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과학자들의 한국 과학계 방향성에 대한 의미있는 수다
퍼스트 무버로 가기 위한 과학계 진정한 의식변화 시급

"왜 이 연구를 해야합니까. 이제 과학자들이 답을 내놔야 합니다. 국민들에게도 왜 연구하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연구자들 반성해야죠. 간섭한다고 뭐라 하는데, 사실 알아서 하지도 않습니다. 세금 귀한 마인드도 없고, 긴장감 절실함도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학습뿐이 없습니다. 당장 중국 일본 관계에서 잘 생각하고 대응해야죠. 우리는 우리가 누군지 모르고 남도 모릅니다. 적어도 당하지 않으려면 공부해야 합니다."

유난히 봄을 맞는 기운이 선선하게 느껴졌던 지난 23일 저녁, 세종시 정부청사 인근 커피숍에 한국 과학기술계에 깊은 애정을 가진 중년의 인사들이 둘러앉았다.

정부출연연구기관 과학기술자·과학정책 전문가·연구소 행정기획 전문가·과학언론인 등 소속은 다르지만, 모두 연구현장에서 20~30년 남짓 삶을 바쳐온 덕분인지 한국 과학계 발전을 향한 강한 공감대가 퍼졌다.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한국 과학계의 현실을 파악하고, 여러 시사점을 던지는 구수하고 진득한 이야기들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시작된 이들의 수다는 퍼스트무버로 가기 위한 과학자들의 변화와 국가연구소의 역할, 과학경쟁력 강화를 위한 학습 등 다양한 현안들이 진지하게 논의되며 늦은 저녁까지 이어졌다.

한국 과학기술계를 걱정하고 미래를 위해 학습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이들의 수다를 話者 설명없이 지면에 옮겨봤다. 생생한 이야기들을 전달하기 위해 익명으로 처리했다.

◆ 한국 과학계 지금 어떤가?…"긴장감 절실함 없다"

= 우리 사회가 과학기술계를 돈으로 경제적 성과 잣대로 들이대는 경향이 강하다. 세계적 성과 창출 가치와 자부심을 갖는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 등과의 사례와 우리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 사실 우리 과학계가 국제협력 내걸만한 성과가 많지 않다. 순수 연구개발 예산 투자는 얼마 안된다. 얼마 쓰지도 않는 미래부가 최근 욕먹고 타깃이 된 모양새다. 앞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과학기술 예산이 줄어들고, 과학기술 예산의 효율적 집행 이슈가 부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 연구자들 반성해야 한다. 연구자 주중 주말근무 구분 돼있나? 간섭한다고 뭐라 하는데, 사실 알아서 하지도 않는다. 자기 편하게만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세금 귀한 마인드가 없다.

= 긴장감 절실함 없다. 월급못나오는 환경에 내몰려 쎄트렉아이 같은 회사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일 잘하는 사람은 밤새고 한다. 국제협력도 알아서 잘한다. 열심히 잘하는 사람 사례 많이 알려져야 한다. 성공 사례가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시킬 수  있다. 현장에서 많이 움직여야 관료들도 함부로 안한다.

◆ 연구 방향성에 대한 고민…"왜 연구하나 답해라"

= 출연연 30년 연구한 팀을 찾아봐라. 실제 그런지 자기 위치가 선진국인지 취재 분야별로 필요하다. 연구의 방향성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지금 한국의 연구현장은 PBS 등의 문제로 연구 방향성을 잃은 분위기가 강하다.

= 우리는 방향 고민 별로 안한다. 1년 이것 해보고 '이게 아닌가벼' 한다. 우리 노동유연성도 낮다. 출연연 연구자들은 프로젝트를 죽기살기로 해야한다. 일본 이화학연구소는 리더가 아프거나 이상이 생기면 해체한다. 뭔가 방향이 있어야 움직이는 것이다. 주임 연구원 사람 이름을 쓴다. 존폐 여부를 따지는 것이다. 후배가 이어가려면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 외부공모도 한다. 교수 시스템도 비슷하다.

= 일본경제신문 기자의 이야기. 일본기업의 기술혁신은 3대째 일어나더라. 3대째 도약한다. 이유를 봤더니 외부 경쟁자가 추적해오니 3대째에서 거의 회사 문닫고 연구개발 집중해 차세대 생존을 집중 연구하더라.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1대 2대 축적된 돈이 있어 가능했다. 그때 투자해서 도약하는 패턴이 많다. 1, 2대째 쌓아놓은 판로 마케팅 채널이 3대째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되더라.

= 과학자도 복합적사고가 요구된다. 왜 이 기술을 해야하는지 설득력갖고 이야기해야 한다. 우린 왜에 대한 경험축적이 없다보니 낯설다. '왜'라는 질문 던지는 경우 없다. 왜를 던질 퍼스트 무버 개념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왜 이 연구를 하는지 국민설명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왜 연구하는가. 그리고 왜 이 연구를 출연연에서 해야하나 질문 해봐야 한다. 기업서 못하는 연구를 해야지 기업의 것을 같이 하고 있으면 안된다. 지금은 연구목표를 관료들이 정하게 하는 양상 아닌가.

