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과학정보 현황과 과제' 주제 좌담회 개최
참석자들 "과학자원 인식 개선과 다양한 논의 필요"

"과학정보는 생산 후에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다. 관리하고 결정할때 더 많은 사람들이 논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기술인 중심이 아니라 관련 전문가들도 참여해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정보 뿐만 아니라 연구시설과 실험기구 등 모든 과학활동의 정보가 국가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김근배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과학기술 정보도 통치권자의 의식과 많은 관계가 있다. 이전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KORSTIC)를 만들때는 중앙정보부장을 이사장으로 발령냈다. 또 연구 실패 원인도 보고서에 다 기입하도록해 다양한 정보들을 볼수 있는데 지금은 경제논리가 개입되면서 모든 연구보고서가 성공한 보고서만 있다. 그나마 예산 인력이 줄며 보고서도 제대로 관리가 안되는게 현실이다."(곽동철 한국도서관협회 회장)

"우리나라가 50년이 지나면 30년 지난 정보가 있을까 걱정이다. 전자화만 믿는데 이들은 놔둬도 망가진다. 신라 토기나 팔만대장경은 실현가치보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가치있고 존재하도록 유지하게 하는 조직이나 기관도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정규수 ADD 은퇴과학자)

'국가 과학정보 현황과 과제' 좌담회 현장에서 나온 각계의 의견들이다.

전자정보 활용이 높아지면서 오프라인 학술지의 이용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각 대학의 도서관, 연구기관들은 이에 대한 정부 지원 예산과 인력이 줄면서 오프라인 저널의 활용과 관리·보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근에는 과학정보의 핵심 정부출연기관인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가 공간과 예산 등을 이유로 50년간 축적된 해외 간행물 30만권을 폐기할 것이라는 계획이 외부에 알려지며 관련 기관의 과학정보 운영 정체성 문제가 수면위로 부각됐다.

그런 가운데 대덕넷은 과학기술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제대로 활용하며 보존하고자 과학정보 이용자인 출연연 과학자를 비롯해 도서관 관계자, 과학사 전공 교수 등을 초청해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회는 곽동철 한국도서관협회 회장(청주대 교수), 김근배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김상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도서관 책임기술원, 김태중 KISTI 박사, 박계숙 ETRI 도서관사업책임자(전 한국전문도서관협의회장), 정규수 ADD 박사, 채균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이름 가나다 순) 등이 참여해 문제 진단부터 원인, 이에 대한 대안제시까지 활발한 논의를 펼쳤다.

과학정보의 중요성 인식과 수집 보관 활용 방안에 대해 각계의 전문가들이 의견을 제시했다.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곽동철 한국도서관협회 회장, 김근배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김상준 생명연 도서관 책임기술원, 김태중 KISTI 박사, 채균식 표준연 박사, 정규수 ADD 은퇴 과학자, 박계숙 ETRI 도서관사업 책임자.<사진=대덕넷>
과학정보의 중요성 인식과 수집 보관 활용 방안에 대해 각계의 전문가들이 의견을 제시했다.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곽동철 한국도서관협회 회장, 김근배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김상준 생명연 도서관 책임기술원, 김태중 KISTI 박사, 채균식 표준연 박사, 정규수 ADD 은퇴 과학자, 박계숙 ETRI 도서관사업 책임자.<사진=대덕넷>

◆ "기관 미션 명확히 해야…대학 별도로 움직일 수도"

전자정보 국가 컨소시엄(KESLI)은 KISTI를 중심으로 국가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다양한 전자정보를 합리적으로 공동구매하고자 2000년에 구성됐다.

산학연 등 632개 기관이 참여하며 대학과 정부출연연의 91%가 참여해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다. 이들 예산의 3분의 2는 대학에서 부담하고 있다.

