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기관장 임기시스템 과학계 활성화 돌파구 될까
현장서 제시하는 인선시스템 개선 '3대 아젠다'…투명성, 전문성, 준비성 갖춰야

정부R&D혁신안 중에 정부출연연구기관 기관장 임기를 3년에서 5년으로 늘리겠다고 공표해 연구현장의 관심이 크다.

정책 결정자들의 이야기를 추적해 보면 기관장 임기를 5년으로 늘린 이유는 연구소 경영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가 강하다. 기존 3년의 임기로는 소신있는 정책을 펼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연구현장에서도 그동안 취임 1년째는 관계기관 인사와 업무 파악하는데 주로 시간을 보내고, 2년차에 어느 정도 일하다가, 3년째는 진행해온 일을 마무리하며 다음 자리를 위해 움직이기 때문에 실제 일관성 있는 연구소 경영을 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나마 기관장을 잘 만난 기관은 다행이지만, 잘못 만나기라도 하면 내홍을 겪기 일쑤다. 일부 연구기관들 중에서 벌써부터 '기관의 3년 후 미래가 안보인다'는 이야기가 나올정도로 내부 인사들의 한탄이 들리는 기관도 있다.

국가 사회적으로 과학기술계 혁신을 요구받는 상황에서 과학계 리더인 출연연 기관장의 역할이 어느때보다 중요한 상황. 일단 정부는 현장 의견을 받아들여 기관장 임기 문제를 박근혜 정권 내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앞으로 정부는 관련 법을 바꾸고, 기관평가·임용절차 등 여러가지 고려사항을 검토할 계획이다.

그런 가운데 연구현장에서는 기관장 5년 임기 연장과 맞물려 앞으로 기관장 인선 시스템과 관련해 좀 더 개선되어야 할 점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 정치적 인사 배제…선임과정 투명성, 합리적 인사기준 필요

일단 원장을 잘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현재 출연연 기관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모집공고 시 지원자격에 크게 제한이 없다. 기관 특성과 상관없어 보인다. ▲해당 연구기관의 경영혁신을 적극 추진할 수 있는 자 ▲해당 연구분야에 관한 식견이 풍부하고 덕망이 있는 자 ▲조직경영에 관한 경륜과 덕망을 겸비한 자 ▲국제감각과 미래지향적 비전을 가진 자 등으로 추상적으로 표현된 자격 요건을 내세우고 있다. 해당 출연연과 전혀 관계가 없는 낙하산 인사가 기관장 공모에 충분히 서류를 낼 수 있는 상황이다. 자격요건 자체가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출연연 기관장 선임 절차도 뭔가 느슨하다. 원장 모집공고 후 서류접수를 한 뒤 연구회 원장후보추천위원회가 원장 후보자 3배수를 압축한다. 3배수에 오른 후보자들은 3분간 발표를 통해 최종 심사를 받고 이중 한명만 추천돼 해당 부처의 장관이 임명하는 방식이다. 한 기관의 수장을 단 몇분만의 발표와 서류 심사 등으로 결정하는 현재 방식은 제대로 된 인사를 선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C 출연연의 정책 담당자는 "현재 방식으로 기관장을 선임하고 5년의 임기를 보장한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게 될 것"이라며 "엄격하고 면밀한 심사과정을 통해 선임되어야 하며, 구체적인 원장 자격요건을 제시하는 선발 방식이 우선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 과학정책 전문가는 "현장을 모르는 낙하산 인사가 왔을 경우 기관의 정체성마저 모호해질 수 있다. 위에서 찍어 원장으로 선임되면 기관장 5년 임기 개선은 무용지물"이라며 "그렇게 5년이 지나면 우리나라 과학은 10년 이상 퇴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과학계 특성상 잘했으면 연임 가능하도록…"중간 평가 등 통해 브레이크 장치 마련해야"

과학기술계는 특성상 연구의 지속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특히 원자력, 항공우주와 같은 거대과학은 단기간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연구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기관장 5년 임기는 이전 보다 연구의 정책 지속성이 확보될 수 있는 여지가 더 커지게 된다. 그러나 그 반대 최악의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이에 따라 연구현장에서는 중간 평가 등을 통한 연임 아니면 중도 하차 가능성을 분명히 열어놓아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기관평가의 내실화가 기관장 5년 임기 연장과 동시에 이뤄져, 평가를 잘 받고 기관경영을 우수하게 펼쳐나간 기관장은 계속 연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연구자들이 적지 않다. 반대로 잘못할 경우에는 중간 평가 등을 통해 브레이크 장치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출연연의 J박사는 "연구를 소신있게 밀고 나가려면 3년은 너무 짧긴했다"며 "앞으로 5년으로 임기를 늘렸을 때 기관장이 중간에 잘못을 저질르거나 상황이 좋지 못할 때 그만둘 수 있게 할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과학계 원로는 연임 장치를 강조했다. 그는 "지난 정권때 정권이 바뀔때 연구기관장들이 물갈이 되는 것을 보고 한탄스러웠다"며 "잘했으면 정권과 관계없이 연임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게 국가적 이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관 운영을 잘하는 기관장은 대부분 연임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 주고, 중간평가가 낮은 기관장은 단임으로 끝내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 준비된 CEO…"과학 리더들 후계 구도체계 마련돼야"

현재 출연연의 과학리더 육성에 대한 시스템적 접근은 거의 전무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 출연연 기관장은 특별한 경영수업이나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리더 자리에 앉게 된다. 심지어 전임 기관장의 인수인계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전임 기관장과 관계가 좋으면 일부 기관 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정도다.

연구현장 과학자들은 지금같이 주먹구구식으로 기관장이 되는 시대가 지나가고, 실력과 업적·경영능력이 있는 기관장 시대가 오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이 대기업 민간연구소나 해외 연구소의 듀얼 래더(Dual ladder) 시스템을 적극 도입해 출연연도 연구자가 두 갈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조직설계가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연구자가 연구자이든, 경영자의 길을 가든 미래 경력에 따라 미리 철저한 교육과 경험을 쌓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간연구소의 J 부장은 "듀얼 래더 시스템은 연구자가 기관의 전폭적인 예산과 인력을 지원받으면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동시에 경영쪽으로 진출하고 싶은 연구자는 역시 회사가 경영자의 길을 가도록 교육하고 지원한다"며 "정부 연구소들도 이러한 시스템을 적극 도입해 기관을 제대로 경영하기 위한 체계적인 리더 육성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前 출연연 기관장 K 박사는 "기관장에 취임하자마자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다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며 "내실있는 경영을 위해 시스템적으로 연구 리더 육성시스템이 필요하고, 전임 기관장과의 연계 등을 통해 경영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 과학계 인사는 "누가 더 훌륭한 연구기관장인가를 평가할 때 후계 세대까지 감안해야 한다"며 "한국 과학계 기관들도 각자 방식대로 후계 구도를 마련하고, 후계 육성을 위해 엄격한 경영 수업을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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