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인 배출 25년간 평균 2~3년 1명씩 우주로 보내

올해는 일본이 우주인을 배출한지 25년 되는 해다. 뜻깊은 해인 올해 일본은 유이 키미야(油井亀美也) 연구원을 23일 우주로 보냈다. 일본은 평균 2~3년에 한 번씩 연구원들을 우주로 보내고 있다. 
 
우주에 방문한 최초의 일본 우주인은 누굴까? 흥미롭게도 언론계 관계자다. TBS 기자인 아키야마 토요히로는 'TBS 우주 프로젝트'를 위해 러시아와 협약을 맺고 1990년 12월 2일 우주 왕복선 소유즈 TM-11에 탑승했다. 우주로 간 일본인 최초이자 언론인 중 처음으로 우주공간을 보도했다.

일본 우주항공 연구개발 기구(JAXA)가 처음 임명한 우주인은 현 미래과학관 관장인 모리 마모루 연구원이다. 모리 관장은 JAXA의 다양한 지원을 통해 우주로 보내진 첫 연구원이다. 그는 1992년 9월부터 미소중력실험을 했으며, 일본 국적 보유자로 처음 우주왕복선 계획에 참여했다. 여성 우주인은 무아키 치아키 연구원과 야마자키 나오코 연구원 2명이다.

일본은 어떻게 우주인을 키웠을까. JAXA에 따르면 우주인 후보자로 선정된 연구자들은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우주에 가기 위한 기초훈련을 실시한다. 기간은 약 2년으로 탈락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본의 경우 한 번도 없었다.

국내에서의 기초훈련도 지원한다. ISS의 일본 연구동 '희망'에서 연구가 가능하도록 쓰쿠바 우주센터에서 기초훈련이 진행된다.

그러나 훈련이 끝난다고 바로 우주로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로켓이 언제 우주로 떠날지 모르기 때문. 그 기간 동안 연구원이 꾸준하게 극한환경에 대비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JAXA가 훈련 등을 지원한다.

23일 우주로 떠난 유이 연구원의 경우 2009년 JAXA에 입사해 기초훈련을 무사 종료하고 2011년 우주인으로 확정됐지만 바로 우주로 떠날 수 없었다. 그는 약 6년간 계속 훈련을 하며 우주로 갈 준비를 했다.

JAXA 관계자는 "어떤 업무를 하느냐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연구원이 우주에서 무리 없는 연구생활이 가능하도록 약 2년의 훈련과정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주인이 지구에 도착하면 JAXA는 그들이 다시 우주로 떠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일본에서는 한 연구자가 최대 4번 우주로 떠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일본이 꾸준하게 우주인을 양성하고 배출할 수 있는 이유는  ISS의 우주실험동 '키보우(희망)'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우주정거장 건설을 주장하고 입장과 방침을 지속적으로 표명했다. 우주정거장 건설 비용뿐 아니라 구성 모듈 건설에 의욕을 나타내 제조와 보유, 운용을 담당, 2009년 키보우 설치를 끝냈다.

우주개발 전문가인 김경민 한양대 교수는 "일본은 오래전부터 우주개발을 진행했으며 이에 걸맞는 예산을 투입해 '키보우'를 설치하는 등 우주인을 양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며 "우리도 우주인을 배출하고자 한다면 그에 맞는 인프라 구축을 먼저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근무하는 일본 대사관 미야모토 과학관은 "우주 개발하기 전에 어떤 일이 도움이 될지 국가 전략방법을 잘 세운 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인류역사에 도움이 되는 우주개발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우주선에 장착된 위성 전화 사용 방법을 확인하는 소유즈 TMA-17M 우주선 (43S)의 비행사들.<사진=JAXA 제공>
우주선에 장착된 위성 전화 사용 방법을 확인하는 소유즈 TMA-17M 우주선 (43S)의 비행사들.<사진=JAXA 제공>
◆ 10명의 우주인 어떤 업무 수행했나?

