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여러 지역에서 들려오는 국지전의 소식이 뉴스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뉴스에 잘 보도되지 않고, 총성 하나 들리지 않아도 더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스위스 제네바이다.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국제통신 연합 ITU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 은 1865년 국제전보 협력체 International Telegraph Convention 로 시작했다. 1947년 유엔의 산하 기구로 등록이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정보·통신 분야를 총괄하여 국제 표준과 국가들 사이의 협력을 관장하는 거대한 국제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ITU 산하에는 ITU-R (Radiocommunication, 무선통신 분야의 주파수 할당 업무를 포함함), ITU-T (Telecommunication, 무선 시스템을 제외한 모든 통신 부분의 국제 표준을 제정한다), ITU-D (Development, 정보통신 혜택을 모든 지역에서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의 3개 주요 업무 분야가 있으며, 이에 추가하여 ITU Telecom 이라고 하는 정보통신 회의를 관장하는 기관이 운영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통신 시스템의 표준을 정의하는 곳도 ITU이고, 우리가 사용하는 휴대폰, 텔레비젼, 라디오, 등 모든 무선통신 기기들에 주파수를 할당하는 곳도 ITU 이기에 ITU의 결정사항은 우리의 생활 깊숙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통신의 전 분야에서 초고속 통신망 제공과 이의 상업화를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고 참여국가들과 참여기업들이 중요한 관심을 보일 부분이 바로 통신 시스템의 주파수 할당 문제가 될 것이다. 새로운 무선통신 서비스가 만들어지더라도 그 서비스를 위한 주파수 할당을 받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된다.

휴대폰의 3G, LTE, 위성방송, 경찰차들의 긴급통화채널, 군대의 보안 통신 무선 채널 등 모든 무선통신 시스템은 유선 통신과 달리 동일한 주파수를 동일한 장소에서 함께 수신하는 경우, 수신기는 전파의 상호 간섭 때문에 전혀 그 내용을 읽을 수 (Demodulate, Decode) 가 없으며 이에 따라서 무선통신 서비스가 불가능해진다.

이렇게 중요한 주파수 할당에 관한 주제로 ITU의 모든 회원국가와 관련 통신 회사들이 함께 모여, 주파수 할당에 관한 논의를 하고 결정하는 곳이 바로 국제 무선통신 컨퍼런스 WRC (World Radiocommunication Conference) 이다. 그리고 이 컨퍼런스의 결정사항들이 주파수 할당 규약 RR (Radio Regulation) 으로 제정되어 공표된다. 이렇게 공표된 RR은 국제법적인 위치를 가지며, 둘 이상의 이해당사자들이 주파수 간섭문제로 법정다툼이 일어날 경우 이 RR에 의거하여 판결을 하게 된다.

WRC 개최 업무 프로세스.
WRC 개최 업무 프로세스.
 
WRC는 3~4년 의 간격을 두고 개최되는데, 올해 11월 2일부터 27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WRC-15가 개최될 예정이다.

이 컨퍼런스를 위하여 ITU는 지난번 WRC-12가 끝난 직후부터 국가별로 그리고 지역별로 준비회의들을 개최하여 왔다. 지역별로는 APT (Asia Pacific Telecommunity), ASMG (Arab Spectrum Management Group), ATU (African Telecommunications Union), CEPT (European Conference of Postal and Telecommunications Administrations), CITEL (Inter-American Telecommunication Commission), 그리고, RCC (Regional Commonwealth in the  field of Communications) 등 6개의 지역 연맹들이 있으며, 이들이 해마다 1회 이상씩의 지역별 준비회의를 개최하였다.

ITU에서는 지난 컨퍼런스에서 의논되었으나 결정하지 못하였던 안건들과 새로이 제안된 안건들을 모아 이번 WRC-15에서 토의하고 의결하여야 할 150페이지의 회의주제록을 발표하였다 (아래 그림과 문서 링크).

이미 무선통신분야의 많은 이해 당사자들 (국가, 회사, 협회, 연맹 등)이 각자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거나 새로 획득하고자 물밑작전들을 펴고 있으며, 국가와 지역을 떠나서 같은 이해를 공유하는 단체들끼리의 합종연횡을 하고 있다.

