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연관 전문가 '대규모 국가기술 연구개발 시급' 공감대 확산

석유화학산업은 조선, 자동차 산업과 함께 수출 3대 트로이카라고 불리며 국가 산업을 이끌어 왔다. 그런데, 최근 업계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수요와 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뤄져야 균형 가격점이 생기지만, 미국 내 셰일가스 개발과 중동 국가의 산유국 원가 우위 등으로 국내 업계의 원가경쟁력은 이미 상실된지 오래다. 

석유화학산업 특성상 원가의 비중은 높을 수 밖에 없다. 앞으로 상황은 갈수록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흔들리면서 유관 산업도 휘청거리고 있다. '제조업 위기설'이 확산되는 추세다. 

대한민국 석유화학산업은 그동안 정유산업과 연계된 NCC(Naphtha Cracking Center,  납사분해시설) 기술을 기반으로 기초화학원료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미래에는 CTO(Coal-to-Olefin, 석탄올레핀추출기술), ECC(Ethan Cracking Center, 에탄분해시설)이 추가적으로 필요할 것으로 예측된다.

문제는 기초화학원료생산 공정 운영에 대한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원천 기술력이 부재하다는 것. 석유화학산업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석유, 석탄, 가스산업 연계형 대단위 신 Package 공정기술 개발을 통해 국가에너지 자원의 안정적 확보와 국가 기반산업인 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은 "석유화학산업 위기 극복을 위해 산·학·연·관이 협력해 장기적 관점의 대형 기술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 김성현 한국화학공학회 회장…"선진기술 개발 예측과 개발만이 살 길"

김성현 한국화학공학회 회장의 모습. <사진=강민구 기자>
김성현 한국화학공학회 회장의 모습. <사진=강민구 기자>
대한민국 총 수출액 중 약 20%가 석유화학 관련 제품이다. 정유산업 총 매출액만 203조원에 달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R&D 비용 중 석유화학 관련 R&D 비중은 5%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은 기본적으로 단기적인 실적에 급급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생산설비 증설, 운전 및 유지보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원천기술 및 공정기술 개발은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산학협력 연구인식 결여도 원인 중 하나다.

김성현 한국화학공학회 회장은 "위기를 겪고 있는 원인은 크게 석유화학은 중동산유국, 중국, 한국, 미국 내 설비 증설로 인한 공급 과잉와 중국 경제 및 세계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부족"이라며 "이러한 가운데 셰일가스가 초래한 에너지 값 하락 및 원가 절감은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업체의 원가 경쟁력을 낮추는 요소다. 실제로 모 회사가 50년만에 첫 적자를 앞두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 석유화학이 위기인데, 그동안 미래를 내다보고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개발이 산업계에 별로 없다"며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처럼 기술개발을 준비해서 다른 나라에서 하지 못하는 효율 높고 생산성 높은 기술을 개발해야 하며, 선진기술 개발 예측과 개발만이 살 길이다"라고 밝혔다.

◆ 박용기 한국화학연구원 탄소자원전환촉매연구그룹장…"원천기술 개발 이끌 콘트롤타워 필요"

박용기 한국화학연구원(원장 이규호) 책임연구원은 대형연구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끈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교육과학기술부 21세기프론티어 연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2002년 10월 총 사업비 108억원이 투입된 ACO 기술 개발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 사업은 한국화학연구원, SK 이노베이션이 미국 KBR 엔지니어링과 협력해서 지난 2011년 세계 최초로 촉매이용 나프타 분해기술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이는 약 9년간의 연구를 통해 원천기술확보에서 기술 상용화까지 일궈낸 쾌거다.

박용기 화학연 책임연구원의 모습. <사진=강민구 기자>
박용기 화학연 책임연구원의 모습. <사진=강민구 기자>
박 박사는 ACO 연구를 하면서 느꼈던 것이 집단 연구라며 하나의 주제에 대해 심도 깊게 연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제는 원천기술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부출연연구원 중심으로 전체를 보고 가까운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합니다. 기업, 학계, 연구원, 관 등이 함께 모여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박 박사는 "우수한 연구자는 많으며, 연구를 지속적으로 끌고 나가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콘트롤타워가 있어야 하는데 얼마나 방향성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잘 끌고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박사는 최근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프로필렌 Max 생산기술 ▲올레핀 유연 생산기술 ▲아로마틱 직접합성 기술 ▲Hydrocrcking 등 17개 전략기술 후보를 제시했다.

