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저술가 강석기의 '과학을 취하다 과학에 취하다'
보름달이 뜨면 잠이 주는 이유는?…연꽃을 보고 공포감을 느낀다?
일상생활·사회적 이슈에 숨어있는 과학적 이론과 상식 소개

'청마'는 없다. 말은 털의 색깔이나 패턴이 다양하지만 모두 멜라닌이라는 색소의 타입과 농도, 분포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사진=책 본문 중에서. 위키피디아 제공>
'청마'는 없다. 말은 털의 색깔이나 패턴이 다양하지만 모두 멜라닌이라는 색소의 타입과 농도, 분포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사진=책 본문 중에서. 위키피디아 제공>

2014년 갑오년을 '청마(靑馬)의 해'라고 불렀다. 시인 유치환의 호가 청마다. 청마는 실존했을까? 하지만 파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상징적인 표현이다. 파란 물감으로 염색하지 않고서는 그런 돌연변이가 나타날 수 었다. 말만 그런 게 아니다. 척추동물에는 파란색 색소가 없다. 대신 말과 사람 등 거의 모든 동물은 멜라닌이라는 갈색 계열의 색소를 갖고 있다. 말의 다양한 털색, 사람의 피부색, 머리카락색은 멜라닌이 부린 마술의 결과다.

의외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구멍 여러 개가 숭숭 뚫려있는 이미지를 보면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이른바 '환공포증(trypophobia)'이라 불린다. 여성 10명 중 2명이 이러한 증세를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학술지 '심리과학'에는 'Fears of Holes(구멍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논문이 실렸다. 실제 연꽃(의 꽃받침통)을 보고 징그럽거나 무섭다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예쁜 꽃을 보고 공포를 느낀다고? 그렇다. 환공포증은 구멍이 하나 있을 때 무서운 게 아니라 여러 개가 몰려 있는 대상을 볼 때 느껴지는 두려움이다. 연꽃의 꽃받침통이 대표적이다.

◆탄탄한 과학적 지식으로 과학적 현상 이야기로 풀어

그리스 이카리아섬 주민들은 유럽 뿐 아니라 세계적인 장수촌으로 꼽힌다. 얼마나 오래 사는지 '죽는 것을 잊은 섬'이라 불린다. 이 섬의 주민들은 90세 이상 장수하는 비율이 유럽 평균의 10배에 달한다. 이 곳 사람들은 장수와 더불어 특히 심혈관계 질환이 다른 유럽인에 비해 적은 것으로 유명하다. 비결은 커피였다. 그리스식 커피는 맛과 향이 강하다. 원두를 곱게 갈아 끓이다가 거품이 일어날 때 잔에 따라 마시는 방식이다. 이런 그리스식 커피가 혈관 건강에 좋은 이유는 원두의 유용한 성분이 다른 방식으로 만든 커피보다 훨씬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한 섬은 장수마을로 유명한데 비결을 연구해보니 섬 주민들이 매일 마시는 커피에 비결이 숨어 있었다. <사진=책 본문 중에서>
그리스의 한 섬은 장수마을로 유명한데 비결을 연구해보니 섬 주민들이 매일 마시는 커피에 비결이 숨어 있었다. <사진=책 본문 중에서>
'과학을 취하다 과학에 취하다'는 과학저술가 강석기의 과학카페 세 번째 책이다. 책에서는 파란 말이 없는 이유, 연꽃을 보고 공포를 느끼는 이유, 그리스의 섬 주민들이 커피를 마시고 오래 사는 이유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거나 사회적 현상 뒤에 가려진 과학적 궁금증을 풀어준다.

특히 이번 책에서는 핫이슈, 건강의학, 영양과학, 생명과학, 신경과학과 심리학, 수학과 컴퓨터과학, 물리학과 화학, 인물 이야기 등으로 분야를 더욱 세분화했다. 최신 과학 이슈들을 전문 분야별로 찾아 읽기 쉽게 하려는 저자의 배려다. 폭도 넓어졌지만 깊이도 깊어졌다. 이공계 출신답게 탄탄한 과학적 전문지식으로 현상과 사건에 대해 과학적 돋보기를 들이댄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풍부한 과학적 상식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던 일들에 어떤 과학적 메카니즘이 작동하고 있고, 또 어떤 과학적 배경이 숨어있는지 들려준다. 예를 들면 달에 대해 근거없는 믿음으로 여겨졌던 일에도 과학적 사실이 숨어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보름달을 좋게 보지만, 서구에서는 불길한 징조로 본다. 보름달이 뜬 밤이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는 속설도 있다. 그야말로 근거없는 믿음으로 치부됐다.

