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박용기/ UST 교무처장,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문연구원

12월 중순에 접어들면 신문 방송 등에서는 한 해를 뒤돌아 보면서 올해의 10대 뉴스를 선정하여 발표하기 시작한다.

한 신문에 발표된 올해의 국내 10대 뉴스를 살펴보면 온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세월호 참사'를 필두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과 '청와대 비선 의혹 문건 유출 파문' 등이 뒤를 잇고 있었다.

같은 신문에서 발표한 국외 10대 뉴스에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 '전 세계 에볼라 공포 확산', '이라크·시리아서 IS 득세' 등의 뉴스가 선두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외 10대 뉴스에는 '로제타호 탐사선 혜성착륙'이라는 과학기술관련 뉴스가 8위를 차지하고 있어 사회 및 정치 이슈만으로 채워져 있는 국내 뉴스와는 조금 다른 면이 보였다.

한편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는 올해의 국내 과학기술 10대 뉴스를 선정 발표하였다.

6건의 과학기술 성과와 4 건의 뉴스로 구성된 10대 뉴스에는 미국 하버드 의대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공동 연구팀의 성과인 '치매환자 뇌세포 첫 배양'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으며, 삼성전자의 '5배 빠른 Wi-Fi 신기술과 세계최초 3.2 TB SSD 개발', 그리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두개골 절개 없이 뇌 종양 수술할 수 있는 로봇 개발' 등이 뒤를 잇고 있다.

국내 10대 뉴스를 보면 뭔가 답답하고 우울한 일들만 있었던 2014년 같은 느낌이 들게 되지만, 다행히 과학기술 분야 10대 뉴스를 보니 우리의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고 편리하게 만드는 성과와 뉴스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한 해 동안 땀흘려 노력한 과학기술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이 때쯤이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각자가 살아온 한 해를 돌아보면서 나름대로의 중요한 일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사진공감을 통해 일년의 변화를 사진으로 담아온 나도 끝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올해를 생각해 보면서 기억에 남는 사진 몇 장을 골라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1. 7:37- 7:40 a.m.

2월에 동해안으로 겨울 여행을 다녀왔다. 이른 아침, 여명의 아름다운 빛이 하늘을 물들이는 시각에 가까운 바닷가로 나갔다.

해가 처음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때부터 수평선 위로 둥실 떠 오르기까지의 시간을 보니 불과 3분 정도 밖에 흐르지 않았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는 생각을 하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가 새롭게 느껴졌다. 김남조 시인은 겨울 바다에 서서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이었다고 말하였다.

Pentax K-3,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1/80 s, F/5.6, ISO 100
Pentax K-3, Tamron SP AF 70-200mm F2.8 Di LD [IF] Macro, 1/80 s, F/5.6, ISO 100

 2. 노란 리본과 민들레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들려온 '세월호' 침몰 소식은 온 국민을 애타게 하였고 슬픔과 절망 그리고 실낱 같은 희망으로 기적을 기다리며 구조 작업을 지켜보게 하였다.

안타깝게 운명을 달리한 수 많은 젊은 학생들을 애도하고,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한 사람이라도 살아서 구조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인터넷과 SNS을 통하여 노란 리본의 물결이 퍼져나갔다.

4월의 들판에는 마치 노란 리본의 의미라도 아는 듯 노란 민들레가 가득 피어나고 있었다.

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1000 s, F/3.5, ISO 100
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1000 s, F/3.5, ISO 100
 
3. 여름 수목원, 외손녀와 아이리스

이 사진을 보면 6월에 외손녀들과 놀러 갔던 수목원이 떠오르고 잠시 눈앞에서 사라져 버려 우리 가족을 애타게 했던 둘째 외손녀의 실종사건이 떠오른다.

다행히 바로 아이를 찾을 수 있었지만 가슴을 쓸어내렸던 시간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이를 찾고서야 화단에 가꾸어 놓은 유난히 크고 탐스럽게 피어 있는 아이리스가 눈에 들어왔다.

아내와 아이들이 앞서 간 후 잠시 아이리스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멈추어 섰다. 아이의 실종사건도 있어 아내의 눈치를 보며 찍는 사진인지라 손각대(카메라를 삼각대가 아닌 손으로 그냥 받쳐 들고 찍는 것을 말함)에 의지해 빠르게 몇 장을 찍고는 부리나케 가족들 행렬에 합류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찍은 아이리스 사진 한 장이 유럽의 인터넷 사진 사이트의 대문사진으로 선정되었다.

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1250 s, F/3.5, ISO 100
Pentax K-3, smc PENTAX-D FA 100mm F2.8 MACRO, 1/1250 s, F/3.5, ISO 100
4. 새벽 빛으로 만난 도담삼봉

7월 중순 직장에서 직원들이 함께하는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단양에 갈 기회가 있었다. 나에게는 새로운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직원들과 어울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며 젊은 직원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친해지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둘째 날 새벽, 대부분의 직원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각에 나는 카메라 배낭을 메고 단양과 영월의 좋은 곳을 안내하겠다는 학생처장 박교수를 따라 나섰다.

