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박용기/ UST 교무처장,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문연구원

한 해가 바뀌고 벌써 또 한달이 지났다. 지난 한 달 동안 조금 바쁜 일정과 추운 날씨를 핑계삼아 카메라와는 그리 가까운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겨울의 한 가운데서 틈틈이 자연을 향해 마음으로 달려갔던 순간들은 나의 겨울 살이를 그나마 따뜻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1월 중순에는 학교의 행사가 있어 변산에 1박 2일의 출장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추운 날이었고 여행이 아닌 일이 있어 가는 출장이었지만 겨울 바다를 향해 달려간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변산에 가까이 다가가자 구름이 많이 낀 늦은 오후의 서쪽 하늘에서 빛내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행사장에 도착하여 일단 숙소에 올라가 잠시 쉬기로 했다.

▲축복. 숙소에 들어서니 구름 사이 사이로 뻗어 나오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폭포처럼 바다위로 쏟아지고 있는 황홀한 풍경이 넓은 앞창 가득 걸려있었다. Pentax K-3,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1/160 s, F/13, ISO 100
▲축복. 숙소에 들어서니 구름 사이 사이로 뻗어 나오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폭포처럼 바다위로 쏟아지고 있는 황홀한 풍경이 넓은 앞창 가득 걸려있었다. Pentax K-3,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1/160 s, F/13, ISO 100

그런데 숙소에 들어서니 구름 사이 사이로 뻗어 나오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폭포처럼 바다위로 쏟아지고 있는 황홀한 풍경이 넓은 앞창 가득 걸려있었다. 사진 몇 장을 찍고 행사장에 내려가 일정을 점검해 보니 저녁 식사 때까지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숙소를 나와 해안 도로를 따라 조금 걷다보니 방에서 바라 보던 때보다 석양빛이 강해지면서 빛내림이 더욱 아름다웠다. 바닷가로 내려가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일출과 일몰의 광경은 짧은 시간 동안에 변하여 그 순간을 잡지 못하면 놓치는 경우가 많아 도로변 한 곳에 서둘러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다.

▲결정적 순간. 일출과 일몰의 광경은 짧은 시간 동안에 변하여 그 순간을 잡지 못하면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 날도 구름 속에 머물던 석양이 한 순간 얼굴을 보이며 바다 위에는 순식간에 황금 물길이 만들어 졌다. 그리고 태양은 곧바로 구름 속으로 다시 숨은채 하루가 저물고 말았다. Pentax K-3, 50 mm with smc PENTAX-DA* 16-50mm F2.8 ED AL [IF] SDM, 1/125 s, F/13, ISO 100
▲결정적 순간. 일출과 일몰의 광경은 짧은 시간 동안에 변하여 그 순간을 잡지 못하면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 날도 구름 속에 머물던 석양이 한 순간 얼굴을 보이며 바다 위에는 순식간에 황금 물길이 만들어 졌다. 그리고 태양은 곧바로 구름 속으로 다시 숨은채 하루가 저물고 말았다. Pentax K-3, 50 mm with smc PENTAX-DA* 16-50mm F2.8 ED AL [IF] SDM, 1/125 s, F/13, ISO 100

이 날도 구름 속에 머물던 석양이 한 순간 얼굴을 보이며 바다 위에는 순식간에 황금 물길이 만들어 졌다. 그리고 태양은 곧바로 구름 속으로 다시 숨은 채 하루가 저물고 말았다. 만일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바닷가로 내려가고 있었다면 이 순간은 카메라에 담지 못한채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결정적 순간을 사진에 담는다는 것은 여러 조건이 잘 맞아야만 가능한 행운인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의 사진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바로 이러한 결정적 순간들을 사진에 기막히게 담음으로써 보도 사진을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이었다.

▲미련. 사위질빵 갓털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를 키우고 품었던 줄기에 매달려 떠나지 못하고 있다. 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250 s, F/3.5, ISO 100
▲미련. 사위질빵 갓털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를 키우고 품었던 줄기에 매달려 떠나지 못하고 있다. 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250 s, F/3.5, ISO 100

새해 초 한 시사 잡지에서 본 감동적 사진 이야기가 생각난다. 바다 위로 붉게 떠 오르는 태양 속에 독도의 실루엣이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는 기가 막힌 사진이었다. 바로 천채 사진 작가인 권오철씨가 3년의 공을 들여 찍어낸 울릉도에서 바라본 독도의 일출 사진이다. 조선공학을 전공한 후 사진이 좋아 천채 사진 전문 작가가 된 그는 독도와 울릉도를 자주 드나들면서 '맑은 날 울릉도와 독도는 서로 보인다'는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보고 싶었다고 한다.
 (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04305 )

공학도였던 그는 이러한 가능성을 미리 계산해 보았다. 우선 울릉도와 독도의 거리는 92 km이다. 일본사람들은 이렇게 멀기 때문에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일 리가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낮은 해변의 모래 사장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본다면 이 말이 맞다. 왜냐하면 지구는 커다란 공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수평선까지의 거리는 실제로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보다 훨씬 짧아 5 km를 넘지 못한다. 해변에 서서 바라보는 수평선은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거리의 한계가 아니라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나타나는 시야의 한계라 할 수 있다.

