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上]도넘은 게재비 요구에 구독비용 인상 '악순환'
미국, 독일, 국내 KISTI 등 오픈 액세스 활성화 박차

세계 과학기술 저널 출판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논문 게재비는 물론 학술지 끼워팔기, 저널 구독료 대폭 인상 등 몇몇 해외 대형 출판사들이 횡포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연구현장을 쥐락펴락 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응하고자 과학 선진국들은 오픈 액세스(Open Access)와 오픈 데이터(Open Data) 등 오픈 사이언스(Open Science)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대덕넷은 오픈 사이언스 특별 기획취재를 통해 문제 진단과 세계적 흐름에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지를 짚어볼 계획입니다. 많은 관심과 의견개진을 통한 적극적인 참여 부탁드립니다.<편집자 편지>

과학선진국들의 오픈 사이언스 바람이 거세다.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미래 인류 삶의 질 개선과 지속가능한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과학기술자들이 연구한 연구 성과는 논문으로 발표돼 또 다른 연구를 위한 자료가 되거나 기업에 기술을 이전해 산업에서 활용되기도 한다.

연구자들의 논문이 SCI급(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 저널에 실리게 되면  연구자와 연구자가 속한 기관에서는 이를 홍보하고 각 언론은 연구성과를 보도한다.

하지만 논문이 저널에 게재되고 다시 연구자들이 이를 이용하는 절차를 살펴보면 대형 출판사들의 슈퍼 갑질의 모양새가 드러난다.

정부나 외부의 지원으로 연구한 연구 결과가 연구자와 정부의 소유가 아닌 출판사 소유가 되는 것은 물론 저널 끼워팔기, 지나친 게재비 요구, 과도한 구독비용 인상 등 횡포에 가까운 출판사들의 행보가 반복되는 현실이다. 세계 과학자들의 지식이 출판사에 저당잡히는 꼴이다.

◆ 수십년 연구 결과 출판사에 저작권 넘기고 구독료 내야 볼수 있어

지난 2012년 수학계의 저명한 영국 교수가 대형 출판사를 대상으로 보이콧 운동을 펼치며 파장이 일었다. 유명한 수학자인 팀 가우어 박사가 더 이상 엘스비어에 논문을 싣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게재비를 내는 것도 모자라 다시 논문을 보기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출판사의 배만 불리는 잘못된 구조라는 게  팀 교수의 지적이다.

미국의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마이클 아이센 교수 역시 터무니 없이 높은 출판비용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마이클 교수는 논문 게시까지 동료 심사는 무료로 진행되는데 높은 게재비가 어떻게 책정되는지, 또 과학자들이 자신의 논문을 보기위해 구독료를 내야하는지 어이 없는 거래에 대해 반박했다.

국내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기초연구를 하고 있는 K 박사 역시 논문 게재비에 불편해 했다. K 박사는 "연구 결과를 유명 저널에 싣기 위해 수백만원에 해당하는 게재비를 연구자들 대부분 아무 의심없는 내고 있는데 이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네이처(nature), 사이언스(Science), 셀(Cell) 등이 나름 내로라하는 저널. 우리나라 연구자들 중 상당 수는 이들 저널에 평생 논문 한 번 게재하기 힘들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반대로 이들 저널에 논문을 게재한 연구자는 대단한 업적으로 평가되며 분야에서 위상도 덩달아 올라가기도 한다. 연구자들이 이들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려고 애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논문이 게재되는 절차를 보자. 과학자들은 연구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유명 저널을 발행하는 엘스비어(Elsevier), 스프링거(Springer), 와일리(Wiley) 등 대형 출판사에 연구성과가 담긴 논문을 보내게 된다.

논문은 몇차례 교정과 평가를 거쳐 저널에 게재할지 말지가 결정되는데 싣게되면 저자는 논문의 저작권도 출판사에 넘기겠다고 서명을 해야 비로소 게재가 결정된다.

연구자가 길게는 몇십년 연구한 성과가 연구자나 과학계의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해외 출판사로 오롯이 넘어가는 것이다.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이 논문을 다시 활용할 때면 연구자 본인 역시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출판사에 다시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비용을 내지 않으면 자신의 논문조차 볼 권한이 없다.

