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전자빔으로 미래 가공기술 여는 기계연 '광응용기계연구실'
"산업체와의 협력 무엇보다 중요"…연구개발 성과 기술이전 활발
자르고, 붙이고, 뚫고, 깎는 것이 전통 기계가공이다. 선반과 밀링 등의 기계가 이런 작업을 한다. 하지만 제품에 사용되는 소재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첨단화되면서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다. 레이저나 전자빔으로 자르고, 붙이고, 뚫고, 깎는 작업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이유다.
한국기계연구원 광응용기계연구실(실장 손현기 박사)의 역할과 임무도 커지고 있다. 연구실 이름에 '광(光)'자가 들어가 있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 주로 빛을 다룬다. 레이저와 전자빔을 이용해 전통적인 기계가공으로 할 수 없는 소재를 가공하는 기술을 연구개발한다.
손현기 실장은 현재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스마트폰을 예로 들었다. "스마트폰 액정을 보죠. 액정이 딱 맞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크게 원판으로 만들어집니다. 표면의 경도를 높이기 위해 화학처리도 하죠. 종전까지 유리 제품은 유리를 자르는 기계로 자르고 깎았어요. 하지만 스마트폰 등 첨단 제품의 유리는 이런 전통 기계가공으로는 자를 수 없습니다. 레이저를 사용해야죠."
레이저와 전자빔을 사용하면 가공 못하는 제품이 없다. 금속이나 플라스틱은 물론 세라믹, 복합소재, 바이오 소재 등을 자르고, 붙이고, 뚫고, 깍을 수 있다. 특히 최근 제품에는 단소재가 아니라 복합소재들이 많이 쓰인다. 다른 소재가 여러 층으로 겹쳐 있다. 한 층은 메탈, 다른 한 층은 폴리머, 이런 식이다.
◆대기업·첨단분야 레이저 가공 비중 갈수록 늘어
연구실의 임무는 크게 두 가지다. 자체적으로 하는 연구개발과 기업체 등에서 의뢰하는 기술개발과 기술지원. 전통적인 기계가공으로 한계가 있는 만큼 기업체에서 들어오는 기술 의뢰가 많다. 특히 반도체나 전자제품 등을 생산하는 대기업에서는 상당수 공정을 레이저로 전환하고 있다. 산업체 입장에서 보면 공정 성능은 비용 문제와 직결된다.
"결국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정밀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물론 레이저 공정을 적용하면 훨씬 빠르고 정밀한 작업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실제 제품 생산라인에 사용하려고 하면 전체 공정이 제품 단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스마트폰 액정을 커팅하는 시간이 1시간 이상 걸린다면 적용이 어려운거죠. 거꾸로 아무리 빨리 정확하게 작업해도 많은 비용이 들면 또 적용이 어렵구요. 결국 산업체에서 요구하는 공정기술은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빠르고 정확한 작업이 가능하냐가 핵심이죠."사정이 이렇다보니 연구실에서 하는 일과 산업체에서 요구하는 부분이 조금은 다룰 수 밖에 없다. 연구실에서는 공정 자체의 성능을 높이고 원천기술을 개발하는데 관심이 많다. 단기 연구개발도 있지만 보통 3~5년 기간이다. 반면 산업체에서는 단기간에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분야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연구개발 분야의 특성상 산업체와 협력이 중요하다. 그래서 어느 연구실보다 기술이전도 활발하다.
"얼마 전에 기업에 이전된 기술인데요. 산업체에서 레이저 스캐너를 많이 쓰는데 종전에는 스캐너와 이것을 잡아주고 있는 스테이지가 별도로 움직였습니다. '스텝 바이 스텝'이었던 거죠. 스테이지가 움직이고 나중에 스캐너가 작업을 하는 식이죠. 이것을 일치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상당히 까다로운 기술을 요구하죠. 이 공정기술을 개발해서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고, 또 해당 업체는 이 기술로 가공한 제품을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의료·국방·항공우주 분야 활용도 커져
전통적인 기계가공과 상충하는 부분도 있지만 연구실은 레이저와 전자빔으로 문제점을 보완해 가공의 성능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레이저의 강점 가운데 하나는 레이저에 반응하고 반응하지 않는 물질이 있어 선택적인 가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사용하면 기계와 '공존'할 수 있다. 실제 연구실에서는 세라믹 가공 업체와 함께 복합가공기계를 연구하기도 했다.
연구실은 국제공동연구도 활발하게 수행중이다. 현재 프랑스 연구진과 함께 극초단펄스레이저를 연구중이다. 레이저는 두 가지 타입이 있다. 하나는 에너지가 고르게, 직선으로 나가는 레이저가 있고, 다른 하나는 에너지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레이저가 있다. 보통 펄스라고 하는데 펄스폭이 길어지면 정밀한 가공이 불가능하다. 프랑스 연구진이 극초단펄스레이저에 사용할 수 있는 레이저를 개발하고, 기계연이 관련 공정을 개발하고 있다.
