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사람]김영혜 기초지원연 질량분석연구부 박사 "꿈꾸면서 한방향으로"
"다른 분야 연구도 관심갖고 엮으며 과학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김영혜 박사<사진=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제공>
김영혜 박사<사진=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제공>
"빨리하는 것보다 꾸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즐기면서 하려고 노력했고요. 한 번 토의를 시작하면 몇시간씩 했는데 일부 외국 과학자들은 우리가 싸우는줄 알정도였어요.(웃음) 지금 돌아보니 논쟁조차 즐겼던 같습니다. 이번 연구성과가 소개되고 여기저기서 자료요청이 많아 정말 바쁘지만 연구에 몰입하기 위한 긴장의 끈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대한민국을 가장 뜨겁게 했던 과학기술 중 '치매 걸린 사람의 뇌세포 첫 배양' 연구성과가 으뜸으로 꼽히며 개발 연구자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이 연구는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도 실패를 반복했던 것으로 외국의 연구자들이 한국과 한국의 연구자를 보는 시각에도 깊은 인상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련 연구자는 올해 초 700여명의 과학기술인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 통신인 신년인사회'에서도 과학계 대표로 무대에 올라 당당하게 새해 인사를 하며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원장 정광화) 질량분석연구부의 선임연구원 김영혜 박사. 그가 이처럼 주목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3년 전 그에게 닉네임처럼 따라붙은 수식어가 있다. 'KAIST 생물학과 최연소 박사'. 2001년 8월 졸업식 당시 27년 2개월의 나이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김 박사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를 대표하는 수식어가 됐다.

그러나 그는 "그런 관심이 오히려 부담스러웠다"고 손사래를 치며 "재미있어서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했다. 그러면서 성과로 이어졌고 앞으로도 즐기면서 연구에 몰입하고 과학계와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담백하게 계획을 밝혔다.

겨울 끝자락에 기초지원연 오창 본원에서 김영혜 박사를 만났다. 일에 대한 열정과 가야할 방향을 분명하게 세우고 있던 그와의 인터뷰는 진행내내 유쾌했다. KAIST 생물학과 최연소 박사졸업 후 13년간 그의 행보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토마토와 감자 식물에 매료…생물 이해하면서 재미

"대전과학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KAIST에 진학했어요. 중학교 재학 당시 땅속에는 감자, 위에는 토마토가 열린다는 유전공학 연구가 붐이었는데 무척 재미있다고 생각해 망설임없이 생물학과로 진로를 결정했어요. "

이 뉴스를 보고 생물학의 매력에 빠진 중학생 김영혜. 그는 과감하게 자신의 인생항로를 생물학 분야로 결정한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해 배우는 생물과목은 외워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 재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꿈은 계속됐다.

"생물에 대해 진짜 재미를 붙인 것은 대학 때입니다. KAIST에 생물학과가 처음 생겼어요. 교수님이 학과 소개를 해주시며 10년 후 이 분야가 인류를 이끌어 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정말 잘해봐야지'하고 다짐하며 선택했어요. 그리고 공부하면서 생물을 이해하는 쪽으로 접근하니 재미도 커졌고요."

그는 "학부 때부터 실험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생체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면서 생물이 정말 재미 있어졌다. 그리고 몸에 관심이 생기고 즐기며 꾸준하게 공부했다"며 석사와 박사 과정을 내리 밟게된 이유로 '재미'를 들었다.  

김 박사는 박사 후 과정 연구소로 기초지원연을 선택한다. 그는 "생물 주제가 분석기술로 완성될지는 아는만큼 보인다는 생각에 분석기술과 첨단장비가 있는 기초지원연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여러가지로 잘 맞아 지금까지 같은 곳에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하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런데 사회에 나오니 석박사 과정을 공부할 때와 달리 배울게 정말 많았다. 그리고 일을 빨리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꾸준하게 하는것이 정말 필요했다"면서 "그런 경험을 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즐기면서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긍정 마인드는 공동연구와 다른 분야와의 협업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기반이 된다. 그는 "세미나나 학회에 들어가면 다른 분야라도 집중에 듣는 편"이라면서 "관심을 가지고 듣다보면 서로 연결할 부분에 대한 아이디어로 이어지기도한다. 이런것들이 재미 있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과 융합 중요성 알게 되면서 공동연구…4년만에 네이처 게재 쾌거

 3차원으로 분화된 알츠하이머 질환 모델 세포에서 과인산화된 타우단백질이 응집하여 침착됨(이미지 위)3차원으로 분화된 알츠하이머 질환 모델 세포에서 과인산화된 타우단백질이 응집하여 침착됨(아래)<이미지=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제공>
3차원으로 분화된 알츠하이머 질환 모델 세포에서 과인산화된 타우단백질이 응집하여 침착됨(이미지 위)3차원으로 분화된 알츠하이머 질환 모델 세포에서 과인산화된 타우단백질이 응집하여 침착됨(아래)<이미지=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제공>

