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열 전 LA알라딘 서적총판 대표, '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 페이지 운영
1년만에 3000여명 가입… "은퇴 후 가장 잘 하는 일 고민"
과학, 우리 생활에 밀접 "보통사람들도 알아야"

은퇴 후 3년간 사들인 책만 2000권.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편이라 1년에 100권정도 읽을 수 있을까. 그렇다 치면 앞으로 20년분 남았지만 좋은 책이 계속 나오니 안 살 수가 없다.

과학, 음악, 인문학 등 다양한 책들 중 좋은 책들은 잘 기억해뒀다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은퇴 후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한 끝에 결정한 일이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다"는 이 사람. 미국에 사는 이형열 전 LA알라딘 서적총판 대표 이야기다.

이형열 전 대표는 1년 전부터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이라는 페이스북 계정을 운영 중이다. 회원들은 매달 새로운 과학책을 읽고 인상깊은 구절을 올리거나 의견을 나눈다. 다양한 의견들이 댓글로 달리며 열정적인 토론이 이뤄진다.<사진=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 페이지 캡쳐>
이형열 전 대표는 1년 전부터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이라는 페이스북 계정을 운영 중이다. 회원들은 매달 새로운 과학책을 읽고 인상깊은 구절을 올리거나 의견을 나눈다. 다양한 의견들이 댓글로 달리며 열정적인 토론이 이뤄진다.<사진=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 페이지 캡쳐>
이형열 전 대표는 3년 전부터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 추천하는 책을 소개하고 해외 학술지에 실리는 다양한 성과들을 알리고 있다. 1년 전부터는 '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이라는 페이스북 계정을 운영 중이다.

회원들은 매달 새로운 과학책을 읽고 페이스북 페이지에 인상 깊은 구절을 올리거나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비공개 페이지임에도 회원수가 1년만에 3000여 명이 됐다.

"작년 2월 첫 포스팅을 했습니다. 과학책을 같이 읽을 사람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죠. 매달 1권의 책을 읽고 공유하자는 취지였어요. 서너명만 모여도 좋겠다 싶었는데 이런 반응일줄 몰랐습니다. 책을 읽는 것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느낀 부분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독서 효과가 상승되는 것 같습니다."

'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의 '보통'은 과학이란 특별한 사람들의 분야가 아닌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알 수 있다는 데에서 따왔다. 이 전 대표는 "우리나라는 '나는 문과니까 과학을 잘 모른다'라는 인식이 당연시되는 사회이니 '보통'이라는 말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보통'은 문과 이과 상관없이 과학에 관심을 가진 모두가 함께 하자는 의미다.

그의 바람처럼 이 모임은 주부, 고등학생에서부터 은퇴과학자, 의사, 교수 등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있다. 연 1회 이상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친목도모뿐 아니라 과학과 좋은 책 정보 등을 공유하기도 한다. 미국에 살지만 한국을 자주 오가는 그도 모임에 참석한다.

작년 4월 첫 모임에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원들은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을 둘러보고, 인간진화론을 다룬 책 '센스 앤 넌센스' 옮긴이 양병찬 씨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다.

지난 5월 9일에도 오프라인 만남을 가졌다. 천문대에 방문해 우주천체물리학을 배우고 망원경도 만져보는 등 꾸준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책 판매했던 과거  "나는 독서를 하고 있는가" 회의감…빠른 은퇴

"우리나라는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과학전공 교수나 기자들이 역할을 하고 있지만 층이 두껍지 않은 것 같아요. 전공자들도 자기 전공 아니면 알려고 하지 않죠.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기상이나 지구온난화, 진화 등 과학은 우리와 밀접해있습니다. 이러한 과학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되고자 페이지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되길 자청한 그는 과거 국문학도의 길을 걸었던 문과생이었다. 이 전 대표는 학창시절 과학을 좋아하긴 했지만 서울대 국문학과를 입학했고 대학원 진학까지 생각했다.

