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현장, 현장의견 반영 없이 무조건적 추진에 당혹
"명분도 실리도 없어…과학계 특성 고려해야"

과학기술계 공공연구기관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청년 고용창출 효과가 2년간 약 280여 명 수준일 것이라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조사결과에도 무조건식 임금피크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과학기술 연구기관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래부가 임금피크제의 본래 목적인 청년실업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조사분석을 해놓고도,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되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를 일방적으로 과학계에 적용하는 현실을 방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현장의견 수렴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미룰 경우 기관의 임금인상률을 최대 절반까지 삭감하겠다는 압박 카드를 꺼내 들며 목표 달성을 자신하고 있지만, 연구현장에서는 미래부가 과학계의 특성을 살피지 못하고 '보여주기식 행정'을 서두르고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30일 본보가 입수한 미래부 임금피크제 관련 조사자료에 따르면 임금피크제 도입시 미래부 전체 2년간 약 340여명(과기계 출연연 280여명)을 매년 설정하는 임금피크제 관련 신규채용 규모만큼 별도 정원을 채용할 수 있다. 과학계만 집계할 경우 280여명 수준으로 미래부가 임금피크제 도입 대상 기관으로 추산한 조사결과다.

미래부는 자료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기관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고용노동부의 지원조건도 제시했다. 소득이 연 6870만원 미만인 경우 피크시점 대비 10% 이상 감액되는 금액을 근로자에게 지원(3년간 한시적 지원)하고, 임금피크제 도입 후 청년을 정규직으로 신규채용 한 공공기관에 1쌍 당 연간 540만원을 2년간 기관에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미래부 전체 공공기관 41개중 12개 기관의 임금피크제 도입이 완료됐다. 12개 도입 완료 기관은 한국연구재단을 비롯해 한국과학창의재단, KCA(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NIPA(정보통신산업진흥원), KISA(한국인터넷진흥원), 우체국물류지원단, 우편사업진흥원, 우체국금융개발원, 별정우체국연금관리단, 우체국시설관리단, 국립대구과학관,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 등이다. 나머지 출연연 등 29개 기관은 아직 도입하지 않은 상태다.

미래부가 밝힌 임금피크제 미도입시 불이익은 우선 기관장 경영평가 감점이 들어간다. 또, 임금피크제 도입 시기에 따라 총인건비 인상률을 차등 반영한다는 복안이다. 준정부기관에 분류되는 기관에 대해서 금년 말까지 도입이 안될 경우 2016년 총인건비 인상률의 절반을 삭감할 계획이다.

출연연과 같은 기타 공공기관에 분류되는 기관은 10월 말까지 도입하는 기관의 경우 총인건비 인상률 전체를 인정해 주고, 그렇지 않은 기관에 대해서는 올해 말까지 4분의 1 삭감, 금년 중 미도입 기관은 절반을 삭감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미래부는 우선 10월 말까지 임금피크제 도입을 목표로 추진일정을 수립해 나갈 계획이며, 이사회 의결과 함께 임금피크제 적용연령, 적용기간 및 조정률, 별도정원 등을 반드시 포함해 도입방안을 제출할 것을 미도입 기관들에게 요구했다.

미래부는 임금피크제 관련해 노사협의시 어떠한 이면계약도 불인정할 계획이며, 기관의 과반수 노조가 있는 경우 노조 동의를 받지만 없는 경우 근로자 과반수 개별동의를 얻을 것을 주문했다. 이와 함께 전 직원 대상으로 임금피크제 미도입시 받는 불이익을 명확하게 설명할 것도 촉구했다.

그런 가운데 미래부는 KAIST를 비롯해 GIST, DGIST, 고등과학원, 과학영재학교, IBS(기초과학연구원), 한국원자력의학원 등 일부 기관에 대해 교원과 의사와 같은 전문직종은 채용 연령이 높은 점과 기관 경쟁력 저하, 타 기관과의 형평성을 감안해 임금피크제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 280명 취업시키려 과기계 전체 임금피크제 추진?…"말도 안된다" 

과학기술계 연구기관들은 정년 65세 환원 없이 월급만 깎이는 상황과 더불어 2년간 청년 고용창출 280명 이라는 미미한 효과 때문에 추진되는 임금피크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다.

A연구원 ㄱ박사는 "미래부의 2년에 280명 고용 창출 자료는 단순한 숫자놀이에 불과하다"며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280명의 고용창출보다 더 큰 고용창출 효과를 낼 수 있는 디딤돌을 짓밟고 있다"고 꼬집어 말했다.

D연구원 E박사는 "기본적으로 R&D 연구성과를 본격적으로 내는 연령은 평균 40~50대 과학자"라며 "R&D 특성상 오랜 누적 연구역량이 그 결과물들로 나오기 마련인데 이번 제도는 이러한 과학계 인적자원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근본적 대책마련을 주문하는 과학자들이 적지 않았다. B연구원 ㄴ박사는 "출연연에 대한 임금피크제 도입은 청년 고용창출이라는 본래 취지에도 전혀 맞지 않는다"며 "임금피크제 도입 외에도 청년 고용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정책이 많다. 근본적으로 과학기술계 우대 정책을 만들어 연구성과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대형 연구성과들이 산업체에 기술이전되면 수천명의 고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공계대학 한 교수는 "정부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모든 청년 실업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출연연의 연구사업 인건비를 1%만 하향 조정하더라도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부는 임금피크제 근본적 도입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C연구원 D박사는 "미래부가 임금피크제 도입이라는 사회적 흐름을 따라가기 위한 보여주기식 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무조건 임금피크제가 우선인 것처럼 출연연에 강제할 것이 아니라 청년고용의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래부가 현장을 등한시 한채 임금피크제를 강압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관측도 많다. 현장 의견 수렴은 전혀 없고 일방적 도입에만 열을 올린다는 것이다. 한 예로 공공연구노조가 지난 24일 미래부 장관 주재 공공기관 혁신 워크숍에서 임금피크제 결사 반대를 외치며 현장의견 수렴을 요구했지만, 미래부는 경찰 등 공권력을 투입해 이를 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기술계 한 원로는 "과학기술 책임부처 미래부가 범정부와 과학계의 역할을 전혀 조정하지 못하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임금피크제가 정말 과학계 활성화를 위한 것인지 도대체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지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다"고 말했다. 

공공노조가 지난 24일 개최한 '미래부-공공기관 혁신 워크숍'에서 임금피크제 현장의견 수렴을 요구하고 있다.<사진=공공노조 제공>
공공노조가 지난 24일 개최한 '미래부-공공기관 혁신 워크숍'에서 임금피크제 현장의견 수렴을 요구하고 있다.<사진=공공노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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