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세계가 인정한 기술, 규정 맞지 않아 탈락
유망기술 발굴해 사업화하려면 '유연한 대응' 필요

KAIST 연구팀이 개발한 '웨어러블 체온 전력생산 기술'이 유네스코(UNESCO) 세상을 바꿀 10대기술에 선정된 것은 물론 단번에 그랑프리를 거머쥐며 전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연구팀은 지난해 9월, 이 기술로 이경수 대표와 '테그웨이' 기업을 창업하고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테그웨이는 늦어도 상반기내에 샘플 제작을 완료할 예정이다. 테그웨이 관계자에 의하면 현재 국내외 40여개 글로벌 기업이 샘플을 요청하며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전세계가 인정한 기술이지만 이 기술도 국내 정부과제에서는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사례가 있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그것도 기술사업화를 통해 창조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이하 특구진흥재단) 과제에서 말이다.

당시 평가위원들은 과제 규정상 정해진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술의 우수성은 인정하지만 회사 규모가 너무 작고 준비가 안됐다"며 탈락 시켰다. 거기까지였다.

특구진흥재단 누구도 기술의 우수성을 확인했으면서도 이들의 사업화를 지원하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 기존 관행대로 평가기준에 맞지 않으니 기술을 출자하는 연구소 기업으로 창업하거나 2, 3년 지난뒤 다시 공모에 참여하라고 조언한 것이 전부였다. 특구진흥재단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마도 특구진흥재단 뿐만 아니라 무수한 정부의 기업지원 기관들에 과제를 지원했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이번 테그웨이 기술은 준비된 밥상이라 할 수 있다.  '웨어러블 체온 전력생산 기술'은 지난해 3월 에너지·환경 분야 국제 학술지 '에너지 및 환경 과학(Energy & Environmental Science)' 온라인에 속보로 실리자마자 세계 주요 언론이 주목하며 앞다퉈 보도했다.

또 유네스코 세상을 바꿀 기술에도 단번에 선정되며 기술의 우수성을 전 세계가 보장해줬다. 전 세계 전문가들이 인정한 기술을 특구진흥재단 과제 평가위원은 관행의 잣대로 난도질하며 성장의 싹을 움트지도 못하게 막아버렸다. 특구진흥재단은 다 준비된 밥상에 숟가락을 올려놓고 잘 차려서 내놓으면 될 일을 그냥 걷어차 버린 셈이다.

테그웨이 기술에 대한 민간 투자기관에서 보는 관점은 전혀 달랐다. 기술의 우수성을 알아본 엔젤투자자는 적극 나서 거액을 투자했고 창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민간 투자자의 혜안이 자칫 세계 최고 기술을 개발하고도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사장될 뻔한 기술을 빛을 보게 한 것이다.

이번 테그웨이 사례는 우리 과학기술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부는 우리도 이젠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가 아니라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수없이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은 여전히 패스트 팔로워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 사례를 통해 여실이 보여줬다.

정부 부처와 지원 기관 대부분은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하며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기업이 나오길 기대한다. 지역의 기업지원 기관들은 대한민국 연구개발의 집적지 대덕이 실리콘밸리와 같은 역할을 하며 연구자와 기업이 몰려드는 그런 곳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기술을 보는 안목이나 퍼스트 무버로서의 정책입안에는 여전히 인색하고 마인드 변화는 제자리 걸음이다.

주어진 자리에 만족하며 여전히 패스트 팔로워적 사고를 가진 관료들이 곳곳에서 판을 치며 대한민국의 구글, 애플, 페이스북이 나오는 길목을 막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앞으로 테그웨이와 같은 사례는 또 나올 것이다. 출연연과 대학이 보유한 과학기술들이 사업화로 제대로 꽃피우며 인재들이 찾아드는 대덕, 다시 성장의 주도권을 잡은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시각과 관점이 필요하다. 정해진 기준에 따라 기술의 가능성마저 요리조리 재단해 쳐내버리는 안일한 안목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주도할 기술에는 다른 시각, 다른 미래의 잣대를 댈 줄 아는 혁신의 마인드와 안목 말이다.

창업은 기술만으로는 결실을 맺기 어렵다. 기술과 경영의 묘미, 정부의 지원이 어우러질때 결실로 이어진다. 대한민국과 대덕의 미래는 그리 희망적이지 못하다. 진정한 혁신이 일어나지 않고는 추락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이번 테그웨이 사례를  반면교사로 특구진흥재단, 미래부 등 정부의 기업지원 관계자들의 마인드와 시스템에 진정한 혁신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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