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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단상]미래부는 과학 현장으로 와야 한다

미래부, 세종 이전 놓고 줄다리기 한창
국가 미래 위해 연구 현장과 호흡하며 백년 대계 세워야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김황식 전 총리가 현장 중시 행정을 강조하며 즐겨 썼던 표현이다.

실제로 그는 현장에 많이 있었다. 천안함 희생자 영결식에도, 화재현장 진압 순직 소방관 빈소에도 그는 있었다. 현장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에게 위로가 됐고, 4대강 등으로 흔들리던 당시 이명박 정부가 그나마 중심을 잡게 해주었다.

현장만이 지고지선의 답은 아니겠지만 현장을 무시하고는 올바른 답이 안나온다. 불후의 역작이된 사마천의 사기(史記)도 역사 현장을 둘러보고 나온 작품이다.무적을 자랑할 것으로 여겨지던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무력한 존재로 만든 독일군의 작전도 현장에서 나왔다.

토요타 자동차 경우도 현장이 중요한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도장 불량으로 제품에 계속 하자가 발생했다. 완제품에 작은 스크래치가 여기저기 났던 것. 도장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여겨져 도장 전공정을 재설계하고 설비도 새로 바꾸었다. 그럼에도 불량은 계속됐다. 조립에서부터 출고까지의 전공정을 현장에서 하나하나 체크했다.

결국 원인이 밝혀졌다. 도장이 다 끝난 다음에 차를 한 번 닦아주는 과정에서 쓰는 손걸레가 문제였다. 작업자들이 손걸레를 차 한 대의 작업이 끝난 다음에 바닥에 떨어뜨렸고, 다음 차가 들어오면 그것을 집어서 차를 닦았던 것. 바닥에 떨어지며 작은 티끌들이 손걸레에 묻었고, 그것이 스크래치를 발생시킨 원인이었다. 아무리 분석을 하고, 설비를 바꾸어봐도 백약이 무효였는데, 이 현장을 본 다음에 걸레 거치대를 따로 만드는 것으로 하자 문제는 해결됐다.

과학에 있어서도 다윈의 진화론은 현장을 보았기에 나온 답이다. 지동설도 수많은 현장 관측이 밑받침되지 않았으면 나올수 없었다. 자전거 수리공인 라이트 형제가, 우편 배달부였던 린드 버그가 세상의 영웅이 된 것도 현장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장은 우리에게 많은 답을 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과학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특히 물리적 거리를 넘어 심리적 거리가 더 먼 것이 과학 연구 현장과 정책결정 담당자들과의 거리이다.

대덕단지가 조성된 것이 40여년. 그동안 수십조원의 돈이 투자됐고, 많은 설비가 갖춰졌으며, 수만명의 과학자가 이곳에서 연구를 해왔다. 예산과 인력, 장비 등이 충분히 투자됐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의 역할이나 자리매김은 기대와는 좀 거리가 있다.

왜 그럴까?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는 하지만 과학계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중앙과 지방의 격차. 중앙이 대부분의 자원을 독점하고, 의사결정권도 가진 가운데 대덕단지는 지방으로 언론을 비롯한 일반인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어쩌다가 큰 성과가 한 번 나면 부각됐고, 연구비 유용 등의 사건이 일어나야 언론에 노출됐다.
 
아마 대덕단지가 수도권에 위치했다면 달랐을 것이란 가정을 해본다. 지속적으로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되며 연구자들의 동향과 활동이 계속 보도됐을 것이다. 각종 프로그램이 개발되며 일반인들이 과학과 접하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과학자들도 연구 못지 않게 국민들에 대한 발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 사회와 활발한 교류가 이뤄졌을 것이다.

최근 서울에서는 일반인들에 의해 자발적인 과학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인터파크의 카오스란 프로그램도 그렇고. 페이스북에서의 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이란 모임, 박문호와 자연과학세상(박자세)란 모임, 백북스 모임 등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 중에는 대전에서 출발했으나 서울에서 더욱 활발한 모임도 있다.