만일 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 수평선을 본다면 더 먼 곳까지 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울릉도에서 독도를 보려면 해발 650 m 정도의 높은 지점에 오르면 된다. 또한 해가 뜨는 위치가 매일 달라지기 때문에 울릉도에서 독도와 태양이 일직선으로 보이는 때인 2월과 11월에만 촬영이 가능하다는 것도 미리 계산이 가능하였다.

문제는 날씨였다고 한다. 그는 울릉도를 수 없이 드나들며 결정적 순간의 날을 만나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시도한 지 3년 만에 드디어 청명한 날씨를 만나게 되었고 붉게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아침 해 앞에 검은 실루엣으로 아담하게 자리한 독도를 사진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겨울의 눈물. 마른 천문동 가지 위엔 간밤에 눈이 내리고, 아침 햇살에 녹은 눈은 눈물 방울되어 매달려 있다. 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1600 s, F/3.5, ISO 100
▲겨울의 눈물. 마른 천문동 가지 위엔 간밤에 눈이 내리고, 아침 햇살에 녹은 눈은 눈물 방울되어 매달려 있다. 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1600 s, F/3.5, ISO 100

사진을 좋아하는 필자로서 정말 귀하고 멋진 사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러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한 그의 창의력과, 그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3년을 끈질기게 노력한 집념,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훈련된 내공이 모두 부러웠다. 어쩌면 모든 일에서 이 세 가지 요소는 성공으로 이끄는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러한 세 가지가 준비된 사람들에게 하늘은 길을 보여 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겨울나무 너머로 짧은 겨울해는 지고…. 봄을 기다리며 버티고 서 있는 겨울나무의 앙상한 가지들 너머로 짧은 겨울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신비로운 저녁녘 한 때의 겨울풍경 또한 그 시각 그 장소와 그 각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다.Pentax K-3, 115 mm with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1/80 s, F/11, ISO 100
▲겨울나무 너머로 짧은 겨울해는 지고…. 봄을 기다리며 버티고 서 있는 겨울나무의 앙상한 가지들 너머로 짧은 겨울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신비로운 저녁녘 한 때의 겨울풍경 또한 그 시각 그 장소와 그 각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다.Pentax K-3, 115 mm with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1/80 s, F/11, ISO 100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들을 많이 놓치면서 사는 것 같다. 우리가 놓치는 결정적 순간 중에는 때로 인생이 바뀔 만큼 크고 중요한 결정적 순간도 있겠지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작은 결정적 순간들도 많으리라. 그러나 이렇게 작은 결정적 순간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형성해 가고 행복을 결정해 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무채색의 겨울 풍경 속에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를 키우고 품었던 줄기에 매달려 떠나지 못하는 사위질빵 갓털의 안타까움을 보거나, 아침 햇살을 받아 간밤에 내린 눈을 녹여 만든 눈물 방울을 달고 있는 마른 천문동의 애절함을 만나는 일도 이런 작은 결정적 순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봄을 기다리며 버티고 서 있는 겨울나무의 앙상한 가지들 너머로 짧은 겨울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신비로운 저녁녘 한 때의 겨울풍경 또한 그 시각 그 장소와 그 각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다.

▲겨울 시냇가. 겨울 시냇가에서 우연히 만난 고드름 하나가 우리에게 때로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거나 때로는 감동과 가슴 뛰는 행복을 선물 하기도 한다. 이웃을 향한 작은 친절과 미소, 격려와 칭찬 역시 어쩌면 상대방에게는 작은 결정적 순간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Pentax K-3, 82.5 mm with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2.5 s, F/16, ISO 100
▲겨울 시냇가. 겨울 시냇가에서 우연히 만난 고드름 하나가 우리에게 때로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거나 때로는 감동과 가슴 뛰는 행복을 선물 하기도 한다. 이웃을 향한 작은 친절과 미소, 격려와 칭찬 역시 어쩌면 상대방에게는 작은 결정적 순간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Pentax K-3, 82.5 mm with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2.5 s, F/16, ISO 100

겨울 시냇가에서 우연히 만난 고드름 하나가 우리에게 때로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거나 때로는 감동과 가슴 뛰는 행복을 선물 하기도 한다. 이웃을 향한 작은 친절과 미소, 격려와 칭찬 역시 어쩌면 상대방에게는 작은 결정적 순간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주일 서울의 한 교회에서 함께 드린 헌신의 기도 한 구절이 마음에 남는다.

'은혜의 선물로 주신 지식으로 이웃을 비난하고 정죄하지 않으며, 오직 사랑을 더하여 이웃을 격려하고 칭찬하는데 사용하겠습니다. 언제나 겸손하게 지식을 사용하고, 사랑으로 덕을 세우며 살겠습니다.'

 

 

겨울 사랑 /박노해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들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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