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사람]강병화 박사, 1700종 7000점 종자채취 고려대 기증
365일 연구인생 "식물은 일요일에 쉬는 법이 없으니까요"
"2000종 이상 종자 확보해 성숙기 과정 한 눈에 보는 콘텐츠 만들고 싶어"

"30여 년간 풀을 연구했지만 잡초라는 풀은 없더군요. 쓸모없는 풀은 없습니다. 모든 풀은 자원입니다."

강병화 박사(전 고려대 교수)는 1984년부터 31년 동안 종자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다. 종자채집을 위해 직접 발로 뛴 날만 4450일. 달력 위에 표시된 빨간 동그라미는 그가 직접 야외 채집을 한 날이다. 10년 전 달력이나 올해 달력이나 다를 바 없이 꽉 차있는 동그라미에서 종자를 향한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강 박사는 주말에 개인시간을 가진 적이 없다. 자연의 시간을 따르다보면 주말·평일 구분은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식물은 일요일이라고 쉬는 법이 없다.

고려대 재직시절 그는 직접 발품을 팔아 1700종에 대한 7000점의 종자를 채취했다. 미치지 않고서하기 힘든 ‘미친’연구. 논문 쓸 시간에 직접 현장을 발로 뛴, 연구비가 없어 사비까지 털어 채취한 소중한 종자들이다. 정부기관과 연구기관에서 발주하는 종자수집 과제로 환산하면 강 박사의 종자 가치는 약44억~177억. 기후변화와 국토개발, 생활환경 변화로 생물다양성이 감소해 다시 채종할 수 없는 초종도 많으니 가치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다.

품에 끼고 있어도 보고 싶고 사랑스러운 종자들이지만 그는 지난해 말 교단을 떠나면서 고려대 내에'야생자원식물종자은행'을 설치하고 기증했다. 다른 뜻은 없다. 47년 연구인생을 보낸 학교와 후배들이 계속 종자연구를 할 수 있도록 연구자산을 남겨주는 것이 후배와 학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정년퇴임 후 편하게 쉴 법도한데 그는 여전히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다. 인터뷰 전 주에는 덕유산을 찾아 채집 연구를 마치고 돌아왔다.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배우고 느끼는 강병화 박사를 만나봤다.

◆ 연구사정 여의치 않아 저울·자·카메라 들고 채집

식물은 일요일이라고 쉬는 법이 없다. 강병화 박사는 개인시간 거의 없이 야생초 연구에 매진한 이유다.<사진=강병화 박사>
식물은 일요일이라고 쉬는 법이 없다. 강병화 박사는 개인시간 거의 없이 야생초 연구에 매진한 이유다.<사진=강병화 박사>
강 박사는 사실 독일에서 제초제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풀을 죽이는 연구에서 지금은 살리는 연구를 하고 있는 점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재밌다.

그는 은사인 뮐러 교수에게 '잡초방제연구에는 식물 종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논밭에 자라는 잡초를 제초제 처리로 방제하는 연구를 하던 80년대에 그가 연구실에 틀어박혀있지 않고 산과 들로 돌아다니며 종자연구를 하기 시작한 이유다.

재직시절 그는 가난한 연구원이었다. 국가기관에 연구비를 신청하고 싶었지만 그는 "연구결과로 '지정된 종자'를 수천개 수집해 보내야하는데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운이 좋아 성숙한 종자를 채취하더라도 많은 양을 확보하기 쉽지 않으며, 적은 양을 받아 재배해서 증식하는 것도 수년이 걸린다. 1년 단위로 보고해야하는 국가기관 연구가 맞지 않았던 이유다.

실험실과 연구비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그는 카메라와 자, 저울만 가지고 전국을 누볐다. 풀이 막 자라 종자를 맺는 봄, 여름, 가을에는 평균 이틀에 한 번꼴로 움직였다. 들풀따라 77만km 이상을 달린 덕분에 자동차도 5번 바꿨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천연색사진으로 된 식물도감이 없어 전문가들이 일본을 비롯한 외국문헌으로 공부했던 시절이었다. 어린풀부터 성장기, 그리고 꽃을 피우는 성숙기까지 모든 사진을 담고 기록하는 것은 품이 많이 가는 연구지만 그는 꼭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졌다.