그러다 20대 후반 세미나 발제용으로 PC를 구입하면서 컴퓨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좋아하다보니 전문가가 됐고 강연을 다녔다. 그동안 써내려간 신문 칼럼을 모아 '컴퓨터 한 달만 미쳐보자'도 발간했다. 컴퓨터 책으로는 이례적인 판매부수를 기록하며 그는 '컴퓨터 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형열 전 대표는 지인과 함께 인터넷 서점 알라딘 설립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50세가 되자 '나 자신은 책읽을 시간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빠른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다.<사진=김지영 기자>
이형열 전 대표는 지인과 함께 인터넷 서점 알라딘 설립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50세가 되자 '나 자신은 책읽을 시간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빠른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다.<사진=김지영 기자>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투자한 미국 현지법인 회사를 통해 미국에 머무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러면서 그는 지인과 함께 컴퓨터와 도서를 연결하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 설립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 알라딘 설립에 이어 1999년 12월 LA에서 알라딘 USA를 시작한 그는 한인을 대상으로 수없이 많은 책들을 추천하고 판매했다. 처음엔 DB도 없어 한국인 성인 김(KIM), 박(PARK), 이(LEE)등이 들어간 메일을 찾아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책을 추천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인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매출로 오르기 시작했다. 

온라인에 이어 2003년부터 서부와 동부 등에 오프라인 모임이 가능한 알라딘 서점도 냈다. 투자비용을 회수하는데 3년 걸렸지만 이후에는 흑자를 내는 등 성공기를 썼다.

사업의 성공으로 부족함 없는 생활이었지만 50대에 접어든 그는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책을 권유하는 일을 하는데 나 자신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빠른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다.

"빈 손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내 것을 만들기 위해 살았습니다. 남은 인생은 사회에 의미있고, 내가 즐거운 일을 해보는 것에서 행복을 찾고 싶었어요.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어려운 것을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과학관련 책을 올바르게 소개하고 최신 과학기사를 사람들에게 알리며 우리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이 우리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를 알아야 더 관심을 많이 가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독서가 어렵다? "저자를 알자"

작년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평균 독서량은 9권이다. 학생에서 성인이 되면서 독서량도 준다. 독서 부족국가다.

독서를 하고 싶지만 실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는 "저자와의 계기를 만들어라"고 조언했다.

그는 "저자와 만나거나 그의 강연을 듣는다면 그 책을 내 것으로 만들기가 쉬운 것 같다"며 "직접 가는 것이 어렵다면 테드(TED) 강연을 보는 것이 어떨까. 좋은 과학자와 저자들이 20분 사이 짧은 강연에서 엄청난 가르침을 주기 때문에 자주 보고 있다"고 추천했다.

또 그는 "나이 들면서 독서에 눈을 너무 많이 혹사시키는 것 같아 리딩북도 이용한다"며 "책을 읽는 것 보다 집중이 안 될 수도 있지만 길을 걷거나 할 때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 TV시청을 조금 줄이는 것도 독서에 도움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 "집에 TV가 있지만 거의 보지 않는다"는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풍요롭게 살 수 있다.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자기만의 시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가치를 모임 속에서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 페이지. 그는 과학이란 특정인물이 아닌 '보통'사람들도 읽고 알 수 있다는 의미에서 페이지 이름을 지었다. <사진=페이스북 캡쳐>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 페이지. 그는 과학이란 특정인물이 아닌 '보통'사람들도 읽고 알 수 있다는 의미에서 페이지 이름을 지었다. <사진=페이스북 캡쳐>

독서와 주체적인 가치 공유 속에서 그는 많은 과학커뮤니케이터가 생겨나길 희망하고 있다. 최근 전업주부 회원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아들과 함께 책을 공유하고 토론을 한다는 이야기는 그에게 일반인의 과학커뮤니케이터 가능성을 보여준 가장 기쁜 사례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 전 대표는 "모임이 확산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책 커리큘럼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과학책을 처음 접하는 사람부터 많이 접한 사람을 나눠 어떤 책을 순서대로 읽어나가면 좋을지 가이드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가이드가 고등학교나 대학 동아리 등에서 책을 읽는 모임을 활성화시키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가이드를 기반으로 여러 북챌린지도 해보고 책 서평도 써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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