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이호왕 박사는 세계 최초로 유행성 출혈열의 병원체를 발견했으며 진단법, 백신까지 모두 개발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대한민국학술원 원장, 대한백신학회 초대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UN산하 국제백신연구소(IVI)의 한국후원회장과 한탄생명과학재단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며 연구사업 발전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노벨생리의학상 부문에 실제 추천 과정을 참여했던 경험도 갖고 있는 국내 유일무이한 석학입니다. 대덕넷은 노벨상 특집기고로 이호왕 박사의 '노벨상 이야기'를 2회에 나눠 연재합니다.

이호왕 박사 <사진=정윤하>
이호왕 박사 <사진=정윤하>
학자나 과학자의 연구업적을 상이나 훈장 등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옳지 않으며 문제가 많다고 생각된다. 특히 학자에게는 인품과 교양 또 후학 양성과 사회적 기여도 등도 연구논문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위대한 발견이 인류복지 향상에 크게 기여하였다면 그 업적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노벨상은 위대한 발견을 한 과학자나 위대한 작가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매년 10월이 오면 온 세상 사람들이 특히 과학자들의 이목이 노벨상을 수여하는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Stockholm)쪽으로 쏠리게 된다. 알프레드 버나드 노벨(Alfred Bernhard Nobel)이라는 위인이 1896년 사망하기 전에 남긴 유서에 매년 10월초에 노벨상 수상자의 명단을 공표하라고 써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0월이 다가오면 많은 언론매체들이 노벨상으로 법석을 떠는데 그 중에는 웃지못할 무식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 고소를 금치 못한 경우가 많았다.

노벨상에 대한 정확한 상식과 이해가 누구보다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또 과거에 내가 노벨상을 추천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기회에 이 상의 확실한 추천인 선정과정과 심사과정 등을 알리고 싶어 펜을 들었다.

◆ 노벨상의 종류와 해당 학술원과 국회

노벨은 1896년 12월 10일 뇌출혈로 생을 마감하며 그 유명한 유서를 남겼다. 그의 유산은 3000만 크로나(Krona)였는데 전액을 노벨상 기금과 재단을 설립하는데 사용하라고 명시되어 있었고 상의 종류, 상을 주는 학술원의 이름과 주소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1897년 당시의 3000만 크로나는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10억 크로나인데 이는 우리 돈으로 약 1조 5600억 원에 해당된다.

노벨은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문학상과 평화상 등 다섯가지 상을 지정했다. 이들 상은 노벨의 유언에 따라 그가 사망한지 5년 후인 1901년부터 수여하기 시작했으니 금년으로 114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노벨상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명예롭고 권위 있는 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시상식은 매년 노벨이 사망한 날인 12월 10일에 거행되는데 절대로 변경되지 않는다.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문학상은 1926년 이후 스톡홀름시의 콘서트홀에서 거행되고 있으나 평화상만은 노르웨이의 오슬로(Oslo)시에서 시상식이 거행되는데 이것도 노벨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노벨 생존시 노르웨이는 스웨덴의 일부여서 특별히 배려한 것이라 한다.

물리학상과 화학상은 스톡홀름 시내에 있는 스웨덴왕립과학한림원(The Swedish Royal Academy of Sciences)이 수여하며 후보자의 추천부터 심사까지 한림원의 노벨위원회가 하고 있다.

생리·의학상은 스톡홀름 시내에 있는 카롤린스카(Karolinska) 의과대학 내의 노벨위원회에서 관장한다. 흔히 카롤린스카 연구소(Karolinska Institute)로도 알려져 있는데 현재 연구소 내에는 의과대학과 각종 연구소가 있다.

문학상은 스톡홀림 시내에 있는 스웨덴학술원(The Swedish Academy)이 관장하고 있는데 이 학술원은 인문사회과학만으로 이루어져 있어 대한민국학술원의 구조와는 다르다.

평화상은 노르웨이 국회에서 선출한 5명의 국회위원으로 구성된 노벨위원회에서 관장한다.

이들 5가지 상외에 1969년부터 경제학상이 추가되었는데, 스웨덴의 중앙은행인 스웨덴은행이 1968년 그의 설립 300주년을 기념해서 독자적으로 제정한 상이며 노벨의 유언과는 무관하다. 노벨재단도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노벨상이라 하기 어렵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지만 최근 노벨경제학상이 다른 노벨상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처럼 행사하고 있다.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초청강사료가 다른 상 수상자보다 훨씬 많다는 소문이 나있다. 스웨덴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노벨상을 많이 만들어 추가한다는 것은 좋은 일 같기도 하지만 노벨의 유언이 빛을 잃게 될까봐 염려된다. 역사는 역사적 사실이 그대로 남아있을 때만이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스웨덴의 예술가나 음악가들도 노벨예술상이나 음악상의 신설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니 궁금하다.

◆ 노벨상 추천과 심사과정

모든 유명한 상은 일반적으로 반드시 원서와 추천서를 받으며 심사위원회에서 추천된 사람들의 연구업적을 면밀히 검토 평가한 후 위원들의 투표로 수상자를 결정한다. 다시 말하면 추천되지 않으면 수상자가 될 수 없다. 이같은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하고 우리나라 언론들이 매년 가을 노벨상 후보가 누구이며 또 가능성이 몇 %나 된다고 보도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힌다. 추천도 되지 않은 사람을 자기 상상대로 후보자로 정하거나 아니면 부탁을 받아서 엉뚱한 사람을 선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나라 언론인들의 기본 상식의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학자에 대한 평가나 보도는 신중히 해주길 바란다.

