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현우 천문연 선임연구원

대전에 문화란 없다?

젊은층 특히 대전으로 이사 온 이들은 딱히 대전에서 알려진 전통이 되는 음식, 건물, 또는 행위가 없다고 느낀다. 하지만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교류 역할을 해 온 대전에는 신라가 축조한 계족산성이 현재 대전 시민들의 휴양림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태조 이성계가 왕실에서 처음으로 이용한 온천이 유성온천이다. 또한 조선 후기 항일의병 중 하나인 을미의병의 최초 진원지가 바로 대전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신채호 등이 대전 출신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지리적으로는 삼국시대 이래로 교통의 요지가 되어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교통중심도시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가 아닌 해외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대전 세계 박람회, 세계과학도시연합,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그 예다. 또한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해 대전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긴 역사와 현재까지 진행되는 업적이 있음에도 문화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아직 그 문화의 특징이 두드러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문화는 바로 '상생'이다. 나라 간 교류의 장소, 따뜻하게 쉬어갈 수 있는 곳, 세상을 향하여 백성들의 뜻을 알리던 곳, 세계에 대전을 보여주는 곳의 안에는 독자적인 '나'가 아닌 '같이 산다'는 의미가 있다.

문화는 정체되어 있고 구성원이 즐길 수 없다면 가치가 없다. 특히 대전의 경우 대전 토박이들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대전 지역의 특성 상 전국 각지,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들어와서 대전사람이 된다. 그러다보니 새로 온 구성원들이 느끼지 못하는 '상생'의 문화는 점점 빛을 바랠 수 밖에 없다.

혁신문화란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고칠 것은 고치고 새로 만들 것은 만든다'는 의미이다. 대전의 '상생' 문화는 형태적인 것이 아닌 행위의 문화이다. 이는 대전이라는 지리적 특성이 빚어 낸 문화인 것이다. 이 문화를 다시 일깨우기 위해서는 현재의 대전, 대전 시민의 마음을 귀담아 볼 필요가 있다.

대전시는 동구의 대전역을 토대로 한 도시화 초기 세대, 유성구의 온천 등을 비롯한 관광휴게시설, 대학과 대덕연구개발특구, 또한 자운대 등을 비롯한 큰 군사시설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여기서 대덕연구개발특구는 대한민국 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수준의 많은 인력과 자원이 집중된 곳이다. 이런 높은 수준의 과학 단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대전 거주 고등학생의 대부분은 다른 지역으로 대학을 지원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대덕특구에 들어오는 연구원들 또한 대부분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이는 40년 정도 된 대덕특구의 역사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초기 외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특구는 대전시와의 융합보다 각 연구원의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기초단계였다. 근래에 와서 발전, 도약 및 선도 단계를 거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대덕특구 또한 점점 대전에 녹아들고 있다. 대덕특구의 가족들이 대전의 한 구성원이 되어감에 따라 대전 특유의 '상생'이라는 문화가 나타날 단계가 된 것이다.

강현우 한국천문연구원 대덕전파천문대 선임연구원.
강현우 한국천문연구원 대덕전파천문대 선임연구원.
실제 각 연구원마다 홍보팀들을 운영하여 일반 시민들에게 알리는 행사를 추진하는 경우 모두 매진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여기저기서 과학행사를 마련해 일반 시민과 만남이 이뤄지는 일이 나타나며, '따뜻한 과학마을 벽돌한장'과 같이 대덕특구의 구성원들이 연구원들과 대전 지역 구성원들 간의 문화교류를 목적으로 사단법인을 만들기도 했다. 바로 '상생'의 문화가 다시 피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대덕연구개발특구를 대전의 한 문화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함께 과학을 이야기하는 '상생'의 행위가 대전의 옛문화이자 혁신문화가 되는 것이다. 이 온기가 느껴지는 불씨는 보다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뜨겁게 달궈지는 문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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