 신생아는 태어난 첫날 다른 신생아의 통증에 반응하여 운다는 것을 증명했다. 인간에게는 다른 이들의 감정 상태를 공감하는 타고난 능력이 있다. 이때 그 감정은 측은일수도 있고, 분노, 기쁨, 슬픔 등 다양하다.

감정 처리를 할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들은 어떤 도덕적 판단을 할 때는 활성화되지만 또 다른 도덕적 판단을 할 때에는 활성화되지 않는다. 행동의 동기가 되는 도덕 감정은 섹스, 식탐, 목마름 등과 같은 기본 충동을 조절하는 뇌 줄기와 대뇌변연계 축에 의해 주로 움직인다. 그리고 마음 이론과 관련되어 처리되는 곳은 '거울 뉴런', 안와 전두피질, 편도의 내측 구조, 그리고 위관자고랑으로 알려져 있다. 추상적인 도덕적 추론은 뇌의 여러 시스템을 동시에 사용한다.

그렇다면 과연 모든 인류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보편 윤리universal ethics라는 것도 존재할까? 아직까지 그와 관련된 신경 메커니즘이 밝혀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보편 윤리는 가능하며, 그와 관련된 메커니즘 역시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적 윤리 감각에 따라 인류는 과학의 발전이 더 나쁜 길을 향해 가지 않도록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Yes24, 출판사: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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