막 동이 터서 아침의 붉은 노을 빛이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일 즈음에 단양 팔경의 제 1 경인 도담삼봉에 도착하였다. 새벽의 시원한 기운도 기분 좋았지만 강물에 몸을 담그고 서서 붉은 아침 노을에 자신의 모습을 조용히 비추며 서 있는 세 개의 크고 작은 바위와 작은 정자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새벽에 보는 자태는 그 전날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얼핏 보았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동일한 대상도 이렇게 시간과 배경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사진을 통해서나마 아름다운 순간을 붙잡아 둘 수 있고 또 그 순간에 그곳에 있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아름다운 모습을 전할 수 있음이 뿌듯하게 느껴졌다.

이 사진 역시 유럽의 다른 사진 사이트에서 커버사진으로 채택되어 나를 기쁘게 해 주었다.

Pentax K-3, 16 mm with smc PENTAX-DA* 16-50mm F2.8 ED AL [IF] SDM, 1/100 s, F/4.5, ISO 100
Pentax K-3, 16 mm with smc PENTAX-DA* 16-50mm F2.8 ED AL [IF] SDM, 1/100 s, F/4.5, ISO 100
5. 별과 꽃으로 풍성한 초가을 소백산

9월 중순, 어린 외손녀와 아내를 동반하고 소백산 천문대를 방문하고 하루를 묵을 수 있게 되었다.

첫날 밤중에 만났던 마치 별이 쏟아지는 듯한 가슴 벅찬 밤하늘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떠오를 것 만 같다. 다음날 새벽 나는 카메라를 들고 새벽의 소백산을 만나러 숙소를 나섰다.

아침 운해로 뒤덮인 산의 물결 너머로 붉으레한 아침빛이 신비롭더니 이내 붉은 아침 해가 솟아 오르고, 아침의 부드러운 햇살에 지천으로 피어있던 들꽃들이 모습을 들어내며 운해와 어울려 또다른 장관을 연출하였다.

제철이 조금 지나 이제는 애처로운 모습을 하고 있는 구절초 위에 아침햇살이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보듬는 연화봉 주변을 보며 천국의 모습이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Pentax K-3, 16 mm with smc PENTAX-DA* 16-50mm F2.8 ED AL [IF] SDM, 1/40 s, F/16, ISO 100
Pentax K-3, 16 mm with smc PENTAX-DA* 16-50mm F2.8 ED AL [IF] SDM, 1/40 s, F/16, ISO 100

 6. 가을이 떠나가는 길목

11월 중순, 아내의 눈 수술로 절정기의 가을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나는 떠나가는 가을의 뒷 모습이라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주말 새벽 대청호반에 가보기로 하였다.

전에 가끔 들렀던 금강변의 로하스길에 있는 물에 잠긴 버드나무들을 찾기로 하였다. 다행히 이날은 강에서는 물안개가 피어올라 이미 잎이 거의 떨어져 앙상해진 버드나무를 포근하고 아름답게 감싸고 있었다.

이 곳에서 다른 계절에 두어 번 사진을 찍기는 하였지만 이날은 특별한 광경이었다. 가을이 물안개 낀 강을 따라 저만치 흘러가고 있었고 그 아름다운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Pentax K-3, 21 mm with smc PENTAX-DA* 16-50mm F2.8 ED AL [IF] SDM, 1/30 s, F/7.1, ISO 200
Pentax K-3, 21 mm with smc PENTAX-DA* 16-50mm F2.8 ED AL [IF] SDM, 1/30 s, F/7.1, ISO 200

7. 겨울 왕국

12월에 들어서면서 올해는 계절이 빠르게 겨울로 옮겨 가더니 유난히 눈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눈 덮인 겨울은 눈 없는 겨울보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만일 눈 한 번 구경하지 못하고 추운 겨울을 나야한다면 정말 지루하고 우울할 것만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하얗게 내리는 눈은 하늘이 준 아름다운 축복이리라. 눈내린 아침이면 완벽한 겨울왕국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의 캠퍼스라면 더더욱 큰 축복이 아니겠는가?

Pentax K-3, 18 mm with smc PENTAX-DA* 16-50mm F2.8 ED AL [IF] SDM, 1/125 s, F/7.1, ISO 100
Pentax K-3, 18 mm with smc PENTAX-DA* 16-50mm F2.8 ED AL [IF] SDM, 1/125 s, F/7.1, ISO 100

 이제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준비할 시간이다. 이해인 시인이 말하듯 잊을 것은 잊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 사랑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마음 속의 송년회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시를 읽으며 오늘 시인의 신간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을 주문하였다. 한 해 동안 사진공감을 애독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모두에게 정말 행복하고 아름다운 새해가 찾아오기를 기원해 본다.

 

송년 엽서 / 이해인

하늘에서
별똥별 한 개 떨어지듯
나뭇잎에
바람 한 번 스쳐가듯

빨리 왔던 시간들은
빨리도 떠나가지요?

나이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간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어서 잊을 것은 잊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야겠어요

목숨까지 떨어지기 전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일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눈길은 고요하게
마음은 뜨겁게
아름다운 삶을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충실히 살다 보면

첫새벽의 기쁨이
새해에도 항상
우리 길을 밝혀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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