"단 한 개의 종자를 받으려면 한 번이 아니라 다섯번이고 여섯번이고 가야한다. 같은 종자라도 지역이나 기후에 따라 씨앗이 여무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카메라에 어린 풀 모습부터 성장하는 모습, 꽃봉우리까지 모든 기록을 담았다. 그는 "풀의 어릴 적 모습을 알아야 미리 제초가 가능하다. 안 그러면 작물이 자라 더 어려워진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논과 밭에서 발생하는 잡초의 종류를 파악하지 못하고 제초제를 사용하면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경우가 많아 제초비용과 환경오염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야생식물 가운데 2000여종 이상이 약으로 쓰이고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웰빙식품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쓸모없는 풀은 없다는 것. 외래종의 습격과 기후변화, 국토개발로 생물 다양성이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 그가 연구를 손에 놓을 수 없는 이유다.

갑작스러운 건강 이상 “연구 도중 떠날 수 없었다”

강병화 교수는 2008년 30만장의 디지털&필름 사진을 정리해 3권의 도감을 출판했다. 총 무게는 15.5kg. 전문가가 아니면 생소한 책이기에 출판에 나서는 사람이 없어 사비를 털어 책을 만들었다.<사진=김지영 기자>
강병화 교수는 2008년 30만장의 디지털&필름 사진을 정리해 3권의 도감을 출판했다. 총 무게는 15.5kg. 전문가가 아니면 생소한 책이기에 출판에 나서는 사람이 없어 사비를 털어 책을 만들었다.<사진=김지영 기자>
"10여 년 전 즈음 갑자기 몸 상태가 안 좋아졌어요. 20년간 연구했던 것들을 그냥 놓고 갈 수 없어 연구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포털사이트에 야생초에 대한 자료가 많은데 잘못된 정보가 많아요. 제대로 된 콘텐츠를 제작해 제공하고 싶은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그는 직접 촬영한 30만장의 사진과 연구내용들을 정리해 2008년 3권의 '한국생약자원 생태도감'을 출판했다. 3권의 총 무게는 15.5kg. 전문가가 아니면 생소한 책이기에 출판에 나서는 사람이 없어 그는 사비를 털어 책을 만들었다.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은 추리고 추렸지만 2만 3천장을 스캔하는데만 7천만 원을 투자했고, 책을 출판하기 위해 집을 담보로 해야했다.

한국생약자원 생태도감 이전에도 교과서 등에 연구내용을 실었지만 이처럼 큰 프로젝트를 추진한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연구가 한창이던 그는 49세 큰 병을 앓았다.

"2004년 강의를 하는데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병원에 가니 과로로 인한 급성당뇨라 하더라. 집안내력으로 간암때문에 돌아가신 분이 많아 나도 간암이라고 생각했다. 20년간 연구했던 것들을 그냥 놓고 가는 것이 너무 억울했다. 간암판정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연구내용들을 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책을 출판했다."

24년간 3300일 야외조사와 연구, 16년의 연구내용을 담은 강 박사는 생태도감을 국내 교도소 47곳에 기증하기도 했다. 출소 후 농사를 지어볼까 고민하는 수감자들이 많은지 가끔 연락이 오기도 한다.

그는 오프라인(책)을 넘어 온라인에도 야생초 관련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툴을 만들고 싶다. 그에 따르면 온라인 포털에 야생풀에 대한 콘텐츠가 노출되어있지만 잘못된 정보도 많다.

그는 '냉이'를 검색하면 종자부터 풀, 꽃까지 성장과정을 담은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풀뿐 아니라 나무전문가와 함께 더 풍성한 콘텐츠를 제작할 예정이다.