왜 대전에서는 시작은 되지만 운동으로 까지는 안되는 왜 서울에서는 가능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서울은 일정한 규모(매스)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시민들의 자발적 움직임이 주변에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는 것이다.

◆ Out of sight, out of mind

안 보면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란 말이 있다. 지금의 과학계의 현실이 그렇다.

한국 과학계의 전성기는 아쉽게도 지금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보다 많은 것이 부족했던 '초창기'였다. 아무 것도 없던 나라에서 과학계가 그나마 활기를 띄었던 것은 최형섭 장관의 재임시였고, 그 배경 가운데 하나는 과학행정과 연구 현장의 밀착이었다. 최 장관은 장관실 문을 활짝 열어 두었고, 언제든지 과학자가 찾아올 수 있도록 했다. 행정은 그야말로 연구를 위한 서비스란 개념이 확실했다. 공간적으로 같은 서울에 입지해 활발한 교류가 가능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 대덕단지가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80년대 이후 행정과 연구현장의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관료들은 세종로에, 과천에 앉아 연구자들을 오라했다. 예산권을 쥐고 각종 연구개발 사업을 벌이며 결정권을 쥔만큼 연구자들은 군소리없이, 때로는 기꺼이 갔다.

그러면서 행정과 연구현장의 힘의 관계는 최형섭 장관 시절에 비해 역전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완벽히 행정권력이 과학자들을 장악했다. 과거 차관이나 국장급이 기관장을 상대했다면 이제는 과장급, 때로는 그 아래에서 전화로 업무를 처리한다.

그러면서 과학도 방향을 잃기 시작했다. 연구는 하는데 결과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행정 보고와 감사가 연구의 상당한 시간을 잡아 먹고, 한 과학자가 잘못하면 전체 과학자가 도매금으로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된다. 연구에 대한 사명은 갈수록 식고, 연구자들간의 교류도 안하는게 낫고, 국제 교류같은 일은 안만드는 것이 낫다는 자조감이 연구 현장을 좀 먹는다. 이는 신임 연구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해외 리크루트로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던 과학자들도 몇 년이 지나면 이 분위기에 젖거나 아니면 민간 연구소 등으로 탈출(?)을 꾀한다.

본지가 업그레이드 사이언스 코리아 특집을 하며 1부는 국내 과학계의 현실을 다루었고, 2부는 선진 과학현장을 보도했다.

연구 선진국과 우리의 차이는 과학자들의 참여와 자발성에 있었다. 연구자를 믿고 자유롭게 연구하게 하니 성과가 나왔다. 선진국도 사람 사는 세상이라 잘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부정과 비리가 나오면 해당자를 일벌백계하는데 그쳤지, 나머지 사람들을 예비(?) 범행자로 취급하지 않았다. 연구자를 믿게 되는 계기의 하나는 제대로된 평가였다. 그 평가는 전문가들을 제대로 활용했다.

그런데 이를 한 층 더 깊이 들어가면 연구 현장과 행정이 밀착돼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과학 행정이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믿으며 파트너쉽을 갖고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니 세상에 없는 결과들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나라 과학 행정을 보면 현장과 거리가 있는 것이 깨끗해 보이고 더 나아가 고고한 듯 여겨지는 대목이 있는 듯 하다. 한 과장급 공무원은 선배들로부터 과학 현장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코치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현장과 가까이하면 가볍게 보이고, 더 나아가 비리가 있는 것처럼 감사를 받으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게 내세우는 이유였단다.

이런 연유인지 현장 오는 것을 큰 선심 쓰는 것처럼 여기고, 몇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것만으로도 전체 의견을 들은 것과 같은 착시 현상이 나타나는 듯 하다.

