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와 기억 그리고 학습의 비밀을 푼 수잰 코킨 박사의 뇌과학 이야기
저자 수잰 코킨

'뇌'와 '기억' 그리고 '학습'의 비밀을 푼수잰 코킨 박사의 뇌과학 이야기

기이하고 비극적인 H.M.의 기억상실, 그리고 그가 선물한 뇌과학의 거대한 진보!

"과학적으로 인간적으로 기념비적인 책. 한 사람에 대한 존경과 배려는 가슴을 울리고 과학적 발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숨을 멎게 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뇌'를 가진 사람 H.M.
 
1953년, 27세 청년 H.M.은 뇌 수술을 받는다. 유년기에 시작된 간질발작이 일상생활을 위협할 정도로 극심해지자 신경외과의사 윌리엄 스코빌이 뇌 조직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제안한 것이다. 지금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지만, 간질 환자의 뇌 절제 수술은 1950년대 초까지 폭넓게 행해졌고 때로 효과적이었다.

H.M.에게는 기존의 방법보다 더 제한적으로 뇌를 절제하는 측두엽절제술이 적용되었다. 하지만 담당 의사 스코빌도 인정한바 "솔직히 실험적인 수술"이었다. 이 수술로 H.M.의 뇌에서 좌우반구를 연결하는 부위에 있는 해마가 거의 대부분 제거되었다. 수술 후 회복 경과는 좋았고 간질발작도 없어졌지만 곧 누구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드러났다.
 
지능, 감각, 운동을 비롯한 다른 모든 뇌 기능이 정상인데도 H.M.은 더이상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낼 수가 없었다. 어제 만난 사람, 점심 때 먹은 음식, 방금 나눈 대화, 새로 겪은 모든 것이 그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었다. 그 무엇도 30초 이상 머리에 담아둘 수 없게 된 H.M.은 2008년 82세로 사망할 때까지 '영원한 현재'만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H.M.의 개인적 비극은 인류에게 행운이 되었다. 2008년 사망할 때까지 46년간 그는 수잰 코킨 박사를 비롯한 100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진행하는 수백 건의 연구에 피실험자로 참여했다. 과학자들은 그의 사례를 통해 기억과 학습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기억'과 '학습'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H.M.을 통해 밝혀졌다.

이 작업들을 통해 그는 뇌과학 역사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가장 유명하고도 중요한 환자가 되었다. 환자 H.M.은 1970년대 이후 뇌과학과 심리학 교과서에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사례가 되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머리글자로만 알려졌던 그의 이름은 2008년 그가 사망한 후, 그의 연구자이자 보호자 역할을 해왔던 수잰 코킨 박사에 의해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헨리 구스타브 몰레이슨Henry Gustav Molaison이다.

뇌과학 역사와 발전의 살아 숨 쉬는 기록
 
이 책은 기억에 관한 뇌과학의 시작과 발전에 대한 매력적인 개괄이자 동시에 한 사람에 대한 감동적인 전기다. 기억 연구의 핵심 주역이었던 수잰 코킨 박사는 뇌과학의 도전적인 역사를 기록하면서 이 눈부신 성과 뒤에서 함께했던 사람, 46년간 헌신적으로 연구에 참여한 자신의 환자 헨리 몰레이슨을 세상에 소개한다.

헨리의 뇌손상은 기억 연구에서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통찰을 이끌어냈다. 바로 기억이 뇌 전체에서 균일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영역에 결정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라는 통찰이다. 그 이전까지 의사나 과학자 들은 뇌에서 의식적인 기억이 형성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서술기억이 일정한 구역으로 제한된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찾지 못했다.

헨리의 사례는 측두엽의 한 부위가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결정적인 인과적 증거를 제시했다. 또한 기억이 몇 단계의 개별 처리 과정으로 나뉜다는 것, 각각의 처리 과정에 기반이 되는 대뇌회로가 따로 있다는 것, 기억의 종류가 둘 이상으로 나뉜다는 것, 기억하지 못해도 학습하고 습관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 등이 모두 그의 사례를 통해 밝혀졌다. 헨리 한 사람의 사례가 현대 기억 연구의 시대를 열었으며 그의 삶이 뇌과학 역사의 바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잰 코킨 박사가 들려주는 헨리의 삶과 그의 사례 연구는 섬뜩한 뇌절제술이 행해지던 신경외과의 암흑기에서 출발해, 뇌와 기억 연구의 선구자인 와일더 펜필드, 도널드 헵, 브렌다 밀너, 에릭 캔들을 거치는 뇌과학의 역사를 관통한다.

연구자와 참여자의 참을성 있는 헌신으로 이뤄낸 행동실험, 미심쩍고 섬뜩한 뇌 절제 수술, 살아 있는 뇌 활동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강력한 뇌 영상 기술, 자신의 뇌를 연구 대상으로 기증한 이타적인 환자들, 사회적 약속으로 떠오른 생명윤리 문제에 이르기까지, 60년 뇌과학의 역사가 이 책에서 살아 숨 쉬는 이야기로 펼쳐진다.

◆과학적 탐구과 인간적 연민의 경계에서

헨리 몰레이슨 사례를 통해 우리는 불편한 윤리적 질문에 마주한다. 인간의 뇌와 기억을 다루는 과학은 결국 인간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실증되어야 한다. 과학에 자신의 삶과 뇌를 바친 헨리는 '영웅'인가, '순교자'인가? 헨리가 자신의 비극과 고통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해도, 50년 가까이 수백 건의 실험에 참여하는(혹은 동원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었는가?

"헨리와 함께한 나의 연구는 행동 측정 방법과 데이터 해석 방법의 세부 요소에 천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의 사례는 사회를 향해 더 큰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헨리 구스타브 몰레이슨의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헨리는 의학 실험에 자기 인간성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을 잃어버린 한낱 비극적 희생자인가, 아니면 뇌에 대한 이해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영웅인가? 헨리의 사례를 생각하면 할수록 이 물음에 답하기가 어렵게만 느껴진다."

연구자 코킨은 환자 헨리를 누구보다도(아마도 헨리가 자신에 대해 아는 것보다도 더) 잘 아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연구자와 참여자이자 한편으로는 일종의 삶의 동반자로 여겨진다.

이 책이 뇌과학 역사에 대한 한 연구자의 기록이자 회고인 동시에 한 사람에 대한 헌사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코킨 박사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과학자로서의 지적 열망과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강한 연민의 미묘한 균형은 우리를 과학과 윤리의 경계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끈다.

코킨 박사는 헨리 사례를 통한 지적 발견의 희열과 인간적 불편함이라는 상충하는 감정을 애써 감추려 들지 않는다. 이런 진솔함이 이 책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출처: 교보문고, 출판사: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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