올해 다뤄질 이슈들 중에서 주목받는 안건이 바로 이동통신 서비스의 추가 주파수 할당이다. 전세계의 이동통신회사들이 GSMA (GSM Association)과 함께 연합하여 이동통신의 데이타 서비스 IMT (International Mobile Telecommunications)의 확장을 위한 추가 주파수 대역 할당을 신청한 상태이다. 주파수라고 하는 한정된 통신자원을 어느 한 서비스에 할당해주는 것은 기존에 같은 주파수를 사용하던 서비스를 중단해야 하는 효과를 낳는 등 다른 무선 서비스에 불이익을 주게되기에, 이해관계 또는 해당 산업 또는 기업의 생존이 걸린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동통신회사들이 IMT 서비스 확장을 위하여 추가로 신청한 대역은 아래와 같다. (1) Sub-700MHz UHF (470-694/8 MHz): 이 낮은 주파수의 방송 서비스 대역은 FM 라디오와 마찬가지로 건물 내부나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들에게도 좋은 품질의 음성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2) L-band (1300-1518 MHz): 디지털 라디오 방송과 레이다 및 항공기의 원격검침부분에 사용되도록 할당된 대역을 무선 이동통신으로 전환하고자 한다. (3) 2.7~2.9 GHz: 민간 및 군용항공기의 레이다와 항행시스템으로 할당되어 사용하고 있는 대역을 요구하고 있다. (4) C-band (3.4-4.2 GHz): 상대적으로 광대역폭을 차지하는 이 주파수 대역은 현재 인공위성 통신 서비스에 사용되고 있다.

휴대폰을 매체로 하는 이동통신은 3G HSDPA, HSPA+, 4G LTE, 그리고 LTE-Advanced 등,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름을 사용하면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스마트폰 덕분에 (또는 때문에) 2020년대에는 현재에 비하여 가입자별 10배 이상의 데이타 사용량 증가가 기대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사용자에게 편리함을 선물하고, 사용자들의 사용 증가, 즉 시장의 요구 증가에 따라서, 이동통신 시스템이 더 많은 데이타를 제공할 수 있는 추가 주파수 대역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동통신회사 연합들이 요구하고 있는 주파수 대역은 이미 다른 서비스에 할당이 되어있는 바, 이 주파수의 사용이 이동통신에 허용이 된다면 다른 서비스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C-band 를 사용하는 무선통신 서비스들 © 2015 GVF
C-band 를 사용하는 무선통신 서비스들 © 2015 GVF
 예를 들어 위성통신 서비스에 사용되는 C-band 주파수 대역 요구에 대하여 전세계의 모든 위성통신 회사들과 함께 아시아, 아프리카 등 열대 지방에서, 같은 주파수 대역의 위성통신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 NGO 등, 많은 사용자 그룹들이 연합하여 적극 반대를 하고 있다. 통신 인프라가 갖춰져있지 않은 지역에서 C-band 위성통신 시스템은 재난경보, 인명구조 등등을 포함하여, 현지 사회에서 중요한 통신 시스템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Star One 위성통신 회사의 경우 브라질 전역에 설치되어 C-band(3.4-4.2 GHz)의 일부를 이용하고 있는  위성안테나의 사용자들이 7200만명정도라고 계산하고 있다. 특히나 3.6~3.7GHz 대역의 경우에는 9750개의 지상국들이 현존하고 있으며, 이들은 정부 관청, 기업사내 네트워크, NGO, 그리고 방송사들이 점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에 요구된 주파수가 IMT에 할당이 된다면, 이러한 서비스들이 영향을 받으며, 7000만여명의 인구가 전파간섭 때문에 TV 시청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지난 2007년에 개최된 WRC에서 위성통신회사들의 완승으로 결론이 났다면, 올해에는 이미 몇몇 국가들이 자국 내에서는 앞서 요구된 C-band의 일부분을 이미 이동통신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를 한 (또는 승인처리를 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어느 진영이 승리를 할 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Satellite based C-band Aircraft Tracking System © Space News (Apr. 2, 2015)
Satellite based C-band Aircraft Tracking System © Space News (Apr. 2, 2015)
 
또 다른 주목을 받고 있는 안건은 바로 상업용 비행기들의 위치추적을 위한 무선통신장비 시스템이다. 이는 작년에 비행 도중 실종되어 현재까지 일년이 지난 상황에서도 비행기의 파편조차 찾지 못한 말레이지아 항공기의 실종사건 때문에 크게 부각되었다.

국제 민간항공연맹 ICAO (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sation)은 ADS-B (Automatic Dependent Surveillance-Broadcast) 시스템을 인공위성으로까지 확대 적용하자고 하는 제안을 하였고, 이러한 시스템을 새로운 시장으로 받아들이는 Iridium Communication 같은 회사는 이를 환영하는 반면, 이미 인공위성을 기반으로 하는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Inmarsat 과 같은 회사는 이에 적극적으로 반대를 하고 있다. 자사의 시스템을 사용하면 이미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이 또한 어느 진영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을지 올해 말의 결과가 궁금한 부분이다.