일본인 최초 우주인은 1990년 12월 2일 우주 왕복선 소유즈 TM-11에 탑승한 아키야마 토요히로 씨다. 그는 TBS기자로 'TBS 우주 프로젝트'를 위해 우주에 갔다. 일본인 최초이자 언론인 중 처음으로 우주공간을 보도했다. 아키야마 씨가 우주에 가기 전 모리 마모루 연구원이 일본인 최초로 우주비행을 할 계획이었으나 챌린저호 폭발 사고로 비행이 지연돼 아키야마 씨가 첫 우주인이 됐다.

두 번째 우주인은 모리 마모루 연구원이다. 현재 도쿄에 위치한 일본미래과학관장으로 활동 중이다. 1992년 9월 12일 엔데버호를 타고 같은 달 20일 귀환했다. 우주에서 미소중력실험을 했으며, 일본 국적 보유자로 처음 우주왕복선 계획에 참여한 우주비행사다.
 
세 번째 우주인은 무카이 치아키 연구원이다. 1994년 7월 8일 출발해 23일에 귀환하는 등 당시 최장 체류를 기록했다. 콜롬비아호를 타고 우주로 떠났으며, 미소중력실험을 진행했다. 2015년 4월부터 도쿄 이과대학 특임 교수겸 부학장을 맡고있다.

네 번째 우주인은 엔데버호를 타고 1996년 1월 11일 출발해 20일 귀환한 와카다 코이치 연구원이다. 일본인 최초의 미션전문가로 우주공간에 떠있는 SFU의 회수를 위해 우주 왕복선에 탑재 된 로봇 팔을 섬세하게 조작해 SFU 회수에 성공했다. 이후 그는 몇 차례 더 우주를 비행하며 희망 선외 실험 플랫폼 발사 및 ISS 우주 연구동 '키보우(희망)'를 완성했다.

1997년 11월 19일 콜롬비아호를 타고 같은 해 12월 5일 돌아온 도이 다카오 연구원이 다섯 번째 우주인이다. 그는 일본인 최초로 선외활동을 했다.

이후 일본의 우주활동은 경험이 있는 3명의 연구원이 번갈아가며 활동해 새로운 우주인의 활동이 뜸했다. 그러다 2005년 7월 26일 노구치 쇼이치가 디스커버리홀 타고 우주로 떠나 8월 9일 귀환했다. 그는 셔틀시험비행 선회활동 등을 수행했으며, 2009년 두 번째 비행에서 ISS에서 장기체류하며 일본인 최초로 우주선 조종업무를 담당했다.

2008년 5월 31일부터 호시데 아키히코가 일곱 번째 우주인으로 비행했다. ISS 조립미션을 수행한 그는 희망 선내 실험실에서 근무했다.

노구치 연구원이 우주에 체류하는 동안에도 일본은 일본인 연구자를 우주로 또 보냈다. 여덟 번째 우주인인 야마자키 나오코 연구원이다. 그는 ISS 조립과 보급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2010년 4월 5일 디스커버리호에 몸을 싣고 같은 달 20일 지구로 돌아왔다.
 
아홉 번째 우주로 떠난 일본인은 후루카와 사토시다. 그는 2011년 6월7일 소유즈호를 타고 2011년 11월 22일 귀환했다.

한편, 10번째 우주인으로 23일 우주로 떠난 유이 연구원은 기자회견에서 "'중년의 별'이 되고 싶다"며 "나이를 먹어도 하면 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지금은 아직 4 등성 정도로 임무를 완수해 1 등성으로 빛나고 싶다"고 웃으며 말한 바 있다.

 소유즈 TMA-17M 우주선 (43S)의 확인을 마친 우주 비행사들.<사진=JAXA 제공>
소유즈 TMA-17M 우주선 (43S)의 확인을 마친 우주 비행사들.<사진=JAX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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