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규 KAIST 교수 "일시적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
KAIST 학생들 '전국 다문화엄마학교' 프로그램·교재개발에 참여

다문화 가정의 자녀를 위한 프로그램과 교재 개발을 위해 최병규 교수, 김형석 학생, 이배영 KAIST 융합교육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이 회의를 하고 있다.<사진=길애경 기자>
다문화 가정의 자녀를 위한 프로그램과 교재 개발을 위해 최병규 교수, 김형석 학생, 이배영 KAIST 융합교육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이 회의를 하고 있다.<사진=길애경 기자>
천상의 목소리. 소년의 재능은 뛰어났다. 블라인드 오디션마다 최고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소년의 모습을 직접 대면한 기획사 대표들은 난감한 표정 일색이었다.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소년은 조금 검은 피부와 다른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기획사에서는 그런 소년을 한국의 역사를 다룬 뮤지컬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올릴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우여곡절 끝에 소년은 무대에 섰고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몇해전 개봉된 영화내용의 일부다. 영화에서는 소년이 실력을 인정받으며 뮤지컬 주인공으로 발탁되지만 현실은 다문화 가정의 아동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다.

안전행정부의 자료에 의하면 전국 다문화 가정의 자녀수는 올해 7월 현재 20만4200여명으로 매년 1만명씩 증가하고 있다. 특히 농촌에 거주하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가 65%를 차지한다.

문제는 이들의 취학률이 현저하게 낮다는데 있다. 다문화 가정 자녀의 어머니 중 상당수는 가정학습 지도와 학교와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 그러다보니 다문화 가정 자녀들은 학습능력이 떨어지면서 상급학교 진학률도 낮은 편이다. 실제 다문화 가정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률은 93%에 이르지만 중·고등학교 진학률은 75%수준, 대학 진학률은 5%로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이는 결국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하는데 어려운 요소가 된다. 또 다문화 가정 중 상당수는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이혼 가정이 많아 자녀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NGO 단체나 기업 등에서 이들을 돕고 있지만 대부분 물질적 지원과 일회성 문화행사에 그치고 있어 근원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사비를 털어  프로그램과 교재 개발 등 지원에 나선 KAIST 교수가 있다. 직접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최병규 KAIST 교수 "다문화 가정의 문제는 결국 사회 모두의 문제"

최병규 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사진=길애경 기자>
최병규 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사진=길애경 기자>
"내 아이만 잘 사는 사회로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어요. 내 아이, 내 손자만 성공한 인생이 된다고 사회의 질서가 유지될까요? 사회 문제는 결국 모두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근원적인 문제 해결을 통해 모두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때 질서가 유지 될 수 있죠."

최병규 교수는 지금이 아닌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아직은 다문화 가정과 자녀의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사회 문제로 부각될 경우 이는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는 것.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경우 우리의 몫으로 돌아오게 된다는게 최 교수의 지론이다.

시골이 고향인 최 교수는 농촌 가정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다문화 가정의 실상을 가까이에서 직접 보며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농촌 남성 중 동남아 등 외국인 여성과 결혼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죠. 그러다보니 농촌에 거주하는 다문화 가정이 65%이상을 차지하는데 이들 자녀에 대한 교육은 방치되고 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초등학교는 그나마 가능한데 학습 능력이 떨어지면서 학업에 흥미를 잃고 학교생활에도 제대로 적응을 못해 상급학교 진학률은 급격하게 낮아집니다."

최 교수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의 경우 상당수는 위축돼 있었다. 아이가 아이답지 못하고 자신감을 잃은 모습을 보면서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일회성 지원으로는 아이들이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고 키워가는데 큰 도움이 안된다"면서 전국 다문화엄마학교 프로그램 기획과 교재개발 추진 이유를 밝혔다.

◆명문대학이 교육 나눔의 주체로 '전국 다문화엄마학교'

'전국 다문화엄마학교' 프로그램은 다문화 자녀의 대학진학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다문화 학생이 많은 초등학교에 초졸검정고시 과정을 개설해 다문화 가정의 엄마를 대상으로 온라인 교육을 실시한다. 과정을 마치고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검정고시 자격 취득 후 추가 훈련과 선발 과정을 거쳐 해당 학교의 방과후 강사로 재취업할수 있게 해 다문화 가정 엄마의 경제력을 제고하고 한국의 교육 문화에도 적응하도록 돕는다. 또 KAIST 등 명문 대학교의 학생들, 발령대기 교사, 교생실습 학생들이 교사로 참여해 해당 초등학교의 다문화 가정 학생을 대상으로 방과후 교육을 실시한다. 방학 중에는 KAIST 견학을 지원하고 출연연의 연구원이나 KAIST 학생이 다문화 가정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지도하는 캠프를 열기도 한다.

