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과기부 출신 노환진 DGIST 교수…"정부 엄청난 개혁 필요"
공무원 업무형태·도덕적 해이가 연구현장 침체 불러
관료 전문성 강화하고 연구소에 자율성 위임 강조

노환진 DGIST 교수<사진=대덕넷>
노환진 DGIST 교수<사진=대덕넷>

 

"과학기술, 현장을 모르는 과학공무원의 업무형태가 과학기술계를 망치고 있다."

 

노환진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의 얘기다.

'과학기술계 비판가'를 자처하는 노환진 교수가 정부의 개혁 필요성에 대해 작심하고 입을 열었다. 전직 과학기술부 공무원인 그가 친정을 향해 지적했다는 것은 무언가 작심했다는 뜻이다.

 

노 교수는 1985년 과학기술처 기계연구조정관실 사무관으로 과학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과학기술부 생명환경기술과장, 국립서울과학관장, 과학기술부 출연연육성팀장, 교육과학기술부 연구기관지원과장 등 약 20년 넘게 과학기술계와 인연을 맺은 정통 과학 관료 출신이다. 

 

노 교수는 과학기술 공무원 업무형태의 문제점 진단과 분석, 정책 대안, 그리고 미래 방향을 격정적으로 쏟아냈다. 

 

일각에서는 어쩌려고 자신이 몸담았던 정부에 겁없이(?) 욕을 하느냐는 반응도 있지만, 노 교수는 "진짜 사랑하는 자식과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있어야 한다"며 자신의 작심 발언은 비난이 아닌 미래 발전과 꿈을 향한 비판이라고 선을 그었다. 

 

노 교수는 "세상은 많이 변했는데 옛날 방식으로 정부가 정책부터 집행까지 모든 권력을 갖고 있어 여러 실패의 현상들이 사회적으로 많이 나타나고 있다"며 "철저하게 조직적이고 체계화되어 있는 정부의 고질적 문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이대로 가다간 국가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 교수의 이같은 발언은 단순 개인 차원의 소신이나 신념에만 국한된 수준이 아니다. '국가 대개조를 위한 정부 혁신의 과제와 발전방향'이라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정책과제를 최근 연구하면서 노 교수는 과학기술 행정체계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정책 대안을 만들어 냈다.

 

노 교수는 이러한 현상 진단과 정책적 대안들을 가지고 바른 과학기술 사회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토론회를 최근 몇차례 가졌으며, 앞으로 정부 고위관계자들과 공무원 앞에서 관련 연구결과를 발표해 조그만 변화라도 시작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과학 공무원 무엇이 문제인가?…전문성 부족·관료주의로 나타난 '정책 품질' 후퇴

 

"PBS 이전과 이후로 과학 공무원들이 과학기술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전 공무원들은 연구원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지만, PBS 체제 이후 연구자를 핍박하는 시대로 넘어가면서 공무원들은 연구자를 연구성과도 잘 안나오고, 연구비 잘못쓰는 사기꾼이라는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전 공무원들은 정부출연금이 뭔지 알지만 지금은 연구소가 유연성과 자율성이 후퇴해 대학보다 연구소가 제약이 훨씬 많아지게 됐습니다."

 

노 교수는 정부의 행정관행과 공무원의 업무형태의 문제점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이해부족 ▲정책주도역량 부족 ▲공무원 전문성 부족 ▲관료주의와 도덕적 해이 등이 결과적으로 정책 품질의 후퇴를 가져왔다고 진단했다.

 

노 교수는 "공무원들의 전문성 부족과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이해부족에 도덕적 해이까지 개입되어 우리 과학기술정책은 시대착오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며 "정부는 우리 과학기술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선진국 정책을 파악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창조경제에 대한 시원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른 영향으로 노 교수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만들지 못한 점, KIST를 국제적 기관으로 키우지 못한점, PBS와 IMF를 통해 망가진 출연연의 처우를 회복하지 못한 점, 창의적 연구체계를 연구하지 못하고 출연연의 미션을 확고히 정하지 못한 점, 다양한 과학기술 정책의 중도 포기 등을 가장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 대안은 무엇?…"사고방식부터 바꿔야"

 

"정부가 이끌고 가던 시대의 공무원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애국심을 새로 정의하고, 봉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학문의 자유가 왜 중요한지 이해하고, 모든 의사결정을 최대한 과학화해야 합니다."

 

노 교수는 정책 대안의 첫 단추는 공무원의 사고방식부터 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사고방식의 변화가 가장 어려운 변화이지만 방향은 제시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정책적으로는 정신교육의 주제로 다뤄 직무교육에 반영되어야 하며, 구체적 방법론이 행동과학적 측면에서 연구돼 보급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공무원의 직무활동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매뉴얼 제정과 이를 꾸준히 개선할 수 있도록 정부 내 연구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노 교수는 공무원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5급 공채로 들어온 사무관이 대학 학부 수준의 지식으로 과학기술정책을 주도하고 과학기술자를 관리하겠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라며 과장 승진시 석사학위 요건 지정, 무보직 서기관 2년 교육파견 제도적 허용, 고위공무원단 승진시 박사학위 과정 3년간 의무 교육파견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관피아 문제와 관련, 노 교수는 공무원을 정년까지 일하게 유도하고, 퇴직시 공공기관 재취업이 안되도록 '국가공무원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고위 공무원이 보직을 받지 못할 경우 정책연구기관으로 파견하는 대안과 산하 기관장 선임은 공모를 원칙으로 하되 적어도 차관 역임 후 응모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특히 노 교수는 과학 공무원의 업무 위임과 연구기관 자율성 확보를 강조했다. 노 교수는 "연구사업은 연구기관에 다 넘겨야 한다"며 국가연구개발사업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주도하도록 모든 권한을 위임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가 직접 중점기술 도출이나 기술로드맵을 그리지 말고 모두 출연연에서 할 일이기 때문에 출연연이 자율적으로 역할을 맡아 굴러가도록 간섭하지 말고 기다려 줘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묶음예산을 주고 연구기관 스스로 자율성을 키우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피력했다.

 

노 교수는 이밖에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HRD부서 설치, 과학기술계통 연구기관 행정력 전문화, 과학기술기본법 개정 포함 법률체계 재정비 등을 과학기술 행정체계 혁신을 위한 주요 정책대안으로 꼽았다. 

 

노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너무 큰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 점이 없지 않지만, 실현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변화해 나갔으면 한다"며 "정부가 이를 잘 받아들여 우선 특별TF를 구성해 법률정비부터 착수하고 체계를 잡아나갈 수 있도록 실질적 움직임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노 교수의 이같은 행보를 두고 과학기술계 한 원로 과학자는 "국가와 우리 과학기술계를 위해 정말 의미있고 용기있는 행동"이라며 "창조적인 패러다임이 중요해진 시대에 정부가 이를 제대로 받아들여 진정한 과학기술계 활로를 뚫어주길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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