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생활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사람과의 만남이다. 

한 언론사 대표님께 "기자는 참 좋은 직업"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면으로 접하는 독자와 달리 좋은 분들과의 만남을 통해 '직접' 배우고 도전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라오스 현지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진솔하고 생생한 만남들이 좋다. 노트에 담기에는 소중한 이야기, 그리고 기억들. 

지난 1년간 알음알음 모인 만남들 속에서 기억에 남는 두 번의 만남이 있다. 서로 다른 국적과 활동분야를 가진 이들. 그렇지만 모두 '과학'이라는 도구로 라오스 사람들에게 더 나은 내일을 선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더 나은' 내일을 결정할 권리가 우리에겐 없지만 진심과 진심이 만나는 울림은 언제나 진실한 법이니까. 

왼쪽이 써니 포사이스 씨. 휴대폰으로 즉석 '인증사진(?)'을 남기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줬다. <사진제공=성철권>
왼쪽이 써니 포사이스 씨. 휴대폰으로 즉석 '인증사진(?)'을 남기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줬다. <사진제공=성철권>
비영리기관 '어번던트 워터(Abundant Water)'의 대표 써니 포사이스(Sunny Forsyth) 씨가 첫 번째 소개할 만남이다. 그는 호주출신의 공학자로 라오스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도인 비엔티엔(Vientiane)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큐먼 코스(Acumen Courses)에서 진행한 HCD(Human Centered Design: 인간중심디자인) 온라인수업에서의 우연한 마주침이 오프라인 만남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소위 말하는 '청년멘토' 분들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TED Talk(Technology, Education, Design: 미국 비영리 재단에서 운영하는 강연회)'에서 강연을 했었던 그와의 만남은 업무를 떠나 개인적인 기다림이기도 했다. 편안한 반바지 차림과 자전거, 사람 좋은 웃음이 첫인상으로 남았다. 

많지 않은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그의 풍부한 현장경험이 대화를 이끌었다. 성공보단 실패에서 배운 경험들을 더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따뜻함이 좋았다. 무엇보다 물을 정수하는 장치(Water Filter)를 현지인들이 직접 생산, 유통, 판매할 수 있도록 지원해온 경험담은 다른 곳에서 얻기 어려운 귀중한 배움이었다. 

각자의 사업소개는 간단히 줄였다. 대신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서 효과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 '현지인 주도 사업화에 중요한 변수들', '산발적인 정보들을 선별하는 기준' 등 여러 주제를 자연스럽게 옮겨가며 질문과 토론을 이어갔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더 성장한 후 나중에 답하기로 했다. 그리고 서로의 건투를 기원하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눴다. 

커피 한 모금처럼 금세 지나간 시간. 그리고 남은 한 마디. 

"Don't take all for granted"(어느 것 하나 그대로 주어진 것으로 여기지 말자: 저자번역)

다음은 '지역사회임업교육센터(RECOFTC: The Center for People and Forest)'와의 만남이다. RECOFTC은 지속 가능한 산림관리를 위해 일하는 국제단체로 스위스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라오스 내 주요 활동지역은 서북쪽에 위치한 훼이싸이(Houay Xai)이다. 지난 2월 개최된 LKSTC(라오스-한국 적정과학기술거점센터) 개소식 및 개소기념 적정기술 국제워크숍 소식을 신문기사(Vientiane Times: 라오스 유일의 영자신문)에서 확인 후 먼저 이메일로 연락을 해왔다. 

RECOFTC와 LKSTC의 단체사진 <사진제공=성철권>
RECOFTC와 LKSTC의 단체사진 <사진제공=성철권>

RECOFTC에서 주최한 '소규모 적정수확기술 시범교육(Test-training on small-scale appropriate harvesting technologies)'에 초청을 받아 훼이싸이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기관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은 대부분 유럽국가 출신이었고 몇몇 현지출신(라오스, 태국) 연구원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실제로 산림분야는 핀란드 등 유럽국가가 강세로 많은 외국학생들이 박사과정을 위해 유학을 간다고 한다. 

5일간 진행된 행사에는 나를 제외한 5개국 산림전문가들이 모여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한 산림관리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단체는 라오스에서 10년 이상 활동해온 경험에 걸맞은 전문성과 현장성을 갖추고 있었다. 현지에서 조달한 폐기된 차량엔진으로 만든 'Iron Horse(벌목된 나무를 옮기는 장비)'는 아직 초기단계지만 적정기술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었다.

사진 속의 기기가 현지에서 제작한 'Iron Horse'다. <사진제공=성철권>
사진 속의 기기가 현지에서 제작한 'Iron Horse'다. <사진제공=성철권>

무엇보다 처음 알게 된 동적시간조사(Time & Motion Study)가 무척 흥미로웠다. 도구 사용자의 동작을 초단위로 나눠서 무게중심, 난이도 등을 기록/분석하는 활동이라고 한다. 쉽지는 않았지만 나도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초시계를 들고 열심히 현장실습에 참여했다. 그리고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전문가들 앞에서 팀 대표로 분석결과를 발표해서 칭찬보다 더 많은 격려를 받았다. 

동적시간조사 교육 현장. <사진제공=성철권>
동적시간조사 교육 현장. <사진제공=성철권>

동적시간조사 교육 현장. <사진제공=성철권>
동적시간조사 교육 현장. <사진제공=성철권>

나는 흔히 '적정기술'하면 저렴한 원재료, 쉬운 유지보수, 쉽게 배울 수 있는 기술, 낮은 가격 등을 먼저 떠올렸다. 책에서 배운 대로 하자면 몇 가지 더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적시간조사를 경험하면서, 다른 요소들에 앞서 적정기술은 무엇보다 '사람 중심(사용자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말하는 안전함과 편리함이 때론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현지인들도 인식하지 못하는 불편함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것이 우리의 몫이 아닐까. 그럴 때 비로소 '36.5℃의 기술',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 등의 별명을 가진 적정기술의 온기가 온전히 전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좋아하는 영어표현으로 'last but not least'라는 말이 있다. 주로 마지막에 소개하는 사람을 높이는 표현이다. 지면의 제약으로 소개하지 못한 많은 만남들이 있다. 물론 모든 만남이 좋았던 건 아니다. 그렇지만 현지에서 마주한 만남들, 무엇보다 '과학'으로 이어진 인연들을 통해 사람이 우선이라는 그 당연한 말이 가장 지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작심삼일을 되풀이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성철권 라오스-한국 적정과학기술거점센터 기획교육팀장은,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한 대한민국의 따뜻한 청년입니다. 지난해 초 사회문제와 사회양극화를 착한 비즈니스로 해결하는 사회혁신 컨설팅·인큐베이팅 전문기관 MYSC의 방문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적정함(appropriateness)’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해 9월, 그 대답을 찾기 위해 라오스에 왔습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그리고 소복이 쌓여가는 만남과 추억 속에 서로를 통해 서로를 새롭게 발견하고 이해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라오스 생활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라오스의 사람과 사회, 그리고 과학이야기를 진솔한 글로 담고자 합니다. 또한 자신의 글이 라오스의 목소리와 현지에서 분투하고 있는 이들의 삶을 전달하는 좋은 통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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