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원 화학연 박사팀, 이산화탄소 활용 메탄올 제조 혁신적 신공정 개발
화학연-현대오일뱅크, 10톤/일 규모 메탄올 플랜트 완공·시운전 성공
"우리기업 해외 메탄올 시장 진입 보고 싶다"

2015년 4월 14일 오후 4시경. 전기원 한국화학연구원 박사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감격에 겨워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 그를 그렇게 만든 건 단 한 줄의 휴대폰 메시지였다.

'메탄올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막 저장탱크로 넘겼습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8년간의 연구과정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중소기업(에코프로, 메트시스), 대기업(현대오일뱅크)과 함께 메탄올 실증플랜트 건설 과제를 신청하고 심사 받을 때 중소기업이 플랜트 기본설계가 가능하겠냐는 우려 섞인 소리를 들었던 일, 실증 플랜트 시운전을 앞두고 현장에 파견한 연구팀들이 보낸 휴대폰 메시지를 보며 밤새 논의하고 격려했던 시간들이 생각나며 전 박사는 차 안에서 울었다 웃었다를 반복했다. 기술개발의 희열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생각했다.

마음을 가다듬은 전 박사는 메탄올 실증플랜트가 설치된 현대오일뱅크(사장 문종박) 서산 공장으로 차를 몰았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성공적으로 시운전이 마무리됐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도 마쳤다.

두 달이 흐른 6월 16일, 메탄올 실증플랜트 개발 주역들과 함께 한 준공식이 열렸다. 이규호 화학연 원장을 비롯해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부사장, 조성종 에코프로 전무, 조휘용 제이오 부사장 등이 참석했고 화학연 연구팀들도 자리를 빛냈다.

◆ 전기원 박사 "산학연 협업으로 이제 9부 능선 넘었다"

메탄올은 석유 고갈에 대비할 수 있는 친환경 연료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개발에 성공한 플랜트는 하루 10톤의 메탄올이 생산 가능한 상용화 직전 단계로, 상용화된다면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연간 100만 톤 이상의 메탄올 소비량을 국산화할 수 있다.

이번 개발을 주도한 곳은 전기원 화학연 그린화학공정연구본부 박사팀이다. 전 박사팀은 이산화탄소(CO₂)와 메탄, 수증기를 합성가스 반응장치에 넣고 촉매를 투입해 얻은 합성가스로부터 청정연료 메탄올을 생산하는 신공정 개발에 성공했다.

'끈끈한 동지애'는 이번 메탄올 생산 공정 개발 성공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동료 후배들 덕분에 연구 기간 동안 그의 휴대폰 알람은 새벽2-3시에도 끊임없이 울려댔다. 팀원 간 휴대폰 대화창으로 메탄올 생성 진행 사항을 실시간으로 중계됐기 때문이다.

특히, 수 미터 높이의 반응기에서 촉매를 자유 낙하시켜도 깨지지 않는 방법이 필요한 '촉매 충진' 과정에서 그들의 팀워크는 빛을 발했다. 전 박사는 "수많은 논의와 연구 끝에 촉매를 온전하게 충진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고 회고했다.

메탄올 실증플랜트 연구 과정은 전 박사팀 휴대폰 메시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그간 개발 과정이 생생하게 담긴 사진들을 보여주며 촉매 충진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전 박사.<사진=이은미 기자>
메탄올 실증플랜트 연구 과정은 전 박사팀 휴대폰 메시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그간 개발 과정이 생생하게 담긴 사진들을 보여주며 촉매 충진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전 박사.<사진=이은미 기자>

중소기업과 협업해 성공을 거둔 것도 큰 성과였다. 사실 연구 초반 플랜트 기본 설계를 중소기업인 에코프로가 담당하기로 한 것에 대해 주변 시선은 매우 회의적이었다. 너무 '무모한' 도전이 아니냐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죠. 당시 국내 중소기업 중에는 자체 개발한 원천기술을 가지고 플랜트 기본 설계에서 실증 플랜트까지 연결해 시공해본 기업이 전혀 없었거든요."

시공업체 선정 당시, 연구개발팀은 큰 고민에 휩싸였다. 확보한 플랜트 시공비용이 부족해 적절한 시공업체 찾기가 어려웠던 것. 다행히도 플랜트 엔지니어링 부문에서 우수한 기술과 시공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중소기업 제이오가 확보한 예산에 알맞은 가격에 응찰했다.

플랜트 건설이 시작된 후 현대오일뱅크가 가진 축적된 설계 노하우와 플랜트 운전경험은 기본 설계 때부터 큰 도움이 됐다. 촉매 성형, 반응기 설계, 개질기 가열로 제작, 배관 재질 선정 등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혔지만 한마음으로 하나하나 뚫고 나갔다. 문제해결을 위한 연구팀 회의도 수십 차례에 이르렀고 박명준 아주대 교수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의 자문도 구했다.