김 박사는 사람 몸에 관심을 가지면서 기초지원연에서 진행하는 '인간뇌단백질산업'이라는 국제기구 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이는 뇌단백질에 대해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연구로 김 박사는 독일과 프랑스에 파견연구자로 나가기도 한다. 국제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김 박사는 공동연구의 기틀을 마련했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기초학문과 기술을 접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생물쪽은 첨단기술을 이해하고 알면 기초연구의 한계도 볼 수 있거든요. 그러면서 치매를 연구하는 연구소에 연수 갈 기회가 있었는데 적극 지원했어요."

치매 연구소에서 공부할수록 김 박사의 기초학문에 대한 갈증은 깊어졌다. 또 치매는 인간 뇌와 관련된 질환인데 실험쥐로 연구하는 것을 보며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들었다. 연구동료들과 스터디를 하면서 첨단기술을 접목해 치매 질환에 걸린 뇌 모델을 개발하면 좋겠다는 데 생각이 맞닿는다. 지난해 최고의 연구성과로 꼽힌 '치매 걸린 사람의 뇌세포 첫 배양' 기술이 태동하는 순간이다.

"지금까지 치매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는 생쥐를 모델로 약을 투입해 기다리는 것이었어요. 분자매커니즘은 볼 수 있어도 사람이 아니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연구팀은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더 나은 모델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마침 우리가 연구를 시작할 당시 유도만능줄기세포가 개발되며 윤리문제도 해결되고 유전자 활용 연구기술이 발달할 수 있었어요."

김 박사 연구팀은 인간의 신경줄기세포에 돌연변이 유전자를 삽입하고 이후 유전자를 조작한 관련 줄기세포를 이용해 치매발명 이론으로 알려진 아밀로이드 가설을 입증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한다. 굴지의 제약사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연구 4년만에 쾌거를 거둔 것이다. 이는 동물모델에 비해 실험 기간과 비용을 대폭 줄이며 치매 치료제 개발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연구 진행과정은 쉽지 않았다고 김 박사는 회고했다. 굴지의 제약사, 하버드 대학교 등 세계 최고 대학들도 도전했다가 실패한 기술로 만만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김 박사는 "세포가 잘 자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면 미생물도 같이 잘자라게 된다. 또 일정 기간이 지나면 냉장고에 넣어둔 음식이 상하듯이 상할 수도 있었다"고 어려웠던 점을 밝히고 "오염되면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해야하는데 어느때는 마지막에 오염된 경우도 있어 안타까움이 더했지만 과감하게 버리고 다시 시작했다"며 같이 참여한 연구진에게 감사함을 표시했다.

연구팀은 논의와 토론을 통해 3차원 배양법을 도입, 뇌 세포 기질 성분으로 구성된 겔과 세포를 섞어 신경세포를 장기간 배양시키는데 성공한다. 그 결과 기대했던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세계에서 처음으로 치매 발명 원인을 밝혀낸다.

"우리는 논문의 프로토콜 메소드를 그대로 따라하기보다는 그 단계가 왜 들어갔는지, 조심해야 할것은 무엇인지 등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어요. 연구팀이 서로 공동연구 경험들을 공유하고 바로 적응하며 시간을 줄일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실험을 할때 마다 배웠던 경험들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김 박사는 "연구진 각각 개성도 강해 논쟁도 있었지만 서로의 장점을 높여주는 성숙된 관계로 인정하면서 연구에 성공할 수 있었다"면서 "우리가 세미나에서 연구 내용을 발표하니 유명 교수분들이 우리의 연구에 관심을 표하며 재미있다고 말을 먼저 걸어오기도 했다"며 연구에 의미를 부여해 말했다.  

김 박사는 연구결과 발표 이후 누구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현재 하버드 의대와 연구를 진행하며 또 다른 공동연구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하지만 변치않는게 있다. 사람을 향한 연구를 지속한다는 것이다. 그는 "고령사회가 되면서 뇌질환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는 시료를 구하기 어려워 연구진행이 더디다"면서 "후속 연구를 통해 치매의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제를 개발하는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어 "혹자는 기초지원연에서 분석만 하면되지 왜 연구를 하느냐고 말하기도 한다"고 아쉬워하며 "분석기술에는 기초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가 분석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자체적인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분석기술도 발전한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부탁했다. 김 박사는 아직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웃으면서 한 분야만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분야 학회도 가보라고 조언한다. 그는 "요즘처럼 모든게 빠르게 변하는 시기에 다른 이들의 연구에도 관심을 갖다보면 서로 연결할 부분을 찾게된다"면서 "그러면서 과학계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