◆보름달 뜨는 날 잘 못자는 이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근거없는 믿음이 과학적 사실과 연관되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보름달이 뜨면 수면시간이 실제로 20분 정도 짧아진다는 것이다. 스위스 바젤대 정신병원시간생물학센터 연구자들이 실제 수명의 양과 질을 분석해보니 달의 주기와 연관성이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분석 결과 보름달이 떴을 때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5분 더 길었고, 전체 수면 시간도 평균 20분 더 짧았다. 연구자들은 이런 현상이 인체 내부에 존재하는 주기성, 이른바 '월주리듬'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라는 노랫말이 있다. 보름달이 뜨면 잠을 설친 이유는 노랫말처럼 '누구를 생각하느라' 그런 것이 아니라 환경의 변화에 적응된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던 셈이다. 달 밝은 밤, 잠을 설치더라도 괜한 상념에 젖지 마시길.

저자는 영화 '그래비티'를 최고의 SF영화로 꼽았다. 그리고 이 영화를 누군가에게 헌정해야 한다면 아이작 뉴턴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책 본문 중에서.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저자는 영화 '그래비티'를 최고의 SF영화로 꼽았다. 그리고 이 영화를 누군가에게 헌정해야 한다면 아이작 뉴턴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책 본문 중에서.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저자의 과학적 돋보기는 이러한 일상생활, 근거없는 믿음 뿐 아니라 문학과 영화도 넘나든다. 문학이나 영화 속에 숨어 있는 과학 이야기가 아니라 이러한 장르가 어떻게 과학적으로 작동하는지에 더 관심을 둔다.

실제 미국의 한 연구진은 문학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비소설이나 대중소설을 읽은 사람들보다 공감 능력이 더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독자의 예상을 뒤엎고 독자의 사고방식에 도전하는 문학소설의 힘이 작가뿐 아니라 책을 읽는 독자들도 창조적으로 만들어준다"고 결론지었다. 타인과의 공감 능력을 높이고, 소통을 더 잘하고 싶다면 문학소설을 많이 읽을 일이다.

그리고 영화 '그래비티'에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일부 영화팬들과 호사가들이 과학적 오류를 문제삼기도 했지만 네이처까지 나서 이례적으로 '그래비티는 진정 위대한 영화'라고 평가했다. 저자도 그래비티가 최고의 SF영화라는데 동의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영화를 누군가에게 헌정해야 한다면 그는 아마도 아이작 뉴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우리가 소위 '고전 역학'이라고 부르는 뉴턴의 운동법칙이 그림처럼 작용하는 이상적인 공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 그래비티를 통해 다시 본 뉴턴의 위대함

실제 중학교 물리학 시간에 배우지만 뉴턴의 '관성의 법칙'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다. 공중에 떠 있는 풍선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기만 했는데 어떻게 풍선이 영원히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풍선은 오래 날지 못하고 뒤뚱거리다가 떨어진다. 공간을 채우고 있는 기체분자(공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무중력 상태에 사실상 진공인 우주공간에서 관성의 법칙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영화는 잘 보여준다.

'과학을 취하다 과학에 취하다'. 강석기 저(MID 刊).
'과학을 취하다 과학에 취하다'. 강석기 저(MID 刊).
책의 말미에 2013년 세상을 떠난 저명한 과학자들을 기억하는 코너를 마련했다.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실린 부고를 바탕으로 했다. 면역학의 대모 브리지트 아스코나스, 색맹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실험물리학자 로버트 리처드슨, 맥주거품에서 노벨상을 발견한 물리학자 도널드 글레이저, 500만 시험관 아기들의 대부로 불렸던 로버트 에드워즈, 분자생물학의 거성 프랑수아 자콥, 남극 오존층 구멍을 발견한 지구물리학자 조 파먼 등 27명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했다.

재미있는 대목은 저자가 나름대로 집계한 이들 27명 과학자의 평균수명. 2012년 타계한 28명의 과학자 평균수명은 83.5세, 2013년 세상을 떠난 27명 과학자의 평균수명은 84.2세였다. 이 가운데 남자 24명의 평균수명은 84.5세로 미국인 남성 평균인 76세보다 8년 넘게 더 살았다. 여성은 비슷했다. 그리고 대부분 유럽이나 북미 출신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오래 살고 싶다면 과학자를 직업으로 선택해야 할 모양'이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 부고는 이들 과학자에 대한 짧은 전기이자 위대한 연구성과에 대한 찬사다. 이들은 생을 마감했지만 인류에 남긴 과학적 유산은 계속될 것이라는 작가의 헌사다. 그리고 과학자들의 부고를 정리하면서 느낀 소회를 이렇게 한 줄의 말로 요약했다.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