물론 기관에서 비용을 지불해 온·오프라인 저널을 구독하므로 연구자 개인의 부담은 없다. 또 전국의 대학 도서관이나 일반 도서관에서 이들 자료와 저널을 구독해 서비스하기 때문에 이용자는 큰 부담을 느끼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연구비와 구독료 모두 국민의 세금이 이중 지출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 연구현장에서도 '대응과 변화 움직임'

올해 6월 'SCOAP3 글로벌 위원회'가 CERN에서 열렸다. 사진은 오픈 액세스 확산을 위해 각국의 리더들이 논의하는 모습.<사진=KISTI 제공>
올해 6월 'SCOAP3 글로벌 위원회'가 CERN에서 열렸다. 사진은 오픈 액세스 확산을 위해 각국의 리더들이 논의하는 모습.<사진=KISTI 제공>

당초 저널의 시작은 연구자들이 성과 공유을 위해 인쇄를 의뢰하며 시작됐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다양한 SNS도 거의 없었던 과거에는 연구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 학회 등에서 발표하는 자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자료 인쇄 수준으로 시작된 출판사들이 자금력을 통해 저널을 사들이고 수를 늘리면서 몇몇 대형 출판사가 학술 출판과 유통 시장의 과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 중 네델란드의 엘스비어는 지난해 매출액이 3조5000억원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다.

이들 출판사의 매출액의 80% 이상은 도서관과 기관 등이 지출하는 구독료가 차지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출판사는 저널 구독 비용을 매년 10%이상의 큰 폭으로 인상, 10년만에 비용이 두배 이상 높아진 경우도 다수다. 실제 구입기관에서 구독하는 저널 가격은 알수없다. 가격 비밀유지협약에 따라 모두 비공개 상태다. 이에 따라 연구자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각 기관의 부서나 대학 도서관은 한정된 예산(대부분 예산 감소)으로 관련 저널을 구독하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구독 저널수를 줄여가는 현실이다. 대형 출판사의 횡포에 가까운 가격인상에 대책없이 휘둘리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국내 도서관 관계자에 의하면 다수의 저널을 발행하는 출판사의 경우 도서관 등에 묶음저널(끼워팔기)로 넘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도서관 등에서는 메인 저널 구독을 위해 울며겨자 먹기로 불필요한 저널까지 구입하며 추가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언젠가부터 출판사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연구현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양상인 것. 

최근에는 해외 유명 저널에서 저널 구독료를 대폭 올리면서 국내에도 큰 파장이 일었다. 관련 대학 도서관 등은 논의를 통해 '저널 구독 취소'라는 강경수로 맞대응해 겨우 '저널 비용 현행 유지'라는 결과를 얻어냈지만 거대 출판사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횡포라는 표현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

그런 가운데 미국, 독일 등 과학 선진국에서는 출판사의 횡포를 막고 정보 공유와 개방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공공기반의 '오픈 사이언스(Open Science)' 운동을 펼치고 있다. 오픈 사이언스는 연구자료를 공유하자는 문화로 오픈 액세스와 오픈데이터를 포함한다. 연구자료를 모두에게 공개해 누구나 활용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다.

연구자들의 강력한 요구와 흐름에 따라 일부 대형출판사들이 몇몇 저널에서 오픈사이언스를 표방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출판사들이 요구하는 논문 게재비(일반적으로 논문당 600만원 정도)가 터무니없이 높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대형출판사의 횡포에 가까운 가격 인상과 게재비 요구는 현재 시스템에서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고에너지 물리학 분야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컨소시엄을 중심으로 '오픈 사이언스'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40여개국이 참여하는 CERN 컨소시엄은 출판과 기금 부분에서의 새로운 모델 SCOAP3(Sponsoring Consortium for Open Access Publishing)을 구축, 10여개 출판사가 참여하며 기존구독료보다 낮은 금액에 연구자들이 논문을 게재하고 많은 이들이 연구정보를 활용토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 각국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적극 참여 중이다.

CERN 중심으로 운영되는 SCOAP3 프로젝트의 오픈액세스에 참여하는 저널의 논문 출판비용. 상업적 출판사에서 요구하는 논문 게재비와 많은 차이가 있다.<이미지=KISTI 제공>
CERN 중심으로 운영되는 SCOAP3 프로젝트의 오픈액세스에 참여하는 저널의 논문 출판비용. 상업적 출판사에서 요구하는 논문 게재비와 많은 차이가 있다.<이미지=KISTI 제공>
이처럼 공공기반의 오픈 사이언스 운동이 확산돼야 한다는 데는 많은 연구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한 인식부족, 예산, 정책 등의 문제로 실제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임석종 KISTI 박사는 "오픈 사이언스는 전 지구적 문제로 학술논문의 자유로운 접근을 위한 정책과 비지니스 모델이 필요하다"면서 "또 지속가능성을 위한 자금과 정보 공유를 위한 플랫폼이 마련돼야 하는데 독일 막스플랑크협회 디지털 라이브러리에서 비지니스 모델을 내놓으며 활성화에 속도를 낼 전망"이라고 말했다.

※ 대덕넷 기획취재 '오픈사이언스 下편'은 미국, 독일 등 과학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오픈사이언스 사례와 대응 움직임을 보도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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