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사이언스코리아 - 해외기획취재]연구풍토③"연구 자율성 확보는 세계 연구자들 끌어들이는 마력"정부 간섭 없고 자율성 극대화…좋아하는 연구 알아서 하는 선진문화

"우리는 연구천국에서 매일 연구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를 얼마든지 활동적으로 할 수 있는 자율적인 연구문화가 세계 우수 연구인재들을 NIH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송병준 NIH 산하 미국 국립알코올중독연구소 책임연구원)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연구자들은 모든게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고 수평적 구조로 연구자들이 연구 과정부터 흥미롭게 참여하게 됩니다."(양태열 슈투트가르트 막스 플랑크 박사 후 과정 연구원)

"과학자들이 사회가 원하는 연구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정부의 정책을 일정 부분 반영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있지만, 연구자들은 스스로 동기 부여를 통해 연구와 기술 이전, 벤처 창업 등에 노력하고 있고 동시에 연구 기관에서도 연구원을 열심히 지원하고 연구 목표를 장려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연구 책임자의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지, 압박을 주거나 강제적인 목표치를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나츠코 사카이 일본산업기술종합연구소 박사)

NIH 30년 연구인생 송병준 박사 "연구 자율성 확보는 국가 과학기술 발전의 첩경" <사진=김요셉 기자>
NIH 30년 연구인생 송병준 박사 "연구 자율성 확보는 국가 과학기술 발전의 첩경" <사진=김요셉 기자>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 강국들의 과학기술자들은 자신이 속한 연구소가 '연구의 천국'이라고 증언한다. 가장 큰 이유는 연구의 자율성. 얼마든지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고, 그 연구과제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에 만족해 하고 있다.

 

최의묵 NIH 산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연구원은 NIH의 연구자율성은 한마디로 완전히 보장되어 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각 연구 실험실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있고 이 목표를 우선시 하기는 하지만, 연구자가 원하면 어떤 주제이든 상관 없이 연구책임자(lab chief, boss)와 자유롭게 상의한 후 파일롯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파일롯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 따라 새로운 메인 프로젝트로 추진하기도 한다.

박은정 NIAID 외부공모사업(extramural) 담당관에 따르면 NIH의 많은 연구자들은 R01(Research Project Grant Program)라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정부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추진한다.

박은정 담당관은 "기본적으로 NIH에서는 RO1 프로그램으로 연구자들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다"며 "사스(SARS)와 에볼라와 같은 사태로 인해 국가적으로 긴급히 필요한 연구는 최근 계약(contract)을 통해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 연구원 뿐만 아니라 박사후 연수과정생들도 자신의 연구과제를 수행하며 연구에 집중한다. 미국 NCI(국립암연구소) 내 만성 폐질환을 연구하는 실험실에서 만난 한 중국인 박사후 연수과정생은 "연구와 실험 이외에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일 연구소에 출근할 때나 퇴근 이후에도 '오늘 실험을 어떻게 할까'에 대한 생각뿐이란다.

연구자율성이 보장된 독일 역시 연구자의 천국이다.

막스 플랑크 협회 산하 연구소는 기초연구를 담당하며 연구비의 대부분은 정부에서 지원받는다. 하지만 연구주제부터 연구비 운영 어디에도 정부의 간섭은 없다. 연구실적에 대한 압박도 없어 각국의 기초분야 인재들이 연구하고 학위를 받기위해 막스 플랑크 산하 연구소로 몰려든다.

양태열 박사. 슈투트가르트 막스플랑크에서 연구원.<사진=길애경 기자>
양태열 박사. 슈투트가르트 막스플랑크에서 연구원.<사진=길애경 기자>
슈투트가르트 막스 플랑크 연구소 박사후 연구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양태열 박사에 따르면 연구자들은 자신이 연구하고 싶거나 아이디어가 있으면 연구소 내 디렉터에게 제안해 연구 주제로 정할 수 있고 관련 연구팀에 참여할 수 있다. 디렉터와는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양 박사는 "포닥도 연구업적 압박이 없을 정도로 누구의 간섭이 없다"면서 "그러면서 연구비는 보장되니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말했다.

기술의 실용화·사회로의 중개를 미션으로 2001 년에 설립 된 독립기구 일본 산업 기술 종합 연구소. 연구뿐만 아니라 연구소가 보유한 특허를 기반으로 연구자에 의한 벤처 기업의 창업을 지원하고있다. 하지만 이는 철저한 연구책임자의 책임 아래 자율성과 즐거움을 기초로 한 것이어서 어느 누구도 기술이전이나 벤처 창업 등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연구자 스스로의 동기부여와 자율성이 연구 진행의 가장 큰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일본 연구문화 자체가 연구의 독창성(originality)과 연속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연구자 자신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연구를 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장려하지만 연구자 개인 호기심에 의한 연구가 사회적 요구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연구자들 자신도 알고 있다. 연구 디렉터의 자율성과 국가의 요청을 중간에서 균형 맞추는 것이 연구소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 "정부는 연구현장을 믿고 있다"…현장에서 알아서

선진 강국들의 연구현장에서는 정부의 간섭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최대 과학박물관 미국 스미소니언은 매년 1조원 가량의 정부 예산을 받지만, 정부에서는 모든 예산의 집행권을 스미소니언에게 맡긴다.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절대로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주지도 않고, 전문 영역에서 연구자들이 자율적으로 연구하는 오픈마인드 방식으로 운영된다.