최 교수의 '전국 다문화엄마학교'에 대한 아이디어는 미국의 다문화 교육 사례에서 시작됐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은 일찍부터 다문화 가정의 교육문제와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사회 적응력 향상이 가장 큰 사회 문제였던게 사실이다. 미국 평균 흑인 자녀의 10%만 대학을 졸업하고 흑인 학생의 15%만 정상적인 읽기 능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 정부에서도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1994년 미국교육봉사단원 두명이 텍사스 휴스턴 슬럼가의 공립학교 5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 나눔을 시작했다. 이들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취지에 공감하는 명문대 재학생들이 교사로 나섰고 후원이 이뤄졌다. 2000년에는 한독지가가 150억원 정도의 기부금을 후원하며 KIPP(Knowledge Is Power Program)재단이 만들어졌다.

현재 미국 전역에 141개의 KIPP학교에는 5000여명이 재학중이고 그중 95%가 흑인과 라틴계 학생이다. 또 KIPP 졸업생은 83%가 대학에 진학하고 있어 명문대생과 후원자가 이뤄낸 교육 나눔의 롤모델로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프로그램 만들기 위해 사비털고 KAIST 학생들 적극 참여

최병규 교수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 프로그램과 교재 개발을 위해 각분야 전문가들을 만나 논의하고 조언을 들었다. 사진은 그동안 만난 전문가들과의 인터뷰 메모 노트.<사진=길애경 기자>
최병규 교수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 프로그램과 교재 개발을 위해 각분야 전문가들을 만나 논의하고 조언을 들었다. 사진은 그동안 만난 전문가들과의 인터뷰 메모 노트.<사진=길애경 기자>

"일시적인 지원이 아니라 지속적인 지원을 위해 다문화엄마학교 프로그램은 꼭 해야 할일이라는 생각에 벤처 지분을 넘기고 정년퇴임 기념으로 받은 후원금을 모두 모아 5000만원 정도를 만들어 강의안과 교재개발을 위한 초기 비용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개발에는 물론 KAIST 학생들이 적극 나서주고 있고요."

최 교수의 교육나눔 취지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KAIST 내에서 개별적으로 봉사에 참여하고 있던 미담장학회, 디딤돌 등 동아리의 학생이나 센터에서도 참여 의사를 밝혀왔다. 또 초등학교 교사, 대안학교 교사, NGO 담당, 다문화 관련 센터 실무자, 대학교수 등이 참여해 의견을 주는 등 지원에 나섰다.

디딤돌 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김형석 학생은 "KAIST에 입학하면서부터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동안 야간학교, 어르신, 결손가정 자녀 등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펼쳐왔다"면서 "선배의 제안으로 다문화가정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공학과에 재학중인데 잠시 휴학하고 교재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재개발을 위해 남학생 5명, 여학생 4명이 참여하는데 일요일 오후에 교재개발 미팅을 한다. 모두들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기꺼이 참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KAIST 융합교육연구센터(이하 센터)에서도 적극 참여키로 했다. 센터에서는 다문화 가정 자녀 중 과학영재를 선발해 캠프를 진행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배영 선임연구원은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아이들도 무척 많다. 그들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고 하지만 그동안은 불만족을 제거하는 수준이었다"면서 "최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센터에서도 적극 참여키로 했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문제를 앞으로 우리사회가 함께 풀어가야할 과제라고 말한다. 그는 "다문화 가정의 엄마, 자녀는 전국에 분포돼 있다. 이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과 교재를 만들어 전국에 배포할 것"이라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도 이뤄질수 있어야 한다. 각 교육청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교육부, 전국 교육청을 방문하는 일정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현재 활동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도 단일민족에서 다문화 민족으로 가고 있다. 이는 모든 나라의 추세다. 변화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앞으로 건전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엘리트로 불리는 명문대 학생들의 교육 나눔은 필수"라고 강조하면서 "서울대, KAIST 학생들이 참여하는 비즈니스를 모델을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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