특히 노벨상의 추천은 비밀이고 아무나 할 수 없으며 또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나는 노벨생리의학상 추천과 심사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다. 매년 7월과 10월 사이에 노벨의학상 심사기관인 카롤린스카 의과대학 내의 노벨상위원회에서 추천인의뢰서(Nominator)와 함께 추천서 서식이 추천인에게 우편으로 배달된다.

봉투 안에는 '요비밀'이라는 제목 하에 추천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고 아무하고도 상의해서는 안 된다는 메모가 빨간색 활자로 명시되어 있다. 2012년까지는 봉투에 추천서류가 다 들어있었지만 최근에는 전자우편(email)으로 각자가 접속(Log-in)하게 되어 있으며 추천자 개인의 사용이름(user name)과 비밀번호(password)가 주어져 있다.

컴퓨터에 접속하면 추천서 서류에 각자의 암호가 찍혀져 있는 추천서가 나오는데 나라별로 구별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추천서를 사용할 수 없도록 엄격히 통제되어 있다. 추천자에게는 추천자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비밀로 하고 추천내용이나 추천한 사실을 피추천인에게도 비밀로 해달라는 지시가 빨간색으로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노벨상 후보를 추천한 사람도 또 추천된 사람도, 누가 누구를 추천했는지 모르게 되어있는 것이다.

추천서는 노벨위원회에서 만든 추천서 양식에 기록하게 되어 있고 동시에 간단한 이력서와 중요 업적 논문들을 기재하여 참고자료로 제출하게 되어 있다. 매년 1월 말까지 추천서를 싸인하여 반드시 우편으로 노벨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참고로 10여 년 전에 우리 학술원 회원이 상기한 바와 같은 추천 절차를 모르고 개인적으로 노벨재단에 우수한 학자를 추천한 일이 있었는데 약 2주일 후에 그 봉투가 반송되어 온 일이 있었다. 내가 학술원 회장 때 있었던 일이다.

학문분야별로 해당 아카데미의 노벨위원회가 추천서를 받기 때문에 노벨재단은 추천이나 심사 절차와는 무관하다.

그렇다면 추천인은 어떤 사람이 되는가. 노벨재단 강령 제7조 제11항에 의학상 추천서 제출자격자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① 노벨협회(Nobel Assembly) 회원 : 카롤린스카 의과대학 교수 50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이 의학상 수상자를 투표로 결정한다.
② 스웨덴왕립과학한림원의 회원과 명예회원 중에서 의학을 전공한 자
③ 노벨의학상 수상자
④ 노벨 위원회(committee) 위원
⑤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의 현직 의과대학 교수
⑥ 노벨협회에서 선별한 세계 각국의 저명한 의과대학 교수
⑦ 노벨협회가 인정하는 저명한 자연과학자

이상과 같이 규정하고 있으니 노벨의학상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또 카롤린스카 의과대학 교수들을 잘 모르는 아시아나 남미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의 과학자는 수상자가 되기 어려우며 추천인 수에서부터 불리하다. 노벨위원회에서 추천자를 결정하고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교수가 추천인이 되기 때문에 추천인의 수가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5명으로 구성된 노벨위원회는 노벨협회에서 10명의 분야별 권위자를 선정하여 그 해의 추천서류를 3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평가하게 하며 수상자 결정에 관여하게 한다. 또 노벨위원회에서 특별히 지명한 후보를 다른 추천된 자와 같이 심사한다.

그러니 노벨위원회에서 검정된 추천서가 최종적으로 노벨협회에서 50명의 교수 투표에 의해서 매년 10월초에 수상자가 결정되는 것이다. 심사기간 중 수상후보자의 이름은 비밀에 부쳐지며 밖에 새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한다. 심사 중에 있었던 일은 비밀이며 50년 이상 경과된 것에 한해서 과학사의 전문가 같이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그 정보가 공개될 수 있도록 되어야 하며 한 번 결정된 사항은 절대로 번복되지 않는다. 카롤린스카 의대교수가 투표하게 되니 그들을 잘 아는 유럽이나 미국학자가 유리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이 노벨생리의학상에 관한 것인데 노벨물리학상과 화학상은 자연과학자로 구성된 스웨덴왕립과학한림원에서, 문학상은 인문사회학자로 구성된 스웨덴학술원에서 각각 별도로 추천받고 심사하고 수상자를 결정하는데 모든 절차는 의학상과 비슷하게 진행되리라 생각된다. 다만 평화상은 노르웨이 국회 소관이므로 정치인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 학술원상도 추천인과 심사과정 등을 노벨상 같이 절대 비밀로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 궁금하다.

추천인 선정과 심사 과정을 조사하며 이상하게 마음에 걸린 것이 하나 있는데, 의학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모든 과정이 스웨덴의 카롤린스카 의과대학 교수들만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었다. 하버드대학 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도 아닌데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인정받고 있는 노벨상을 마음대로 요리해도 아무런 잡음이 없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규정대로 하겠지만, 또 한 가지는 노벨상을 받을만한 훌륭한 발견이나 연구업적을 이룩한 한국인 학자가 분명히 국내에도 있을 것이며 또 틀림없이 추천도 받았을텐데 왜 아직까지 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은 국력이 약해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노벨의학상 수상자 중에는 간염바이러스 항원을 우연히 발견한 사람, 에이즈바이러스 발견자, 헬리코박터 발견자와 황열병 백신을 발명한 사람 등이 있으나 아직까지 병원체와 백신을 동시에 발견한 사람은 없다.

수년 전 브라질의 이름 모를 학자가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는데 노벨상을 유럽과 미국학자들이 독식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아시아와 남미학자들이 들고 일어나야 한다면서 이 운동에 동참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원로학자들의 자문을 받은 후 알지도 못하는 그에게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왜 그가 하필이면 나에게 그런 이메일을 보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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