= 인공위성 왜 만드는가. 우주 별의 미세한 신호를 잡아내는 소프트웨어 분석기술도 유용할 수 있다. 이게 암진단 미세신호에 쓰일 수 있다. 별과 암의 연결. 피부암 진단할 수 있다. 연구를 왜 하는가의 한 답변 사례다.

◆ 한국 과학계 역할분담…"출연연은 공격형 미드필더"

= 표준연 연구원 출신의 서울대 교수가 한 사람 있다. 그 서울대 교수가 출연연 연구원들이 교수를 경쟁상대로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 "연구원들은 비겁하다"고 말한다. 연구에 올인 못하는 교수와 경쟁한다고 하는데 애초부터 경쟁이 되는 상대가 아니다. 티칭프로랑 연구프로랑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데 왜 경쟁자로 생각하나. 교수는 인재양성이 주목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 우리 과학계를 축구와 비유해 보자. 출연연은 공격형 미드필더다. 대학은 인재양성 기초연구 수비라고 한다면, 출연연은 미드필더 중 공격형 미드필더다. 기업들은 공격수다. 모두 파트너다. 기업들이 골을 넣을 수 있도록 결정적 어시스트를 하는 역할을 출연연이 맡아야 한다. 감독 코치가 문제있다면 선수가 잘하면 된다. 정부는 운동장 만들고 서포터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관중(대중)들도 골만 들어가면 된다는 식의 저차원적 접근 보다 선진화되어야 한다. 관중은 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응원해야 한다. 축구는 16강 가도 칭찬받지만, 과학자는 1등이 되어야 한다. 1등이 되면 평생 존경받는다. 출연연은 무엇을 해서 최고가 될것인가.

= 무엇보다 연구원들은 자기 분야는 스스로 대통령이라는 생각으로 자부심 갖고 일해야 한다.

◆ 우리가 해야 할 일 '오로지 학습'

= 당장 중국 일본 관계에서 잘 생각하고 대응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누군지 모르고 남도 모른다. 일본과 중국은 우리를 알고 자기도 안다. 적어도 당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공부해야 한다.

= 일본 NHK가 광복 70주년 기념 미래를 내다보는 '넥스트 월드'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런걸 보면서 일본을 알고 일본 과학계에서 우리가 여러모로 제안할 수 있다. 이런 걸 보면서 안목 키우고, 일본과의 협력 꾀하고, 과학의 정치외교화 튼튼하게 할 필요 있다.

= 메이지유신 식민지 처참현장 보면서 정신 바짝 차리게 된다. '학문의길'이라는 책은 성경책만큼 팔려 일본 국민 DNA에 학습 DNA로 안착됐다. 팔리는 책의 양과 토론문화에 국가 생존이 달렸다.

= 일본을 알 수 있는 추천도서. 조선의 못난 개항, 못난 조선, 상투자른 사무라이 등이 좋다.

◆ 변해야 할 것들…"무난한 연구만 할 수 있는 시스템과 의식 개혁 필요"

= 융합연구부터 풀 정해놓고, 탈락시키면 누가 하겠는가. 협력하다가는 도태된다는 인식이 연구자들에게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더라도 전문가들 일부의 느낌으로 판단한다. 클라우드도 10년 전에 말했다면 그 누구도 된다고 안했을 것이다. 비전문가들이 평가위원으로 각자 여론 몰이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 시스템은 무난한 연구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세계적 성과가 나올 수 없다. 연구원 중에 위험을 무릅쓰고 개척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 과학기술인들은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역할은 잘 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구축한 영역에 타인의 접근에 매우 배타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타 분야의 아이디어를 수용해 상호 융합해 더 나은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협력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 현재 체계는 행정적으로 오버로드가 심해 연구에 집중하기 어렵다. 시간 활용 체계 확립과 잘한 사람을 칭찬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확보됐으면 한다. 성과 평가 체계가 부재하다.

= 모든 정책 집행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정책들을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 의도 파악과 결과 분석, 미래 방향을 제시했으면 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효율적으로 R&D 인력을 배치하고, 잘하는 연구원들에게는 혜택을 주었으면 한다. 실제 성과 나올 수 있는 연구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 출연연의 연구효율화와 선도형 성과창출을 위한 국제협력, 민간수탁 활성화 방안, 성공사례 발굴과 확산을 통한 연구문화 개선 등 과학계가 할 일이 많다. 과학기술 동북아협력체 구축도 추진해볼 아젠다다.

= 에티오피아의 STIC(한국의 KISTI) 연구소 보고 놀랐다. 책장이 사각형 박스가 아니다. 트리 개념으로 확장있게 설계돼 멋있었다. 이런 문화도 개선해야 한다. 우리는 연구소 공간 문화적 개념 없다. 냉랭하다. 칸막이 문화다. 그런데 나부터 해야 조금씩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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