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 연구문화 ③]연구자율권? 정부 요구대로 연구바텀업 아닌 톱다운 방식 지배…당장 돈되는 연구만? 科技 미래 암울

"20년동안 하고 싶은 연구를 해본 적이 없다. 기초과학 과학자로서 제안서에 기대효과, 경제성을 쓰라고 하는데 할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초연구분야를 3년만에 기대효과를 내라면 누가 할 수 있겠나. 평가기준에 맞춰 담당공무원이 요구하는 과제만 제안한다."(출연연 D 박사)

순수 과학을 전공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K박사. 기후 변화에 따른 연구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출연연에 오면서부터 과제를 정부에 제안했으나 20년이 넘도록 한 번도 선정된 적이 없다. 제안서의 항목 중 기대효과를 묻는 항목에 남들처럼 충족될 구체적 성과가 담긴 답변을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후에 따른 변화는 10년, 20년이 지나야 알수 있는 것으로 단기 과제만으로는 어떤 실질적 결실을 반영하기 어렵다. K 박사는 정부가 제안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하고 이런 행태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기초연구를 하는 출연연의 D 박사 역시 "실제 연구현장에서 한 주제로 10년이상 지원 받은 과학자는 한명도 없다"면서 "3년이나 5년 단위로 승급할 수 있는 국가 등급제를 시행하고 연구비와 상관 없이 일정한 급여를 보장해 연구자가 정말로 잘 할 수 있는 연구에 혼신의 힘을 다해 연구할 수 있도록 연구생태계 조성을 해야 독창적이고 연구분야를 선도할 수 있는 깊이 있고 창조적인 연구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어느 공무원은 어떤 과제가 필요하다고 정답을 넌지시 던져주고 간다"면서 "정답이 나와있는데 굳이 다른 답을 고를 이유가 없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세상에 없는 연구 성과는 연구현장에서 시작된다. 전공과학자가 필요한 연구를 바텀업으로 제안해 나갈 때 세상을 놀래킬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와 연구자 사이는 말없이 갑을관계가 굳어지며 탑다운 방식의 연구행태가 여전히 반복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에서는 최근에 성과평가를 양적평가에서 질적평가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현장의 반응은 기관평가에서는 질적평가가  반영되고 있지만 개인평가에서는 아직 연구자 개인들은 많이 느끼지 못하고 있다. 개인평가의 경우 매년 논문(물론 imfact factor 반영)이나 특허 및 기술료 등 외향적 연구업적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있다는게 현장연구자들이 의견이다.

기업과제를 주로 수행하는 연구원의 경우는 논문발표나 특허출원등이 매우 제한적이므로 다른 과제 수탁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공계대학 한 교수자는 "관할 부처 공무원들은 당장 지금이 중요하고 현재 성과를 낼 수 있는 연구과제로 무엇인지 묻는다. 그러면서 연구원들은 공장에서 이미 디자인이되고 설계가 된 것을 생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취급받는다. 남이 안하는 것을 해야 하는데, 그 자체를 생각하는 것도 어렵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에서 연구 주도권을 가진 과학자는 극히 소수다. 아주 일부 과학자들만 세계적인 연구주도권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본다"고 자조적인 답변을 했다.

◆ 독일 연구자, 연구자가 공무원에게 간섭받는 것 상상도 못해

과학기술자들이 정치인이나 공무원에게 간섭받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우리나라 연구개발 주체가 과학자가 아닌 정부의 간섭을 심하게 받는 것에 비해 독일은 법으로 이를 제한하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발터 슈튀머 소장이 독일의 연구환경에 대해 독일은 '하르나크 원칙'을 기본으로 연구자율성을 제 1원칙으로 강조한다고 밝힌바 있다.

실제 독일 연구현장을 지켜본 H 과학자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학술연구자유법'을 제정해 연구자의 자율성을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법 조항에 의하면 공공연구기관의 예산, 연구인력, 연구시설 건설 등 분야에서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적용 대상은 막스플랑크를 비롯해 프라운호퍼, 헬름홀츠, 라이프니츠 연구협회등 11개 공공연구단체가 포함된다.

