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신용현 표준연 전문위원·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명예회장

처음 만나는 분들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이름이 적힌 명함을 교환할 때, 많은 분들로부터 '연구소가 어디 있냐'는 질문을 받는다.

'대덕연구단지'에 있다고 답하면 '좋은 곳에 게시네요'라는 인사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들이 대덕연구단지를 '좋은 곳'이라고 표현할 때는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과학 기술계가 아닌 분들의 인사말에서는 '대덕 연구단지에서 일하는 것을 보니 과학 기술계에서는 중요한 일을 하는 우수한 사람 일 것 같다'는 덕담의 의미가 느껴지고, '대덕연구단지'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는 분들의 인사말에서는 '대덕연구단지는 연구 환경이 우수하고, 근무 조건이나 처우가 좋은 곳이라고 알고 있다'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는 것으로 들린다. 어느 쪽 이건 '대덕연구단지'의 브랜드 이미ㅐ지가 긍정적이라는 점은 정말 좋은 일이다.

실제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소들은 공원 못지않은 아름다운 환경의 캠퍼스를 자랑한다. 내 사무실에 왔던 대기업에 다니는 친척 동생은 '누나는 연구소에서 월급 받을게 아니라 입장료 내고 다녀야하는거 아니야'는 농담을 했을 정도다.

잘 정비된 연구단지의 길들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교통도 편하며 과학관과 체육시설이 단지 내에 있고, 가까운 거리에 예술의 전당과 쇼핑센터가 있어 생활 환경도 우수하다.

또한편으로는 연구단지라는 특수성으로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일하고 있으니 직장 동료에 의한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적은 편이고, 강압적이거나 수동적인 업무에 시달리기 보다는 자기 주도적으로 보람 있는 일을 하며 능력 발휘를 할 수 있다.

바쁘긴 하지만 일반 회사에 비해 업무 일정 조정도 비교적 자유롭다는 면에서 기업체에 계시는 분들이 부러워하는 근무 여건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나도 내 아이들이 대덕연구단지에서 일 할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으며, 주위 사람들에게도 대덕연구단지로 올 것을 강력하게 추천하는 편이다.

하지만 '대덕연구단지'를 '최고'라고 주장하기엔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덕연구단지에 대한 외부의 비판적인 시각은 차치하고서라도,  대덕연구단지 구성원인 나 스스로도 연구원으로서의 자부심이나 연구 업무나 생활에 대한 만족 정도가 점점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예전에 비해 연구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저하됐고, 연구 관리 제도 강화로 연구원의 자율적 연구 환경이 저해됐으며, 사람들이 많아지고 경쟁체계가 도입되면서 더이상 가족적 분위기를 유지할 수 없다는 등의 많은 이유를 열거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에 대한 해결책이다.

운 좋게  2년 전 '연구개발특구 아이디어 콘테스트' 심사에 참여하면서 그 해결책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당시 이 콘테스트는 '신나는 일터'와 '재미있는 과학동네'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를 모으는 자리였는데, '그래 그러면 좋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제안들의 공통점은 '우리 스스로 하는 일' 그리고 '함께 모이는 일'이었다.

'급할 때 서로 아기를 봐 줄 수 있는 사람들의 보육 품앗이 네트워크', '여러 사람들이 한데 어울리는 대덕특구 데이', '취미 활동을 같이 할 연구단지 친구 찾기 앱', '공동식당이나 카페 거리운영', '도서관이나 독서 교실', '아이디어를 실현해보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이디어 웨어 하우스' 등이 그때 나왔던 아이디어들이다.

이런 아이디어 발표를 들으면서, 잊고 있었던 지난 일들이 생각났다.

돌이켜보면 예전에는 연구소 직원 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 같이 어울릴 기회가 많았다. 저녁이나 주말에 동료 기족들과 같이 모여 밥 해 먹는 일도 흔했고, 식사 후 한집으로 몰려가 복닥거리면서 놀던 일이 다반사였다. 가족 이름쯤은 당연히 서로 알고 지냈고, 아이를 서로 봐주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아이들이 연구소 잔디밭에서 노는 동안, 어른들은 나무 밑에 모여 최신 가요도 배우고 사교댄스도 배우던 기억도 났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면 잘하는 사람이 부족한 사람을 가르쳐 주기도 했고, 옷이나 가구를 물려주고 서로바꾸는 일도 많았다.

언젠가부터 줄어들었던 이런 정겨운 자리들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신나는 일터'와 '살고 싶은 과학동네'를 만드는 첫걸음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마음으로 '따뜻한 과학마을 벽돌 한장' 모임에 감사하며 동참했다. 대덕 구성원들의 상호 부조,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 자연스런 과학 대중화 활동을 통해 대덕연구단지를 신나고 재미있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보자는 '따뜻한 과학마을 벽돌 한장'의 취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신용현 표준연 전문위원,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대덕넷 자료사진>
신용현 표준연 전문위원,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대덕넷 자료사진>
'따뜻한 과학마을 벽돌 한 장'은 예산 등 외형은 아주 소박하지만, 스스로 해보자는 움직임으로 시작됐다. 그래서 동참하는 사람이 늘어가고 모임도 잦아지다보면 세계적인 연구단지로 발전하는 모멘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한다.

대덕연구단지가 세계적인 연구단지가 되려면, 우수한 과학기술자가 모일 수 있는 좋은 정주환경을 구비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대덕연구단지의 주인인 우리들의 마음가짐이다.

대덕에는 이미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고 하드웨어적인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는 편이다. 우리들이 조금씩 관심을 갖고 참여 한다면, 세계 최고의 과학마을을 만들 수 있다. 자부심은 내가  갖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답은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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