석유 기반에서 가스, 석탄을 기반으로 하는 신올레핀제조기술의 등장과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질유분의 고부가화 기술개발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에서 박 박사는 "융합센터 설립을 통한 학제간, 산업간 협력을 통한 혁신적 R&D 추진 및 촉매, 분리, 공정 동시 개발을 통한 신올레핀 제조 및 중질유 고부가화 Package 기술을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 화학연은 지난달 29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석유화학협회 산·학·연·관 관계자 및 전문가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에너지 및 석유화학 기초원료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KRICT R&D 포럼'을 개최했다.

◆ 전문가들 대형 국가기술개발 이끌 리더십 강조···세부 방향 조율 '시급'

석유화학업계 전문가들은 대형 국가기술개발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며 연구개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R&D리더십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세부 방향에 대해서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구체적 실행을 위한 조율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성현 화학공학회장은 "목표를 높게 설정하고 기업들을 참여 시키는 방안과 세부 과제는 원하는 기획으로 하는 2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며 "원료값의 차이에 대한 극복은 결국 Break Through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면 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대안이 그것 밖에 없다. 단독으로는 어렵고, 함께 모여야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피력했다.

이동우 롯데케미칼 소장은 "정부 과제를 20건, 연간 40억을 지원 받고 있다. 장기적으로 함께 개발해야 할 기술도 분명히 있다"며 "대형 과제를 띄워서 컨소시엄 형태로 가고, 나머지 과제는 관심 업체 참여를 유도하면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고동준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은 "중국도 상해에서 석탄 가스화기를 개발하고 있다. 기술 개발 및 상용화에 20~25년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2005년 개발을 시작해 현재 상업화 플랜트도 많이 지은 상태다. 국내에서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득기 광주대 교수는 "핵심 아이디어가 있으면 플랜트까지 가는 것이 중요하며, 책임을 맡은 사람의 능력에 따라 프로젝트 성패가 갈린다"며 "일을 많이 벌려도 플랜트까지 못가면 의미 없다"라며 리더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국책 연구기관으로서 화학연의 중심 역할을 촉구하는 의견도 석유화학계에서 나오고 있다. 화학연 내부에서도연구역량 집중이 필요하고 다른 출연연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현식 희성촉매 주식회사 전무는 "화학연이 큰 틀의 계획을 설정해야 한다"며 "화학연 내부에서 먼저 역량을 모은 뒤에 계획등 비젼을 제시해야 기업이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규호 화학연 원장은 "글로벌 환경이 변화하면서 대한민국 주력 사업인 화학 사업이 큰 위기"라며 "국책연구기관으로서 화학산업의 국가적인 시너지 효과 창출을 위해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적 기술개발 추진 방법에 대한 다양한 의견도 있다. 현재호 테크노베이션파트너스 대표는 "유럽은 독립적 센터를 만들고 지분율에 따라 기술개발을 나누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삼성, LG, 하이닉스 등이 각자 이해관계에 얽혀서 실패한 사례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박덕수 SK 가스 팀장은 "산학연이 국가 과제를 추진한다면 과제 소유가 명확하지 않아서 문제점이 발생한다"며 "기본적으로 협력과제로는 공감대를 이끌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국가 연구개발 과제에 대한 방향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최원춘 화학연 책임연구원은 "관심있는 기술이라면 기업차원에서 알아서 펀드를 만들고 시행할 수 있다"며 "굳이 정부에서 지원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화학연은 '에너지 및 석유 화학 기초원료 확보 기술'을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융합연구단 선정을 위한 사업 테마로 기획하여 산학연과 긴밀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화학연 R&D 포럼에 참석한 산·학·연·관 관계자들의 모습 <사진=강민구 기자>
화학연 R&D 포럼에 참석한 산·학·연·관 관계자들의 모습 <사진=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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