◆ 미래부, 백년 대계 위해서도 세종 이전 필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가 이처럼 한가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의 근대 역사 박물관에 공통적으로 쓰인 문구가 하나있다. 청일전쟁(갑오전쟁)기념관과 9·18 만주 사변 박물관 등에는 '낙후되면 당한다'라는 구절이 쓰여있다. 봉건시대에는 세계를 호령했으나 근대화가 늦어지며 일본에게 당한 역사적 교훈을 한 마디로 정리해 놓은 것이다. 이 구절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한국이란 나라는 과거에 비하면 발전했는지 모르나 여유를 부릴 정도의 역량은 아직 안된다.

단적으로 우리보다 늦는듯 했던 중국이 과학기술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며 과학자 숫자나 논문편수, 연구성과 등에 있어 우리를 상당부분 앞서 나가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노벨상 숫자에서도 그렇지만 우주인 양성, 연구 시스템 등등에 있어 우리가 족탈불급이다.

과학 행정이나, 연구 현장이 한 지붕 두 가족이 아니라 하나가 되어 미래에 대비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 행정이 연구 현장으로 와야 한다. 교통도 불편한 과천에 있으면서 계속 과학자들을 와라가라해서는 연구 현장도 모르고, 연구 활동에 도움도 안된다.

세종시로 오니 여러 생활 여건이 불편하고, 자제들 교육 문제도 있고 여러 어려움이 예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초기인 3년전보다는 나아졌다. 기재부 공무원 가운데 가족이 함께 온 K모 과장은 "삶이 더욱 행복해졌고, 업무에 있어서도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세종백배 즐기기란 나름대로의 프로그램을 마련해 일과 생활을 활기차게 만들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사람 개인 경험으로도 서울에서의 삶보다 대전에서의 삶이 훨씬 윤택하다. 산책과 독서, 사색이 가능하며 내용이 채워지기 때문이다.

특히 미래부는 과학 행정의 대상인 연구 현장이 세종시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미래부는 자체 장관을 배출하지 못하는 '불임부서'로 간주된지 오래이다. 현장에 오래 있은 언론인의 감각으로 볼 때 현장에 밝은 행정관료가 없는 것도 한 이유가 아닌가 여겨진다. 현장에 강한, 과학자의 함께 호흡하며 국가 미래를 고민한 사람이 고위직이 안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지금의 미래부에는 그런 관료가 없다. 연구 현장은 가뭄에 콩나듯 가보고, 과학자와의 만남은 몇 사람으로만 그친 관료가 장차관으로 발탁되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자원이 부족한 한국으로서는 과학으로 일어설 수 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자가 제대로 연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 행정은 과학을 조장시켜주며 국가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도록 하는게 중요한 미션이다.

미래부는 과천에서 과학현장이 옆에 있는 세종으로 와야한다. 기재부와 산업부 등 연관 부서와도 함께 논의하고, 과학 현장인 대덕과 긴밀히 소통하며 국가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공공의 일을 하는 사람은 개인의 안위가 아니라 나라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이래 새로운 부서로 차일피일 이전이 미뤄졌고, 일부 고위 공무원들은 과천 잔류를 희망하고 있는지 모르나 대의명분이 없다. 가라고 해서 마지못해 짐싸는 모습이 아니라 국가 미래를 위해 손을 드는 그런 모습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미래부는 우리나라 과학의 중심지인 대덕단지가 옆에 있는 세종으로 와 앞으로 33년뒤 대한민국 건국 1백년의 모습을 그리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1백년 미래와 인류와의 공존 등 큰 화두를 과학자들과 긴밀히 논의하며 풀어나가야 한다. 가끔 현장에 오는 공무원 스스로도 현장에 와서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이 달라진다고 고백한다.

최형섭, 오원철, 김학렬 등등 자신의 이익을 초월한 처신으로 국가 기틀을 잡는데 큰 업적을 내고 지금도 존경받는 선배들처럼 미래부의 공무원들도 현명한 결단을 내릴 것으로 연구 현장에서는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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