H 과학자는 "독일은 우리처럼 관료가 과제를 제시하는 탑다운이 아니라 현장의 연구자가 주제에 제한없이 연구개발 주제를 제한하는데 바텀업(bottom-up)을 원칙으로 한다"면서 "우리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독일의 연구주제는 묻지마 연구에 해당될 것이다. 독일은 연구 현장의 의견을 듣고 정책 변화를 이뤄가는데 우리 정부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예산도 예산 범위내에서 자율편성하고 집행이 가능하고 이월도 할 수 있다. 연구시설물 건축도 기관에 자율권을 위임했다"면서 "우리는 예산 자율성이 전혀 없어 오히려 여러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그러면서 H 과학자는 한국의 과학자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우리나라 과학자의 대부분이 정부에서 지원하는 연구비에 의존하는 반면, 독일은 정부지원은 30%이며 나머지는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펀딩으로 확보하고 있다"면서 "펀딩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연구 자율성의 독립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 한국 과학계 연구주도는 정부 중심 85%…연구자율성 보장도 미흡

한국 과학기술계의 연구주도권은 누가 갖고 있을까. 일반적인 상식 수준에서는 당연이 연구자이겠지만 본지 설문결과 과학계의 85%가 정부라고 답변, 한국 과학계의 아이러니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정부는 정권이 바뀔때마다 연구 자율성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해 왔지만 연구현장에서 받아들이는 자율성과 연구주체는 여전히 정부가 주도하며 바텀업이 아닌 탑다운 형태의 연구방식으로 제자리 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본지는 지난 20일부터 25일까지 과학계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 '한국 과학계는 어느 주체가 주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정부(관)에서 주도하고 있다고 답변한 과학자가 전체 243명 중 85%(198명)에 이르렀다. 반면 과학자가 주도한다는 답변은 15%(35명)뿐이었다. 답변을 포기한 설문 참여자는 9명으로 확인됐다.

 

'연구를 즐기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63.2%(146명)가 즐기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연구를 즐기고 있다고 답변한 과학자는 36.8%(85명)으로 나타났으며 11명은 답변을 포기했다.

현재 연구자율성을 묻는 질문에는 41.3%(97명)이 보장되지 않음을, 20.9%(49명)이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답변해 60% 이상이 여전히 연구 자율성이 부족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율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고 있다고 선택한 과학자는 36.2%(85명), 완전하게 보장된다고 답변한 과학자는 1.3%(3명) 뿐이었다. 나머지는 답변을 포기했다.

 

 

◆ 원로 과학자 "눈앞 성과에 치중하면 기술 식민국으로 전락 할것"

과학 선진국들이 미래지향의 연구 방향을 설정하고 세상에 없는 연구성과로 글로벌 과학계를 리드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투입대비 부족한 작금의 연구성과를 두고 정부는 과학자에게 과학자는 정부에게 안되는 이유만 들며 옥신각신 하는 양상이다.

과학기술이 빠른 속도로 변하며 우리 과학계도 HOW 시대를 넘어 WHY 시대로, 패스트 팔로우(fast follower)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정부는 과학자에게 성과를 강조하고 있고, 과학자는 정부에 연구자율성을 늘 빼앗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산업발전과 같이 성장해온 우리 과학계는 빠르게 따라잡는 기술개발이 관건이었지만, 이제 세상을 변화시킬 혁신성 높은 기술개발이 필요한 상황에서 한국 과학계의 위상은 갈수록 후퇴해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 과학계는 여전히 패스트 팔로우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매년 쏟아져 나오는 연구성과의 상당수는 세상에 없는 기술개발이 아닌 기존에 있던 기술을 국산화 했다는 게 대부분이다. 연구자로서 하고 싶은 연구, 미래에 필요한 연구를 주도하기 보다 당장 보일 수 있는 성과에 일희일비하며 과학자로서 성과를 전시하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것을 개발할 수 없는 명분은 분명하다. 정부의 과학정책이 당장 돈이 되고 보여줄 수 있는 과제만 지원하기 때문에 세상에 없는 기술 개발은 염두에 둘수도 없다는 것이 이유다. 이런 과정이 오래도록 지속되며 연구자들은 정부의 정책이라는 방패 뒤에 스스로 몸을 숨기며 연구 주도권자로 나설 생각조차 잊어버렸다.

그러는 사이 중국이 우주기술로 선두를 치고 나가고 일본은 탄탄한 연구기반과 연구자율성 위에서 연구자들이 주도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며 굵직한 연구성과와 노벨상 숫자를 늘려가고 있다.

과학계의 한 원로는 "우리 과학계도 변화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 변화를 주도하려 하지 않는다"며 "선진국들이 개발한 기술을 국산화하고 업그레이드하는 수준에 만족하며 스스로 기술 식민지국으로 전락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원로는 "정부나 우리 사회가 과학자들을 성과를 찍어내는 기계로 여기면 안된다"며 "진정한 연구자 중심의 자율성 있는 바텀업 연구와 정부의 필요한 톱다운 연구가 조화롭게 운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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