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화학상 수상자 '시라카와 히데키' 세계과학한림원 서울포럼 참석차 방한
30여명 학생들과 직접 '전도성 폴리머 합성실험'
"손 움직여 실험함으로써 과학에 대한 흥미 오래 가져가길"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시라카와 박사가 12일 세종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한 실험교실을 열었다.<사진=김지영 기자>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시라카와 박사가 12일 세종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한 실험교실을 열었다.<사진=김지영 기자>
12일 세종대학교 실험실. 200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시라카와 히데키 박사가 학생들을 위한 실험교실을 열었다.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강연이 아닌 실험교실을 여는 일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같은 소식에 국내 이공계 학생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만 했다. 그 결과 세종과학고 등 서울 경기지역 과학고등학교에서 약 30여명이 선발돼 함께했다.

시라카와 박사는 학생을 위한 실험교실을 진행하는 등 청소년을 위한 과학교육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과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 실험은 처음인지라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다.

◆ "직접 실험함으로써 과학에 즐거움 느끼길"

시라카와 박사는 "강연도 좋지만 학생들이 직접 손을 움직여 실험함으로써 과학과 실험에 대한 즐거움을 느낄수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사진=김지영 기자>
시라카와 박사는 "강연도 좋지만 학생들이 직접 손을 움직여 실험함으로써 과학과 실험에 대한 즐거움을 느낄수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사진=김지영 기자>

"한국 학생들과 실험하는 것이 처음입니다. 어떻게 될지 걱정도 되지만 기대도 되네요."

추운 날씨에 도톰한 양복 위에 흰 가운을 입은 그는 화려함보다는 검소함과 소소함이 묻어나는 과학자였다. 평소 학생들과 만나는 일이 많아서인지 말투와 첫인상에서 권위보다는 상냥한 느낌이 많이 묻어났다.

이웃나라 일본 과학자인 시라카와 박사는 한국을 자주 찾는다. 처음 한국에 온 것은 80년대 초. 그는 "밤늦게 바깥이동이 금지되어 있었던 때 한국을 처음 찾았다. 작은 컨퍼런스가 있어서 온 것이 첫 한국의 기억"이라고 말했다.

그는 1970년대 초 일본 도쿄공업대학교 한 연구소에서 전도성 고분자의 일종인 폴리아세틸렌을 실험했다. 그때 그의 조교가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촉매를 실수로 1000배 투여했는데 그때 아름다운 은빛 엷은 막이 나타났다.

그 순간 시라카와 박사는 이 물질이 전도성을 띨 것이라고 직감했고, 펜실베이니아 대학 등과 공동연구를 통해 절연성 고분자가 전도성을 띨 수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그를 200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이끄는 연구성과가 됐다.

그는 2000년 노벨상을 수상한 후 많은 강단에서 강연을 했다. 그러나 강연은 이미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하고 있는 활동이었다. 이번 한국 초청도 강연 요청이었지만 그는 "강연보다 학생들과 실제 실험을 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실험을 제안하는 이유는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이 직접 손을 움직이며 실험에 참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의 의무교육으로 학생들이 다양한 수업을 듣고 있지만 화학실험이 많지 않아 아쉽게 생각했다"며 "강의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직접 손을 움직여 실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외국에서 실험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는 "일본에서는 도쿄에 위치한 일본과학미래관에서 월 1회 초등학교 5학년 이상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주말에 실험교실을 열고 있다"며 "초등학교 등에서 요청이 오면 직접 가서 실험을 하기도 한다. 10년 전부터 시작했으니 슬슬 100회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험 내용은 주로 시라카와 박사 스스로 계획한다. 그는 "먼저 실험 구성 등은 직접하고 대학원생이나 봉사활동 등 희망자들을 모아 실험에 대해 설명하고 논의한다"고 말했다.

보통 시라카와 박사가 학생 5명을 지도하지만 이번 실험교실은 30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일본의 경우 실험 하기 전 스텝들과 실험 리허설을 진행하지만 이번 실험에서는 예행연습이 쉽지 않아 긴장된다는 그는 "이번 실험교실을 통해 실험에 즐거움을 느끼고 대학과 대학원 등에서 즐겁게 과학공부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오랜만에 실험, 보람있었다"

실험하는 학생들 모습<사진=김지영 기자>
실험하는 학생들 모습<사진=김지영 기자>

오후 1시 30분 시작된 실험에서 시라카와 박사는 먼저 전도성폴리머에 대해 강연 하고 실험을 주도했다. 이날 진행된 실험은 시라카와 박사가 노벨상을 받은 분야인 전도성고분자(플라스틱)와 폴리머를 합성해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2차 배터리를 만드는 것으로 진행됐다.

실험에 앞서 과학도들은 먼저 그에게 다가와 질문하고 과학도로서 나아가야 할 길 등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시라카와 박사도 실험에 열중하는 학생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과학고 한 학생은 "화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대부분 시라카와 박사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번에 함께 실험을 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세종대학교 학생은 "오랜만에 실험을 하니 정말 보람 있었다"며 "박사님의 논문을 보면 누구나 따라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 놓은게 많더라. 노벨상 수상자와 함께 실험한 것, 또 고분자 실험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욱 특별했다"고 말했다.

이날 실험 진행에 도움을 준 이정오 한국화학연구원 박사는 "노벨상 수상자와 함께 실험을 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다. 학생들에게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실험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박성현)이 12일 세종대학에서 개최한 '2014 세계과학한림원 서울포럼(IASSF)'일환으로 진행됐다.

이날은 그의 연구분야인 전도성 폴리머 합성 실험이 진행됐다.<사진=김지영 기자>
이날은 그의 연구분야인 전도성 폴리머 합성 실험이 진행됐다.<사진=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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