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부품 판매에서 엔지니어 소통창구 역할까지
"당장 이익 적더라도 아이디어 현실화 기반 마련 의미 있어"

아이씨뱅큐가 판매하는 엔지니어 키트.<사진=김지영 기자>
아이씨뱅큐가 판매하는 엔지니어 키트.<사진=김지영 기자>
플라스틱으로 된 상자를 열어보니 콩알만한 전자부품들이 구분되어 다양하게 담겨있다. 눈으로 보기엔 똑같은 부품처럼 보이지만 쓰임새가 다 다르다.  우리가 사용하는 휴대폰, TV, 컴퓨터 등을 제작하는데 꼭 필요한 부품들이다.

이 상자는 전자부품 유통 전문기업 아이씨뱅큐(대표 김종우, http://www.icbanq.com)가 판매하는 엔지니어 키트다. 반도체, 개발보드, 전자부품 등 엔지니어가 원하는 양을 소분해 판매하고 있다.

아이씨뱅큐의 독특한 점은 고객과의 소통을 우선시 한다는 점이다.  직접 찾아가 필요한 부분을 듣고 고객이 원하는 부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확인해준다. 이런 활동은 대기업에만 국한되어있지 않다. 오히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엔지니어 개개인이 서로 논의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 소통창구도 만들었다.

4년 전 중국과 홍콩 등에 현지법인을 설립한 아이씨뱅큐는 최근 오프라인 소통창구를 대전으로 확대했다. 대전으로 확대한 이유는 고객 서포트를 위해서다.

김종우 아이씨뱅큐 대표는 "연구원이나 회사, 공대 학생들을 찾아 직접 서비스하기 위해 대전에 오게됐다"며 "당장의 이익은 적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기술개발과 창업 등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에 절대 작은 시장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 대전으로 온 이유? 연구소·기업 등 '충분한 시장 가능성'

김종우 아이씨뱅큐 대표는 서울을 시작으로 중국과 홍콩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최근에는 대전으로 소통창구를 확대했다. <사진=김지영 기자>
김종우 아이씨뱅큐 대표는 서울을 시작으로 중국과 홍콩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최근에는 대전으로 소통창구를 확대했다. <사진=김지영 기자>

김종우 대표는 공대를 졸업해 30대에 외국계 반도체 회사 한국지사장을 지내다 1996년 아이씨뱅큐를 창업했다. 처음 5년은 B to B(기업과 기업간 거래)형태로 대기업 중심으로 반도체를 납품했지만 김 대표는 인터넷세상이 열리는 것을 보며 대기업 외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누구나가 전자부품을 쉽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을 대비, B to 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도 병행토록 재빨리 홈페이지를 오픈했다.

인터넷이 일반인에게 보급되자 비지니스가 기업에서 일반 고객들에게로 확대됐다. 아이씨뱅큐 홈페이지를 국내 유일의 종합 가전제품 종합백화점형태로 만들고 싶었던 그는 계속된 진화 끝에 고객들이 웹상에서도 물건을 쉽게 찾아낼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구축했다. 반도체로 시작한 전자부품도 레지스터 캐페시터, 전지 등으로 확대됐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본사는 구로디지털단지에 두고 구로유통상가 3층에 아이씨뱅큐의 사무실을 따로 마련했다. 구로유통상가는 소위 업자들이 모여 반도체를 수입해 판매를 하는 곳으로 전자기기를 다루는 사람들이 재료를 구하러 많이 찾는다.

김 대표가 구로유통상가에 전진기지를 구축한 이유는 시장에서 돌아다니는 따끈한 정보를 얻으면서, 온라인 고객들이 원하는 물건들을 직접 구해 박스에 모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전자부품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아무리 회사 규모가 크더라도 반도체의 모든 종류를 재고로 보유하기는 쉽지 않다"며 "이에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구로유통상가에 사무실을 열었다. 우리는 고객이 방문해주길 기다리는 것이 아닌, 주문받은 제품을 직접 찾아주기도 하고, 구로유통상가 업체들이 개발한 새로운 제품이나 재료를 홍보하고 판매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많은 물량을 구입하는 대기업과의 거래가 당장의 돈이 되지만 그는 롱테일(1년에 단 몇 권밖에 팔리지 않는 '흥행성 없는 책'들의 판매량을 모두 합하면, 놀랍게도 '잘 팔리는 책'의 매상을 추월한다는 온라인 판매의 특성을 이르는 개념.)에 집중했다. 개개인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손이 더 많이 갈 수 밖에 없지만 개개인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치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그에 따르면 전자부품은 종류도 어마어마한데다 대부분 대량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개인이 취미로 전자제품을 만들기 위해 많은 재고를 떠안게 된다. 이를 소분판매해주는 것은 엔지니어들에게 다양한 연구활동을 지원하는 것과도 같다.