"실험실에서 연구할 당시에는 예상할 수 없었던 많은 난제들이 스케일-업 과정에서 나타났고 이를 산학연이 공동으로 해결했다"는 전 박사는 "어려운 연구 과정은 모두 지나가고, 이제 9부 능선을 넘었다. 지금까지의 실증플랜트까지의 수행 과정이 어렵고 힘든 것이었지, 이제까지 확보된 기술을 바탕으로 상용화하는 과정은 비교적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 "상용 플랜트 기술 통해 선진 기업에 맞설 수 있는 경쟁력 갖출 것"

"국내 기술로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활용해 메탄올 대량 생산 가능성 '활짝'." 전 박사가 이번 실증플랜트 준공에 핵심 역할을 한 촉매 개발 과정을 설명하던 중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다.<사진=조은정 기자>
"국내 기술로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활용해 메탄올 대량 생산 가능성 '활짝'." 전 박사가 이번 실증플랜트 준공에 핵심 역할을 한 촉매 개발 과정을 설명하던 중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다.<사진=조은정 기자>

이번 쾌거의 시작은 2006년 현대중공업과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한 이산화탄소 활용방안'에 대한 3개월간의 조사연구 프로젝트였다. 2007년 8월부터는 이산화탄소가 함유된 메탄올 플랜트 원천기술 공동 개발에 들어갔다. 당시 이산화탄소 배출에 의한 온실가스 문제는 시급한 국내 당면과제이기도 해, 화학연 내부에서도 자체 펀딩을 지원하는 등 전폭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2010년 하루 50kg의 메탄올을 생성할 수 있는 파일럿 플랜트 개발에 성공했다.

추가 연구개발자금의 확보가 어려워 한때 연구가 지지부진했던 시기를 지나 개발이 다시 활기를 찾은 것은 2012년. 현대오일뱅크가 적극적인 협력 의지를 내비쳤고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기술개발 산업' 과제를 따냈다. 연간 20억 원의 정부 보조금을 받는, 단일과제로는 연구원 내 최대 규모였다.

기존 공법에서 메탄올을 얻기 위해서는 공기 중에서 산소를 추출해 메탄과 반응시키는 공정을 거쳐야 했다. 또 다른 합성가스 공정에도 메탄의 3배 이상의 수증기량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번 신기술 개발을 통해 수증기량을 메탄의 1.6배로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됐다. 또 공정에 투입된 이산화탄소의 95% 이상을 반응에 활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여 기존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을 30% 절감해 메탄올을 저비용, 저에너지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전 박사는 "이 기술은 메탄과 이산화탄소 등 탄소수가 1개인 가스를 활용해 고부가가치 화학연료로 전환하는 C1 리파이너리 기술 중 하나로서 석유자원 고갈에 대비하는 미래형 신기술"이라며 "상용 플랜트 기술이 완성되면 해외 선진 기업보다 충분히 경쟁력 있는 기술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전 박사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는다. 전 박사에 따르면 이 기술은 100만 톤 규모 이하의 플랜트에서도 경제성을 가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제 2단계 사업을 통해 '2년간 100만 톤/년 규모 메탄올 플랜트 설계와 플랜트 장시간 운전'을 목표로 삼고 있다. 메가 메탄올이라 불리는 연산 100만 톤 규모가 현재 해외 상용 플랜트의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국산 토종 신기술로 우리 기업이 해외 메탄올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연구자로서 제 꿈입니다. 남은 평생을 다 바쳐서라도 이 꿈이 실현되는 날을 보기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재호 현대오일뱅크 중앙기술연구원장이 그간 화학연과의 실증플랜트 개발 협력과정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사진=이은미 기자>
김재호 현대오일뱅크 중앙기술연구원장이 그간 화학연과의 실증플랜트 개발 협력과정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사진=이은미 기자>

실증플랜트 준공의 또 다른 주역, 김재호 현대오일뱅크 중앙기술연구원장 인터뷰

Q.기업과 연구원 간 좋은 협업 사례다. 어떤 이유로 뛰어들게 됐나?
A.기업 입장에서 큰 도전이었다. 그냥 안정성이 확보된 기술을 돈 주고 사오면 되는데 위험 부담이 큰 신기술에 대한 투자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환경 친화적 공정개발이라는 큰 틀에서 함께 했다. 또한 가스전 개발 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메탄올로 만드는 과정을 쉽게 핸들링 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다.

Q.현대오일뱅크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A.전체 과정에서 조금씩 기여했다. 촉매에 대해 검증하고 공장 부지를 제공했다. 화학연, 제이오와 함께 공장 짓는 부분에 대해서 자문도 담당했다. 실제 운전 쪽도 맡아 유틸리티라고 하는 가동에 필요한 스팀, 전기, 물 등을 공급했다.

Q.실증플랜트개발 중 어려웠던 점은?
A.해당 플랜트가 원유 저장탱크 바로 뒤에 위치해 있었다. 때문에 혹시라도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큰 손실을 볼 수도 있었다. 잠을 못 잘 정도였다.

Q.이번 성공의 의의는 무엇인가?
A.실증플랜트를 연구원과 함께 한 것이 저희도 처음이어서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로 생각하고 있다. 해당 기술개발을 통해 여러 가지 경험도 쌓고 노하우도 축적했다. 가스전 확보부터 공정 개발까지의 가치 사슬을 구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Q.앞으로 기대하는 바는?
A.2년 후 100만 톤 상용플랜트 설계가 나오면 이를 활용해 사업기회를 찾으려고 한다. 기존의 정유사업을 바탕으로 화학공정의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데 관심이 많기 때문에 좋은 기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으리라 본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