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 역사에서의 확률론
저자 다케우치 케이

"하필이면 나한테...."

우연을 받아들이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출근길에 놓친 버스 때문에 뒤엉킨 하루의 일상쯤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세월호 사건 같은 큰 재난을 만난다면 아무리 헤아려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

우연은 예측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 즉 순수한 우연을 견디지 못하고 점집을 찾고, 종교에 의지하며, 신비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개인의 인생만 그러한가. 기업이나 국가도 그리고 자연이나 인간의 역사도 모두 우연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도대체 우연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우연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평생 수리통계학을 연구한 저자 다케우치 케이(도쿄대 명예교수, 일본학술원 회원)는 "확률은 우연성의 크기를 나타낸 것"이라며, 자신의 전공분야 확률론에서 시작하여 학문의 칸막이를 넘나들며 이러한 질문들에 차근차근 설명한다.

우연의 적극적 의미

주사위를 던지면 숫자가 아무렇게나 나오지만 반복해서 던지면 모든 숫자가 6분의 1에 가깝게 나온다. 복수의 우연들이 더해지고 빼지면서 확률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이른바 큰수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여기서 우연은 잡음 또는 오차 같은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우연을 소극적인 존재, '덧셈적 우연'이라고 한다.

이와 달리 누적되면서 큰 변화를 일으키는 우연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생물의 진화이다. 돌연변이라는 우연이 자연선택이라는 체로 걸러지면서 쌓여 새로운 종이 생긴다. 생물의 다양한 종은 우연의 필연적인 산물이다. 저자는 이를 '곱셈적 우연'이라고 이름 짓고, 자연과 인간 사회에서 우연이 갖는 적극적 의미를 밝힌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우연과 필연을 대비시키면서 우연성에 대한 이해를 끌어낸다. 이어서 우연을 표현하기 위한 확률의 개념과 본질적 의미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 확률이 보험과 같이 현실 사회에 응용되는 사례를 소개한다. (고등학교 수학에 나오는 수식들이 기억나지 않으면 슬쩍 넘어가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다.)

우리 사회에서 우연이 갖는 의미를 밝히는 뒷부분은 흥미진진하다. 우연의 관점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설명하고, 인간 역사에서의 우연과 필연의 얽히고설킴을 이야기한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파리 시민들이 "오늘부터 대혁명이 시작되었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우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리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유전자의 조합이라는 우연으로 태어난다.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수없는 우연과 만난다. 스스로 행운을 불러오거나 불운을 대비할 수 없다. 저자는 이를 '인생의 근원적인 부조리'라고 한다.

그러면 어쩌면 좋을까. 나쁜 우연이 닥치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지만, 그 결과의 불행은 사람들이 나눌 수 있기 때문에 불운의 결과를 나누는 연대를 주장한다. 이것이 우연의 전제(專制)에 대항하는 길이라고. 우연의 영향을 받는 시장경제의 결과를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에 대한 비판, 사회복지와 관련한 언급은 명쾌하다.

우리의 삶이 모두 결정되어 있고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지루할까. 본 영화를 다시 보는 기분일 것이다. 우연이 없다면 인생은 '꿈도 희망도 없는' 것이라고 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하는 것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단 하나의 가능성 이외에 많은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이고 그만큼 상상의 세계를 풍부하게 한다. 단순한 진리이지만 우연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뒤에 한 말이라 무게가 있다.

'거대 운석 충돌에 대한 대비' 등은 이야깃거리로도 좋다. 가와사키 의대 등 일본의 대학 입시 지문으로 활용될 만큼 문장도 뛰어나다.

저명한 통계학자 허명회 교수(고려대학교)와 독서가로 알려진 구갑우 교수(북한대학교대학원)가 꼼꼼하게 감수해서 번역과 편집의 완성도를 높였다.

<출처: 인터파크 도서, 출판사: 윤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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