정부에서 연구비의 1/3을 받는 독일 프라운호퍼 협회 산하 연구소도 정부의 간섭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데니스 카스케(Denise.Kaske) 프라운호퍼 협회 아시아 매니저는 "프라운호퍼는 정부에서 연구비의 일부를 받지만 약간의 콘트롤이 있을뿐 연구주제부터 운영까지 정부의 간섭은 없다"면서 "약간의 정부 콘트롤도 프라운호퍼 협회의 헤드가 다 조절하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정부의 간섭을 전혀 느끼는 않는 분위기에서 연구에 몰입한다"고 설명했다.

김재일 재독 과학자.<사진=길애경 기자>
김재일 재독 과학자.<사진=길애경 기자>
김재일 재독과학자에 의하면 헬름홀츠 연구협회는 1970년 사회, 과학, 산업 등 당면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출범했다.

 

김 박사는 "헬름홀츠 산하 연구소의 연구비는 연방정부와 주정부로부터 70%정도를 받는데 원자력, 우주, 가속기 등 거대과학 분야에서 당면 문제 해결을 위한 방향만 같이한다"면서 "연구소장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정부 간섭없이 자기분야 연구에 몰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음 연구소장 제안을 받을 당시 임기가 5년이었다. 그런데 거대 과학은 성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해 정부에 종신제를 요청했고 그게 받아들여졌다"며 정부의 연구자에 대한 신뢰도 중요함을 강조했다.

일본의 연구비 지원제도는 연구소와 대학에 그랜트 방식으로 연구비를 지급하는 기반적 연구자금지원 제도와 연구자들의 경쟁을 통한 경쟁적 연구자금 제도 등 두 가지로 나뉜다. 기초연구와 도전적 연구에 중점을 두는 JSPS(Japan Society for the Promotion of Science)의 연구자금(과연비)은 연구자의 '아카데믹 프리덤(Academic Freedom)과 오리지널러티(Originality)'에 근거한다.

과연비는 '연구자가 비교적 자유롭게 행하는 것', '미리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분야 및 목표를 정해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것', '구체적인 제품개발에 이어지게 하기 위한 것' 등 다양한 형태로 지원되고 있으며 모든 연구 활동의 시작은 연구자의 자유로운 발상을 기반으로 하는 바텀업 학술연구다.

JSPS 관계자에 따르면 기초부터 응용까지의 모든 독창적·선구적인 '학문연구'를 폭넓게 지원함으로써 과학 발전의 씨를 뿌리고 싹을 키우는 것이 JSPS의 역할이며 그것이 경쟁적 연구 자금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케이코 야마모토 KIST 연구원.<사진=이은미 기자>
케이코 야마모토 KIST 연구원.<사진=이은미 기자>
케이코 야마모토 KIST 연구원은 "정부가 전체 방향은 잡으나 실행할 때는 연구자의 자율성을 극대화한다"고 설명했다. 오수카 일본이화학연구소(RIKEN) 연구협력과 과장은 "일본의 기초과학연구를 관통하는 '세렌디피티'는 자율성에 바탕을 둔다"며 "이를 위해 일본이화학연구소는 기본적으로 연구자의 자율성을 철저하게 보장한다"고 강조했다.

 

JST(Japan Science and Technology Agency)의 A-STEP 프로그램은 도전적인 과제를 안정적인 연구 환경 하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대학의 연구성과 실용화에 나선 기업을 지원하는 산학연계 프로그램으로서 7년간 약 200억 원을 투입한다. 실패하더라도 JST로부터 지원받은 전체 금액 중 10%만 환수한다. 성공률이 낮은 위험한 과제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해 오히려 성공 확률을 높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하겠다는 의지다. 이 A-STEP 프로그램은 2014년 청색 LED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준 태니 KAIST 교수는 "연구의 자율성은 신뢰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자유롭게 연구하면 결과가 못 나올까봐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띄지는 않지만, 독창적·개성적인 연구, 자료·데이타 수집·정리 등의 시간이나 노력이 깃든 착실한 활동 등이 빛을 발하고, 그러한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인재가 높게 평가되는 토대를 조성한 것이 일본의 강점"이라고 밝혔다.

◆ 연구하는 생활도 연구자 특성에 맞게

흔희 연구의 자율성을 논할 때 연구과제 선정의 자율성을 이야기 하는데, NIH에서는 연구생활 과정 자체에서도 자율성이 극대화되어 있다.

콜린스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연병연구소(NIAID) 연구원은 출근 시간이 12시 점심 무렵이다. 연구책임자에 자신의 연구생활 패턴을 미리 이야기 하면 개인 성향을 존중해 언제든 출퇴근 시간을 조율할 수 있다. 늦게 나와도 일정 시간을 채워야 할 필요가 없다.

콜린스 연구원은 "NIH에서는 개별 연구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중시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깔려 있다"며 "연구활동을 하는데 상사눈치를 보거나 어떠한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손광효 슈투트가르트 막스플랑크 박사과정생에 의하면 막스 플랑크에서는 자신의 상황에 따라 출퇴근 시간이 조정이 가능하다.

손 박사과정생은 "우리연구소 테크니션 중 한명은 육아로 오전 6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데 연구소에서는 연구소 구성원의 생활을 존중하고 구성원들은 서로의 생활을 인정하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된다"며 "서로 조율하며 협력하기 때문에 업무 차질을 빚는 일은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각기 다른 연구자 개인 생활패턴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의 연구환경 조건을 합리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연구생활의 자율성이 극대화된 문화인 셈이다.

NIH에 30년간 연구활동을 펼친 송병준 미국 국립알코올중독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한국 과학자들의 정년이 61세로 짧고, 전반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자율성과 안정성 수준이 낮다"며 "연구의 자율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길이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첩경이자,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는 미래의 길"이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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