김 대표는 "개발하고자 하는 학생들이나 개인 연구원들이 많을 것이고 수요도 많을 텐데 지역적 문제로 지원받기 어렵다고 말한다"며 "최근 창업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개인이 만든 아이디어가 실현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대전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거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대전으로 사업을 확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전에서 김 대표는 판매 뿐만 아니라 기존에 추진하던 엔지니어들의 세미나와 기술공부 장(場)을 만들 계획이다. 이 활동은 이미 서울에서 회사를 운영하며 여러번 진행됐다. 이 모임에서 엔지니어들은 MP3와 KTX에 들어가는 오디오시스템 디지털 업그레이드 등을 진행해 사업화하기도 했다.
 
그는 "대전의 ETRI, 전자부품연구원, 테크노파크뿐 아니라 학생 등 롱테일 고객들을 대상으로 소통해 서비스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텃밭 가꾸고 명상하는 회사 "창업 20주년 맞아 지역사회 도움 줄 것"

아이씨뱅큐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카페테리아.<사진=김지영 기자>
아이씨뱅큐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카페테리아.<사진=김지영 기자>

전자부품을 판매하는 회사이고, 고객과 전화통화를 많이 하다 보니 딱딱한 사무실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두운 사무실 한켠에서 헤드폰을 끼고 전화만 받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는 고객들도 여럿 있는듯하다.

하지만 아이씨뱅큐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풍경은 보드카페를 연상하게 한다. 카페테리아에서 다트 골프 등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눈에 띈다.

아이씨뱅큐는 독특한 문화를 선도하기로도 유명하다. 유난히 환경에 관심이 많은 김 대표 덕분에 사무실에서는 종이로 출력되는 팩스를 사용하지 않는다.

또 사무실과 이어진 바깥공간에서는 토마토나 상추 등도 키운다. 김 대표는 "겨울이라 잠시 휴식기간이지만 날이 따뜻해지면 다른 채소들을 키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명상, 저녁 채소쌈, 음악청소, 월비아(월요일 비타민 아침)등의 활동도 하고 있다. 직원들은 아침에 출근해 밥을 먹고 음악을 틀어놓고 5분간 청소를 한다.

일본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정신수양 일환인 청소에서 비롯된 활동으로 김 대표는 "청소를 해주시는 분도 계시지만 자기 주변 정리를 못하는 사람이 나라에서 큰일을 어떻게 하느냐라는 철학에서 우리도 청소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주변정리를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전 여름엔 명상을 하고 겨울엔 스트레칭을 하기도 한다. 특히 6시 퇴근시간에 맞춰 밥을 지어놓으면 직원들이 직접 가지고 온 채소와 주문한 나물종류 반찬으로 쌈을 먹고 퇴근한다. 일을 더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식사 후 편하게 퇴근한다.

쌈을 먹기 시작한 것은 퇴근 후 집에서 저녁식사 할 시간을 줄이기 위함이다. 그는 "직장인의 경우 퇴근해서 저녁 먹고 씻으면 하루가 다 지나간다"며 "밥을 먹고 퇴근하는 문화가 작년부터 정착이 됐다. 집으로 돌아가 남는 5시간 정도의 시간을 잘 쓰면 그 시간들이 나의 인생을 바꾸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아이씨뱅큐는 내년 만 20주년을 맞이한다. 김 대표는 "20주년을 대비해 지역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 중"이라며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구로단지 2만개 기업 중 가장 오고 싶어하는 회사를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20여년 회사를 운영하며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그는 "3~4년 전에 그 터널을 빠져나온 것 같다"며 "지난해는 에너지를 비축했으니 중국사무실과 대전을 더 키우고 이익만큼 지역 사회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씨뱅큐의 텃밭. 여름에는 직접 기른 쌈과 채소로 저녁을 먹고 퇴근한다.<사진=김지영 기자>
아이씨뱅큐의 텃밭. 여름에는 직접 기른 쌈과 채소로 저녁을 먹고 퇴근한다.<사진=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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