곽동철 교수는 "KESLI 컨소시엄이 KISTI를 주관기관으로 상호 협력하고 예산의 상당수를 부담하는 것은 대학에서 자료를 못찾으면 KISTI를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KISTI는 연구기관이 아니라 연구지원기관이라는 미션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KISTI가 기관의 미션을 포기한다면 대학도서관은 굳이 KISTI를 중심으로 예산을 투입할 이유가 없다"면서 "대학도서관 일부에서는 벌써 KISTI를 제외하자는 움직임도 있다"고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곽 교수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수행하는 국가도서관 종합발전계획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그는 "KISTI는 국가대표 과학기술 전문 도서관으로 지정돼 있고 이런 역할을 매년 강화하겠다는 시행계획이 있다"면서 "지금처럼 KISTI가 도서관 역할을 포기한다는 것은 과학기술 정보자원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미국이나 유럽의 속국이 되겠다는 것과 같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곽 교수는 KISTI의 미션 방향이 어긋난 원인으로 기관 평가의 문제를 들었다. 그는 "KISTI는 연구기관이 아닌 지원인프라 기관인데 일반 출연연과 똑같이 연구성과로 평가하면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상준 생명연 책임기술원 역시 KISTI의 미션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KISTI는 국가과학기술도서관에 준하는 역할을 해 왔다고 인식하고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조직명이나 대표 성과를 보면 R&D를 지원하는 인프라적 임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 연구기관처럼 연구에 치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KISTI가 첨단분야만 강조하면서 KISTI만을 위한 일부 도서관으로 기능이 축소되고 있다"면서 "KISTI가 본연의 역할을 깊이 생각하고 국가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채균식 표준연 박사 역시 KISTI가 R&D에 치중하는 역할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채 박사는 "그동안 연구하면서 KISTI가 있어 많이 의존을 했다"면서 "KISTI가 R&D 역할만 부각하고 있는데 국가적 아카이브 기능을 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 사람 조직 예산 등 여러가지로 어려운 상황에서는 기본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 "축적된 과학정보들 돈 주고도 못산다"

"팔만대장경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졌지만 당시에는 이용자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이를 연구 할 수 있는 것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됐다. 중요 자료는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정규수 박사는 기념비적인 자료의 보존과 존재에 의미를 뒀다. 지금 당장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앞으로도 활용도가 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정 박사는 "오래전 화학 관련 과학정보를 보려했으나 어디에서도 볼수 없다가 모 대학교 창고에 하나 보관돼 있어 겨우 볼수 있었다"며 "1930~40년대 명작영화들의 경우 원본이 영화사에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래도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수십년동안 그 가치의 중요성을 인지하며 보관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면서 자료 보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화한다고 모든게 다 되는 것은 아니다. 30년전 아래아 한글로 만든 파일은 소프트웨어가 제공안되니 파일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 또 테이프도 리더기가 없으니 쓸모 없었다"면서 "디지털 정보를 계속 활용하려면 관리도 지속해서 디지털화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동철 교수는 디지털 자료의 접근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 의하면 해외 학술지의 기본 데이터는 해외출판사에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접근권만 부여된 상태다.

그는 "얼마전 외국 출판사가 의약분야 저널 가격을 갑자기 대폭 인상해 전국 대학 도서관에서 급히 대책을 논의했다"면서 "회의결과 전자저널을 일체 구독하지 않겠다고 하자 외국출판사에서 백기를 들었는데 이는 오프라인 자료가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저널이 없으면 부르는게 값"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곽 교수는 그동안 구입한 과학정보 학술지 가치의 중요성을 짚었다.

그는 "우리나라는 수년전 조사에 의하면 매년 해외학술지 구독료로 약 3000억원이 투입돼 왔다. 이 자료들은 돈 주고도 살수 없는 것이다"면서 "국립중앙도서관이 한국저술책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산책도 모두 수집해 후손에게 전달할 책임이 있다면 KISTI는 과학기술정보자료의 국가대표로 그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박계숙 전문도서관 전 회장은 ETRI의 사례에 대해서 언급하며 과학정보기관으로서 방향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에 의하면 ETRI에서는 1983년 다큐멘테이션 센터를 설립해 모든 연구 보고서와 문서를 마이크로 필름으로 제작해 보존했으나 1990년대 후반 당시 기관장의 지시로 막대한 자료들이 몽땅 폐기됐다. 그 결과 지금은 TDX, CDMA 등 ETRI의 중요 연구성과의 보고서마저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는 등 국가 중요 과학기술 정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됐다.

박 전회장은 "KISTI가 이러한 과오를 번복하지 않도록 국가과학기술정보센터로서 기관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잘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 해외 선진국은?…미국·캐나다 3단계 나눠 보관

"미국은 중요자료를 단기, 중기, 장기 3개로 나눠서 보관한다. 백업은 반드시 다른 장소에 해둔다. 우리는 지금 과거 보고서를 찾으려면 없다."

모든 자료들이 전자문서화 되고 있지만 선진국 사례에서 보듯이 중요자료는 여전히 오프라인 이용과 보관이 병행된다.

