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과학기술계 인사들 "군인 보다 과학기술로 국가 기여"
김시중 전 과기처 장관 "그 아니었으면 지금도 외국기술에 휘둘리고 있을 것"

"한필순 박사는 방위산업계통을 연구한 과학기술자다. 우리나라를 위해 연구한 사람이 사회공헌자묘역에 가지 않으면 누가 들어 갈 것인가."(오원철 전 청와대 경제수석)

"한필순 소장은 원자력을 통한 순수한 애국자다. 그의 고집과 계획이 없었다면 원자로와 연료 국산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군인보다 과학자로서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 안장하는 것이 당연하다."(김시중 전 과기처 장관)

"그는 국방과학연구소에 있을 때도 지뢰, 수류탄, 군복, 방탄헬멧을 개발한 연구자였다. 원자력 기술자립도 나라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죽을 각오로 한 것으로 안다. 당연히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 안장될 수 있어야 한다."(김광모 전 청와대 비서관)

원자력 기술자립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아온 원자력 기술 대부 故 한필순 전 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 소장의 갑작스런 타계에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26일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된 한필순 전 소장의 빈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과학기술계 관계자들이 빈소를 찾아 조문하며 추모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한 박사는 지난 25일 오전 10시30분께 심근경색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전날까지도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집필 작업에 몰입할 정도로 건강을 유지했던 한 박사였기에 가족과 과학기술계 지인들은 그의 갑작스런 영면에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필순 박사는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군인이라기보다는 연구자로서 국방 과학기술과 원자력 기술자립에 심혈을 기울인 과학기술인으로 기억된다.

현재 한 박사는 한국전 참전 장교로서 대전국립현충원 안장이 예정돼 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이에 대해 '원자력 발전기술 자립화'기틀을 마련한 과학기술자로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으로 안장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모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까지 과학기술인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사례는 故 이태규 박사와 故 최형섭 박사, 故 전재규 박사, 故 최순달 박사 등이 있다.

유족과 과학기술계 관계자들은 "한 박사는 군인이라기 보다 원자력 기술자립을 위해 원자력 대부로 불릴 정도로 큰 역할을 했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미국이나 외국의 원자력 기술에 휘둘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가 원자력 기술자립에 기여했다는 것은 외국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국내에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당연히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 안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박사는 국방과학연구소에 재직시 열악한 우리나라 국방과학기술 자립을 위해 군인들의 군복, 수류탄, 방탄 헬멧을 직접 개발했다. 당시 청와대 비서관이었던 김광모 박사는 "그는 군인들을 위해 군복을 개발하고 총알이 통과하는 철모를 보고 방탄헬멧을 개발했다"면서 "개발한 헬멧을 대통령 앞에서 망치로 두드려가며 기술의 우수성을 입증하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고 한 소장을 추억했다.

김시중 전 과기처 장관 역시 한 박사를 원자력 기술 자립의 주역으로 기억했다. 김 전 장관은 "그는 당시 장관이었던 나에게도 대들정도로 원자력 기술자립을 위한 고집과 열정이 확고했다. 그의 그런 열정과 계획이 없었다면 기술자립은 생각할 수 없었다"면서 "한달전에도 원자력 기술자립에 관한 기록을 남기자고 전화통화를 했다. 그는 여전히 원자력 분야에 열정을 가진 과학자이며 애국자다. 그런 애국자를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이날 점심 무렵 빈소를 찾은 오원철 전 청와대 수석 역시 "한필순 박사는 방위산업계통을 연구한 과학기술자다"라며 "우리나라를 위해 연구를 한 사람이 현충원 국립묘지 유공자 묘역에 가지 않으면 누가 들어 갈 것인가"라고 한탄했다.

원자력연에서 기술자문을 하며 한 박사와 최근까지도 왕래했다는 한 지인은 "한 박사는 원자력연 원장을 가장 오랫동안 지내 과학자로 해외과학자들이 국내에 들어와 연구개발할 수 있도록 힘썼던 사람"이라며 "한국원자력 기술 자립과 수출 등 공헌과 업적이 많은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한 박사가 원자력연구소 소장 당시 부설기관인 한국핵연료관리 본부장을 역임했던 이영우 박사도 그가 우리나라 원자력 자립의 기틀을 마련했다는데 공감하며 "당시 환경단체 등 저항이 대단했지만 그가 확실한 의지를 갖고 자립을 추진했다. 그분이 있기에 오늘 원자력 자립이 있었다고 해도 충분할 정도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원자력 자립기에 한 박사의 공헌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침이 없다"며 "이건 보통 유공이 아니다. 아무 자원도 없던 나라에서 20~30년만에 원자력 자립은 기적에 가까운 일로 국가유공자로 대우를 해준다면 우리 원자력계 사람들에게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피력했다.

한 박사가 원자력연 소장으로 재임할 당시 기술개발 자립에 참여했던 남장수 박사는 "소장님의 열정은 대단했다. 연구원들에게 연구 열정을 불어넣기 위해 도서관을 만들고 밤 늦게까지 연구하는 연구원들을 격려하며 기술개발에 힘을 쏟았다"면서 "기술자립을 위해 미국에 있는 연구자들에게 직접 전화하고 미국 시민권을 가졌던 연구자들이 한 소장님의 열정과 애국심에 더 나은 조건을 포기하고 귀국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한 소장님이야말로 진정한 연구자로 국가에 애국한 분이다. 군인으로 현충원에 안장되기 보다는 연구자로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 받아야 한다.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 안장되도록 정부에서도 적극 추진해 주길 기대한다"고 역설했다.

공군사관학교시절 동기였던 한 조문객은 "생도시절 늘 책을 달고 살았다"며 "우리 사이에서 '천재 박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원자력과 물리학에 관심과 열정이 강했던 사람인데 갑작스럽게 떠나게되어 많이 아쉽다"고 회고했다.

그런 가운데 현재 한 박사의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안장을 위해 미래창조과학부에서는 별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미래부 한 관계자는 "국립현충원에 안장되는 걸고 알고 있기에 화환 등은 준비하고 있지만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故 한필순 전 소장의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안장은 핵심 관련 부처인 미래부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 있어 연구현장에서는 미래부의 행보에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한 박사는 원자력 기술자립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2010년 과학기술훈장 1급 창조장을 수상한바 있어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 될 수 있는 요건은 충족된 상태다. 

현재 원자력연은 한 소장의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안장을 미래부에 건의했으며, 미래부도 적극 검토하고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故 한필순 전 소장의 영결식은 오는 29일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발인에 이어 오전 9시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노제를 지내고 현충원으로 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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