◆ 크고작은 사고 많았지만 “큰 사고 없이 연구매진, 성공한 삶”

30년동안 잡초를 연구한 강병화 고려대 교수. 그는 은퇴 후에도 변함없이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잡초연구에 매진하고 있다.<사진=김지영 기자>
30년동안 잡초를 연구한 강병화 고려대 교수. 그는 은퇴 후에도 변함없이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잡초연구에 매진하고 있다.<사진=김지영 기자>
"돌산에서 구르고 벌에 쏘이고, 뱀에 물리고, 크고 작은 사고로 죽을 뻔한 적도 있었지요. 하지만 큰 사고 없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으니 성공한 삶이 아니겠어요."

야생풀들이 푸릇하게 자라는 때는 나비, 벌, 뱀들이 한창 활동하는 시기와 맞물린다. 그러다보니 벌레나 뱀 등에 물리거나 쏘이는 일이 태반이었다.

"큰 비가 온 다음날 송계계곡에 야생초를 연구하러 왔다 돌 위에 몸을 말리러 나온 독사의 꼬리를 밟았다. 독사가 돌아서 다리를 물었으나 양말 위라 큰 상처나 독 감염이 없었다. 제주도에서는 섭지코지 바닷가 해변식물 종자를 받다가 돌 위에 넘어져 꼬리뼈를 다치고, 팔음산 조사에서는 가뭄으로 마른 길을 밟아 넘어져 굴렀다. 진달래 그루터기에 걸려 살았는데 안 그랬다면 경사 80도 가량의 50m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 수도 있었을거다. "

벌에 쏘이는 것은 다반사요 나뭇가지에 찔려 아직까지 남아있는 흉터까지. 기억을 더듬으면 아찔한 기억이 태반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 온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칠십인생에 큰 사고 없이 산 게 성공한 삶이라고 하더라. 인명피해 없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으니 나는 성공한 삶을 산 것 같다"라며 허심탄회하게 웃었다.

◆ 나의 고마운 존재 ‘아내’

강 교수의 종자채집의 숨은 주역은 그의 아내다. 그는 4000여일의 야외연구 중 3500일을 그의 아내와 함께 조사를 다녔다. 덕분의 그의 아내도 종자채취 전문가가 다 됐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어도 풀밭만 돌아다녔을 뿐 두 사람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는 가본 적이 거의 없다. 아내의 이해가 있었기에 지금의 강 교수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앞으로가 더 바쁜 날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죽기 전까지 2000종 이상의 종자를 확보하고 싶다”는 그는 그동안 모아온 종자에서 성숙기까지 35만장의 생태사진을 정리해 웹콘텐츠로 올리는 일을 계속 할 예정이다.

그는 세상에 잡초는 없다고 말한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나면 또한 잡초로 취급받듯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 잡초에도 저마다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잡초는 스스로 자란다. 환경이 변하면 그 종류가 달라지며 제 나름으로 사는 법을 배운다. 그 점이 놀라워 자세히 알아보니 잡초라도 저마다 존재하는 의미와 가치가 있었다. 사람의 기준에서 그 원인을 모를 뿐이다."

강병화 교수가 채집한 종자 일부.<사진=김지영 기자>
강병화 교수가 채집한 종자 일부.<사진=김지영 기자>

기자가 찾은 날 '야생자원식물종자은행'은 정리가 한창이었다. 고려대가 보유한 종자가 워낙 다양하다보니 타 기관과 공동으로 보유하며 관리를 하기로 한 것이다.<사진=김지영 기자>
기자가 찾은 날 '야생자원식물종자은행'은 정리가 한창이었다. 고려대가 보유한 종자가 워낙 다양하다보니 타 기관과 공동으로 보유하며 관리를 하기로 한 것이다.<사진=김지영 기자>

강 교수는 종자 채집날짜와 종류 등을 정리해놓았다.<사진=김지영 기자>
강 교수는 종자 채집날짜와 종류 등을 정리해놓았다.<사진=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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