Virgin Group participates in the OneWeb project © 2015 Virgin group
Virgin Group participates in the OneWeb project © 2015 Virgin group

올해 WRC-15의 안건이 담긴 회의주제록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현재 치열한 물밑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분야 중 하나가 바로 저궤도 통신 위성군 시스템 LEO Satellite Constellation 이다. 작년부터 현재까지 10여개의 회사들이 저궤도 위성군 시스템을 실현하기 위한 첫 단계로, ITU에 주파수 사용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이들 중에는 10여개의 위성을 발사하려는 시스템부터 4000기 이상의 저궤도 통신위성을 발사하겠다는 프로젝트들이 있다. 특히, 구글이 피델리티 투자회사와 함께 1조원을 SpaceX라고 하는 로케트 제작회사에 투자하고, 그 회사에서 4000개의 초고속 통신 위성을 제작 발사하겠다고 발표하였고, Virgin 그룹의 Richard Branson 회장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퀄콤 Qualcomm 회사와 함께 OneWeb 이라는 위성군 통신회사에 투자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OneWeb은 O3B Networks 라는 중궤도 통신위성 회사를 창업한 Greg Wyler가 설립하여 추진하고 있으며, 650기의 인공위성을 저궤도에 발사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론적으로 저궤도 위성들은 현재까지 많이 사용하고 있는 정지궤도 위성에 비하여 약 30배 더 지구에 가깝기에, 더 작은 전파 출력으로도 위성통신이 가능하며, 이에 따라서 지상에서 사용하여야 하는 단말기의 크기가 작아져서 이동성과 휴대성이 증대될 수 있다.

다만 이들 위성들은, 지구상에서 볼 때 어느 한 지역 상공에 붙어있지 못하고 계속 움직여 다니며, 이에 따라서 이들 위성들이 사용하는 주파수는 전 지구 표면에 지속적으로 방출이 된다. 즉 같은 주파수를 사용하는 다른 서비스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서 이들 위성군 시스템이 이용하고자 하는 주파수를 사용하는 다른 회사나 단체들이 반발할 수가 있고, 이는 또 ITU의 숙제가 된다. 현재 ITU 주파수 관리국에서는 주파수 신청을 한 순서에 따라서 우선순위를 두고 있으며, 지정된 기한내에 (예를 들어 7년) 예정된 인공위성을 발사하여 신청한 주파수를 사용하지 않으면, 우선순위를 빼앗기는 구조를 갖고 있다. 물론, 같은 주파수를 이미 사용하고 있는 다른 서비스가 있다면, 새로 제안된 시스템이 기존에 같은 주파수를 사용하는 시스템과 서로 주파수 간섭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할 필요도 있다.

이들 초고속 통신망 위성군 프로젝트는 수백기의 인공위성을 제작, 발사하고, 이를 지원할 지상국 시스템을 전 세계에 설치하여야 하기에, 기본적인 인프라에만 투자하여야 하는 비용이 수조원이 넘어간다. 이러한 시스템이 최종 사용자들에게 정말로 더욱 저렴하고 더욱 빠른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지, 현재 초고속 인터넷 망이 깔려있지 않은 동남아, 아프리카 등지의 지역에서 저렴한 가격에 인터넷을 제공할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미지수이다. 다만, 소외된 지역의 주민들은 비싼 통신비를 부담할 여력이 적고, 통신비가 부담스럽지 않는 동네의 주민들에게는 이미 ADSL이나 광통신망이 제공되고 있는 예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앞의 몇가지 예를 포함하여  주파수 할당과 이를 차지하기 위한 신규 및 기존 주파수 사용자들의 치열한 전쟁은 지금도 진행중이고, 올해 11월에 제네바의 ITU 회의장에서 결론을 낼 때까지 크게 격돌할 것이다.
다만 이 주파수 전쟁에서 이해 당사자들만의 이득을 지키는 것이 아닌, 전세계 모든 시민들이 더 나은 통신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방향으로 결과가 도출되었으면 하는 것이, 세계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저자의 바램이다.

◆최경일 박사는

최경일 박사
최경일 박사
최경일 박사는 '최경일의 지금 유럽에선'의 타이틀로 유럽의 한인과학기술인들이 바라보는 현대사회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국과 유럽이 경험하고 있는 과학기술분야의 발전상과 함께, 유럽에 살고 있는 한인과학기술자들의 역할과 한-유럽간의 교류,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는 지구의 환경보호 및 인류의 동반성장에 관한 고민들을 함께 공유할 예정입니다.

최 박사는 전산, 정보통신 및 인공위성 시스템을 전공했으며, 현재 프랑스 위성통신회사인 유텔셋 Eutelsat 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재직 중입니다. 연구분야는 인공위성의 시스템 설계 감리이며, 번역서로 '인공위성 통신 시스템'을 출판했습니다. 전공활동과 병행해 유럽의 한인협회인 동반성장 연구회 I-DREAM 회원으로 지구촌 공동체들의 동반성장을 위한 해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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