정규수 박사는 미국의 예를 들며 오프라인 자료 보관의 중요성을 들었다. 그는 "미국은 3단계로 나눠서 보관하는데 전자정보의 활용이 이용의 수월성은 있지만 해커 공격시 정보가 마비될 수 있다"면서 "서가에 하드카피가 있으면 이용이 가능하지만 전자매체는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며 지나친 전자매체 의존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곽 교수는 KISTI가 벤치마킹했던 캐나다정보연구소(CISTI)의 정보관리에 대해 설명했다. CISTI의 정보 보관 원칙의 우선 순위는 페이퍼다. 그리고 전자저널과 페이퍼가 있으면 둘을 동시에 구입하고 전자저널만 있는 경우에는 자국의 시스템에 포함시켜 함께 서비스되도록 한다는 것.

곽 교수는 "한국의 경우는 자체시스템이 없어 라이센스만 받아서 이용하는 수준"이라면서 "KISTI는 이런 부분을 논의해야 한다. 전자저널을 구독하면서 이것이 자국의 것처럼 움직일 수 있게 구현되도록 따지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중 박사는 중국을 예로 들었다. 그에 의하면 중국에는 과학원을 비롯해 연구소마다 기록관리를 위한 별도의 조직이 있다. 이들은 기안까지 모두 정리하며 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과학기술분야에서 앞서나가는 것도 이런 기본 자료가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김근배 교수는 과학기술 정보에 대한 관리와 인식 부족을 꼬집었다. 김 교수는 "저널을 포함한 출간물을 체계적으로 수집해서 장기간 세대를 거쳐 넘겨준다는 것은 최소한의 책무이고 출간물조차 보존을 못하면 가장 기본적인 것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하며 "자료 정보는 생산 후에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다. 이번 KISTI의 사례는 관리체계 논의에서 과학기술자 중심으로 이뤄진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 "정보는 보험, 국가차원에서 자료 정보 수집 관리의 체계화 필요"

과학정보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한 좌담회 참석자들은 ▲국가차원의 관리 체계화(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에 안건 상정) ▲보존 도서관 건립 등을 제안했다.

박계숙 전 회장은 IMF 이후 경제논리에 의해 자료 관리의 예산이 축소된 것을 걱정하며 긴안목의 접근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과학기술은 1세대가 지나가면 연구 보고서를 비롯해 남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라면서 "ETRI의 CDMA, TDX 연구성과 자료들이 연구실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만간 당시 참여 연구자들이 퇴직하면 완전히 묻히고 마는 것은 아닌지, 젊은 연구자들은 무엇을 참고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료는 30~40년 후 역사적 기록으로서 굉장히 중요하다. 지금처럼 관리가 소홀하면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실체인 연구단지의 과학기술 역사가 사장될 수도 있다"면서 "자료의 보관이나 관리는 경제논리에서 접근하면 안되고 국가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곽동철 교수는 도서관정책위원회에 대해 설명하며 정부차원의 관리를 주장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 전체 420여개 대학 도서관의 자료를 다 모아도 미국의 1~10위안에 들어가는 대학의 장서합보다 적다"면서 "이것만 봐도 어떤 자료도 버려서는 안되는 것이고 국가차원에서 보존 도서관 예산을 지원하고 유지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이어 "정보관리의 체계화를 위해 대통령 직속 기관인 도서관정책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해 정부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보자"고 덧붙였다.

정규수 박사는 KISTI 정보에 대해 보험이라고 언급하며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때, 구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서 KISTI가 예비수단으로 보존하는 것은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김근배 교수는 우리나라 정보 관리의 현주소에 대해 "수집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분석하며 국가차원의 지원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과학기술은 빠르게 발전했지만 다른 부분은 낙후됐다. 특히 정보 수집과 관리는 낙후된 상황을 맴돌고 있다"면서 "외국은 출간물의 수집 관리, 비공식 문헌 자료는 물론 사물, 기구들의 대대적인 관리도 이뤄지며 영상 디지털화까지 이뤄지는데 우리는 연구보고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1단계도 제대로 이뤄지는 곳이 거의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김 교수는 "과학기술 정보는 다양한 미래 가치를 지닌 문화 유산"이라고 강조하며 "과학기술 정보는 단기적 특성에 의해 가치를 매길 수 없다. 굉장히 복합적이고 미래 가치가 높으니 보존도 잘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과학정보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지난 2일 대덕넷 교육장에서 좌담회가 열렸다. 사진은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참석자들.<사진=대덕넷>
과학정보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지난 2일 대덕넷 교육장에서 좌담회가 열렸다. 사진은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참석자들.<사진=대덕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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