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월드컵에 열광했던 사람들이라면 독일 팀의 우승 뒤에 빅데이터가 있었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SAP라는 빅데이터 전문 업체의 도움을 받아 어떤 선수가 어느 지역에서 활발히 움직이는지, 어느 선수가 어떤 지점에서 슛에 강점이 있는지를 분석함은 물론, 공의 소유 시간을 대폭 줄여 스피디한 공격을 함과 동시에 수비 범위도 더 넓힐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데이터는 경기 중 상대 팀의 특성에 따른 선수 기용은 물론, 선수 교체와 전략 수립에도 활용됩니다. 1990년 이후 24년 만에 월드컵을 품에 안은 독일에 대해 아이뉴스24에서는 '녹슨 전차 군단이 빅데이터 기름을 치고 신형 전차로 탈바꿈했다'는 분석 기사를 실은 바 있습니다.

독일에 월드컵을 안겨준  SAP가 이번에는 싱가포르에서 일을 냈습니다. 지난 10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BNP 파리바 여자테니스협회 파이널스 싱가포르'대회에서 관중들은 테니스 경기와 함께 너도나도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SAP의 경기분석 모바일 앱을 보면서 경기의 내용을 보다 상세히 보기 위해서입니다.

경기가 끝난 후 동작을 복기해 보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경기 내용을 분석하여 스마트폰에서 그래프로 보여주고, 이를 통해 누가 더 많은 움직임을 보이는지, 누구의 서브가 더 예리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SAP가 이러한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었던 데에는 실시간으로 초고속 데이터를 분석하여 서비스할 수 있는 버추얼 리플레이'라는 분석 기술 덕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분석 기술은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차상균 교수가 설립한  TIM이라는 벤처기업에서 개발했다고 합니다. SAP에서는 이 기술의 한글 이름인 '하나(HANA)'를 아직도 고유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SAP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보면 ‘SAP가 HANA를 통해 더욱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스포츠에 빅데이터가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빅데이터라는 이름보다 더 오래된 일입니다. 제 컬럼의 첫 회에도 소개된 영화 'Moneyball'이 바로 스포츠에 데이터가 본격적으로 접목된 가장 오래된 사례입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컴퓨터가 아니라 연필과 노트가 분석의 도구였지만요.

이와 같이  이전에는 경기 기록만을 가지고 선수를 분석했지만, 이제는 IoT기술이 접목되어 첨단 장비를 몸에 부착한 채 경기와 훈련을 하게 되고, 경기를 촬영한 동영상을 분석하여 수많은 데이터가 쏟아져 나옵니다. 그야말로 스포츠에도 빅데이터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지요.

그 첫 가시적 성과가 독일의 월드컵 우승으로 보여졌으니, 아마 세계 스포츠계는 우수한 선수를 확보하는 만큼이나 데이터 분석 전문가를 영입하는 전쟁에 돌입할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의 유명 스포츠 팀에서는 빅데이터와 스포츠 통계 전문가를 영입하고 있습니다. 축구, 야구, 농구 등의 구기 종목은 물론이고 F1, 요트 등 거의 모든 종목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2013년 5월 한국야구연구학회가 발족하였습니다. 이 학회의 초대 회장은 야구 전문가나 체육대학 교수가 아니라 우리나라 뇌공학 연구의 대표주자인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 연구소 정재승 교수입니다.  학회의 설립 배경에는 '전세계 프로야구에서 4할 타자는 왜 사라졌는가?'라는 정재승 교수의 호기심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이 엉뚱한 야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테드 윌리엄스가 마지막 4할을 치고 사라진 1941년에 태어난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덕분이라고 합니다. 그는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를 타자의 나태함이나 경기환경 탓으로 보지 않고 '시스템의 진화적 안정화'로 설명하였습니다.

프로야구 리그도 일종의 거대한 '생태계'라서 서서히 안정화라는 진화 단계를 거치게 되고, 그래서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선수 사이의 격차가 줄어들어 1할 타자도 사라지지만 4할 타자도 사라지는 안정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백인천 프로젝트는 지난 30년간의 한국 프로야구 데이터를 분석해 타자 실력과 투수 실력, 수비 실력 등이 어떻게 진화해왔으며, 과연 한국 프로야구 역시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것인지 통계적인 분석을 시도해본 것입니다. 이를 풀기 위해 트위터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57명의 야구 팬이 '백인천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이의 후속이 바로 한국 야구연구학회의 출범입니다. 11월 22일에는 제 4회 학술대회가 개최됩니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대비한 ICT 기술 개발이 한창입니다. 일본에서도 2020 동경 올림픽을 통해 자국의 ICT 기술을 만천하에 자랑하겠다고 기세가 대단합니다. 우리나라도 평창 올림픽 전까지 5G 통신망과 기가 인터넷을 실용화하여 홀로그램 등 최신 기술을 접목한 ICT 올림픽을 치루겠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스포츠 자체에 빅데이터를 접목한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리지 않습니다. 독일이 빅데이터라는 윤활유에 힘입어 세계를 제패한 새로운 전차군단으로 태어났듯이, 우리나라 동계스포츠도 빅데이터라는 화려한 날개를 달고 높이 비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선화 KISTI 원장은 

한선화 KISTI 원장.
한선화 KISTI 원장.
현재는 정보의 홍수시대입니다. IDC의 '디지털유니버스 보고서'에 의하면 올 한해동안 생성되어 유통된 디지털 데이터의 양은 2.8 제타바이트에 달한다고 합니다. 1제타바이트를 책으로 만들어 쌓으면 지구에서 태양까지 1억5000만km를 37번 왕복할 수 있는 양이니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선화의 정보 프리즘'에서는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사건, 사실을 데이터를 통해 재조명 해줄 예정입니다. 한 박사는 투명하게 보이는 햇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아름다운 무지개로 바뀌듯이 사물과 사건을 보는 또 다른 창이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선화 박사는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 성균관대학교 정보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전산학을 전공했습니다. 1997년부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 근무하며 국내외 과학기술 정보와 관련 정보기술 개발을 총괄하는 정보통으로 올해 9월15일부터 KISTI 원장직을 수행 중입니다. 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첨단융합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부회장, 과실연 대전·충청지역 대표 등 활발한 대외 활동도 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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