연구실에서 주력하고 있는 연구 분야는 점차 다양화되고 있다. 크기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전통 기계가공과 상충하기도 하고 상호보완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산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연구결과물을 하나하나 쌓아가고 있다.
"로봇 기반의 용접기술도 관심 대상이죠. 최근 들어 자동차도 디자인이 강조되면서 곡선도 많아지고 기존의 방식으로는 작업하기 어려운 표면 형태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레이저를 쪼인다고 영화처럼 그렇게 쉽게 절단되는 게 아니거든요. 레이저에서의 관건은 빔을 아주 작은 초점으로 모으는 것이 관건입니다. 또 의료나 국방, 항공우주 분야에서도 레이저나 전자빔을 이용한 가공기술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소수정예 부대'…자율성·팀웍이 가장 큰 무기
연구실의 역사는 깊다. 지난 1989년에 발족돼 관련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냈다. 지금은 정규직 박사 11명을 비롯해 모두 3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 자동차, 기계, 조선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원들이 활동중이다. 산업체의 수요는 늘고 있지만 인력은 한정되어 있어 필요로 하는 기술 개발이나 지원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손 실장의 연구실 운영 원칙은 '자율성'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한정된 자원으로 많은 일을 소화하다 보니 무엇보다 팀웍이 중요하다. 그런데 팀웍이나 화합은 그냥 구호로 외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서로의 자율성을 인정해주고, 각자의 일과 역할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 연구실은 그야말로 '소수정예' 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철저한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팀웍과 화합이 가장 큰 무기가 될 수 밖에 없어요. 화합은 결국 존중입니다. 그래서 연구실의 연구방향이나 비전을 만드는 것부터 연구실 구성원들과 같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장이 모든 것을 좌우할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되구요."
손 실장은 연구의 스펙트럼을 다소 좁히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레이저가 빛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연구실에서도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연구실은 갈수록 다양한 가공기술을 필요로 하는 산업체의 수요에 부응하면서도 미래 원천기술을 확보하는데 주력하기 위해 오늘도 밤늦게까지 연구실의 불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하루 종일 레이저와 산다"…일상속으로 파고든 레이저기술
레이저(Laser)는 '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방사의 유도방출에 의한 광의 증폭)'의 약자다. 1958년 벨 연구소 연구진이 유도방출에 의한 마이크로파의 증폭과 같은 원리로 광의 증폭·발진 현상이 발생한다는 이론을 밝혔다. 이어 1960년 휴즈사의 Maiman이 루비를 사용해 최초로 레이저 발진실험에 성공했다.
레이저를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통로는 영화다. 물론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레이저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대표적 사례가 '스타워즈'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다스베이더와 레이저 검으로 결투를 벌인다. 하지만 레이저 빔은 마찰이나 충돌이 생기지 않아 영화에서처럼 칼 싸움을 할 수 없다. 게다가 레이저는 빈 공간에 산란되는 물질이 없으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레이저 검이나 우주선에서 쏘는 현란한 레이저 빔은 눈으로 볼 수 없다. 이처럼 영화속 레이저는 '과학적 오류'가 많지만 레이저와 친숙해지는데 큰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다. 영화에서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레이저의 진면목은 산업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레이저 측량기술이 적용된 유로터널이 대표적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각각 공사를 시작한 터널은 1990년 12월 1일 도버해협의 중간에서 중심선 편차가 불과 수평 35.8㎝, 수직 5.8㎝로 만났다. 현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세계적인 토목공학 성과물로 꼽히는데 레이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레이저 응용기술은 건축, 군사, 자동차산업, 우주항공산업, 바이오 및 전자산업등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기술로 부각되고 있다. 독자적인 레이저 기술력이 국력과 비례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기계연 광응용기계연구실이 산업계에서의 레이저 적용을 위해 용접, 절단, 패터닝 및 표면처리 공정의 연구개발에 20년 넘게 매진해 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레이저를 접하고 산다. 우리가 눈을 뜨고 밤에 감을 때까지 함께하는 인터넷의 정보들은 레이저를 이용한 광통신을 통해 전달된다. 또 필요한 자료는 레이저 프린터로 출력한다. CD-ROM이나 DVD 또한 레이저를 이용한 광픽업 장치를 통해 영화, 음악 등의 정보를 담고 있다. 레이저 용접으로 만들어진 자동차를 타고 출근하며, 회사에서는 레이저 포인터를 이용해 각종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또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할 때 계산대에 놓인 바코드 리더라는 레이저 기기를 만나며, 병원에 들러 레이저 시술을 받는다. 주름, 검버섯, 점 제거를 위한 피부과, 라식, 노안수술 등을 할 때는 안과, 물방울 레이저 치료 등이 쓰이는 치과, 그리고 레이저 수술을 하는 외과 등 레이저 치료 병원은 다양하다. 이밖에도 유원지에서의 분수쇼, 음악 방송 프로그램 등에서 흔히 보는 레이저 쇼 등 우리의 여가 생활 속에서도 레이저는 손쉽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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