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상투를 자른 사무라이' 이광훈 저자, KAIST 찾아 학생과 소통
'식민지 전락' 본질 파악…역사 성찰 통해 미래 대응·대비

이광훈 저자가 역사를 보며 미래를 대비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조은정 기자>
이광훈 저자가 역사를 보며 미래를 대비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조은정 기자>

"조선 시대 지배 계층이었던 '선비'와 일본의 지배층이던 '사무라이'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한 나라는 식민지로 전락하고 다른 나라는 지배자가 되어 세계 패권에 도전합니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올바르게 볼 수 있어야 미래를 대비하고 대응할 수 있습니다."

오후 7시. KAIST(총장 강성모) 학생들이 인문사회과학부동 국제회의실에 모이기 시작했다. '읽기와 토론 특강' 수업의 일환으로 '상투를 자른 사무라이' 도서 이광훈 저자의 특강이 마련됐다. 이번 특강은 과학사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 청강할 수 있도록 오픈 수업으로 진행됐다.

도서 '상투를 자른 사무라이'는 일본을 악의 축으로 바라보는 선악론의 관점이 아닌, 지난 역사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해를 통해 근현대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재조명하자는 책이다.

이광훈 자자는 '사무라이가 상투를 자른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조은정 기자>
이광훈 자자는 '사무라이가 상투를 자른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조은정 기자>
이광훈 저자는 "일본은 개혁과 근대화에 목숨 걸고 치열했지만, 조선은 그저 몽매했었다. 우리의 뼈아픈 실책을 돌아봐야 한다"며 "근대화에 실패해 국권을 빼앗긴 지난 역사를 깊이 성찰해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비춰보자"면서 강의의 포문을 열었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조선과 일본은 비슷한 운명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 운명은 메이지유신 전·후로 엇갈리기 시작했다.

일본은 서양과 일전을 계기로 근대화에 박차를 가했지만, 조선은 문을 굳게 닫아 정반대 길을 걸었다. 가고시마의 사무라이들은 자신의 '상투'를 자르며 근대화에 앞장섰고, 그 결과가 메이지유신까지 이어졌다는게 저자의 해석이다.

그는 "조선 선비의 상징인 상투를 자른다는 것은 충과 효의 사상을 반하는 행위지만, 결국 그것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며 "일본은 스스로 상투를 자르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세계 패권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안 될 줄 알면서도 뛰어드는 것. 이는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일본인에게 깃들여진 강력한 정신"이라며 "가고시마 사무라이들은 당연히 죽을 줄 알면서도 전쟁에 뛰어들었다. 징집 연령대가 15~45세였음에도 불구하고 14살 소년이 자진해 참전하기도 했다"고 역설했다.

메이지유신 주역을 길러낸 '요시다 쇼인'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당시 교수 자격증이 있었음에도 사설학당을 세우고 천민 출신을 가르쳤다"면서 "이 사설학당에서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을 배출시켰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요시다 쇼인의 사생관도 소개했다. 그는 "'어떻게 살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그의 사생관"이라면서 "우리나라가 '어떻게 하면 바르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이 일본인들은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고민했다"고 말하며 조선과 일본의 서로 다른 정신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자는 요시다 쇼인의 생몰 확인된 제자 57명 중 22명에 대해 "그들은 30세 이전에 혁명전선에서 사망했다. 이는 결국 '깡'과 '의지'로 지내왔다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하면서 "근대화 여명기에 일본 사무라이들은 어떻게 죽을 것이냐는 명제에 집착해 자신을 던졌다. 그 치열한 사생관이 근대화를 연 동력"이라고 역설했다.

메이지유신의 대표 주역인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이토 히로부미는 ▲대학령 반포·교육제도 정비 ▲내각제 도입 ▲헌법 제정·제국의회 개설 ▲추밀의원장 ▲입헌정우회 창설 등 전 세계를 통틀어 국가에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천민 출신으로 쇼카손주쿠를 통해 다카스기 신사쿠의 심복으로 혁명대열에 가담해 일본제국의 기틀을 만들어가며 승승장구한다.

저자는 "이처럼 일본의 사무라이와 조선의 선비들은 목숨을 걸고자 했던 동기가 달랐다"며 "결정적으로 죽음을 선택한 시점에서 한 세대의 차이가 있었다"고 국운이 갈라진 이유를 들었다.

전 세계인들은 일본을 '예의 바른 민족', '욕설 없는 국가'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 저자는 "이런 이미지가 사무라이 문화의 유산이다"며 "공동체 규범을 어기고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때 돌아오는 칼의 보복을 항상 염두하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수업에 참가한 한 학생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인데, 우리나라는 일본도, 중국도, 미국도, 유럽도 심지어 우리 스스로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며 "현재를 제대로 살아가고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그 모두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상투를 자른 사무라이' 이광훈 저자의 특강에 참가한 KAIST학생과 과학기술자들.<사진=조은정 기자>
'상투를 자른 사무라이' 이광훈 저자의 특강에 참가한 KAIST학생과 과학기술자들.<사진=조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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